기념관 건립

인천지역 민주화운동사 연표

  • 1990.01.*

    인천노동자문학회 추진위원회 결성
  • 1990.01.05.

    명신여자고등학교 명신교사협의회 회원 최미희·이원주 교사, 생활기록부 관리 건으로 해임 당함
    대한마이크로전자 노조대의원 전옥분 등 54명, 회사 정문 앞에서 ‘무노동 무임금 철폐’ 등을 요구하며 ‘출근 투쟁’을 벌이던 중 경찰에 연행됨. 경찰은 회사 측이 업무방해 등으로 고소한 전 노조위원장 김미령 등 9명을 찾기 위해 이들에 대한 연행을 단행함
    천주교 인천교구 정의평화위원회 간사이자 천주교 인천교구 천주교사회운동협의회 의장인 곽한왕, 국가보안법 위반혐의로 인천지방검찰청에 연행, 구속됨
  • 1990.01.06.

    천주교 인천교구 천주교사회운동협의회,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1월 5일 구속된 의장 곽한왕의 석방을 요구하며 1월 9일까지 답동 가톨릭회관 312호에서 철야농성 전개
  • 1990.01.07.

    명성전자 노동조합 문화부장, 경찰에 연행됨
  • 1990.01.10.

    한일스텐레스 해고노동자 23명, 회사에서 107명이 해고를 당한 데 항의하며 부평역에서 시위를 벌이다 경찰에 연행됨
  • 1990.01.11.

    인천지역 노동조합 협의회 최동식 의장, 1989년 11월 12일 동국대학교에서 연행되어 구속된 후 1심 선고공판에서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고 석방됨
    명성전자 노동조합 위원장 김기자(인천지역 노동조합 협의회 사무처장) 등 2명, 구속됨. 임상희 명성전자 노동조합 문화부장 등 2명은 불구속 입건됨
  • 1990.01.14.

    천주교 인천교구 천주교사회운동협의회, 용현동 성당에서 「박종철 3주기 추모식 및 곽한왕 의장 석방 촉구대회」 개최. 천주교사회운동협의회 회원과 인천지역 사회운동연합 등 500여 명 참석. 헌화 의식과 함께 노래패 ‘열린소리’의 추모공연, 전국민족민주운동연합 사무처장 최한배의 강연 등이 이어짐. 이날 6개 단체 공동명의로 ‘기만적 5공청산 노태우정권 퇴진하고, 모든 양심수를 즉각 석방하라‘는 제목의 성명서 발표
    해인교회 노동청(장)년회·새봄교회 노동청년회·백마교회 청년회·새벽교회 청년회·샘터교회 청년회·사랑방교회 노동청년회 공동 주최로 「인천지역 노동청(장)년회 간부 연합교육 시작
  • 1990.01.15.

    인천지역 8개 노동운동단체가 모여 ‘합법정치활동을 위한 노동자모임’ 결성. ‘인천지역 노동운동단체 협의회’ 소속 3개 단체, 인천기독교 민중교육연구소, 새날상담소, 노동자대학, 인천민중문화운동연합, 진보적 대중정당 결성을 위한 인천지역 준비모임 조직2국(노동국) 등 참가
  • 1990.01.16.

    명성전자 노동조합 조합원 200여 명, 구속자 석방 및 원직 복직 등을 요구하며 철야농성 돌입.
  • 1990.01.17.

    명성전자 노동조합 조합원 200여 명, 1월 16일부터 구속자 석방 및 원직 복직 등을 요구하며 철야농성을 진행 중 이날 새벽 구사대의 습격을 받아 폭행을 당하고, 집행부 전원이 경찰에 연행됨. 이 과정에서 사무장 구속
    대한마이크로전자 정문 앞 길에서 ‘무노동 무임금 철폐’ 등을 요구하며 농성을 벌인 최태석 등 명성전자 및 대한마이크로전자 노동자 65명이 경찰에 연행됨
  • 1990.01.18.

    명성전자 노동조합 조합원 150여 명, 인천지역 노동조합 협의회 사무실에서 농성 전개
  • 1990.01.21.

    가톨릭문화운동공동체, 가톨릭회관 312호에서 창립총회를 갖고 발족. 초대회장에 오미영 선출
  • 1990.01.22.

    명성전자 노동조합 조합원 150여 명, ‘진보정당 인천준비모임’에서 농성
  • 1990.01.23.

    명성전자 노동조합 조합원들, 농성을 풀고 출근을 시도하였으나 33명의 노동조합 간부와 조합원들은 구사대에 의해 출근이 저지 당함.
  • 1990.02.*

    인천진료소연합 발족. 송림동 사랑방진료소, 송현동 산마루진료소, 효성동 백마진료소, 십정동 열우물진료소, 부천 새롬진료소 등 주민회와 연계 무료진료활동을 벌이던 5개 진료소가 인천진료소연합 창립
    1990.02.05.인천간호전문대학 학생회장 등 9명, 등록금 동결을 요구하며 학생과장실에 들어가 집기류를 파손한 혐의로 경찰에 연행돼 3명이 구속됨
  • 1990.02.07.

    인천지역 사회운동연합, 「민주인천」 창간호 발간
    경찰의 노동자대학 원천 봉쇄에 항의, 학생 및 노동자들이 오후 8시 20분경 부평동 진선미예식장 앞 도로를 점거한 채 ‘노동자대학 사수하여 사상자유 쟁취하자’ 등의 구호를 외치며 횃불시위 전개
  • 1990.02.09.

    인천지역 10개 노동조합 위원장들이 모여 「인천지역 노동조합 활성화추진위원회(가칭) 결성을 위한 1차 위원장 모임」을 갖고 준비위원회 발족시킴
  • 1990.02.11.

    대공장풍물패협의회 준비위원회, 인천대학교 대강당에서 인천지역 10개 풍물패를 대상으로 「제1차 정기연습」 개최. 참가한 풍물패는 대우자동차, 대우전자(주안) 한울, 대우전자(인천) 풍물사랑회, 대우중공업 이심이, 삼익악기 땅울림, 영창악기 노울림, 인천제철 쇠돌이, 인천조선 지킴이, 진도 진풍, 한독시계 누렁소 등임
  • 1990.02.14.

    대한마이크로전자 노동조합, 노사협의회에서 인천지역 최초로 ‘인천지역 노동조합 협의회’ 공식 탈퇴 선언
  • 1990.02.17.

    전국교직원노동조합 인천지부, 비밀리에 제2대 집행부 선거 실시. 지부장 신맹순, 부지부장 이청연 선출
    인천대학교 총학생회장·총무부장, 학교 측이 학생회의 등록금 동결 요구를 무시한 채 신입생 등록금을 인상한 데 반발해 동료 학생 30여 명과 함께 교무과에 들어가 서류함에 있던 신입생 등록금 고지서 및 합격통지서 등을 총학생회에 보관해 오다 이날 경찰에 구속됨
  • 1990.02.18.

    ‘민자당 장기집권음모분쇄 및 민중기본권쟁취 국민연합 인천본부’, 인하대학교에서 250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구국의 결단인가, 장기집권 음모인가’라는 주제로 「보수 3당 합당에 대한 시국대토론회」 개최. 이해찬(평민당 의원), 이호웅(진보정당 인천준비모임 의장), 최동식(인천지역 노동조합 협의회 의장) 등이 토론자로 참여
  • 1990.02.19.

    인천지역 대학생대표자협의회, ‘국민기만, 주권유린, 반민주야합 분쇄하여 민주사회 앞당기자’라는 제목의 유인물을 통해 민정·민주·공화 3당의 ‘반민주야합’을 비판함
  • 1990.02.20.

    인천지역 22개 노동조합 위원장들이 모여 「인천지역 노동조합 활성화추진위원회(가칭) 결성을 위한 2차 위원장 모임」을 개최
    인하대학교 총학생회, 인하대학교 통일광장에서 「민자당 장기집권 및 민중운동 탄압 분쇄 대회」 개최. 대회가 끝난 후 학생들이 인하대학교 후문 근처에서 1시간 가량 시위를 벌이다 자진 해산함
  • 1990.02.21.

    인천지역 노동조합 협의회 소속 조합원 500여 명, 부평3동 성당에서 「90 인천지역 임금인상 투쟁본부 발대식」 개최
  • 1990.02.22.

    인천지역대학생대표자협의회, 인하대학교 학생회관 4층에서 「민자당 장기집권 및 민중운동 탄압 분쇄 대회」 개최. 인하대학교, 인천대학교, 성심여자대학교, 서울신학대학교, 천주교 인천교구 가톨릭대학생연합회, 인천사랑학우회 소속 학생 3백여 명이 참가. 대회를 마친 후 인하대학교 후문 근처에서 ‘민주세력 총 단결로 장기집권 음모 분쇄하자’, ‘민중운동 탄압하는 반민주악법 분쇄하자’ 등의 구호를 외치며 시위를 벌임
    ‘민자당 장기집권음모분쇄 및 민중기본권쟁취 국민연합 인천본부’, 주안1동 성당에서 「인천지역 부문·단체 비상 대표자회의」를 개최하고 ‘5월 투쟁평가와 이후 투쟁방향’ 등을 논의
  • 1990.02.23.

    ‘진보정당 인천준비모임’, ‘백마장 입구’ 소재 사무실에서 「정치쿠데타, 3당야합에 맞선 민중의 대응‘이라는 주제로 「제14회 시사토론회」 개최. ’진보정당 인천준비모임‘ 의장 이호웅이 주제발표를 맡음
  • 1990.02.25.

    ‘민자당 장기집권음모분쇄 및 민중기본권쟁취 국민연합 인천본부’, 인천대학교 체육관에서 「반민주 3당 야합 분쇄 및 민중기본권쟁취 인천대회」를 개최하려 하였으나 경찰의 원천봉쇄로 이날 대회가 축소돼 개최되자 오후 5시 무렵 석바위에 집결해 시위를 벌이다 150여 명이 경찰에 연행됨
  • 1990.02.26.

    명신여자고등학교 명신교사협의회 집행간부 강신오·안경수·연제열·임병구 등 교사 4명, 최미희·이원주 교사가 생활기록부 관리 소홀을 이유로 해임당한 데 대해 항의하였다가 아무런 사유서도 제시받지 못한 채 학교 측으로부터 직위해제 당함
  • 1990.02.27.

    인천지역 15개 노동조합 위원장들이 모여 「인천지역 노동조합 활성화추진위원회(가칭) 결성을 위한 3차 위원장 모임」을 개최
    천주교 인천교구 민중대학 동창회, 답동 가톨릭회관 312호에서 신맹순 전교조 인천지부장을 초청하여 「정계개편을 어떻게 볼 것인가」라는 주제로 공개 시사 강좌 개최
  • 1990.03.02.

    ‘민자당 장기집권음모분쇄 및 민중기본권쟁취 국민연합 인천본부’, 석바위 일대에서 ‘장기집권을 위한 반민주야합 물리치자’라는 제목의 유인물 1000여 장을 배포하며 선전전 전개
  • 1990.03.03.

    목재 노동자회, ‘임금인상투쟁 소식지’인 「목재노동자」 제1호 발간
    가톨릭문화운동공동체, 답동 가톨릭회관 6층에서 「토요영화 감상회」 개최. 극영화 ‘홍도화’, 기록영화 ‘이제는 하나다 전노협’ 등을 상영
  • 1990.03.04.

    인천지역 여성노동자회, 부천지역 여성노동자회, 인천지역 노동조합협의회 여성국, 인천지역 탁아위원회, 인천지역 주민회 여성위원회 등 8개 단체가 연대해 인천대학교에서 「3·8 세계여성의 날 기념 인천·부천지역 여성대동제」 개최.
  • 1990.03.07.

    「인천지역 노동조합 활성화추진위원회 결성을 위한 강연회 및 노조간부연석모임」이 주안5동 성당에서 코리아스파이서 박한주 위원장의 사회로 개최됨. 인천지역 노조위원장들의 공동 실천을 강화하기 위한 목적으로 추진된 이날 모임은 전 서울노동운동연합 지도위원 김문수의 강연, 대우중공업 염성태 위원장의 기조발제 및 토론, 대림통상 이상목 위원장의 성명서 채택 등으로 진행됨
  • 1990.03.12.

    명신여고 교사 4명 직권면직 당함
  • 1990.03.14.

    ‘민자당 장기집권음모분쇄 및 민중기본권쟁취 국민연합 인천본부’, 2월 25일 전개된 석바위 시위 당시 민중연합 손명구가 폭행당한 데 대해 남부경찰서 앞에서 40여 명이 항의 시위 전개
  • 1990.03.15.

    노동자대학, 관계 기관에 의해 건물이 폐쇄됨. 이후 진보정치연합 인천지부 사무실을 임시로 사용하다가 6월 12일 십정동 568-5에 임시사무실을 마련하여 이전
    명신여고 학생들, 전교생 수업거부농성 시작
    ‘건강사회를 위한 약사회 서울경인지부 인천분회’ 창립. ‘건강사회를 위한 약사회’는 1988년 4월 24일 ‘건강사회실현 약사협의회’로 창립하였다가 1990년 1월 21일 정기총회에서 ‘건강사회를 위한 약사회’(건약)로 명칭을 변경함. ‘건강사회를 위한 약사회 서울경인지부 인천분회’는 창립 후 격주로 평균 12명 정도가 모임을 가지며 소외계층을 위한 무료 투약, 홀몸노인 건강 돌보기 등의 활동을 전개함
  • 1990.03.17.

    인천지역공부방연합회 결성. 인천지역주민회 회원들과 십정동 해님방, 화수동 민들레어린이집, 송림동 사랑방어린이집, 청천동 햇살 어린이공부방, 만석동 기차길옆 공부방, 구월동 청솔의 집 등 인천, 부천지역 15개 공부방이 연합하여 결성. 소외된 어린이, 청소년을 위한 교육, 문화, 복지공동체를 형성함. 여기에는 빈민운동에 참여한 민중교회가 운영하는 공부방이 많았음.
  • 1990.03.18.

    인천지역 노동조합 협의회, 부천 성심여자대학교에서 500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임금인상투쟁대회 개최
  • 1990.03.19.

    인하대학교 총학생회, 교내에서 「등록금인상 저지 1차 결의대회」를 갖고 3월 23일까지 학교 당국과는 별도로 등록금 납부 창구를 자체 개설, 접수하기로 함
  • 1990.03.20.

    명신여고 교사·학생들, 학교 측이 6명의 교사를 업무방해 혐의로 고발하자 철야농성 돌입
  • 1990.03.21.

    인천지역 대학생대표자협의회, 인하대학교 통일광장에서 「일당독재·민중탄압 민자당 분쇄를 위한 5만 청년학도 결의대회」 개최. 대회를 마친 학생들은 인하대학교 정문으로 나가 시위를 이어갔고 시위를 해산하던 경찰 병력이 학교 안까지 진입함
  • 1990.03.22.

    한독금속 노동조합 김명기 위원장·양충기 홍보부장, 회사를 인수한 성남 혜중실업을 항의 방문해 공장 정상가동을 요구해 오던 중 성남경찰서에 연행돼 업무방해 혐의로 구속됨
  • 1990.03.23.

    명신여고 해직교사 4명, 평민당사에서 무기한 철야농성 시작
  • 1990.03.24.

    노동자대학, 핵심간부가 구속되고 강의실이 폐쇄됨에 따라 인하대학교에서 개교식과 입학식을 갖고 첫 정기 강좌 시작
  • 1990.03.26.

    명신여자고등학교 학생 400여 명, 휴업령으로 학교가 폐쇄되자 인천시교육위원회 앞에서 항의 농성 시작. 농성 학생들 중 일부가 인천시교육위원회 안으로 들어가려다 경찰과 충돌하여 학생 5명이 부상을 당해 치료 받음. 이후 3월 28일까지 매일 같은 장소에서 항의농성 전개
    천주교 인천교구 가톨릭노동청년연합회, 효성동 성당에서 4월 18일까지 매주 월·수요일 「청년노동자를 위한 공개 교양강좌」 운영
  • 1990.03.28.

    인천대학교 학생 500여 명, 교내에서 「등록금투쟁 완전승리를 위한 총궐기대회」를 개최. 학생 40여 명은 총장실을 점거한 채 철야농성에 돌입
  • 1990.03.29.

    「명신여고 교권유린 진상보고 및 규탄대회」가 부평3동 성당에서 열릴 예정이었으나 경찰의 원천봉쇄로 샘터교회에서 개최됨. 학생·교사·학부모 등 300여 명이 모인 자리에서 ‘명신여고 교육정상화를 위한 공동대책위원회’가 승인을 받음
  • 1990.03.30.

    진정전자 노동조합, 공청회를 개최하여 ‘90임금 인상 요구안 1973원’을 확정하고 ‘회사 측의 노조탄압에 맞서 조합원 총단결로 분쇄’하기로 결의
  • 1990.03.31.

    ‘민자당 장기집권음모분쇄 및 민중기본권쟁취 국민연합 인천본부’, 부평시장과 부평역 등지에서 명신여고 지지성명서 및 ‘누가 서민의 내집 마련의 꿈을 앗아 갔습니까?’라는 제목의 주택문제 캠페인 유인물 등을 배포하며 가두 선전전 전개. 70여 명이 참여해 진행하다가 34명이 경찰에 연행되었으며 이날 밤 모두 훈방됨
    가톨릭시민공동체, 공해환경의 심각성 홍보와 경각심 고취를 위해 답동 가톨릭회관 304호에서 ‘파괴되는 자연 당신과 무관하지 않습니다’라는 주제로 「공해추방 한마당」 개최. 천주교 인천교구 천주교사회운동협의회가 주관하고 천주교 인천교구 정의평화위원회와 한국공해추방운동연합이 후원함. 한국공해추방운동연합 최열의 강연과 함께 하루찻집, 전시회, 공연 등을 진행
    인천여성노동자회, 「제2차 정기총회」 개최
  • 1990.04.*

    ‘민자당장기집권음모분쇄 및 민중생존권 쟁취 인천국민연합’ 창립. 광주학살 5공비리 철저한 진상규명, 부동산 투기 근절, 독점재벌 특혜정책 철폐 등 8대 강령을 채택하고 김정택 목사를 공동의장으로 추대함. 인천본부에는 인노협, 전교조, 인대협, 민중당, 인천지역주민회, 노동자대학, 인천지역노동교육상담단체협의회, 기사연 등이 참여함
  • 1990.04.01.

    명신여자고등학교 학생들, 부천에서 진행된 김대중 총재 시국강연에 참여해 홍보활동 및 성금 모금 활동 전개
    천주교 인천교구 가톨릭시민공동체, 4월 1일(주안1동 성당)과 4월 8일(부평1동 성당) 「공해자료 순회 전시회」 개최
  • 1990.04.02.

    명신여자고등학교 학생들, 학부모 수습대책위원회 개최를 저지하기 위해 농성을 시도하였으나 경찰에 의해 좌절됨
  • 1990.04.03.

    인하대학교 교수 108명, 3월 16일 개최된 제148회 임시국회에서 「사립학교법 개정 법률안」이 통과된 데 대해 ‘대학의 자주화·민주화에 역행하는 사립학교법의 개악을 규탄한다’는 제목의 성명서 발표
  • 1990.04.04.

    명신여자고등학교 학생 40여 명, 평민당사에 모여 농성
    인하대학교 총학생회, 인하대학교 통일광장에서 「민자당 분쇄 및 민중의 정치세력화를 위한 용현벌 진군대회」 개최. 학생들은 대회를 마치고 ‘전민중의 총단결로 보수대연합 분쇄하자’ 등의 구호를 외치며 정석고등학교 앞 도로에서 시위를 벌인 후 해산함
    대한트랜스 노동조합, ‘자유로운 노조활동 보장’, ‘단체협약 준수’, ‘위원장·부위원장 징계위원회 회부 철회’ 등을 요구하며 파업 농성 돌입
  • 1990.04.06.

    명신여자고등학교 학생 80여 명, 인천시교육위원회를 방문해 농성을 벌임
    명신여자고등학교 해직교사 강신오·안경수·연제열·이원주·임병구·최미희, ‘명신여고의 조속한 정상화를 위한 해직교사들의 호소문’ 발표
    대한트랜스 노동조합, 4월 4일부터 파업을 진행해 오던 중 경찰이 노조사무실로 진입해 위원장 등 5명이 연행되고 김은희 사무장이 구속됨
  • 1990.04.07.

    명신여자고등학교 학생 30여 명, 오전 7시 30분경 농성 시작. 임병구 교사 교문 앞에서 경찰에 연행됨
    가톨릭문화운동공동체, 가톨릭회관 6층에서 「토요영화 감상」 개최. 미국 부두노동자들의 권익수호투쟁을 다룬 「워터프론트」, 전교조 교사들의 삶을 다룬 「꽃들에게 희망을」 등을 상영
  • 1990.04.08.

    명신여자고등학교 학생들, 부평역에 집결한 후 평민당 중앙당사 방문
    ‘민중의 정당 결성을 위한 인천지역 노동자 추진위원회’가 인하대학교 학생회관 소강당에서 전국 최초로 창립대회를 개최함
    이진희 인하대학교 총학생회장, 인천지역 대학생대표자협의회 제4기 의장에 선출
  • 1990.04.09.

    명신여자고등학교 학생 1200여 명, 교무실, 서무실, 진학상담실, 교장실 등을 차례로 점거한 후 11시 30분경 해산
  • 1990.04.10.

    인천대학교·인하대학교·경기대학교·성심여자대학교·아주대학교 등 경인지역 5개 사립대학교 교수협의회 회장단, 인천대학교 교수협의회 회장실에서 모임을 갖고 개정된 사립학교법의 전면 철회를 촉구
  • 1990.04.11.

    명신여자고등학교 학생 1300여 명이 농성을 벌임. 1명의 학생이 퇴학, 2명의 학생이 무기정학을 당함
  • 1990.04.12.

    명신여자고등학교 학생 200여 명, 교무실을 점거하고 농성을 벌임
    명신여자고등학교 고흥덕·김방식 교사가 구속되고 해직 교사 강신오·임병구 교사에게 사전 구속 영장 발부됨
    치안본부 대공3부, 인천노동상담소 양재덕 소장 등 8명에 대해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구속영장 신청
  • 1990.04.16.

    명신여자고등학교 학생 1000여 명, 교사들의 구속에 항의하여 수업을 거부한 후 귀가함. 이날 인하대학교 대강당에서는 오후 7시부터 명신여자고등학교, 세일고등학교, 인하대학교 학생 등 800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명신여고 교사·학생탄압 진상보고 및 규탄대회」가 개최됨
  • 1990.04.17.

    현진섬유에서 4월 17일부터 4월 25일까지 4명의 노동자가 해고를 당함. 이들은 5월 7일 ‘해고 무효 및 임금 청구의 소’에 관한 소장을 법원에 접수시켰고, 6월 2일 연장 수당, 연차 수당, 월차 수당에 관해 노동청에 진정서를 제출함. 현진섬유는 부개동에 위치한 봉제 업체로 실크 원피스를 생산
  • 1990.04.18.

    명신여자고등학교 해직 교사들, 답동 가톨릭회관 512호실에서 농성 시작
  • 1990.04.19.

    명신여자고등학교 이희영·정남용·윤명순 학생이 무기정학 조치 당함
  • 1990.04.20.

    ‘인천지역 노동조합 활성화추진위원회’, 창립 대표자회의를 개최하며 발족
    명신여자고등학교 학생들, 「구속교사 석방 및 학생징계 철회를 위한 서명운동」 시작
  • 1990.04.21.

    ‘민자당 장기 집권 음모 분쇄 및 민중 기본권 쟁취 국민연합’, 인하대학교에서 「결성식 및 민중기본권쟁취 결의대회」 개최
  • 1990.04.23.

    인하대학교 학생들로 구성된 ‘민자당 분쇄 및 민중의 정치세력화를 위한 학생특별위원회’, 인하대학교 통일광장에서 발대식 개최. 행사가 끝난 후 300여 명의 학생들이 인하대학교 정문으로 진출해 ‘재벌비호 민중탄압 민자당을 박살내자’, ‘학특위의 깃발 아래 일만육천 단결투쟁 민자당을 박살내자’ 등의 구호를 외치며 경찰에 맞서 시위를 벌임
  • 1990.04.27.

    인천지역 대학생대표자협의회, 인하대학교 통일광장에서 7백여 명의 학생들이 모인 가운데 제4기 출범식 개최. 출범식 후 인하대학교 교문 밖으로 진출을 시도하다가 경찰의 저지에 맞서 시위를 벌임. 학생들은 5월 1일부터 5월 9일까지를 「민주당분쇄 투쟁기간」으로 설정함
    진성전자 노동조합, 회사 측이 교육 시간을 인정하지 않고 조합원 간부 7인을 업무방해 혐의로 고소 조치하는 등 노조활동에 대해 제약을 가하자 이에 대처하기 위해 조합원 80% 찬성으로 쟁의 발생 신고
  • 1990.04.28.

    인천지역 주민회·인천지역 노동조합 협의회·인천지역 사회운동연합 등 11개 단체, 인천대학교 체육관에서 ‘명신여고 교육정상화를 위한 인천시민 공동대책위원회’를 결성하고 「명신여고 교사·학생탄압 분쇄를 위한 인천시민결의대회」 개최
  • 1990.04.30.

    세일고등학교 전교생 1600여 명, 명신여고 사태 관련 유인물을 배포하던 세일고등학교 학생이 명신여고 학생주임으로부터 폭행을 당한 일에 항의하며 오전 7시 30분경부터 학교 앞 도로를 점거한 채 연좌농성을 벌임
  • 1990.05.01.

    명신여자고등학교 학생 200여 명, 오전 7시경 학교 앞 도로에서 ‘교사·학생에 대한 부당징계 철회, 폭력 교사 각성, 재단 퇴진’ 등을 요구하며 농성 시작. 세일고등학교 학생 1000여 명이 합세해 농성을 지원
    인하대학교 총학생회 산하 ‘민자당 분쇄 및 민중의 정치세력화를 위한 학생특별위원회’, 인하대학교 통일광장에서 「노동절 101주년 기념식 및 현대중공업 탄압 규탄대회」 개최. 이 날 행사에서 명신여고 3학년 주인순의 명신여고 탄압사례 보고, 「4·29 현대중공업 탄압 규탄 수도권 노동자대회」 보고 등이 진행됨
    인천지역 노동조합 활성화추진위원회·인천지역 노동조합 협의회·인천지역 의료보험 노동조합·전국교직원노동조합 인천지부, 인하대학교에서 「세계노동절 101주년 기념 인천노동자 대동문화제」 공동 개최
  • 1990.05.02.

    기차길 옆 공부방·천주교 도시빈민회, 가톨릭회관 312호에서 공부방 운영기금 마련을 위한 「만석동 기차길 옆 공부방 어린이 발표회 및 전시회」 개최
  • 1990.05.04.

    인천지역 노동조합 협의회 소속 38개 노동조합, ‘현대중공업과 KBS 공권력 투입 규탄 동맹파업’ 및 가두시위 전개
  • 1990.05.06.

    인천지역 노동조합 협의회, 인천대학교에서 100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영화 ‘파업전야’ 상영
  • 1990.05.07.

    ‘민자당 분쇄와 전투적 노학연대를 위한 인천지역 학생특별위원회 연합’ 발대식 개최. 인하대학교의 ‘민자당 분쇄 및 민중의 정치세력화를 위한 학생특별위원회’와 성심여자대학교의 ‘전노협사수와 민중의 진보적 단결을 위한 학생특별위원회’가 결합한 기구로 인하대학교 강규성이 대표로 선출
    진성전자 노동조합, 임금인상 과정에서 노사 간의 의견이 일치하지 않자 조합원 전체의 쟁의 행위 찬성으로 파업 돌입
  • 1990.05.09.

    인하대학교 총학생회, 오후 2시경 인하대학교 통일광장에서 「민자당 분쇄를 위한 동맹휴업 범인하인 결의대회」를 개최하고 동맹휴업 결의. 대회에 참석한 학생들은 ‘가자! 부평역으로 전 민중의 총단결로 민자당을 박살내자’ 등의 구호를 내걸고 인하대학교 후문가와 정석고등학교 앞 도로 등지에서 시위를 벌임
    ‘민자당 장기집권음모분쇄 및 민중기본권쟁취 국민연합 인천본부’, 민자당 전당대회에 맞춰 오후 6시 30분 부평역에서 「민자당 일당독재 분쇄와 민중기본권 쟁취를 위한 국민연합 인천시민 궐기대회」를 개최할 예정이었으나 경찰의 원천봉쇄로 결렬됨. 학생·노동자·시민 등 1500여 명은 동인천역 앞으로 대회 장소를 옮겨 ‘타도 노태우, 분쇄 민자당’ 등의 구호를 외치며 순찰차 1대를 전소시키고 축현파출소와 전경버스 등에 돌을 던지며 시위를 전개하다 강제 해산됨
  • 1990.05.10.

    인하대학교 총학생회, 인하대학교 통일광장에서 「5월 9일 보고대회 및 연행학우 구출을 위한 인하인 결의대회」 개최. 학생들은 5월 9일의 시위가 ‘전국적으로 8만 명이 모인 87년 6월항쟁 이후 최대의 집회’라고 평가. 이 날 인하대학교 의과대학 학생 17명이 「연행학우 석방을 위한 의대인 철야농성」을 시작함
  • 1990.05.12.

    가톨릭문화운동공동체, 가톨릭회관 6층에서 「토요영화 감상」 개최. 「5·18광주민중항쟁」 등 상영
  • 1990.05.15.

    인하대학교 동아리연합회, 인하대학교 후문가에서 ‘5·18 부상자동지회’ 회원 김태찬을 초청해 「광주민중항쟁 10주년 계승과 민자당 분쇄를 위한 초청강연회」 개최
    인하대학교 총학생회, 오후 4시 20분경 인하대학교 후문 근처에서 「민자당 분쇄 및 광주항쟁 계승 투쟁기간 선포식」 개최. 집회 후 학생들이 인하대학교 후문을 통해 도로로 진출, 가두시위를 벌이자 경찰 300여 명이 시위를 진압하며 인하대학교 통일광장까지 진입함
  • 1990.05.16.

    ‘민자당 장기집권음모분쇄 및 민중기본권쟁취 국민연합 인천본부’ 산하 ‘노동운동탄압분쇄 특별위원회’·인천지역 노동조합 협의회, 인하대학교에서 300여 명이 참여한 가운데 「다우정밀 공권력투입규탄 및 90임투 완전승리를 위한 결의대회」 개최
    인하대학교 총학생회, 인하대학교 통일광장에서 전날 발생한 경찰의 교내 진입에 항의해 「폭력경찰 학원침탈 및 민자당 분쇄를 위한 1만6천 총궐기대회」 개최. 대회가 끝난 후 학생들이 인하대학교 주변 도로에서 1시간 가량 경찰에 맞서 화염병 등을 던지며 시위를 전개함
  • 1990.05.17.

    인하대학교를 포함한 18개 대학교 학생 1000여 명, 서울대학교 도서관 앞 광장에서 「전국학생투쟁체연합(전학투련) 준비위 발족식」 개최
  • 1990.05.18.

    ‘민자당 장기집권음모분쇄 및 민중기본권쟁취 국민연합 인천본부’, 「광주항쟁 계승 및 민생파탄 민자당정권 분쇄 결의대회」 개최. 오후 6시 50분경 인천시민회관 앞에서 700~800여 명, 오후 8시 20분경 송림로타리에서 300여 명이 모여 산발적인 시위를 벌임
  • 1990.05.19.

    인천지역 노동조합 활성화추진위원회, 인천대학 강당에서 조합원 500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창립 보고대회 개최
  • 1990.05.23.

    인천지역 노동조합 협의회, 인하대학교에서 영화 ‘파업전야’를 상영하려 하였으나 경찰에 의해 사전 봉쇄됨
  • 1990.05.24.

    인천교육대학에서 전국교직원노동조합 주최로 「참교육 실현을 위한 온나라 걷기 대행진 인천시민환영대회」 개최
  • 1990.05.25.

    인하대학교 ‘민자당 분쇄와 민중의 정치세력화를 위한 학생특별위원회’, 인하대학교 후문 앞 도로에서 「민자당 분쇄를 위한 노학연대 및 5월 27일 투쟁결의대회」 개최
  • 1990.05.30.

    천주교 인천교구 정의평화위원회, 답동 가톨릭회관 5층 강당에서 영화 「파업전야」 시사회 개최. 성직자·수도자·일반신자 200여 명이 관람
    인천지역 노동조합 협의회, 200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콜트악기 연대의 밤」 행사를 진행함
  • 1990.06.06.

    참교육을 위한 학부모회, 인하대학교 본관 앞 잔디밭에서 「해직교사를 위한 스승의 날 대잔치」 개최
  • 1990.06.07.

    천주교 인천교구 정의평화위원회, 박성규 신부·호인수 신부·최상진 신부·윤용만 인천대 교수·김명선 성모의원 원장 등 5명의 위원 추가 임명.
  • 1990.06.08.

    노동자대학, 십정동 568-5번지에 노동자대학 별관 개설
  • 1990.06.09.

    ‘민자당 장기집권음모분쇄 및 민중기본권쟁취 국민연합 인천본부’, 부평1동 성당에서 「6월항쟁 계승 및 민주쟁취 인천시민대회」 개최. 대회가 끝난 후 진성전자 앞에서 규탄집회 가짐
    인천지역 사회운동연합, 「제2기 노동강좌」 개강
    인천여성노동자회, 6월 9일부터 7월1일까지 총 5회에 걸쳐 「수요여성강좌」 진행
  • 1990.06.10.

    한우리마을·사랑방교회·민중연합·민중당·인천지역 주민회·산마루교회, 인천주거문제 협의 모임 결성
  • 1990.06.11.

    박종기 신부, 이진 목사, 인하대학교 임명방·최원식·정요일 교수, 신맹순 전국교직원노동조합 인천지부 지부장 등 6명, 답동 가톨릭회관에서 기자회견을 개최하고 인천지역 각계인사 157명이 범민주세력 통합야당 결성추진운동에 서명했다고 밝힘
    전국노동조합협의회, 이날 현재 전국노동조합협의회 소속 구속 노동자 수가 404명에 달한다고 발표. 그중 인천지역은 82명으로 집계됨
    인천지역 사회운동연합 남부지부·북부지부 회원 10여 명, 전철에서 ‘민자당 일당독재 분쇄 및 내각제 개헌 음모’ 유인물 배포
  • 1990.06.12.

    ‘민자당 장기집권음모분쇄 및 민중기본권쟁취 국민연합 인천본부’, ‘진성전자 폭력사태’와 관련하여 ‘폭력경찰 처벌, 폭력관리자처벌, 부평경찰서장 사과, 피해보상’ 등을 요구하며 38명이 참가해 부평경찰서 항의 집회 전개. 25분간 진행된 집회 후 38명 전원이 경찰에 연행됐다가 즉심에서 형면제 처분을 받음
  • 1990.06.22.

    인천지역 노동조합 협의회, 여의도 국회 앞에서 경찰폭력 규탄 및 구속자 석방을 촉구하는 항의 시위를 전개함
  • 1990.06.28.

    한국메그론 노동조합, 부평 석남약수터에서 조합원 야외교육을 실시하려 했으나 경찰에 의해 봉쇄됨
  • 1990.07.03.

    노동자대학 십정동 사무실에서 도청장치 발견
  • 1990.07.11.

    US마그네틱스 노동조합, 6월 23일 회사 측이 3개월 분 월급과 6월 분 상여금을 체불한 채 조업중단을 단행하자 법원에 임금채권 압류신청을 내고 이 날부터 철야 농성 돌입
  • 1990.07.13.

    한국메그론 노동조합이 노사 간 합의로 체결한 단체협약에 대해 인천지방노동위원회가 취소·변경을 의결. 이후 인천지방노동위원회 판정을 근거로 인천시 서구청이 단체협약 「변경명령서」를 한국메그론 노동조합에 발송함
  • 1990.07.16.

    ‘민자당 장기집권음모분쇄 및 민중기본권쟁취 국민연합 인천본부’, 일꾼교회에서 100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국민연합 상반기 사업평가 및 하반기 사업방향, 조직적 발전전망에 관한 지역토론회」 개최
  • 1990.07.20.

    한국메그론 노동조합, 1989년 11월 회사 측과 맺은 단체협약에 대해 ‘사용자의 경영인사권을 침해한다’는 이유로 서구청으로부터 인천지방노동위원회의 의결을 거친 ‘단체협약 변경명령서’를 받음
  • 1990.07.27.

    인천지역 노동조합협의회·한국노동조합총연맹 인천본부, 인천지방노동위원회의 한국메그론 단체협약 취소·변경 판정과 이에 따른 인천시 서구청의 단체협약 변경 명령과 관련하여 각각 성명서 발표. 같은 날 인천지역 노동조합 협의회, 한국노동조합총연맹 인천본부, 인천지역 노동조합 활성화추진위원회 산하의 노동조합 대표자 100여 명이 인천지방노동위원회를 항의 방문함
  • 1990.08.07.

    진성전자 노동조합 위원장 윤화심, 파업 중 구속되었다가 집행유예로 석방됨
  • 1990.08.10.

    US마그네틱스 노동조합 조합원 20여 명, 체불임금 지급을 요구하며 회사 사무실을 점거한 채 농성 돌입
  • 1990.08.11.

    ‘민자당 장기집권음모분쇄 및 민중기본권쟁취 국민연합 인천본부’, 부평역, 동암역, 동인천역 등지에서 ‘기만적 통일정책 규탄을 위한 가두선전 및 국보철폐, 평화군축, 자주교류, 불가침선언 촉구 서명운동’ 전개
  • 1990.08.14.

    ‘인천부천 민족민주운동 노동자정치투쟁위원회’, ‘출범 선언문’ 발표
    진성전자 노동조합, 백마교회에서 「구속동지 환영회 및 조합원 공청회」 개최
    한독금속 노동자들, 공장 정상 가동을 요구하며 공장에서 10개월 째 농성을 진행해 오던 중 경찰 투입으로 공장에서 밀려 나옴. 노동자 8명은 8월 15일부터 민자당 정정훈 의원 사무실을 점거하며 농성에 돌입함
    1990.08.20.US마그네틱스 노동조합 조합원들, 체불임금 촉구와 사장과의 교섭중재를 요청하기 위해 인천노동청을 항의 방문하였으나 경찰에 모두 연행되고 사무장과 문화부장은 구속됨
  • 1990.08.22.

    한국메그론 노동조합의 단체협약에 대한 인천지방노동위원회·인천시 서구청의 단체협약 취소·변경 및 변경명령 사태와 관련, 인천지역 노동조합협의회·인천지역 노동조합 활성화추진위원회·한국노동조합총연맹 인천본부·전국병원노동조합연맹 인천지부·전국교직원노동조합 인천지부·인천지역 의료보험 노동조합 등 70여 개 노동조합 대표자·간부 등이 참석해 한국노동조합총연맹 인천본부 대강당에서 ‘단체협약 변경 명령철회 및 노조활동자유 사수를 위한 인천지역 대책위원회’를 구성함. 산하에는 ‘12만 서명 추진본부’와 ‘단협수호대책본부’를 둠
    진성전자 노동조합, 임금인상 과정에서 노사 간의 의견 불일치로 파업 농성을 진행 중 위원장 등 8명이 해고 당하고 대체 인원이 모집·고용되는 사태와 관련해 노동청·지방노동위원회 등 관계 기관이 시정을 촉구할 것을 요구하는 서명 운동 전개
  • 1990.08.23.

    인하대학교 총학생회, 인하대학교 통일광장에서 「민자당 타도를 위한 개강투쟁 선포식」 개최
  • 1990.08.24.

    인하대학교 총학생회 연대사업부, US마그네틱스 파업에 지원투쟁 시작. 이에 따라 8월 24~25일에는 동아리, 8월 26~27일에는 공과대학, 8월 28~29일에는 가정대학과 의과대학, 8월 30~31일에는 문과대학이 파업 현장을 찾아 규찰대 활동 및 문화공연 등 지원투쟁을 전개함
    로버트쇼·US마그네틱스·한독금속 노동조합, ‘인천지역 노조탄압 3사 공동투쟁위원회’ 결성
  • 1990.08.28.

    진성전자 노동조합, 110여 일의 장기 파업 끝에 조합원들이 무조건 조업 재개 결정
  • 1990.08.31.

    로버트쇼·US마그네틱스·한독금속이 결성한 ‘공동투쟁위원회’, 부평 백마교회에서 보고대회 개최
  • 1990.09.03.

    US마그네틱스 회사 대표, 6월 23일 임금을 체불한 뒤 일방적으로 조업을 중단하고 미국으로 갔다가 입국, 서울 삼성동에 머물다 회사 노동자들에게 붙잡혀 근로기준법 위반 혐의로 구속됨
  • 1990.09.07.

    인하대학교 ‘파쇼의회 철폐와 민자당 타도를 위한 대책위원회’, 인하대학교 후문가에서 「노동운동탄압과 반민중적 정기국회 규탄 청년학도 결의대회」 개최. 집회에 참가한 학생들은 대회 직후 정석고등학교 앞 도로까지 가두시위 전개
  • 1990.09.13.

    인천지역 대학생대표자협의회, 인하대학교 통일광장에서 「장기집권 분쇄 및 기만적 통일정책 규탄 5만학도 진군대회」 개최. 집회 후 참가 학생들이 인하대학교 정문 앞 도로에 나가 시위를 벌이며 경찰과 대치함
  • 1990.09.14.

    인하대학교 구속자동지회, 인하대학교 학생회관 3층 민주동우회 사무실에서 출범식 개최. 이날 모금된 축의금은 회사 폐업에 맞서 농성중인 금강공업 노동자들에게 투쟁지원금으로 제공함
    인하대학교 문화예술운동연합 건설준비위원회, 인하대학교 통일광장에서 발대식 개최
    ‘탁아법 제정을 위한 인천지역 공동대책위원회’, 인천지역 탁아위원회·인천지역 주민회·인천여성노동자회 등 10여 개 단체가 모여 결성함
  • 1990.09.15.

    한국메그론 노동조합, 한국노동조합총연맹 인천본부 대강당에서 「12만서명운동 중간보고 및 단협사수투쟁 기금 마련을 위한 일일주점」 개최
  • 1990.09.16.

    인천지역 탁아위원회, 동인천역과 부평역 등지에서 아동복지법 시행령 거부 및 올바른 탁아법 쟁취를 위한 서명운동 전개
    인하대학교 학생 200여 명, 인하대학교 통일광장에서 「민중통제, 민중감시 보안사 규탄 및 연행학우 구출을 위한 인하인 결의대회」 개최
  • 1990.09.19.

    인천여성노동자회, 9월 19일·22일·23일 3일간에 걸쳐 7개 사업장 20여 명의 여성노동자가 참석한 가운데 「중간여성지도자 교육」 진행
  • 1990.09.20.

    인하대학교 ‘민생파탄, 민중탄압 지배체제 안정화 책동 분쇄와 전투적 민중연대를 위한 학생특별위원회 준비위원회’, 인하대학교 통일광장에서 「민중생존권 압살 노동운동 탄압 규탄 폭로대회」 개최
  • 1990.09.22.

    ‘민자당 장기집권음모분쇄 및 민중기본권쟁취 국민연합 인천본부’, 국민연합 부천지부와 공동으로 인하대학교 통일광장에서 「일당국회 해산 및 민중생존권 쟁취, 노태우정권 퇴진 결의대회」 개최
  • 1990.09.25.

    인천지역 노동조합 협의회·전국병원노동조합연맹·전국외국기관노동조합협의회·서울지역노동조합협의회, YWCA에서 「단체협약의 주요 쟁점사항에 관한 공청회」를 주최하여 노동부·경제단체협의회 지침에 대한 대응 방안 논의
  • 1990.09.27.

    인하대학교 학생 등이 참여한 가운데 서울대학교 아크로폴리스 광장에서 「민중당 건설을 위한 노동자·학생 결의대회」 개최
  • 1990.10.06.

    인천지방노동위원회, 파업 중 해고된 진성전자 노동조합 위원장 윤화심 등 7명이 낸 부당노동행위 구제신청을 받아들여 10월 6일자로 전원 원직복직 판결을 내림
  • 1990.10.12.

    대우자동차 부평공장, ‘민주파’인 ‘대우자동차민주화실천노동자회’ 소속 이은구 후보가 59.6%의 표를 얻으며 제11대 위원장으로 당선
    인천교육대학 학생들, 정부가 ‘국·사립대 출신 학생 간 임용차별철폐를 포함한 정부의 교원종합대책안’을 발표하자 이에 반발해 중간고사 및 수업거부를 결의하고 11월 26일까지 40여 일 간 반대 운동 전개
  • 1990.10.15.

    인천교육대학교 2·3학년 학생 800여 명, 문교부의 교원임용 공개전형 계획에 항의하며 중간고사 거부
  • 1990.10.16.

    ‘민자당 장기집권음모분쇄 및 민중기본권쟁취 국민연합 인천본부’, 인천대학에서 「UR설명회」를 개최하고 UR거부 서명운동 진행
    인하대학교 학생 200여 명, 인하대학교 통일광장에서 「민중통제, 민중감시 보안사 규탄 및 연행학우 구출을 위한 인하인 결의대회」 개최
    대학생 10여 명, 용현동 소재 민자당 인천 남구 을지구당 사무실에 화염병을 던지며 시위를 벌임
    인천교육대학교 4학년 학생 400여 명, 문교부의 교원임용공개전형 계획에 항의하며 실무실습을 거부함
  • 1990.10.20.

    천주교 인천교구 정의평화위원회·인천지역 기독목회자협의회 인권위원회 등 7개 단체, 부평3동 성당에서 1000여 명이 모인 가운데 「보안사 불법사찰규탄 및 군정 청산 인천시민대회」 개최. 이 날 대회에서 ‘보안사, 안기부 등 폭압기구의 해체, 정치활동 가로막는 국가보안법 철폐, 장기집권 획책하는 노태우정권 퇴진’ 등을 결의하고, 부평3동 성당을 나와 거리 행진을 하던 중 경찰의 저지를 당해 거리에서 1시간 가량 집회를 가진 뒤 해산함. 이 날 대회를 공동주최한 단체는 ‘천주교 인천교구 정의평화위원회, 인천지역 기독목회자협의회 인권위원회, 인천지역 목회자 정의평화실천협의회, 민자당 장기집권음모분쇄 및 민중기본권쟁취 국민연합 인천본부, 민주당 인천시당, 민중당 인천시당, 범민주세력 통합수권정당 인천지역 추진회의’ 등 7개 단체임
    ‘민자당 장기집권음모분쇄 및 민중기본권쟁취 국민연합 인천본부’, 계산동 철거문제와 관련해 「대책 없는 계산동 강제철거를 강력히 규탄한다」는 제목의 성명서 발표
  • 1990.10.21.

    인천대공장풍물패 협의회, 인하대학교 학생회관에서 창립총회를 개최하며 출범. 의장에 이흥섭(대우중공업), 부의장에 오흥민(대우전자 인천지부)을 선출
  • 1990.10.23.

    인하대학교 ‘민생파탄, 민중탄압 지배체제 안정화 책동 분쇄와 전투적 민중연대를 위한 학생특별위원회’, 인하대학교 통일광장에서 발대식 개최
    만석동 아가방, 「개원 2주년 기념잔치」 개최
  • 1990.10.24.

    한국노동조합총연맹 인천본부 사무실에서 「단체협약 변경명령 철회와 노조활동 자유사수를 위한 인천노동자 궐기대회」 개최. 인천지역 노동조합 협의회, 인천지역 노동조합 활성화추진위원회 등을 비롯해 60여 개 노동조합 조합원 등 300여 명이 참석
    주안1동 성당에서 「범민족대회 기록영화 전국순회 시사회 및 강연회」 개최
  • 1990.10.30.

    ‘민자당 장기집권음모분쇄 및 민중기본권쟁취 국민연합 인천본부’, ‘송림동 참사 유가족의 합동49제에 대한 부당한 공권력 투입을 규탄한다’는 제목의 성명서 발표
  • 1990.11.04.

    인천지역 노동조합 활성화추진위원회, 인천전문대학 운동장에서 300여 명의 조합원이 참석한 가운데 「제1회 노활추 조합원 체육대회」 개최
  • 1990.11.09.

    대양전기 노동조합, 「전태일 열사 20주기 추모일」을 맞이해 11월 15일까지 ‘전태일 열사 추모 리본’을 달기로 결의
  • 1990.11.10.

    인천지역 사회운동연합, 「제3기 노동자를 위한 교양강좌」 개강
  • 1990.11.11.

    진도노동조합 부평지부, 소식지 「노동의 횃불」 창간
  • 1990.11.13.

    인하대학교 ‘민생파탄, 민중탄압 지배체제 안정화 책동 분쇄와 전투적 민중연대를 위한 학생특별위원회’, 인하대학교 학생회관 6층에서 학생 100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전태일 정신계승 및 민중대회 쟁취를 위한 인하인 결의대회」 개최
  • 1990.11.22.

    인천지역 대학생 대표자협의회, 인천대학교에서 「민중탄압 장기집권 분쇄를 위한 민중대회 사수 청년학생 결의대회」 개최
  • 1990.11.23.

    천주교 인천교구 정의평화위원회 등 인천지역 23개 사회·종교·정당 단체 회원 및 시민·노동자·학생 등 500여 명, 답동 가톨릭회관에서 「폭력비호 민자당 의원 사퇴촉구대회」를 개최하고 인천지역 꼴망파 두목 최태준의 석방탄원서에 서명한 사회지도층 인사들은 공·사직에서 물러나라고 촉구
    인하대학교 ‘민생파탄, 민중탄압 지배체제 안정화 책동 분쇄와 전투적 민중연대를 위한 학생특별위원회’, 인하대학교 후문 근처에서 「민자당 타도와 민중대회 승리를 위한 인하인 출정식」 개최
  • 1990.11.28.

    대우전자 노동조합 인천지부, 조합원 1300여 명과 인천지역 노동조합 협의회·인천지역 노동조합 활성화추진위원회·인천지역 대공장 노동조합 연대모임 간부 등이 모인 가운데 「노조탄압 분쇄, 독점재벌 화형식」 거행
    인천여성노동자회, 11월 28일부터 12월 16일까지 총 4회에 걸쳐 「여성노동자를 위한 교양강좌」 개최
  • 1990.11.29.

    삼기전자 노동조합, ‘상근자 2명, 교육시간 월 1시간 30분, 대의원회의 월 2시간, 상집활동 월 30시간, 징계위원회 노사 동수 구성’ 등에 합의하며 6개월에 걸친 단체협약교섭을 끝냄
  • 1990.12.08.

    ‘민자당 장기집권음모분쇄 및 민중기본권쟁취 국민연합 인천본부’, 최태준사건과 관련해 동인천역에서 ‘민자당 의원 사퇴촉구 서명운동’ 전개
  • 1990.12.09.

    천주교 인천교구 정의평화위원회 후원으로 인천대학교 체육관에서 「문익환 목사 방북 보고대회」 개최
  • 1990.12.15.

    「인천지역 민주노조 총단결을 위한 꽃다지 Ⅱ 공연」이 2500여 명의 노동자들이 참석한 가운데 인하대학교 인문관 운동장에서 개최됨
  • 1990.12.17.

    인천지역 노동조합 활성화추진위원회, 주안5동 성당 교육관에서 「제1차 노활추 위원장·간부 연석회의」 개최
  • 1990.12.27.

    인천지역 노동자·학생 1000여 명, 인하대학교에서 「대우전자 노조탄압 규탄대회」 개최
  • 1991.01.*

    삼진기업 노동조합 조합장 오윤철 등 노동조합 간부 6명, 임금체불과 관련해 파업을 주도한 일과 관련해 ‘업무방해’를 사유로 해고당하다
  • 1991.01.15.

    극동가스켓 노동자 양영빈·김원철, 1월 15일과 1월 16일에 ‘학력 허위 기재’ 등을 이유로 각각 해고당하다
  • 1991.01.25.

    인천지역 노동조합 협의회, 「인천지역 노동조합 대표자 1차 간담회」를 개최하여 ‘인천지역 임금인상공동투쟁본부 준비위원회(가칭)’ 결성을 제안
    건영전기 노동자 정준채, ‘학력 허위 기재’ 등을 이유로 해고당하다
  • 1991.01.26.

    「진성전자 노동조합 정상화와 손해배상 대책 마련 일일주막」 개최. 진성전자 노동조합 조합원 20여 명과 인천지역 노동자 300여 명이 참여함. 진성전자 해고노동자 7명은 1990년 11월 28일, 3073만 원의 손해배상 청구를 받음
  • 1991.01.30.

    노동자 문화마당 일터, 창립대회를 개최하고 창립선언문 및 강령 발표. 사무실은 남구 숭의3동 90-18(설녹차 3층건물 지하)에 마련함
    동성상공 노동자 조현오(인천지역 노동조합협의회 문화국장), ‘무단결근’을 사유로 해고당하다. 1990년 12월 노동조합 위원장 선거에서 선출된 신임 위원장을 조합원들이 불신임하자 신임 위원장이 이를 거부하였고, 결국 대책위원회가 구성돼 전 위원장이었던 조현오가 대책위원장을 맡았으나 곧 해고됨. 조현오 측은 ‘위원장 임기가 끝나면 몇일 휴가를 주는 것이 관례여서 출근하지 않았는데 이를 무단결근으로 처리하여 해고시켰다’고 주장함
  • 1991.02.01.

    인천지역 노동조합 협의회·노동조합 활성화 추진위원회·대공장 노동조합 연대모임·대우자동차 노동조합·전국병원노동조합연맹 인천지부·인천지역 의료보험 노동조합 등 인천지역 6개 노동조합단체가 ‘인천지역 노동조합 임금인상 공동투쟁본부(가칭) 준비위원회’ 결성
  • 1991.02.11.

    대우자동차 노동조합, ‘연대를 위한 대기업 노동조합회의’ 소속 10개 노동조합 간부 67명이 2월 10일 경찰에 연행된 데 항의하여 전 조합원 4000여 명이 작업을 거부한 채 정문에서 집회를 갖고 경찰과 투석전을 벌임. 대우자동차 노동조합에는 이은구 위원장 외 18명이 연행되었음
  • 1991.02.12.

    대우자동차 노동조합, 이은구 위원장 등이 경찰에 연행된 데 항의하여 「제2차 불법연행 규탄집회」를 개최하고 3500여 명이 공장 앞 도로를 점거한 채 경찰과 투석전을 벌임
  • 1991.02.18.

    대우전자 노동조합 지부장 김종천·부지부장 김순호·사무장 유충선, 해고 당함
  • 1991.02.21.

    인천의원·평화의원·푸른치과 상담실·남동진료소, 「건강한 노동자 깨어있는 노동자」창간호 발행
  • 1991.02.23.

    인천지역 노동조합 협의회·대우자동차 노동조합 조합원 등 500여 명, 인하대학교에서 「전노협 연대회의 간부 석방촉구 및 수서비리규탄 노동자대회」 개최
  • 1991.02.27.

    대우자동차 부평공장 노동조합 조합원 5000여 명, 회사 안 식당에서 「구속된 위원장 석방촉구대회」를 개최한 후 강당에서 「파업전야」를 관람한 후 해산함
    인천여성노동자회, 「제3차 정기총회」 개최
  • 1991.02.28.

    코스모스전자 노동조합, 회사가 2월 24일 부도로 인해 휴업을 공고하자 ‘의도적인 부도’로 보고 정상 조업을 요구하며 농성 돌입
    인천대학교 학생회관·민속학연구 사무실 등에 대해 경찰이 압수수색을 벌여 빈병 81개 등 100여 점의 시위용품을 압수함
  • 1991.03.01.

    인하대학교 학생회관·동아리 사무실 등에 대해 경찰이 압수수색을 벌여 화염병 등 1000여 점의 시위용품을 압수함
  • 1991.03.08.

    코스모스전자 노동조합 조합원 80여 명, ‘노조인정과 밀린 임금 및 상여금 지급’ 등을 요구하며 서울 명동 코스모스백화점 5층 사장실에서 농성을 벌이다 자진해산함
  • 1991.03.10.

    인천여성노동자회·인천지역 탁아위원회·인천지역 노동조합 협의회 여성복지국, 공동 주최로 인천대학교 인문관 4층에서 「3·8 세계여성의 날 기념 여성노동자 전진대회」 개최. 한국여성단체연합, 인천대학교 총여학생회, 인천지역 주민회가 후원을 맡음
  • 1991.03.11.

    「공동임투 완전승리를 위한 노조대표자 결의대회」가 주안5동 성당에서 100여 명의 인천지역 노동조합 대표자 및 간부들이 참석한 가운데 개최됨
  • 1991.03.12.

    인천기독교 청년회·인천기독교 여자청년회·인천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기독교공정선거감시단·흥사단 인천지부·한국노동조합총연맹 인천본부 등 6개 단체, ‘인천지역 공정선거 감시단체협의회’ 결성
  • 1991.03.13.

    인천지역 기독노동자연맹 준비위원회 결성대회 개최
  • 1991.03.15.

    ‘임금인상과 물가폭등저지 및 노동기본권수호를 위한 인천지역 노동조합 공동투쟁본부’(인천공투본) 발대식이 인천대학교 인문관에서 개최됨. 상임본부장은 최동식 인천지역 노동조합 협의회 의장, 본부장은 김동교 인천제철 위원장·염성태 대우중공업 위원장·최용주 대우자동차 노동조합 수석부위원장, 상황실장은 김기자 인천지역 노동조합 협의회 사무처장이 맡음. 부평·주안·하인천·남동·업종지대 등 총 5개 지대로 편성하여 운영함
  • 1991.03.17.

    대원강업 노동조합 부평지부 김기식 지부장, 임금인상 요구안 마련을 위해 창원공장으로 가던 중 과로로 사망함. 영결식은 3월 21일 부평공장 민주광장에서 거행됨. 김기식은 1975년 5월 20일 대원강업에 입사해 1990년 9월 1일 대원강업 노동조합 부평지부 지부장으로 선출됨
    산곡동 무지개 어린이집 개원식 거행
  • 1991.03.24.

    인천민중연합, 답동 가톨릭회관에서 ‘인천지역의 교육현실과 교육운동’이란 주제로 「인천민중교양 공개강좌」 개최
  • 1991.03.31.

    주거문제 상담소 및 만수동 한우리 놀이방 개소
  • 1991.04.*

    한국메그론 노동조합 사무장, ‘학력허위기재, 형사입건 등으로 회사명예실추, 업무방해’ 등의 사유로 해고당함
  • 1991.04.01.

    전국택시노동조합연맹 인천지부 56개 노동조합 조합장들, 3월 30일 택시사업주조합이 총회를 열고 사납금 8000원 인상을 결정하자 ‘사납금 인상 철회’를 요구하며 사업주 조합 사무실을 점거하며 철야농성에 돌입함
  • 1991.04.02.

    대우자동차 노동조합, 부평공장 내에서 조합원 4000여 명이 모인 가운데 「91임금인상 완전 쟁취를 위한 조합원 전진대회」 개최
  • 1991.04.08.

    대우자동차 노동조합 사무실에 경찰 120여 명이 들어가 최용주 수석부위원장, 연병철 안전부장 등 2명을 연행함. 이 소식을 들은 노동자 1000여 명이 작업을 거부한 채 부평경찰서로 몰려가 연행자 석방 등을 요구하며 시위를 벌임
  • 1991.04.12.

    코스모스전자 노동조합 조합원 100여 명, 부평동 노동부 인천북부사무소에 몰려가 ‘체불임금 지급, 정상조업 재개’ 등을 요구하며 농성 전개
  • 1991.04.13.

    한라중공업 노동조합, 「망치소리」 제1호 발간
    ‘임금인상과 물가폭등저지 및 노동기본권수호를 위한 인천지역 노동조합 공동투쟁본부’, 부평역 앞에서 「인천지역 공동임투전진대회 및 대우자동차 노조탄압 규탄대회」를 개최하려다가 경찰의 원천봉쇄로 무산되자 노동자·학생 1500여 명이 화염병을 던지며 부평역 앞 8차선 도로를 점거한 채 시위를 전개함
  • 1991.04.17.

    대우자동차 부평공장 노동조합 조합원 2000여 명, 회사 측이 휴업조처를 단행함에 따라 이에 반발해 청천동 사거리 등지에서 시위를 벌임
  • 1991.04.21.

    ‘공해추방 인천시민의 모임’, 「지구의 날」 행사로 「내고장 살리기 범시민 걷기대회」 개최
    수도권 지역 노동자 1000여 명, 인하대학교 통일광장에서 「노동운동 탄압 분쇄 노동자 결의대회」를 개최하고 ‘대우자동차 휴업조치의 즉각 철회’ 등을 촉구
  • 1991.04.23.

    진도노동조합 부평지부 박중열 조합원, 공장에서 근무 중 산재사고를 당해 사망함
  • 1991.04.24.

    ‘민자당 장기집권음모분쇄 및 민중기본권쟁취 국민연합 인천본부’, 주안1동 성당에서 「인천지역 부문·단체 비상 대표자회의」를 개최하고 ‘5월 투쟁평가와 이후 투쟁방향’ 등을 논의
    인천민중학교, 6월 1일까지 매주 월·수요일 「제2기 민중문예교실」 개최
    인천지역 탁아위원회 등 10개 단체, 주안 중앙성결교회에서 「동춘동 세쌍둥이 넋을 기리는 인천 시민의 자리」 개최. 인천지역 탁아위원회, 인천지역 주민회·인천여성노동자회·전국교직원노동조합 인천지부·인천지역 공부방연합회·주거연합 인천지부·동인천 민중교회연합·북인천 민중교회연합·천주교 도시빈민회 인천지역위원회 등이 공동 주최함
    해인교회, 「창립 5주년 기념잔치」 개최. 문익환 목사의 강연 ‘생명과 통일을 일궈가는 우리의 전진’ 등을 진행
  • 1991.04.30.

    인천지역 대학생대표자협의회 소속 대학생 1000여 명, 인하대학교 통일광장에서 「고 강경대 학우 추모식 및 폭력정권 규탄대회」 개최
    ‘공해추방 인천시민의 모임’, 부평3동 성당에서 시민들을 대상으로 「제1회 공해교실」 진행
  • 1991.05.02.

    인천·부천지역 대학생 1200여 명, 인천대학교에서 인천지역 대학생대표자협의회 출범식을 갖고 ‘강경대를 살려내라’ 등의 혈서를 쓰며 시위를 벌임
    인천여성노동자회, 한국메그론 대표이사 앞으로 ‘○○○ 씨의 부당해고와 성추행건에 대한 항의의 건’이라는 제목의 항의문 발송. 인천여성노동자회는 이 항의문에서 한국메그론 여성노동자 ○○○ 가 ‘산업평화유지 위반’이라는 사유로 부당해고 당한 후, 출근투쟁을 전개하던 중 남자사원으로부터 성추행이 자행됐다고 항의하며 다음과 같이 요구함
    1. 성추행 피해자 ○○○ 씨와 한국메그론 노동조합에 대해 즉각적인 공개사과를 요구합니다.
    2. 성추행, 폭언 등을 즉각 중지할 것과 ○○○의 징계를 요구합니다.
    3. 회사 측은 ○○○ 씨의 부당해고를 즉각 철회하고 원직복직시키기 바랍니다.
    영창악기 노동조합 조직차장 김관현, ‘명령 불복종, 근무지 이탈, 농성 주도’ 등을 사유로 해고 당함. 김관현은 ‘단체협약 사항에 노조 간부의 부서이동은 조합과 협의한다 라고 명시되어 있는데도 불구하고 일방적인 부서이동을 시키고, 이후 불복하며 노조 집행부와 같이 농성에 돌입하였으나 회사측에서 철회한다는 구두 약속을 받았음에도 징계위원회에 회부시키고 해고하였다’고 주장함
  • 1991.05.03.

    인천지역 의료보험 노동조합 조합원들, 노동조합 간부에 대한 잇단 징계에 항의하며 집단 사표를 제출하고 조합사무실에서 농성 시작
  • 1991.05.05.

    인천여성노동자회·한국여성노동자회·부천여성노동자회·성남여성노동자회·부산여성노동자회, 그동안 따로 펴내던 회보를 하나로 묶어 「일하는 여성」창간호 발행
  • 1991.05.07.

    대우자동차 부평공장 부위원장 직무대행 서희택·사무국장 송승호·쟁의부장 김성갑·법규부장 정경철·차체대의원 이춘상·평조합원 3명 등 총 8명, 수배중인 상태에서 해고 결정 통보를 받음
  • 1991.05.08.

    대우자동차 부평공장에 경찰 800여 명이 투입돼 농성중인 노동자들을 강제 해산시키고 371명을 연행함
  • 1991.05.09.

    인천지역 노동자·시민·학생 등 1만여 명, 동인천역 광장에서 「민자당 해체와 공안통치 종식을 위한 국민대회」를 개최하고 경동사거리까지 이어지는 8차선 도로를 완전히 점거한 채 평화행진을 벌이며 시위 전개. 그중 2000여 명은 ‘민자당 해체’ 등의 구호를 외치며 제물포역 앞에서 부평역 광장까지 차도를 따라 시위를 이어감
  • 1991.05.10.

    인천지역 전·현직교사 200여 명, 부평1동 성당에서 「폭력살인정권규탄과 교육자치 쟁취를 위한 교사대회」 개최
  • 1991.05.11.

    인천지역 시민·노동자·학생 5000여 명, 부평역 광장에서 「고 박창수 노조위원장 옥중살인 및 원진레이온 직업병 살인규탄과 노태우 정권 퇴진 결의대회」를 개최하려 하였으나 경찰의 저지로 인해 부평시장 앞, 동인천역 앞, 인천시민회관 등지에서 산발적인 시위를 벌임
  • 1991.05.13.

    동서식품 노동자 500여 명, ‘유령노조 해체, 민주노조 인정’ 등을 요구하며 공장을 점거한 채 철야 농성 돌입. 동서식품은 1968년 5월 23일 설립한 회사로 인스턴트커피를 주로 생산하며 1900여 명이 근무 중. 인천지역에는 효성동 제1·2공장, 작전동 제3공장·인삼공장, 주안동 우유공장 등이 가동
    천주교 인천교구 사제 30여 명, ‘강경대 타살사건’과 관련해 정부가 강경 대응 방침을 내세우자 정부의 근본적인 민주개혁을 촉구하며 답동 가톨릭회관에서 단식 농성 돌입
  • 1991.05.18.

    인천지역 의료보험 노동조합, 파업을 진행 중인 상태에서 조합원 분임토의를 열고 부당징계 철회 등의 요구가 관철될 때까지 무기한 파업을 벌일 것을 조합원 90% 이상의 지지로 결의함
    인천지역 시민·노동자·학생 등 500여 명, 동인천역 광장에서 「광주 민중항쟁 계승과 노태우 정권 퇴진을 위한 인천시민대회」를 개최하고 답동 가톨릭회관 앞까지 도로를 걸으며 평화행진 진행
  • 1991.05.29.

    코리아 스파이서 노동조합, 임금협상 결렬로 파업 돌입
  • 1991.06.04.

    전국택시노동조합연맹 인천지부, 인천공설운동장 앞마당에서 「노동운동탄압 분쇄 및 91임투 촉구대회」 개최
  • 1991.06.07.

    삼미 노동조합, 4월 11일부터 회사 측과 임금인상 교섭을 시작해 6차 교섭이 진행된 이날 기본급 3만 4000원 등의 내용으로 임금인상액을 타결함. 3차 교섭시 노동조합 측 최종안은 기본급 7만 원이었으며 노동조합 홍보부장 이진희는 교섭 결과에 항의하며 이에 앞서 홍보부장직을 사퇴하였음. 삼미는 만석동에 위치한 철강 가공업체로 인천과 창원에 공장이 소재함
  • 1991.06.08.

    삼미 노동조합 전 홍보부장 이진희, 회사 지하 휴게실에서 「임금협상결과 보고대회」를 갖던 중 임금인상 폭이 적은 데 항의해 온몸에 신나를 붓고 분신을 시도, 3도 화상을 입고 한강성심병원에 입원함. 이를 말리던 이덕희도 2도 화상을 입고 화평동 소재 황인의원에서 입원 치료를 받음. 이날 밤 ‘(가칭) 노태우정권 퇴진과 민주정부수립을 위한 인천시민대책회의’ 와 인천지역 노동조합 협의회, 인천지역 대학생대표자협의회 관계자 등이 모여 ‘(주)삼미 이진희씨 분신 임시대책위원회’를 구성하고 조용명과 양재덕을 공동대표로 선출. 이진희는 6월 15일 분신 8일 만에 사망함
    인천지역 노동자·학생 300여 명, 부평역 광장에서 개최하려던 「6월항쟁 계승과 노정권 퇴진을 위한 시민대회」가 경찰의 원천봉쇄로 무산되자 부평1동 성당에서 대회를 개최하고 동인천역 앞 등 시내 곳곳에서 늦은 밤까지 산발적인 시위를 벌임
    서울·인천·부천지역 간호사 507명, ‘노태우 정권 퇴진을 위해 여러 민주세력들과 함께 할 것’이라는 내용의 성명서를 일간신문에 게재하고 ‘강경대군, 김귀정 양 폭력 살인 및 애국시민 권창수 씨 폭력만행의 책임자를 구속 처벌’ 등을 촉구함
    인천여성노동자회, 6월 8일부터 7월 7일까지 총 6회에 걸쳐 매주 수·토요일 「제1기 여성노동자 학교」 운영. 「제1기 여성노동자 학교」는 ‘① 주체적 여성, 진짜 노동자로 살아가기 위한 한국사회에 대한 이해, ② 여성노동자의 현실을 개선해 나가기 위한 실천과제의 정립, ③ 여러 사업장 여성노동자들의 상호 교류를 통한 소모임의 활성화에 기여함’을 목적으로 설정함
  • 1991.06.10.

    코스모스전자 노동조합 조합원 21명, 5월 24일부터 ‘정상조업 재개, 체불임금 지급 약속 이행, 회사 정리 시 고용 및 노조 승계’ 등을 요구하며 서울 명동 코스모스백화점에서 점거 농성을 벌임
    인천대학교 학보에 경제학과 교수가 쓴 사설 ‘현 재단 정상화 타개방안’이란 제목의 사설이 문제가 돼 학교 측에서 제작중지 조치를 내린 후 신문 발행이 중단됨
  • 1991.06.10.

    한국메그론 노동조합, ‘임금 1864원 인상’을 요구하며 파업 돌입
  • 1991.06.15.

    공성교통 노동조합 조합원 석광수, 노동조합 지도부가 연행된 데 항의해 분신을 시도하여 6월 24일 사망함
  • 1991.06.18.

    인천노동선교문화원, 6월 18일부터 7월 17일까지 한 달 간 매주 화·금요일, 「제1회 노동자 성서강좌」 진행
  • 1991.06.20.

    전국택시노동조합연맹 인천지부, 사용자 측과의 협상이 결렬됨에 따라 이 날 0시를 기해 전면파업 돌입
  • 1991.06.23.

    동서식품 노동조합, 5월 13일부터 농성을 진행해 오던 중 경찰이 진압을 시작하여 13명이 연행됨. 노동자 128명은 옥상으로 이동해 농성을 계속 이어감
  • 1991.06.27.

    인천지역 사회운동연합 소속 유재관, 인천지역 사회운동연합 사무실에서 정기총회 및 조직발전특별위원회 구성에 관하여 토론 중 공권력이 투입될 것이라는 연락을 받고 피신 중 추락해 사망함
  • 1991.07.01.

    미미양행, 회사 사장 동생과 회사 인수자로부터 임금 2억 원과 마지막까지 투쟁했던 30여 명에 대한 14개월간의 보상금을 받기로 하며 294일 동안의 투쟁을 끝냄
  • 1991.07.14.

    전국택시노동조합연맹 인천지부, 주안6공단 운동장에서 공성교통에 근무하던 중 노동조합 지도부의 연행에 항의해 분신, 사망한 석광수의 영결식 거행
  • 1991.07.15.

    동서식품 노동자 88명, 5월 13일부터 ‘유령노조해체’ 등을 요구하며 파업을 시작한 후 공장 원두창고 위에 올라가 농성을 벌여오다 농성 64일만에 농성을 풀고 내려옴. 이에 앞서 7월 12일, 노동자 측 협상대표 7명이 협상을 위해 원두창고를 내려와 협상에 임하던 중 교섭 장소에 들어온 경찰에 의해 모두 연행됨
    코스모스전자 노동조합·인천여성노동자회·인하대학교 총학생회, 인하대학교 대강당에서 「투쟁기금 마련을 위한 ‘정태춘과 함께’ 공연」 공동 주최
  • 1991.07.16.

    동국제강 인천공장을 포함한 부산·포항공장 등 노동조합 조합원, 회사 측과 협상이 결렬되자 전면 파업 돌입
  • 1991.07.24.

    노동자대학 관계자 11명, 경찰과 교육청에 의해 폐쇄된 노동자대학 건물에 들어가 새벽부터 항의농성을 벌여오던 중 진압을 위해 동원된 경찰 100여 명에 의해 연행됨
  • 1991.07.26.

    노동자대학 학생 5명, 노동자대학 폐쇄조처에 항의해 출입문을 뜯고 들어가 농성을 벌이다 공무상표시무효 및 특수공무집행방해 혐의로 구속됨
  • 1991.08.03.

    인천지역 기독노동자연맹, 8월 5일까지 경기도 가평군 대성리 등나무 캠프에서 ‘사람 낚는 어부가 되자’라는 주제로 「제3회 인천기독노동자 여름수련회」 개최
  • 1991.08.17.

    연안동 등 주민 30여 명, 연안부두 일대 공해 추방을 목표로 한 ‘연안부두지역 공해방지대책위원회’구성
  • 1991.08.21.

    전국교직원노동조합 인천지부·서울지부·경기지부 해직교사 및 인천교육대학교·인하대학교 사범대학 학생 등 200여 명, 경기도교육청 정문 앞에서 「시국선언 교사 징계 규탄대회」 개최
  • 1991.08.22.

    인천대학교 정치외교학과 학생들, 선인학원 재단 측이 8월 1일부로 교직 경력이 없는 국가 고위 간부 출신을 인천대학교 정치외교학과 부교수로 임명하자 이에 반발해 학과장실을 점거한 채 농성 돌입
    유진상사, 조합원 임시총회를 열고 조합원 80% 찬성으로 쟁의 발생을 결의한 후 잔업거부, 휴식시간 집회 등 준법투쟁 시작
    대우자동차 노동조합, 제9차 임시대의원대회를 열어 해고자 등의 생계보장을 위한 ‘특별기금 조성안’을 참석대의원 85% 찬성으로 통과시킴
  • 1991.08.23.

    ‘민주화를 위한 전국교수협의회 인천지회·경기지회’, 전국교직원노동조합 수원지부 사무실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시국선언교사에 대한 경기도 교육청의 교권탄압행위 중지를 촉구
  • 1991.08.24.

    ‘주거권 실현을 위한 인천시민연합’ 개소식 거행
  • 1991.08.28.

    인천지역 노동조합 협의회 신안식 부의장, 4월 13일 개최된 「인천지역 임투전진대회」 원천봉쇄에 항의하며 벌인 가두시위와 관련해 수배를 받아오다 이날 구속됨
  • 1991.08.29.

    인천대학교 총학생회, 박재규 총장 및 재단 이사진의 전원 퇴진 및 교육부 특별감사를 요구하며 총장실과 7개 사무실을 점거
  • 1991.09.06.

    노래패 노래선언, 창단 기념으로 9월 7일까지 이틀간 부평1동 성당 교육관에서 「인천 1991년 6월」이라는 제목의 노래극 개최
  • 1991.09.07.

    아남산업 부평1공장 노동조합 현판식 개최
  • 1991.09.12.

    교육부, 학내 분규를 겪고 있는 선인학원에 대학정책실 조사반을 보내 특별실태조사에 착수
  • 1991.09.16.

    인천시 북구의료보험조합 이원필 전 노조지부장, 5월 4일 불법노조활동을 이유로 파면 조치된 데 대해 인천지방노동위원회로부터 해고 사유가 타당하지 않다는 이유와 함께 복직 결정 받음
  • 1991.09.19.

    인항여객 노동조합, 임금 교섭이 결렬됨에 따라 9월 20일부터 파업에 들어가기로 결정하고 인천지방노동위원회에 쟁의행위 신고. 인항여객은 인천∼강화 사이의 버스를 독점 운행하고 있는 업체임
  • 1991.09.20.

    전국노동조합협의회 사무총장 최동식(인천지역 노동조합 협의회 의장·남일금속 노동조합 위원장), 1995년 5월의 총파업 투쟁으로 수배 중 9월 19일 밤 영등포역에서 경찰 특수수사대 20여 명에게 불심 검문을 받고 연행되어 이날 구속됨
  • 1991.09.24.

    까르델 수도원 정대식 신부, 계양산을 민자유치에 의해 개발하기로 한 인천시의 방침에 대해 천주교 인천교구 산하 31개 천주교회 및 수녀·수도원 신부, 조계종 지선사 주지 등의 서명을 받아 건설부와 인천시에 탄원서 제출
  • 1991.09.27.

    세일고등학교 학생 1000여 명, 9월 19일 학생이 교직원 화장실에서 세면을 했다는 이유로 교사가 학생을 때려 고막을 터뜨린 사건에 항의해 교내 복도에 모여 수업을 거부하며 농성 시작
  • 1991.09.30.

    남일금속 노동조합, 회사 앞마당에서 조합원 550여 명 전원이 참석한 가운데 「최동식 전국노동조합협의회 사무총장 석방 촉구대회」를 개최함
  • 1991.10.04.

    인천지역 노동조합 협의회, 제4차 정기대의원대회를 개최하고 구속 중인 최동식 의장을 재선출하는 한편, 의장 직무대행에 김기자 전 사무처장을 선출. 부의장에는 구속 중인 신안식 대흥기계 노동조합 부평지부장·이현기 대원강업 노동조합 주안지부장, 사무처장에는 조태천 경일화학 노동조합 위원장을 선출함
  • 1991.10.08.

    정요일 교수 등 인천지역 각계 인사 46명, 인천시가 민자를 유치해 계양산을 개발하려는 계획에 대해 유적지 훼손 우려를 제기하며 환경영향평가 및 지표조사를 실시하라고 촉구
    고려시스템 노동자 800여 명, 회사가 OPT(동양정밀)그룹을 무리하게 인수하며 10월 7일 법원으로부터 파산 선고를 받자 사무직 노동자들을 중심으로 제1차 비상대책위원회를 구성한 후 이 날부터 실질적 모그룹인 한국화약이 노동자들의 사후대책을 마련하라고 요구하며 농성 시작
  • 1991.10.11.

    ‘계양산살리기 범시민운동본부 결성준비위원회’ 발족
    아남정공 노동조합 현판식 개최. 1990년 말 아남시계 노동조합과 한등 노동조합이 합병한 후 11월만에 개최된 행사로 150여 명이 참석함
  • 1991.10.13.

    통합 인천민중교회연합 발족. 김영철 목사(고백교회)가 회장, 윤인중 목사(새벽교회)가 총무를 맡음
  • 1991.10.16.

    인천지역 노동조합 협의회·인천지역 노동조합 활성화추진위원회·인천지역 대기업노동조합 연대모임·인천지역 의료보험 노동조합·전국교직원노동조합 인천지부·전국병원노동조합연맹 인천·부천지부·전국택시노동조합연맹 인천시지부·인천지역 노동운동단체 협의회·인천민중교육연구소·인천민중연합·민중당·국민연합 인천본부 후원으로 「ILO가입과 노동법 개정 투쟁」을 주제로 한 「인천지역 공청회」 개최
  • 1991.10.17.

    오용호 신부·박기현 민중당 인천남동구 위원장·김명숙 인천구속자가족협의회 회장·국민연합 인천본부 소속 회원 70여 명, 학익동 인천구치소 앞에서 시국관련 재소자에 대한 ‘접견제한 완화, 도서검열 금지, 운동시간 연장, 교도관들의 구타 금지’ 등을 요구하며 항의시위를 벌임
    제2회 인천지역 보건의료인 모임이 푸른치과에서 개최됨. 평화의원 상담실장 정경심이 ‘인천지역의 산재실태와 문제점’이란 주제로 발표
  • 1991.10.18.

    광원산업 노동자 12명이 모여 가정동 소재 현대가든에서 노동조합 결성대회 개최.
  • 1991.10.20.

    천주교 인천교구 가톨릭노동청년회, 백석 하늘의 문 묘원에서 「고 강석태 형제 추모미사」 진행.
  • 1991.10.23.

    인천지역 노동조합 협의회 신안식 부의장,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고 석방됨
  • 1991.11.02.

    인천여성노동자회, 11월 2일부터 12월 1일까지 총 6회에 걸쳐 매주 수·토요일 「제2기 여성노동자교실」 운영. 이날 진행된 입학식에는 모두 11명의 노동자들이 참여함
  • 1991.11.06.

    인천지역 노동법 개정 공동대책위원회, 부평1동 성당 교육관에서 700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결성대회 개최.
  • 1991.11.08.

    코스모스전자 노동조합, 회사 측과 ‘퇴직금 전액 지급, 위로금 2억 7500만 원 지급, 제3자 또는 이사급 이상 경영진 인수 때 조합원 우선 고용, 고소고발 취하’ 등에 합의. 이후 11월 26일 보고대회를 열고 272일 간의 투쟁을 끝냄
  • 1991.11.09.

    ‘청솔의 집’, 구월동 모래내 시장 인근에서 개소. 1992년 2월, 어린이 공부방 개원
    ‘계양산살리기 범시민운동본부 결성준비위원회’, 계산동 성당에서 200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시민공청회 개최
    인천산재노동자회·대우조선산재보우회·전국산업재해자연합회·전국산재장애자협회 등 9개 산업재해 단체, 중앙병원 3층에서 「김성애 산재열사 4주기 추모제 및 산재추방 결의대회」를 개최할 예정이었으나 중앙병원 측이 장소 허가를 불허해 무산됨. 집회에 참석하기 위해 온 산재노동자들은 경찰에 의해 해산됨
  • 1991.11.12.

    고려시스템 노동자들, 제3기 ‘고려시스템 생존권 사수를 위한 투쟁위원회’ 발대식 개최
  • 1991.11.21.

    고려시스템 노동자들, 서울 한국화약그룹빌딩 1층 로비를 점거, 연좌 농성을 전개하다가 69명 전원이 경찰에 연행됨
  • 1991.11.23.

    동서식품 노동조합, 8월 17일 민주노조를 결성한 후 이날 현판식 거행
  • 1991.11.27.

    전국택시노동조합연맹 인천시지부 지부장 구영수, 업무방해 혐의로 구속됨
  • 1991.11.28.

    인천대학교·인하대학교 학생 400여 명, 인천대학교 학생회관 앞에서 「전국연합 발족 사수 및 수입개방 저지와 전시지원협정 무효화 선언을 위한 5만 학도 전진대회」 개최. 집회를 마친 후에는 부평역 앞 등지에서 쌀수입 개방을 반대하는 내용의 유인물을 시민들에게 배포함
  • 1991.12.04.

    인천여성노동자회, 인천지역 탁아위원회, 전국교직원노동조합 인천지부, 전국병원노동조합연맹 인천지부·부천지부가 공동 주최하여 「올바른 직장탁아소 설치를 위한 인천지역 토론회」 개최
  • 1991.12.07.

    인천지역 민족민주운동연합, 부평1동 성당 교육관에서 「민주정부수립과 총선승리를 위한 인천시민 대토론회」 개최
  • 1991.12.09.

    삼광유리 노동조합 조합원들, 7월 말 회사 인근에 위치한 한국카리화학에서 염화수소가스가 대량으로 누출돼 피해를 본 데 대해 ‘카리화학은 가스누출에 대한 근본적인 대책을 세우라’는 내용의 유인물을 학익초등학교 앞에서 배포하다 경찰에 연행됨
  • 1991.12.11.

    ‘민중의 독자적 정치세력화를 위한 인천지역 노동자·정당·사회단체 연석회의’, 부평1동 성당 교육관에서 500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연석회의 발족보고대회」를 개최하고 14대 총선에 민중후보를 출마시키겠다고 선언
  • 1991.12.12.

    전국택시노동조합연맹 인천지부, 구수영 지부장의 부당한 구속에 반발하며 한국노총 인천본부 강당에서 「구 지부장 석방 및 지입제 도급제 철폐 촉구대회」 개최
    인천민중문화예술운동연합, 13일까지 이틀간 부평1동 성당 교육관에서 창단 4주년 정기 공연 개최
  • 1991.12.16.

    인천대학교 교수협의회 소속 교수 56명 중 43명, 재단 측이 12월 13일 박재규 총장을 조기 퇴임시키고 교수협의회 의장 장석우 교수를 징계하려는 움직임 등에 반발해, ‘박총장 퇴임에 대한 진상규명, 재단비리에 대한 정부의 대책요구’ 등을 요구하는 결의문을 채택하고, 정부의 대책마련이 있을 때까지 무기한 철야 농성 돌입
  • 1991.12.17.

    인천지역 민족민주운동연합·인천여성노동자회·전국교직원노동조합 인천지부·인천지역 대학생대표자협의회·인천지역 노동조합 협의회·인천기독청년협의회 등 6개 단체, ‘외래상품추방, 수입개방반대 인천시민모임’ 발족식 개최
  • 1991.12.18.

    인천대학교 교수협의회 소속 교수 50여 명, 기자회견을 개최하고 12월 20일까지 재단 측의 총장 임명과 교수협의회 회장 장석우 교수의 징계조처에 대응하기 위해 철야농성에 돌입한다고 발표
  • 1991.12.20.

    인천대학교 교수협의회 회장 장석우 교수, ‘학원정상화를 빌미로 일부 학생·교수들을 선동’했다는 사유로 선인학원 재단 측으로부터 파면조처 당함
  • 1991.12.22.

    인천지역 기독노동자연맹, 백마교회에서 20여 명의 재건회원과 70여 명의 회원, 기독교 인사, 지역인사들이 참여한 가운데 3차 재건 결성대회 개최. 사무실은 북구 청천2동 179-15 백마교회 내에 둠
  • 1991.12.25.

    인천지역 철거민들, 「91년도 대동제」 개최
  • 1992.01.14.

    인천대학교 총학생회 간부 등 50여 명, 총장실을 폐쇄하고 총학생회 회의실에서 학원정상화를 요구하며 철야농성 돌입
  • 1992.01.15.

    선화여자중학교 교사 35명, 이 학교 교사인 ‘범선인학원 정상화추진위원회’ 교사 대표 이세영이 선인재단에 의해 징계위원회에 회부되자 긴급회의를 열고 징계철회와 학원 정상화를 요구하며 학교 건물 4층 교사 휴게실에서 무기한 철야 농성 돌입
  • 1992.01.16.

    ‘십정동 철거대책위원회’ 결성
  • 1992.01.24.

    계산중앙교회에서 「계양산살리기 범시민운동추진위원회 결성대회」 개최
  • 1992.02.01.

    송현산마루교회 김정택 전도사, 1991년 5월 ‘민자당 일당독재 분쇄와 민중생존권 수호를 위한 국민연합’ 공동대표로 있으면서 1991년 5월 9일에 있었던 「고 강경대 살해사건 규탄대회」를 주도한 혐의로 수배를 받아 오던 중 경찰에 연행, 구속됨
  • 1992.02.13.

    ‘선인학원 사태를 우려하는 인천 시민의 모임’, 도화동 성당에서 「선인학원 정상화를 위한 시민공청회」 개최
  • 1992.02.14.

    민주주의민족통일 인천연합, 인하대학교 본관 대강당에서 「창립식 및 창립 대의원대회」 개최. 7개 단체가 참가하였으며 인천기독교 사회운동연합이 참여 예정으로 있었고, 민중당이 참관단체로 결합함. 상임의장에 양재덕 인천지역 사회운동연합 의장 선출
  • 1992.02.16.

    인천기독교 사회운동연합, 인천대학교 인문관 4층 합동강의실에서 「대의원 총회 및 문화공연」 개최
  • 1992.02.17.

    인천지역 사회운동연합, 「동지」 창간호 발행
  • 1992.02.18.

    민주주의민족통일 인천연합, 소식지 「인천연합」창간
  • 1992.02.21.

    인성기연·인텍스 노동자 16명, 회사 부도 이후 두 달 넘게 생존권 사수투쟁을 벌여 오다가 이날 노동부 항의 농성을 진행하던 도중 경찰에 모두 연행됨. 인텍스 노동조합 위원장 김은미와 인성기연 부위원장은 공무집행 방해 혐의로 구속됨
  • 1992.02.22.

    민주주의민족통일 인천연합, 인천대학교 체육관에서 「인천·부천연합 창립보고대회 및 민자당 심판과 민중생존권 쟁취를 위한 인천시민 결의대회」 개최. 대회 중 경찰과의 충돌로 1명이 부상당해 병원에서 입원 치료를 받음
    성남기업 노동조합, 단체교섭이 결렬됨에 따라 파업 돌입
  • 1992.02.26.

    인천지역 노동조합 협의회, 인천여성노동자회, 인천지역 노동운동단체 협의회, 인천기독교 민중교육연구소, 인천민중연합 노동위원회가 공동 주최하여 「코스모스, 고려시스템 투쟁 보고와 고용안정 확보를 위한 인천 토론회」 개최
    성남기업 노동조합, 2월 22일부터 파업을 진행해 오다 ‘유니온샵 인정, 가족수당·위험수당 신설’ 등에 합의하며 파업을 끝냄
  • 1992.02.29.

    인천여성노동자회, ‘나눔공부방’ 현판식 개최. 인천여성노동자회가 운영하는 나눔탁아소 교사와 자모를 중심으로 결성된 ‘공부방추진위원회’가 재정을 마련하여 나눔탁아소 2층에 개설
  • 1992.03.*

    인천노동자문학회, 「제1회 인천 노동자 문학상」 작품 공모
  • 1992.03.02.

    인천지역 목회자 정의평화실천협의회, 민주화를 위한 전국교수협의회 인하대지회 등 인천지역 제 단체들이 모여 ‘국민주권 바르게 행사하기 및 공명선거 실천 인천시민회의’ 결성. 3월 5일 주안1동 성당에서 출범 기자회견 개최
  • 1992.03.08.

    인천여성노동자회·인천민주노동청년회·노동자 문화마당 일터, 인천대학교 인문관에서 「3·8세계여성의 날 기념 여성노동자 전진대회」 공동 주최
  • 1992.03.14.

    노동자 문화마당 일터, 창립 1주년 기념공연 ‘함께 가자, 투쟁의 한길로!’를 인천대학교 소극장에서 공연
  • 1992.03.15.

    우성기계 노동조합 결성. 우성기계는 남동공단에 위치한 회사로 130여 명이 근무
  • 1992.03.18.

    부평1동 성당 교육관에서 「92임투전진대회」 개최
  • 1992.03.20.

    대우자동차 해고자 15명, 회사 정문 앞에서 홍보물을 배포하다가 대기 중이던 부평경찰서 기동대에 의해 10여 분만에 모두 연행되어 2~3일간의 구류처분을 받음
    삼익목재·성남기업 등 서구지구 8개 목재업종 노동조합 대표자들, 3월 20일과 3월 25일 회의를 열고 ‘공동임투’를 결의
  • 1992.03.21.

    인천여성노동자회, 22일까지 이틀 간 유세장 및 거리 등지에서 여성유권자를 대상으로 ‘깨끗한 한표 행사’, ‘자식을 위해 바른표 행사’라는 슬로건을 내걸고 투표 참여 캠페인 전개
  • 1992.03.24.

    상민전자 노동조합 결성. 4월 17일 신고필증 교부받음. 상민전자는 주안6공단에 위치한 카스테레오 제작 업체로 종업원은 130여 명 규모
  • 1992.03.26.

    선인학원 산하 학교의 학생·교사·교수 등 2000여 명, 인천대학교 민주광장에서 학원 정상화를 요구하며 집회 개최. 집회가 끝난 후 일부 학생들은 인천대학교 총장·부총장실과 4개 처장실을 점거하며 철야 농성 돌입
    인천지역 노동조합 협의회, 3월 31일까지 「92임투교실」 진행
  • 1992.03.27.

    동국제관 노동조합 결성. 동국제관은 부평에 위치한 포장용 철제깡통 생산업체로 생산직 노동자 30여 명이 근무
  • 1992.03.28.

    천주교 인천교구 청년연합회 창립. 각 본당 청년단체와 인천교구 산하 청년단체들이 연합하여 결성
  • 1992.03.29.

    흥창물산 노동조합 결성. 흥창물산은 주안 6공단에 위치하며 통신전자 계측기와 인공위성 수신기를 생산하는 업체임
  • 1992.03.31.

    계양산살리기 범시민운동추진위원회, 계양산에 대규모 위락시설 설치를 계획 중인 대양개발에 대해 불법 벌목 등을 이유로 인천지검에 고발함
  • 1992.04.04.

    수복기계 노동조합 결성. 수복기계는 주안에 위치한 대우중공업 하청업체로 생산직 노동자 20여 명이 근무
  • 1992.04.05.

    ‘일신동 세입자 대책위원회’, 일신동 철거지역에서 「일신동 세입자 대책위원회 발족식 및 인천지역 철거민 단합대회」 개최
  • 1992.04.08.

    전국대학생대표자협의회, 인하대학교에서 4월 10일까지 3일간 총회 개최. 4월 9일에는 ‘범청학련 결성을 위한 남쪽 준비위원회’ 발족
  • 1992.04.13.

    인천대학교 총학생회, ‘재단 이사진 전원 퇴진과 관선이사 파견, 장석우 교수 파면 철회’ 등을 요구하며 수업을 전면 거부한 채 학생회 간부 300여 명이 7개 단과대학 학장실을 점거, 무기한 농성에 돌입
  • 1992.04.14.

    신창튜빙 노동조합, ‘기본급 일당 3074원, 상여금 100% 인상, 전임자 1명 추가, 조합활동시간·교육시간 보장’ 등을 요구하며 파업 돌입
  • 1992.04.17.

    교육부, 학내분규가 계속 진행 중인 인천대학교에 대해 종합감사 착수
  • 1992.04.18.

    선인학원 산하 초·중·고·대학의 교수·교사·학생 등 2000여 명, 인천대학교 운동장에서 「선인학원 정상화를 위한 시민결의대회」 개최
  • 1992.04.19.

    ‘주거권 실현을 위한 인천시민연합’, 일신동 철거지역에서 「92 인천지역 철거민 주거권 쟁취 전진대회」 개최. 한겨레신문 인천지국 협의회, 인천민중교회연합, 인천연구소, 공해추방 인천시민모임, 노동자신문, 인하대학교 총학생회, 인하대학교 동아리연합회가 후원
  • 1992.04.22.

    남일금속·신광기업·아남정공 등 총액대상업체 12개 노동조합, 전국병원노동조합연맹에서 대표자회의를 열고 ‘총액임금제 저지를 위한 공대위 준비위원회’ 구성
  • 1992.04.25.

    ‘주거권 실현을 위한 인천시민연합’, 도림동 철거 지역에서 「4·27 강제폭력철거 저지를 위한 도림주민결의대회」 및 「철거민, 노동자, 학생 연대의 밤」 개최
  • 1992.04.30.

    인천대학교 총학생회장 등 학생회 간부 5명, 학생들을 선동해 시위를 주도한 혐의로 제적됨
    인천기독교 사회운동연합 주최, 인천지역 기독노동자연맹 주관으로 백마교회에서 「5·1 세계노동자의 날 기념예배」 개최
  • 1992.05.04.

    연안부두 노점상 김창용, 중구청의 연안부두 노점상 강제철거에 항의하던 중 분신. 김창용은 연안부두에서 10여 년간 노점상을 해왔으며 연안동에서 기초의원선거에 출마한 경력을 갖고 있음
    흥창물산 노동조합 사무장 신선아·교육부장 최선미·문화부장 양정민, ‘근무지 이탈, 명령불복종, 불법선동’ 등을 사유로 해고됨
  • 1992.05.06.

    ‘선인학원 사태를 우려하는 인천시민의 모임’ 공동대표 5명, 송림동 집단매몰 사태로 인한 유족보상비가 학교 교비에서 지출된 것과 관련해 선인학원 이사장 등을 사립학교법 및 업무상 배임 혐의로 인천지검에 고발함
    연안부두 노점상 50여 명, 5월 4일 노점상 김창용이 분신한 사건과 관련해 전국노점상연합회, 인천주거연합, 민주주의 민족통일 인천연합 등과 함께 중구청을 방문하여 농성하는 한편 중구청장과 면담 진행. 면담을 끝내고 나오던 중 전국노점상연합회 양연수 의장과 민주화실천가족운동협의회 회원 김영숙 등이 경찰에 연행됨
    한국OA시스 노동조합, ‘기본급 3350원, 상여금 100% 인상, 교통·근속수당 신설’ 등을 요구하며 회사 측과 교섭을 진행하던 중 ‘차등인상’을 내세우는 회사 측에 반발하며 파업 돌입
  • 1992.05.07.

    계양산살리기 범시민운동추진위원회, 부평신협회관에서 각계 인사와 시민 500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계양산 위락공원 건설계획 저지를 위한 계양산 살리기 범시민운동 추진대회」 개최
  • 1992.05.08.

    학교법인 선인학원, 인천대학교 총학생회장 등 학생 12명을 ‘9월 30일 오전 인천전문대학 본관 재단 감사실의 창틀을 부수고 들어가 집무중인 재단 상임감사 등 7명을 끌어내 학교 밖으로 몰아냈다’고 주장하며 업무방해 혐의로 동부경찰서에 고발
  • 1992.05.09.

    ‘선인학원 사태를 우려하는 인천시민의 모임’, 시민·학생 등 800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주안1동 성당에서 인천시청 앞 광장까지 「선인학원 정상화를 위한 인천시민 걷기대회」 진행
    5월 4일 연안부두 노점상 김창용 분신 사건과 관련하여 전국노점상연합회·전국빈민연합이 공동명의로 ‘노점단속·강제철거는 중단되고 민자당 정권은 심판해야만 합니다’라는 제목의 ‘4천만 국민에게 드리는 글’ 발표
    흥창물산 노동조합, 쟁의발생 신고
  • 1992.05.11.

    인천시의회 계양산개발청원심사특별위원회, 계양산 산림훼손과 개발에 따른 문제점 등을 알아보기 위해 실태조사에 착수
  • 1992.05.12.

    동흥전기 노동조합, 소식지 「동지」 제1호 발간
  • 1992.05.13.

    ‘선인학원 사태를 우려하는 인천시민의 모임’ 공동대표 5명, 선인학원 설립자 백인엽과 재단이사 6명 전원을 업무상 배임 및 사립학교법 위반 혐의로 인천지검에 고발함
  • 1992.05.16.

    흥창물산 노동조합 위원장 오종만·부위원장 전성인·홍보부장 최영숙, 쟁의와 관련해 불법파업이라는 사유로 해고 당함. 노동조합 간부들은 5월 18일 회사로 출근해 철야농성을 전개하였으나 이튿날인 5월 19일, 업무방해 등의 협의로 6명이 연행되고 그중 오종만, 전성인, 사무장 신선아, 문화부장 양정민은 구속됨
  • 1992.05.18.

    한국OA시스 노동조합, 5월 6일부터 파업을 진행해 오던 중 ‘차등인상 철회, 기본급 2500원 인상(연말에 재조정), 하기체력단련비 10만 원’ 등에 합의하고 파업 철회
  • 1992.05.19.

    흥창물산 노동조합 위원장 유종만 등 5명, 업무방해혐의로 경찰에 연행됨. 앞서 이들은 흥창물산 노동자 120여 명이 3월 29일 노동조합을 결성하자 회사 측으로부터 근무지 이탈 및 명령불복종 등을 사유로 해고되었음
  • 1992.05.22.

    인천대학교·인하대학교·성심여자대학교 등 인천·부천지역 대학생 2000여 명, 오후 6시 경 제물포역 앞 도로를 점거한 채 ‘민주당 해체, 민주정부 수립’ 등을 요구하며 화염병을 던지면서 2시간 가량 시위 전개
  • 1992.05.23.

    통합 인천민중교회연합, 6월 12일까지 「기독여성일꾼교육」 진행
  • 1992.05.25.

    ‘범선인학원 정상화추진위원회’ 소속 교수·교사들, 선인학원 재단사무실에서 현 재단이사진의 승인 취소 등 학원정상화 조처를 요구하며 무기한 철야 농성에 들어감
    천주교 정의구현전국사제단 소속 신부 및 신도 등 1000여 명, 주안1동 성당에서 「문규현 신부와 구속된 방북인사들 석방을 위한 미사」를 개최하고 인천시민회관 앞까지 촛불행진을 벌임
  • 1992.05.27.

    ‘총액임금제 저지를 위한 인천지역 노동조합 공동대책위원회’, 인천대학교 체육관에서 노동자·학생 1000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총액임금제 분쇄 및 자율교섭보장 촉구대회」 개최
    인천노동선교문화원, 5월 27일부터 7월 1일까지 7회에 걸쳐 「일꾼성서강좌」 진행
  • 1992.05.28.

    통합 인천민중교회연합, 6월 18일까지 「청년일꾼교육」 진행
  • 1992.06.*

    ‘산재없는 일터회’ 창립. 이후 산보연과 통합하여 2002년 5월 ‘건강한 노동세상’으로 명칭을 변경함
  • 1992.06.04.

    전국택시노동조합연맹 인천지부, 비가 내리는 가운데 인천공설운동장 주차장에서 「대통령공약사항 이행촉구 및 택시제도개선쟁취 인천결의대회」 개최. 이 자리에서 ‘정부당국에 보내는 촉구문’을 통해 ‘택시노동자특별보호법 제정, 완전월급제 실시 등 1987년 당시 노태우대통령이 내건 7가지 공약 즉각 이행, 지입제·도급제 등 사용자의 불법변칙운영 처벌, 완전월급제 즉각 실시’ 등을 요구
  • 1992.06.06.

    ‘계양산살리기 범시민운동추진위원회’, 400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오전 10시부터 2시간 동안 부평역 광장부터 계양산 입구까지 「계양산살리기 범시민 걷기대회」 개최
  • 1992.06.07.

    전국교직원노동조합 인천지부, 참교육실현을 위한 학부모회 인천지부, 인천지역 공부방연합회, 인천지역 탁아위원회, 여성신문 인천지사, 인천대학교 총여학생회가 공동 주최하여 성폭력추방 행사의 일환으로 ‘성폭력 없는 세상에서 살고 싶어요’라는 주제의 강연회 개최
  • 1992.06.10.

    교육부, 선인학원에 관선이사 파견
  • 1992.06.13.

    인천지역 대학생대표자협의회 소속 학생 300여 명, 인천대학교 학생회관 앞에서 결의대회를 가진 후 오후 6시경부터 부천역 광장에서 ‘단체장 선거 촉구 서명운동’ 전개
    ‘만수2동 유신마을 철거민 대책위원회’ 발대식 개최
  • 1992.06.16.

    인천대학교, 학원정상화 문제로 4월 20일부터 수업이 전면 중단되어 오다가 58일만인 이 날부터 부분 수업 재개
  • 1992.06.19.

    유진종합개발 노동조합 결성. 유진종합개발은 송림동에 위치한 레미콘 제조, 판매 업체로 직영기사 50여 명이 근무
  • 1992.06.20.

    인천지역 사회운동연합, 6월 20일부터 7월 25일까지 총 7강좌의 「제5기 노동자를 위한 교양강좌」 운영
    인천민주노동자연합, 6월 20일부터 7월 19일까지 매주 수요일 「노동자를 위한 교양강좌」 운영
  • 1992.06.22.

    ‘선인학원 사태를 우려하는 인천 시민의 모임’, 송도비치호텔에서 「선인학원 정상화 방안 모색을 위한 강연회 및 인천시민 간담회」 개최
  • 1992.06.23.

    인천지역 대학생 30여 명, 인천지방노동청 북부사무소에 몰려가 세일중공업 사태와 총액임금제 강요에 항의하며 페인트가 담긴 비닐봉지를 건물에 던짐
  • 1992.06.24.

    인천민중연합 노동자위원회, 6월 24일부터 7월 1일까지 「노동교실」 3강좌 운영
  • 1992.06.25.

    인천대학교·인하대학교 학생 500여 명, 부평역 앞에서 지방자치단체장 조기 선거를 요구하는 시위를 벌이면서 가두서명운동을 전개하다 경찰에 의해 강제 해산됨
  • 1992.06.27.

    인천일보사 노동조합, 회사 측과 임금협상이 결렬됨에 따라 조합원 찬반투표를 거쳐 파업 결의
    한라중공업, 총액 5% 억제에 맞서 전면 파업 돌입
  • 1992.07.04.

    인천여성노동자회, 산곡동에 공단지역의 일하는 여성과 지역주부들을 위한 문화·복지 공간인 「여성나눔터」 개소
    ‘교육대개혁과 해직교사 원상복직을 위한 인천시 교사추진위원회’와 ‘범국민서명운동 인천본부’, 7월 4일·7일·11일 3일간 동인천 및 부평역 부근에서 ‘교육대개혁과 해직교사 원상복직 청원’을 요구하는 가두서명운동 전개. 7월 4일에는 서명운동을 하던 현직교사 등이 ‘도로교통법’과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 위반 혐의로 경찰에 강제연행 당함
  • 1992.07.14.

    민주주의민족통일 인천연합, 부평1동 성당 교육관에서 200여 명의 시민·노동자·학생 등이 참여한 가운데 「민주정부 수립을 위한 대선방침 시국토론회」 개최. 민주주의민족통일 전국연합 정책국에서 기조 발제를 맡고 김영규(민중회의 정책위원장), 장명국(석탑노동연구원 원장), 이원영(한국청년단체협의회 사무처장), 이원주(민주개혁과 사회 진보를 위한 협의회 운영위원) 등이 토론을 진행함
    동흥전기 노동조합, 7월 10일 쟁의행위를 결의하고 이날부터 파업에 들어감. 이후 7월 18일 ‘기본급 5만 4300원 인상, 수당 5896원 인상, 임투기간 중의 민·형사상 면책, 파업기간 중 임금 2만 원 지급’ 등에 합의하며 파업을 끝냄
  • 1992.07.16.

    한라중공업 노동조합, 임금인상 문제와 관련하여 7월 26일까지 ‘5% 인상하면 5%만 일하자’는 구호를 내걸고 잔업 거부. 7월 26일 전면파업 선포
  • 1992.07.21.

    민주주의민족통일 인천연합 양재덕 상임의장·인천지역 목회자 정의평화실천협의회 김성복 공동의장 등 10여 명, 주안동 인천연합 사무실에서 지방자치단체장 선거 실시를 촉구하며 7월 25일까지 시한부 단식농성 돌입
  • 1992.07.27.

    한라중공업 노동조합, 회사 측과 임금교섭이 결렬됨에 따라 항동 인천공장과 충북 음성군 소이공장에서 전면 파업에 들어감
  • 1992.07.29.

    선인학원 관선이사회, 인천대학교 총장과 재단법인 사무국장을 학원분규의 책임을 물어 직위해제시킴
  • 1992.07.30.

    인천노동교육연구소, 석탑노동연구원 장명국 원장을 초청하여 ‘정세와 노동운동’이란 주제로 「초청강연회」 개최
  • 1992.08.08.

    ‘한반도 평화와 통일을 바라는 인천시민모임 준비위원회’, 8월 9일까지 이틀간 인천대학교에서 1000여 명의 학생·시민·노동자가 참여한 가운데 「92인천시민과 함께 하는 통일염원 문화대동제」 개최
  • 1992.08.11.

    인천지역 대학생 300여 명, 범민족대회 행사 저지를 위해 경찰이 중앙대학교와 숭실대학교를 압수수색한 일과 관련해 제물포역 앞 도로를 점거한 채 항의 시위를 벌임
  • 1992.08.17.

    ‘연희동 철거민 대책위원회’ 결성
  • 1992.08.23.

    ‘주거권 실현을 위한 인천시민연합’, 자유공원과 수봉공원 일대에서 「창립 2주년 기념 인천지역 철거민 거북이 마라톤 대회」 개최
  • 1992.08.24.

    학교법인 신호학원, ‘교육대개혁과 해직교사 원상복직을 위한 인천시 교사추진위원회’ 위원장인 재단 산하 경인여자상업고등학교 하인호 교사를 해임조처함
  • 1992.09.04.

    민주주의 민족통일 인천연합 양재덕 상임의장, 부천시 중동 자택에서 ‘김낙중씨 구속사건’과 관련에 국가안전기획부에 연행됨
  • 1992.09.17.

    인천·부천지역 대학생대표자협의회, 인하대학교 학생회관 앞에서 「관권부정선거 규탄 및 자치단체장 선거 연내 실시를 위한 결의대회」 개최
  • 1992.09.19.

    민중회의 인천지부·민중진영 단일정당 추진위원회 인천지부·진보정당추진위원회·인천민중연합, 「인천지역 대통령선거 대책본부 건설을 위한 공청회」 개최
  • 1992.09.24.

    인천지역 노동조합 협의회, 9월 24일과 9월 29일 2차에 걸쳐 「인천지역 노조단체 및 대기업노조 대표자 간담회」 주관. 인천지역 노동조합 협의회, 인천지역 노동조합 활성화추진위원회, 남동연대회의, 전국병원노동조합연맹 인천지부, 전교조 인천지부, 전국택시노동조합연맹 인천지부, 대공장(대우자동차, 한라중공업, 코리아 스파이서) 참가
  • 1992.09.29.

    인천대학교, 학생활동심의위원회를 개최하여 학원정상화 요구 시위와 관련해 제적됐던 총학생회장 등 학생회 간부 5명에 대해 제적 취소 결정을 내리고 복교시킴
  • 1992.09.30.

    ‘노동자 문화마당 일터’ 김동호 의장 등 6명, 국가보안법 위반혐의로 구속
  • 1992.10.*

    ‘남촌동 철거대책위원회’ 결성
    부평생활협동조합 창립
  • 1992.10.01.

    광원산업 노동조합이 회사명 변경에 따라 동남레미콘 노동조합으로 변경됨
  • 1992.10.10.

    인천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 창립
    통합 인천민중교회연합, 10월 31일까지 「여신도 교육」 진행
    인천·부천지역 병원노동조합 조합원들, 인천대학교 운동장에서 「가을문화제」 개최
  • 1992.10.16.

    「제1차 인천지역 단위노동조합대표자 간담회」가 30여 개 노동조합이 참여한 가운데 개최됨
    계양산살리기 범시민운동추진위원회, 계양산에 대규모 위락단지를 건설하려는 계획에 반발해 추진해 온 개발반대서명운동 참여 시민이 10만 명을 넘어섰다고 발표
    한국노동운동연구소, 부평1동 성당 교육관에서 「노동법개정토론회」 개최
  • 1992.10.19.

    민주주의민족통일 인천연합, 부평1동 성당 교육관에서 오후 7시 ‘민주대개혁과 민주정부 수립을 위한 국민회의’ 집행위원장 김근태를 초청하여 ‘민족민주진영의 통일단결을 위하여’란 주제로 「시국강연회」 개최
  • 1992.10.21.

    ‘선인학원 사태를 우려하는 인천시민모임’, 선인학원 전임 이사진이 교육부의 승인 없이 설립자 백인엽에게 재단기금 78억 원을 돌려준 사건과 관련해 검찰이 관련자 6명 전원을 무혐의 처리한 데 대해 성명서를 발표하고 ‘검찰이 진상조사를 벌여 담당자를 문책’할 것을 촉구
  • 1992.10.22.

    청보산업 노동조합, ‘단체협약 개악안 철회, 퇴직금 누진제 실시, 가족·근속수당 통상임금화’ 등을 요구하며 부분파업 돌입
    인천민중연합 여성위원회, 인천민중연합 강당에서 10월 22일부터 11월 9일까지 매주 월·목요일 「제3기 여성교실」 개최
  • 1992.10.23.

    인천지역 노동조합 협의회, 샘터교회에서 「제5차 정기대의원대회」를 열고 의장에 최동식 남일금속 노동조합 위원장을 재선출함
  • 1992.10.28.

    인천노동선교문화원, 노동자문화운동의 일환으로 10월 28일부터 12월 3일까지 매주 수요일 「제1기 연극교실」 운영
  • 1992.10.31.

    인천지역 60여 개 노동조합이 공동 주최하는 「인천지역 노동조합 가을문화제」가 500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개최됨
  • 1992.11.02.

    천주교 인천교구 청년연합회, 답동 가톨릭회관 지하광장에서 「제10기 민중대학」 개강. 12월 10일까지 운영.
  • 1992.11.05.

    인천지역 64개 학교 현직교사 275명, 주안1동 성당에서 ‘교육개혁을 요구하는 교사선언’ 발표
  • 1992.11.07.

    ‘민주대개혁과 민주정부 수립을 위한 국민회의 인천본부 준비위원회’ 결성
  • 1992.11.14.

    ‘민주대개혁과 민주정부 수립을 위한 국민회의 인천본부’, 주안1동 성당에서 결성회의 개최
  • 1992.11.17.

    민주주의민족통일 인천연합, 오순부 등 ‘일하는 사람들의 대선참여운동본부 준비모임’ 공동대표 구속과 관련해 성명을 내고 ‘공안선거 획책 중단’과 ‘구속자 석방’을 촉구
  • 1992.11.20.

    인천기독교 청년회·인천경제정의실천연합 등 인천지역 12개 시민단체, ‘공명선거실천 시민운동협의회’ 결성
  • 1992.11.24.

    인천·부천지역 대학생대표자협의회 소속 학생 100여 명, 인하대학교에서 ‘공명선거 감시단’을 발족시킨 후 동인천역지하상가에서 ‘민주정부수립과 민주대개혁쟁취’라고 쓴 플래카드를 들고 ‘인부대협 운동본부’ 명의의 유인물을 시민들에게 나눠주다 12명이 경찰에 연행됨. 경찰이 학생들을 해산시키는 과정에서 가스총과 공포탄을 발사하기도 함
  • 1992.12.08.

    인천지역 33개 노동조합, ‘인천지역 노동조합 대표자회의 준비위원회’ 구성
  • 1992.12.11.

    인천지역 118개 노동조합이 서명한 가운데 「대선에 임하는 인천지역 노동조합 입장 발표 기자회견」 개최
  • 1992.12.25.

    「92년도 인천지역 철거민 대동제」 개최
  • 1993.01.26.

    백마교회 신철호 목사, 1월 27일까지 서울 수유리 한신대학원에서 개최된 한국민중교회연합 제5차 정기총회에서 새 회장으로 선출됨
  • 1993.01.28.

    ‘교육대개혁과 해직교사 원상복직을 위한 인천교사추진위원회’ 중등교사 대표인 박용상 제물포중학교 교사, 국가공무원법 위반이 적용돼 해임 당함
  • 1993.02.*

    인천민중연합·주거권 실현을 위한 인천시민연합 등, ‘인천지역 철거민 보호에 관한 인천시 조례안 제정을 위한 서명운동본부’ 결성
  • 1993.02.05.

    한라중공업 노동조합, 회사 측과 단체협약 갱신 협상이 결렬되자 ‘퇴직금 비례누진제 실시, 해고조건 강화’ 등을 요구하며 부분파업 돌입
  • 1993.02.06.

    전국교직원노동조합 인천지부, 인천시교육청을 방문해 교사선언 참여교사들에 대한 징계철회를 촉구
    한라중공업, 회사 측과의 단체협상 갱신 협상이 결렬됨에 따라 2월 8일부터 전면 파업에 돌입하기로 결의. 조합원 100여 명은 이 날부터 철야 농성에 들어감
  • 1993.02.08.

    한라중공업 노동조합, 전면 파업에 돌입
  • 1993.02.19.

    인천지역 121개 노동조합이 서명한 가운데 남일금속 등 최근의 부도사태와 고용위기의 해소를 촉구하는 성명서 발표
  • 1993.03.02.

    인천지역 노동조합 협의회, 전체 운영위원회를 열고 ‘임금인상투쟁본부’를 구성함
  • 1993.03.07.

    인천여성노동자회·인천민중연합 여성위원회, ‘3·8세계여성의 날’을 기념해 부평1동 성당에서 「인천 93여성한마당」 개최
  • 1993.03.17.

    인하대학교 학생 200여 명, 본관 2층 부총장실 등을 점거한 채 등록금 인상 철회를 요구하며 철야 농성 벌임
  • 1993.04.*

    푸른생활협동조합 설립
  • 1993.04.04.

    전국 11개 교육대학교 학생 1600여 명, 인천교육대학교에 모여 교육대학대표자협의회(교대협) 출범식 개최
  • 1993.04.10.

    민주주의민족통일 인천연합, 「문익환 목사님 강연회 및 인천연합 93 전진대회」 개최
  • 1993.04.21.

    인천지역 노동조합 주요 간부 250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부평4동 성당에서 「인천지역 노동조합 대표자회의 준비위원회 발족식 및 93임투승리를 위한 간부결의대회」 개최
  • 1993.04.22.

    인천지역 각계인사 58명, ‘해직교사 복직 촉구선언’ 발표
  • 1993.04.26.

    인천지역 해고노동자와 노동조합 간부 100여 명, 인천지역 노동조합 협의회 사무실에서 해고노동자 복직을 위한 특별법 제정과 해고노동자 복직 등을 요구하며 농성을 벌임
  • 1993.04.27.

    인천지역 노동조합 대표자회의 준비위원회, 홍보지 「임투소식」창간호 발행
  • 1993.04.30.

    인천·부천지역 대학총학생회연합, 부평역 광장에서 「비리의원 처벌과 금융실명제 및 6공 청문회 실시를 위한 시민대회」 개최. 집회 신고를 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대학생 90여 명이 경찰에 연행됨
  • 1993.05.07.

    인천배달환경클럽 창립. (영종도) 신공항촉진법 개정 운동 및 공항건설에 따른 생태파괴 현장조사 등의 활동을 벌여나감. 이후 ‘푸른한반도 되찾기시민모임’, ‘녹색당창당 준비위’와 연합해 녹색연합으로 재창립 됐으며 인천녹색연합은 96년 7월 창립됨. 인천녹색연합은 수도권쓰레기매립지 주민환경피해조사, 동양화학 폐석회처리 및 난개발진상규명운동 등의 활동을 전개함
  • 1993.05.08.

    ‘부정부패 근절과 비리공직자 재산공개를 위한 인천시민대책위원회’ 주최로 30여 명이 참여한 가운데 부평4동 성당에서 부평역까지 캠페인 전개
  • 1993.05.15.

    부평 근린공원에서 「93 임투승리 전진대회」 개최
    한일튜브 노동자 112명, 노동조합을 결성하고 위원장에 김도식 선출
  • 1993.05.18.

    인천지역 노동조합 협의회, 인천대학교 소극장에서 400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창립 5주년 기념식」 개최
  • 1993.05.21.

    남일금속 노동조합 조합원 150여 명, 청와대를 항의 방문해 회사 정상화와 고용 승계를 요청하는 탄원서 제출
  • 1993.05.29.

    노래패 노래선언, 1주년 기념 ‘노래, 그리고 우리들의 삶의 이야기’ 공연
    인천노동건강상담소 창립
  • 1993.06.09.

    남동노조 연대회의, 「93임투 승리를 위한 남동노동자 한마당」 개최
  • 1993.06.10.

    「6월항쟁 6주년 기념식 및 민주개혁을 위한 인천시민대회」가 부평역 광장에서 개최됨
  • 1993.06.12.

    (가칭) 6월 10일 예비군참사 인천시민 대책 준비위원회·인천민중교회연합·인천지역 기독노동자연맹, 6월 10일 예비군훈련 도중 포탄폭발사고로 19명이 사망한 사건과 관련하여 진상규명을 촉구하며 ‘6월 10일 예비군참사에 따른 성명서’를 발표
    ‘영종도 신공항 인천시민 대책위원회’ 주최로 영종도 신공항 건설 문제점에 대한 전국 심포지움 개최
  • 1993.06.14.

    6월 10일 예비군훈련 도중 포탄폭발사고로 19명이 사망한 사건과 관련해 ‘6·10예비군참사 인천시민 대책위원회’ 구성됨
  • 1993.06.19.

    대우그룹 노동조합협의회 소속 17개 노조, 400여 명의 조합원이 참가한 가운데 인천대학에서 「제2기 출범식 및 임투승리 결의대회」 개최
    전국택시노동조합연맹 인천지부, 인천대학 운동장에서 2500여 명의 조합원이 참가한 가운데 「택시제도 개혁 촉구 및 임투승리 전진대회」 개최
    인천지역 기독노동자연맹, 6월 10일 예비군훈련 도중 포탄폭발사고로 19명이 사망한 사건과 관련해 해인교회에서 ‘6·10 예비군 참사 추모예배’ 개최. 사망자 중에는 해인교회에 입교해 인천지역 기독노동자연맹 회원으로 활동하던 한병학도 포함되어 있음
  • 1993.06.20.

    대한마이크로 노동자들, 세 번째로 노동조합 결성
  • 1993.06.28.

    동인천 가톨릭회관에서 인천산업보건연구회 창립. 홍학기, 문병호가 공동대표로 추대됨. 인천지역진료소연합, 인도주의실천의사협의회, 건강사회를 위한 치과의사회 등에서 활동했던 수련의, 의사, 한의사, 치과의사, 간호사 등 의료 인력들이 노동현장과 연계되면서, 노동자들의 건강보호와 산재추방운동 등을 벌여나감
    대우자동차 해고노동자들, 원직복직을 요구하며 철야 농성을 위해 노동조합 사무실로 들어가려고 시도하던 중 12명이 경찰에 연행되어 3명은 즉심, 8명은 불구속 처리됨
    인천병원, 6월 29일까지 이틀 간 여의도 민주당사에서 철야농성 전개
    한라중공업 노동조합, 대의원대회를 개최하고 ‘통상임금 20.75% 인상’을 요구하며 쟁의 돌입
  • 1993.06.30.

    인천지역 노동조합 협의회, 「‘교육대개혁, 해직교사복직’을 위한 대통령에게 엽서보내기」 운동 시작
  • 1993.07.03.

    한일튜브 노동조합, 현판식 개최
  • 1993.07.06.

    원풍물산 해고노동자들이 중심이 되어 설립한 미모사에 화재가 발생해 김주리가 화상을 입고 치료를 받다 8월 8일 사망함
  • 1993.07.11.

    부평2동 성당, 황상근 신부를 소장으로 하여 외국인노동자상담소 개소
  • 1993.07.21.

    민주주의민족통일 인천연합, 「노동자 통일대 백두 발대식」 개최
  • 1993.07.27.

    민주주의민족통일 인천연합 등, 「우리쌀 지키기 대회」 공동 주최
    인천지역 노동운동단체 협의회·수도권노동단체연석회의·부산노동단체협의회 등으로 구성된 ‘나라의 평화와 통일을 위한 노동자추진위원회’, 서울 종로3가 종로성당에서 ‘평화군축과 노동자 복지’를 주제로 토론회 개최
  • 1993.07.29.

    가톨릭환경연구소, 답동 가톨릭회관에서 창립총회 개최. 이사장에 유영훈 신부, 운영위원장에 김종운 선출
  • 1993.08.*

    대한마이크로전자 노동조합이 다시 설립되자 회사는 사원정신교육 명목으로 조합간부들에게 삼성교육 참석을 종용하였고 이후 계속 정신교육 명목으로 조합원들을 괴롭혀 조합간부 3명(조직부장, 홍보부장, 대의원)이 퇴사함
  • 1993.08.07.

    ‘한반도 평화와 통일을 염원하는 인천시민모임’, 백운공원에서 「93 통일염원 인천시민 문화대동제」 개최
  • 1993.08.12.

    민주주의민족통일 인천연합, 부평역 앞에서 「국토순례단 환영식 및 범민족대회 성사를 위한 인천시민대회」 개최
  • 1993.08.16.

    천주교 인천교구 청년연합회·가톨릭대학생연합회·노동사목·평신도 협의회·가톨릭 시민공동체 공동 주최로 주안1동 성당에서 「‘93 통일염원 미사」 봉헌. 오경환 신부가 「한국 가톨릭 교회의 민족사적 과제」라는 주제로 특별 강론
  • 1993.09.09.

    인천노동선교문화원 간사로 일하던 임혜란, 백혈병으로 사망함
  • 1993.09.23.

    인천지역 노동조합 협의회, 십정동 성당에서 대의원 29명 중 21명이 참석한 가운데 「제6년차 정기대의원대회」를 개최하여 최동식 의장을 재선출하고 6기 지도부 출범. 집행부 구성은 11월 9일 완료
  • 1993.09.26.

    ‘갈산동 철거대책위원회’ 발대식 개최
  • 1993.10.05.

    고니정밀 노동조합, 7월 1일부터 ‘기본급 9.75% 인상’을 요구하며 임금교섭을 진행해 오다가 결렬되어 이날 조합원 51% 찬성으로 쟁의행위 결의
  • 1993.10.08.

    인천지역 노동조합 대표자회의 준비위원회, 10월 9일까지 이틀간 영종도 안젤라 수영장에서 21개 노동조합 대표자 등 33명이 참석한 가운데 「인천지역 노동조합 대표자 수련회」 개최
  • 1993.10.12.

    인천지역 노동조합 대표자회의 준비위원회, 10월 21일 국회노동위원회가 실시하는 인천지방노동청의 국정감사와 관련하여 ‘인천지방노동청의 국정감사에 대한 우리의 입장’이라는 제목으로 성명서 발표
  • 1993.10.23.

    인천지역 노동조합 협의회 주최, 인천지역 노동조합 대표자회의 준비위원회 주관으로 「93노개정 및 인천지역 노조 통일단결을 위한 가을문화제」가 개최됨
    ‘인천지역 노동조합대표자 준비위원회 노동법개정투쟁 실천단’ 발족
    ‘학익동 510번지 철거대책위원회’ 발대식
  • 1993.10.29.

    대우자동차 노동조합, 대의원 6명을 해고하고 고소고발한 데 항의하며 임원 3명이 단식 농성 돌입
  • 1993.11.12.

    천주교 인천교구 청년연합회, 답동 가톨릭회관 지하 강당에서 「제11기 민중대학」 개강
  • 1993.11.13.

    인천여성의전화 준비위원회, 설립 기금마련을 위해 인천시민회관에서 김덕수패 사물놀이와 김철수의 연합 공연인 「소리, 그 신명」 주최. 인천여성의전화 준비위원회는 한국여성의전화 19기 교육을 수강한 인천민중연합·여성노동자회 실무자들이 중심이 되어 구성. 준비위원장은 김예숙
  • 1993.11.17.

    세일고등학교 학생 300여 명, 학교복도에서 학생회장 직선제 요구와 관련해 퇴학처분을 받은 학생들에 대한 징계철회와 학생회 활동 보장 등을 요구하며 농성을 벌임
  • 1993.11.22.

    인천지역 기독노동자연맹, 백마교회에서 「제2기 총회」를 개최하고 임원 선출 등을 진행. 회장에 정동근, 사무장에 김길섭 등이 선출됨
  • 1993.11.25.

    인천노동자문학회 ‘글터’·교육문예창작회 인천모임·인천대학교 문학동아리 ‘서해문학’, 인하대학교 5호관 남쪽 소강당에서 「제1회 인천민족문학의 밤」 개최
  • 1993.12.01.

    새얼문화재단, 「황해문화」창간. 새얼문화재단은 1975년 10월 23일 재단법인 새얼장학회가 설립되면서 출발함.
  • 1993.12.07.

    한양공영 노동조합, 11월 12일부터 진행된 교섭이 결렬되어 71.6%의 찬성으로 파업 결의
  • 1993.12.09.

    ‘쌀과 기초농산물 수입개방반대 인천시민대책위원회’, 답동 가톨릭회관에서 결성식 및 기자회견 개최. 집행위원장은 김정택 목사가 맡고 공동대표에는 김무찰 인천불교연합회 회장 등 13명을 선출함
  • 1993.12.11.

    ‘쌀과 기초농산물 수입개방반대 인천시민대책위원회’, 부평역 광장에서 ‘쌀과 기초농산물 수입개방저지 인천시민대회’를 개최하고 서명운동과 평화행진 전개
  • 1993.12.12.

    통합 인천민중교회연합 소속 15개 민중교회 목회자와 성도 45명, 동인천역과 인근 일대에서 산재 노동자를 위한 가두모금 전개. 이후 12월 15일·18일·22일에도 동인천역과 부평역 등지에서 가두모금을 계속 진행하여 삼익악기 노동자와 부산 한진중공업에 근무하다 사망한 노동자의 가족에게 지원금 전달. 1993년 이후 통합 인천민중교회연합은 매년 산업재해를 당한 노동자들을 위한 모금운동을 진행함. 이때부터 통합 인천민중교회연합은 15개 교회가 연대 활동을 이어감
  • 1993.12.15.

    인천지역 대학생 40여 명, 자유공원 내에 있는 맥아더 장군 동상과 자유의 여신상 표석에 ‘강도적 개방압력 미국을 몰아내자’는 현수막을 걸어놓고 망치로 부수려고 시도한 뒤 붉은 페인트를 뿌리며 시위를 벌임
  • 1993.12.19.

    도화동 성당에서 ‘남북사이의 화해와 불가침 및 교류에 관한 합의서’ 체결 2주년 기념행사가 개최되어 남북합의서의 국회비준과 즉각적인 이행을 촉구
  • 1993.12.31.

    동남레미콘 노동조합 부위원장 한상근, 회사 측으로부터 해고 당함. 한상근은 이를 부당해고로 규정하고 1995년 3월 15일부터 3월 30일까지 원창동 소재 공장 앞에서 텐트를 치고 농성을 진행함. 6월 1일 다시 텐트농성을 시작한 후 6월 5일부터는 복직을 요구하며 단식 농성에 돌입. 인천지역 해고노동자협의회는 1995년 6월부터 「동남레미콘 한상근 복직투쟁속보」를 발간해 배포함
  • 1994.*.*.

    ‘건강사회를 위한 치과의사회 인천지회’(건치) 창립. 초대회장에 김유성 선출. 1997년 인천지부로 승격한 후 3월에 「건치인천지부소식」창간호 발행. 건치는 이주노동자 치과진료소 ‘희망세상’과 참의료 실천단 진료사업, 지역아동센터 구강보건 결연 사업 등 소외된 이웃과 함께 하는 진료활동과 우리 사회의 자주민주통일을 위한 사업과 인천지역 불소화 관련 사업을 적극적으로 전개함
  • 1994.01.09.

    해인교회, 목회자가 사임한 상황에서 전교인이 참석한 가운데 ‘해인교회 정상화를 위한 대책위원회’ 결성. 정동근이 대책위원장을 맡음
    인천지역 기독노동자연맹, 백마교회에 있던 사무실을 해인교회로 옮김
  • 1994.01.12.

    부평지구 쌀개방대책 기획회의, 전농조직국장을 초빙하여 강연회 개최
  • 1994.01.17.

    인천지역 택시단위노조와 전국택시노동조합연맹 인천지부가 지역노조를 결성하기로 하고 조합장 24명으로 지역노조설립 추진위원회를 구성
  • 1994.01.19.

    인천지역 기독노동자연맹·인천노동조합운동연합, 인천지역 노동조합 협의회 사무실에서 범민련 남측 준비위원회 사무차장 신정길 등을 초청해 「통일운동에 관한 토론회」 개최. 인천지역 ‘선진노동자’ 18명 참석
  • 1994.01.28.

    인천지역 노둥운동단체협의회, 인천지방노동청 사무실에서 ‘현정세와 노동운동의 진로’라는 주제로 강연회를 개최하고 1994년 노동운동의 방향에 대하여 모색함
  • 1994.01.31.

    인천여성의전화, 현강향토문화원에서 개원식 개최. 한국 여성의 전화 첫 지부로 2월 1일부터 상담 업무를 시작
  • 1994.02.*.

    해반문화사랑회 창립. 91년부터 기획 전시를 벌여오던 송림동 해반갤러리를 기반으로 문을 열고 지역사랑, 문화사랑, 인간 사랑을 이념으로 인천 근대문화 유산 재발견 등 향토문화를 비롯한 지역문화를 시민들이 향유할 수 있도록 활동하고 95년 10월부터 해반문화포럼을 통해 지역문화의 담론을 쌓았고 한국의 근대문화를 주도한 인천의 개화기 문화에 대한 집중적인 연구와 탐색을 진행함.
  • 1994.02.01.

    선인학원 산하 초중고교 직원 노동조합과 인천전문대학 교직원 노동조합, 신분 보장을 요구하며 파업 돌입. 2월 1일에는 인천대학교 교직원 노동조합도 파업을 결의함
  • 1994.02.23.

    전국택시노동조합연맹 인천지부, 지역노조로 바뀌어 한국노총 인천본부에서 결성식 개최
    인천여성의전화, 개원 첫 공식 행사로 2월 26일까지 4일간 인천여성문화회관에서 「페미니즘 영화축제」 개최
  • 1994.02.24.

    인천여성노동자회, 인천지역 노동조합 협의회 공동 주최로 「생리휴가 폐지 반대를 위한 간담회」 개최
  • 1994.02.28.

    인하대학교 총학생회, 구체적인 학교발전계획을 요구하며 총장실을 잠정 폐쇄함
  • 1994.03.03.

    인천대학교 및 인천전문대학의 시립화 과정에서 신규임용 되지 못한 교수 및 교직원들이 재임용 기준을 밝히라고 요구하며 장석우 학장실에 모여 농성을 벌임
    인천여성의전화, 현강향토문화원에서 상담원 및 회원 확보를 위한 제1기 여성상담학 강의 개강
  • 1994.03.05.

    인천적십자병원 노동조합 결성
    ‘주거권 실현을 위한 인천시민연합’, 소식지 「ㅎㆍㄴ울」창간호 발행
  • 1994.03.06.

    인천여성노동자회, 인천지역 탁아소 연합회, 인천지역 공부방연합회, 인천여성의 전화, 민중연합 여성위원회가 공동 주최하여 부평4동 성당에서 「제7회 3·8세계여성의 날 기념 여성대회」 개최
  • 1994.03.08.

    경기인천지역 대학총학생회연합, ‘새내기 새로배움터’에서 모금된 비용으로 ‘UR 국회비준 거부, 정부 재협상’을 주장하는 내용의 광고를 「한겨레신문」에 ‘민족의 자주권이 걸린 문제입니다’라는 제목으로 게재함
  • 1994.03.10.

    영창악기 해고노동자들, 회사 정문 앞에서 철야농성 시작
  • 1994.03.17.

    영창악기 해고노동자 일동·인천지역 해고노동자 협의회, 이 날 오전 8시 10분경 영창악기 해고노동자 전병렬, 김민식이 회사 경비원 20여 명으로부터 폭행을 당했으며 ‘해고노동자들의 이유 있는 항의농성을 힘으로 억압하는 불법행위’를 저질렀다고 주장하며 요구조건을 명기한 공동 명의의 「항의서한」을 영창악기제조 주식회사 대표이사에게 제출
  • 1994.03.19.

    인천지역 기독노동자연맹, 3월 20일까지 이틀간에 걸쳐 14명의 회원이 참여해 부평역, 작전동, 효성동 등지에서 ‘쌀과 기초농산물 수입개방 반대 서명운동’ 전개
  • 1994.03.21.

    경동산업 해고노동자들, ‘해고자 10명 전원 복직, 89년 분신사건에 따른 부상자 치료’ 등을 요구하며 천막농성 돌입
  • 1994.03.26.

    자유공원에서 500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쌀개방반대와 국회 비준저지, 정부 재협상을 촉구하는 인천시민한마당」 개최. 참석자들은 이후 동인천까지 행진함
  • 1994.03.27.

    동흥전기 노동조합 위원장·울산 현대중공업 노동조합 조직쟁의실장 등 4명, 자택에서 각각 연행되어 3월 29일, ‘혁명적 국제사회주의 노동자동맹’ 사건과 관련해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구속됨
    ‘간석1동 철거주민 대책위원회’·‘주거권 실현을 위한 인천시민연합’, 간석동 붉은마을 철거지역에서 「간석1동 철거주민 대책위원회 발대식」 개최. 인천연합, 인천민중연합, ‘진보정당 추진위원회 인천시본부’, 인천연구소, 인천민중학교, 학익동 철거대책위원회, 유신마을 철거대책위원회, 인하대학교 총학생회, 인하대학교 동아리연합회가 후원
  • 1994.03.31.

    인천지역 노동운동단체협의회를 해소하고 소속 단체들은 인천연합 노동위에 개별단체로 참여하기로 결의
  • 1994.04.*

    인천민중교회연합·인천기독노동자총연맹·인천산업선교회, 「해고 노동자 복직을 위한 기도회」 개최. 인천노동선교문화원이 주관하고, 인천정의평화목회자협의회·영창악기 폭행 조작 진상규명 및 인천 해고 노동자 복직 대책위·NCC 인권위·민주주의민족통일 인천연합·인천지역 노동조합 협의회·인천상담연구단체협의회가 후원함
    건강사회를 위한 치과의사회 수돗물불소화촉구 시민대책위 구성하여 활동시작
    서해광장 창립. 94년 4월, 6월 항쟁 이전부터 지역 민주민중운동에 몸담아온 인사들이 중심이 돼 ‘서해광장’을 창립. 93년 7월 경 대선 후 민중운동의 분열을 극복하기 위해 각계 인사들이 모임을 가져온 것이 모태가 됨. 서해광장은 월례포럼을 개최하며 사회운동에 참여한 이들의 소통과 교류의 장을 열고자 했으며, 민주민중운동의 미래와 대안을 모색하기 위해 노력함
  • 1994.04.01.

    인천북부노동사무소 앞에서 40여 명의 해고노동자와 현장 노동자들이 모여 ‘해고노동자 복직, 영창위원장 선거 조작사건에 대한 즉각 수사와 진상규명, 경동 합의사항 이행’ 등을 요구하며 연좌 농성 전개
  • 1994.04.04.

    강화 여성의 전화 준비모임 발족
    인천경제정의실천시민운동연합, 시민들에게 선물을 돌려 선관위로부터 사전선거운동 혐의로 경고를 받은 최기선 인천시장의 사임을 촉구하는 성명서 발표
  • 1994.04.09.

    김영규 인하대 교수·이진 인천지역 목회자 정의평화협의회 대표·서준식 민주주의민족 통일전국연합 인권위원장 등 각계 인사 35명과 민주주의민족통일 인천연합 등 21개 단체, ‘영창악기 폭행조작 진상규명 및 인천지역 해고노동자 원상회복 지원대책위원회’를 결성하고 영창악기의 노조위원장 선거 개입 사건에 대한 진상규명에 돌입
  • 1994.04.13.

    ‘학익동 삼능주택 철거대책위원회’, 학익동 510번지 공터에서 「학익동 삼능사택 강제철거 규탄대회」 개최
  • 1994.04.30.

    인천미술인협의회, 답동 가톨릭회관에서 20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창립총회 개최. 이날 집행부를 구성하여 지도위원 강광, 대표 이종구, 총무 허용철·김재화, 운영위원 도지성·성효숙·김정열을 선출
    ‘주거권 실현을 위한 인천시민연합’, 「간석동 붉은마을 37통 대책위장 박범래 씨 구속 규탄대회」 개최
  • 1994.05.02.

    한라중공업 노동조합, 임시대의원대회를 열고 한국노총 탈퇴 및 규약 개정을 결의
  • 1994.05.06.

    신창튜빙 노동조합, 쟁의발생 신고. 5월 21일 타결됨
    영창악기 해고자들, 노동청의 중재로 회사 측과 회의를 갖고 대법원 복직판결을 받은 이상우 등 4명을 복직시키는 데 합의함
  • 1994.05.13.

    ‘통일시대 민주주의 국민회의 추진위원회’ 인천지역 추진위원 15명이 첫 간담회를 개최하고 실행위원으로 홍학기(보건의료), 문병호(법조), 곽한왕(천주교), 고남석(사업), 홍영표(노동) 등 6명을 선임함
  • 1994.05.14.

    경동산업 노동자 이종화, ‘노경총 합의 분쇄 및 어용노총 해체’를 요구하며 노총 점거 농성에 들어갔다가 구속 당함
  • 1994.05.24.

    심지실업 노동조합, 조합원 75% 찬성으로 쟁의발생 신고. 5월 31일 남자 1700원, 여자 1300원의 임금인상안이 타결됨
  • 1994.05.29.

    인천민중교회연합 소속 교인 200여 명, 십정초등학교에서 체육대회 개최
  • 1994.06.*

    인천민중교회연합, 평화의원 원장 임종한을 초청하여 ‘산재 추방 운동에서의 민중교회의 역할’이라는 주제로 기획 간담회 개최
  • 1994.06.03.

    ‘한반도 평화와 통일을 염원하는 인천시민모임’, 인천 갤럭시 호텔에서 「평화통일 4차 정책세미나」 개최. 김대중 아시아 태평양 평화재단 이사장이 ‘우리 민족을 생각한다’라는 주제로 강연 진행
  • 1994.06.09.

    인천지역 노동조합 대표자회의 준비위원회, 「인노대신문」창간
    대우자동차 노동조합, 대의원대회를 열고 쟁의발생신고를 결의
  • 1994.06.10.

    대우자동차, 쟁의발생 결의
  • 1994.06.11.

    대흥기계 노동조합, 조합원 85%의 찬성으로 쟁의행위 결의. 6월 11일 1700원의 임금인상안으로 타결됨
  • 1994.06.13.

    인천지역노동조합대표자회의 준비위원회, 단위노조 대표자회의 개최
  • 1994.06.14.

    인천지역 대학생들, 6월 17일까지 동인천백화점 앞에서 UR국회비준을 반대하며 단식 농성 전개
    한라중공업 노동조합, 조합원 84%의 찬성으로 쟁의행위 결의. 6월 21일 기본급 4만 5000원 인상 등의 내용으로 타결됨
    ‘유신마을 철거 대책위원회’, 만수2동 유신마을에서 「유신부락 철거 대책위원회 발족식」 개최
  • 1994.06.15.

    인천지역 노동조합 대표자회의 준비위원회·민주주의민족통일 인천연합, 인천대학교에서 400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인천민족민주열사 추모제와 6월항쟁 계승대회」 공동 주최. ‘민주열사 27위’에 대한 합동 추모제 등 진행
  • 1994.06.16.

    강화 여성의 전화 준비모임, 17일까지 이틀간 강화 여성의 전화 설립 기금 마련을 위한 바자회 개최
  • 1994.06.18.

    인천지역 노동조합 협의회, 인천대학교 인문관에서 「인노협 창립6주년 기념식 및 꽃다지 축하공연」 개최
  • 1994.06.21.

    동양이화 노동조합, 조합원 97%의 찬성으로 쟁의발생 결의
    민중정치연합 인천지부·진보정당추진위원회 인천시본부·인천새날청년회·인하대학교 총학생회·인천민중연합, 인하대학교 대강당에서 백기완을 초청하여 ‘현정국과 정치개혁의 방향’이란 주제로 「민중교양강좌 10기 기념강연회」 개최. 인천민중학교가 주관하고 민주주의민족통일 인천연합이 후원함
    ‘통일시대 민주주의 국민회의 인천지역 추진위원회’, 목요회 사무실에서 「국민회의 김근태 공동대표와의 간담회」 개최. 30여 명의 추진위원과 국민회의 결성 취지에 동감하는 지역 인사들이 참석함. 이날 사무실을 주안역 광장 옆 수도유통 건물 2층에 설치하기로 결정함
  • 1994.06.22.

    민주주의민족통일 인천연합, 「UR 국회비준 저지 기자회견」을 개최하고, 6월 25일까지 인천시민회관 앞에서 가두 텐트농성 전개
    인천지역 노동조합 협의회, 부평4동 성당 교육관에서 「민주노총건설, 어떻게 할 것인가?」라는 주제로 「인노협 창립 6주년 기념토론회」 개최. 김영대(전노협 수석부의장)가 ‘민주노총건설의 의의와 필요성’, 문성현(전노협 사무총장)이 ‘조직발전 경로’, 최동식(인노협 의장)이 ‘인천지역 현황’ 등을 발표
  • 1994.06.23.

    민주주의민족통일 인천연합, 「제3기 2차 중앙위원회」를 개최하고 ‘7·8월 통일사업을 통일시민모임을 추동하여 진행하되 시민모임이 받지 못하는 사업은 인천연합으로 한다’고 결정
  • 1994.06.28.

    노동자 통일대 ‘백두’ 준비위원회 발족
  • 1994.07.09.

    대우자동차 노동조합, 임금인상 교섭과 관련해 조합원 78.6%의 찬성으로 파업 결의
  • 1994.07.13.

    고니정밀·대흥기계·현대페인트 노동조합, 부평4동 성당 교육관에서 「94임투 승리와 통일을 위한 문화공연」 개최
    대우중공업 노동조합, 교섭이 결렬됨에 따라 쟁의발생신고서 제출. 노동조합은 5월 31일부터 7월 9일까지 15차례 교섭을 벌여 왔으며 ‘통상임금 10.9% 인상, 상여금 700% 지급’ 등을 요구조건으로 제시하였음
    ‘한반도 평화와 통일을 염원하는 인천시민모임’의 제안으로 민주주의민족통일 인천연합과 인천지역 종교 단체 등이 힘을 합해 「인간띠잇기 인천본부 준비위원회 발족식」 거행
  • 1994.07.19.

    ‘한반도 평화와 통일을 염원하는 인천시민모임’의 제안으로 추진해 온 ‘인간띠잇기 인천본부’가 발족식을 거행함
  • 1994.07.20.

    노동자 통일대 ‘백두’ 출범식이 인천대학교에서 거행됨
  • 1994.07.26.

    서구 가좌동 소재 진흥정밀화학 공장에서 폭발사고 발생. 현장에서 모두 6명이 사망하고 24명이 부상 당함. 8월 3일 한강성심병원에서 치료중이던 박정관이 사망하면서 사망자는 모두 7명으로 늘어남.
    민주주의민족통일 인천연합, 10개 지역노동단체가 참여한 가운데 노동위원회를 정식 구성. 초대 노동위원장에 정동근 인천지역 기독노동자연맹 회장을 선임. 같은 날 오후 7시, 500여 명의 지역노동자들이 참석한 가운데 「노동자 통일대 백두출범식」 개최
    조국통일 범민족운동연합 인천·경기서부지부 조직위원회, 7월 26일과 7월 29일 2일에 걸쳐 통일학교 진행. 최규엽 민주주의민족통일 전국연합 정책위원장과 이천재 서울연합 상임의장이 ‘범민족대회의 역사적 의의와 방향’ 등을 주제로 강연 진행
  • 1994.07.27.

    각계 인사들이 모인 가운데 ‘진흥정밀 폭발사고 시민대책위원회’를 구성하기로 결정함
  • 1994.07.28.

    ‘진흥정밀화학 산재참사 인천시민대책위원회’ 구성을 확정하고 진상조사팀이 1차 현장조사를 실시. 공동대표는 오순부(인천노동상담연구단체협의회 공동의장), 김영규(민주교수협의회 인하대학교지회 대표), 이진(목회자 정의평화실천협의회 의장), 한영환(인천시의원), 홍학기(홍일한의원 원장) 등이 맡음
  • 1994.07.29.

    인천지역 각계 인사 121명, ‘신공안탄압 중지와 한반도 평화정착을 염원하는 시국선언’ 발표
    ‘진흥정밀화학 산재참사 인천시민대책위원회’, 서부경찰서를 방문하여 공정한 수사를 촉구하는 한편, 시신을 찾는 일에 협조 요청
  • 1994.07.30.

    ‘진흥정밀화학 산재참사 인천시민대책위원회’, 1차 성명서를 발표하고 전문기관에 진상조사 의뢰
  • 1994.08.01.

    천주교 인천교구 정의평화위원회, ‘신공안 정국의 음모를 중단해야 한다’는 취지의 시국 성명서를 발표하고 ‘신공안정국 음모 중단’, ‘남북정상회담 재추진’ 등을 촉구
    ‘진흥정밀화학 산재참사 인천시민대책위원회’, 사망자 영정을 들고 인천시청에 항의 방문
  • 1994.08.03.

    인천·부천지역 대학총학생회연합 지역 통일선봉대, 본격적 활동에 돌입함. 이날 범민족회의 인천지역대표단 구성
  • 1994.08.04.

    ‘진흥정밀화학 산재참사 인천시민대책위원회’·유가족 등 40여 명, 인천시청 방문과 함께 기자회견을 개최한 후 노동청장 면담과 항의 방문을 진행
  • 1994.08.06.

    ‘한만도 평화와 통일을 염원하는 인천시민모임’, 8월 7일까지 이틀간 백운공원에서 1000여 명이 참여한 가운데 「인천시민 통일문화대동제」 개최
  • 1994.08.07.

    진흥정밀화학 폭발사고로 희생된 노동자 7명의 「진흥정밀화학 산업재해 노동자장」 거행 성민병원에서 발인 후 동암남부역에서 영결식을 가진 후 진흥정밀화학 정문 앞에서 노제를 지냄
  • 1994.08.11.

    인천대학교 민주광장에서 800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범민족대회 성사와 국토순례단 환영대회」 개최
  • 1994.08.24.

    인천대학교 민주광장에서 300여 명의 노동자 통일대 ‘백두’ 회원이 참석한 가운데 「백두결산 보고대회」 개최
  • 1994.09.*

    청량산시민모임 창립
  • 1994.09.02.

    인천노점상연합회, 남동공단 녹지공원에서 노점상 200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집회 개최
  • 1994.09.05.

    동흥전기 노동조합 위원장(인노협 사무처장), 구속되었다가 석방된 후 ‘강제 퇴직’ 당한 데 대하여 이를 항의하며 회사 정문 출입을 시도하다 관리자들과 몸싸움을 벌여 부상당함
  • 1994.09.10.

    「공안통치분쇄 인천시민대회」가 동인천역에서 300여 명이 참여한 가운데 개최됨. 참가한 시민·학생·노동자들은 제물포역까지 가두캠페인을 전개
    인천지역 문학단체 연합수련회가 영종도 안젤라캠프장에서 진행됨
  • 1994.09.11.

    석남동 약수터에서 「해고자 복직 축하 한마당」이 100여 명의 해고자·지역인사·노동자 등이 참석한 가운데 개최됨
  • 1994.09.12.

    동부제강 노동조합, 48시간 시한부 파업에 들어감
  • 1994.09.14.

    인천·부천지역 대학총학생회연합, 「개강진군식과 대의원대회」 개최.
  • 1994.09.16.

    민주주의민족통일 인천연합, 북구청 세무비리에 대한 제1차 성명서 발표
  • 1994.09.24.

    인천민족예술인총연합 창립대회가 부평4동 성당에서 개최됨
  • 1994.09.29.

    인천지역 노동조합 협의회, 「제7년차 정기 대의원대회」 개최
  • 1994.10.*

    인천민중교회연합, 「제1회 산재 정책 세미나」 개최. 한울노동문제연구소 소장 하종강과 코리아 스파이서 노동조합 위원장 박남수가 ‘인천지역 산재의 쟁점과 사회적 실천 과제’라는 주제로 발제를 맡음
  • 1994.10.01.

    경동산업 복직노동자 3명, 회사에 첫 출근을 하였으나 서울·부산·대구로 각각 발령 받음
  • 1994.10.05.

    인천여성노동자회, ‘성, 연애, 결혼’을 주제로 한 「제2기 젊은남녀를 위한 교양강좌」를 우석장학회에서 진행함. ‘X세대의 사랑학’, ‘새롭게 배우는 성의 심리학’, ‘새롭게 배우는 성의 생리학’, ‘집중점검! 미혼남녀의 성과 사랑의 현주소’, ‘여자와 남자가 함께 사는 법’ 등 총 5강좌로 구성됨
    민중정치연합 인천지부, ‘산별노조와 정당’이라는 주제로 총 8강좌 일정의 「94 노동강좌」 개강
  • 1994.10.06.

    인천지역 노동조합 대표자회의(인노대) 준비위원회, 10월 7일까지 이틀 간 장흥수련원에서 단위노조 대표자수련회 개최. 34개 노동조합 대표 등 50여 명이 참석하여 인노대 발족 결의
  • 1994.10.08.

    인천여성노동자회·인천여성의전화·기독여민회 인천부천위원회·인천민중연합 여성위원회, 여성문화회관 소회의실에서 「지방자치 4년과 여성」을 주제로 한 정책토론회 공동 개최
  • 1994.10.14.

    민주주의민족통일 인천연합, 인천대학교에서 「제3기 3차 중앙위원회」를 개최하고 노점상연합 가입 승인 등의 현안을 결정
  • 1994.10.20.

    수돗물에 불소를 넣어 충치예방을 바라는 인천시민모임 발족. 홍재웅, 이총각, 정영한, 양재덕, 박영복, 주복균, 유영훈이 공동대표로 위촉됨. 70여개 시민사회단체 참여.
  • 1994.10.29.

    인천지역 노동조합 대표자회의, 「발족식 및 민주노총 건설을 위한 1994 인천노동자 가을 문화제」개최
  • 1994.11.02.

    대우자동차 노동조합, 회사 측과 1984~1987년 사이에 해고된 노동자 홍영표·박재석·전희식·유길종 등 4명을 1995년 1월 1일자로 복직시키기로 합의함
  • 1994.11.21.

    현대그룹 노동조합 총연합, 한국노동조합총연맹 인천본부 강당에서 11월 21일부터 11월 23일까지 「현총련 인천지역 노동교실」 진행. ‘인천제철, 고려산업개발, 현대자동차서비스 인천지부, 현대해상 인천’ 등을 대상으로 함
  • 1994.11.26.

    「제2회 인천민족문학제」가 월미도 문화의거리에서 개최됨
  • 1994.12.*

    인천민중교회연합, 인천종합문화예술회관에서 500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산재노동자와 함께 하는 노래 공연」 개최
  • 1994.12.03.

    인천·부천지역 대학총학생회연합 소속 대학생 20여 명, 부천세무서에 페인트 병을 던지며 기습시위를 벌이다 달아남
  • 1994.12.04.

    인천환경운동연합 창립. 공동대표에 최원식 교수와 호인수 신부가 선출됨
  • 1994.12.05.

    인천여성노동자회 주부 분과 회원들을 주축으로 하여 지역 환경 실천을 목표로 한 「환경을 살리는 주부모임」 창립
  • 1994.12.11.

    도림동 철거지역에서 ‘논현·도림동 철거대책위원회’ 발대식 개최
  • 1994.12.14.

    인천여성의전화, 기금 마련을 위한 패티김 콘서트 주최
  • 1994.12.15.

    전국반핵운동본부, 동인천역에서 「목요반핵집회」를 개최하고 굴업도 핵폐기장의 부당성 홍보
    인천민중교회연합, 인천문예회관 대극장에서 산재노동자 기금 마련을 위한 공연 개최
    인천미술인협의회, 인천시민회관 전시실에서 12월 20일까지 창립전 「황해의 아침」 개최. 초청 강연으로 인하대학교 성완경 교수가 ‘도시환경의 변화와 미술문화의 새로운 전망’이란 주제로 강연
  • 1994.12.17.

    인천여성노동자회 봉제여성 노동자 회원들이 주축이 된 봉제생산자협동공동체 「옷누리」가 제1차 정기총회를 개최하고 설립됨. 조합원은 5명, 대표는 이미숙
    덕적면 서포1리 주민들, ‘굴업도 핵폐기장 결사반대 서포1리 투쟁위원회’를 결성하고 위원장 선출
  • 1994.12.18.

    ‘주거권 실현을 위한 인천시민연합’, 인하대학교 학생회관 회의실에서 인천지역 철거민들과 함께 「인천 철거민 주거권 쟁취대회」 개최
  • 1994.12.19.

    강화여성의전화 개원
  • 1994.12.20.

    덕적면 주민 200여 명, 면사무소에 모여 ‘덕적면 서포3리(굴업도) 핵폐기장 반대투쟁위원회’를 설치하고 위원장 선출
  • 1994.12.22.

    인천지역 각계 인사 419명, 정부의 굴업도 핵폐기장 건설 결정에 반대하며 ‘핵폐기장 대책 범시민협의회’ 결성
  • 1994.12.23.

    「범 인천시민 굴업도 핵폐기물 처리장 반대운동」 38개 참여단체, 인천시민회관 광장에서 규탄대회를 개최한 후 주안역까지 가두시위 벌임
  • 1994.12.30.

    환경운동연합·배달녹색연합·환경과공해연구회·한국교회환경연구소·천주교환경사제모임·불교환경교육원, ‘굴업도에 제2의 성수대교가 선다?’는 제목의 성명서를 발표하고, 굴업도 핵폐기물 처분장 최종 후보지 선정은 ‘1995년도의 지방자치제 선거를 앞둔 정치적 결정’이라고 비판하며 ‘기존의 원전부지에 임시저장하면서 국민적 합의를 거쳐야 한다’고 주장
  • 1995.01.09.

    각계인사 457명을 중심으로 ‘인천앞바다 핵폐기장 대책 범시민협의회 준비위원회’ 결성식이 인천종합문화예술회관 내 미추홀 레스토랑에서 개최됨. 이날 ‘인천앞바다 굴업도 핵폐기물 처리장 최종후보지 확정발표에 대한 우리의 입장’이라는 제목의 성명서를 발표하고 ‘핵폐기장 백지화를 위한 백만인 서명운동’에 돌입하기로 결정
  • 1995.01.12.

    덕적면 주민과 인천지역 반핵운동단체 회원 등 300여 명, 동인천역 광장에서 「인천앞바다 핵폐기장 건설저지 대회」를 개최
  • 1995.01.13.

    덕적면 주민 김계월(62세), 옹진군청 앞에서 개최된 굴업도 핵폐기장 반대 시위에 참석한 후 막내딸 집에 도착해 사망함. 이날 ‘덕적면 반투위’ 총무부장 장석찬이 폭력혐의로 구속됨
  • 1995.01.15.

    덕적면 주민 250여 명, 1월 13일 옹진군청 앞에서 개최된 굴업도 핵폐기장 반대 시위에 참석한 후 사망한 김계월 씨 사건과 관련해 답동 가톨릭회관 앞에서 집회를 열고 ‘김씨의 사망은 정부가 일방적으로 굴업도를 핵폐기장 최종 후보지로 결정한 뒤 반대하는 주민들을 경찰병력을 동원해 강제 진압하는 과정에서 일어난 필연적인 결과’라고 주장하며 과잉진압 책임자 처벌 등을 요구. 이후 동인천역 앞, 옹진군청 앞 등지를 점거하며 시위 전개
  • 1995.01.16.

    인천세광병원 노동조합, 「함성」발간
  • 1995.01.18.

    서인천 시민모임 준비위원회, 가정3동 성당 오용호 신부와 고백교회 김영철 목사 등을 중심으로 서구지역 변호사·의사·교사 등 30여 명이 모여 결성
  • 1995.01.20.

    인천앞바다 핵폐기장 대책 범시민협의회 준비위원회, 성명서를 발표하여 1월 25일로 예정된 ‘방사성성폐기물 관리사업지구 개발계획안에 대한 공청회’ 연기를 정부 당국에 요구
  • 1995.01.24.

    인천앞바다 핵폐기장 대책 범시민협의회, 경기은행 본점 대강당에서 800여 명이 모인 가운데 결성대회 개최.
  • 1995.02.11.

    인천지역 노동조합 대표자회의, 2월 12일까지 대표자수련회를 개최하고 임투방침 수립
  • 1995.02.17.

    부평시민모임 창립대회가 북구 관내 변호사·의사·세무사 및 중소상공인 100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인천여성문화회관에서 개최됨. 1994년 10월 북구청 세무비리 사건과 관련해 결성된 ‘북구 세무비리 규탄대책위원회’ 참여 인사들을 중심으로 결성됨. 정관에서 ‘지방자치시대에 즈음하여 지방자치행정에 참여함으로써 부정부패를 방지하고 지역주민들의 시민적 권리를 확보하여 지역사회 발전에 기여함’을 목적으로 규정함
  • 1995.02.21.

    인하대학교 총학생회, 인하대학교 후문가에서 「핵폐기장 건설 반대를 위한 청년결의대회」 개최. 굴업도 핵폐기장 반대투쟁 경과보고 및 덕적도 주민대표 서재송의 연설 등으로 구성. 결의대회 후 동인천역 광장으로 이동하여 실천대회 진행
  • 1995.02.22.

    민중정치연합 인천지부, 「임투와 지자제 그리고 노동자」라는 주제로 3월 10일까지 인천지부 강당에서 매주 수·금요일 개최
  • 1995.02.25.

    인천앞바다 핵폐기장 대책 범시민 협의회, 경기은행 본점 대강당에서 한국원자력연구소와 공동으로 「굴업도 핵폐기장 타당성 검토를 위한 인천시민 대토론회」 개최
  • 1995.03.03.

    덕적면 주민 200여 명, ‘굴업도 핵폐기장 건설 등 정부시책에 적극 참여하겠다’는 내용의 각서가 발견된 것과 관련하여 덕적면사무소 앞에서 덕적면장 면담을 요구하던 중 경찰과 충돌해 주민과 경찰 40여 명이 부상 당함
  • 1995.03.04.

    덕적면 주민 100여 명, 3월 3일 덕적면사무소 앞에서 있었던 경찰의 과잉진압에 항의하며 밤샘 농성 돌입
  • 1995.03.05.

    경기인천지역 대학총학생회연합, 핵심 투쟁 과제로 굴업도 핵폐기장 반대투쟁 선정
  • 1995.03.10.

    연수구의회, ‘굴업도 핵폐기장 건설계획 취소 건의문’을 만장일치로 채택해 국회와 정부 각 부처에 발송
  • 1995.03.11.

    인천앞바다 핵폐기장 대책 범시민협의회, 답동 가톨릭회관에서 300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인천앞바다 핵폐기장 철회를 위한 1백만인 서명운동본부 발대식」 개최
  • 1995.03.15.

    인하대학교 총학생회, 인하대학교 통일광장에서 학원발전과 교육개혁을 위한 「95년 청년인하 해오름제 및 투쟁선포식」을 개최한 후 인천시민회관까지 가두행진 전개
  • 1995.03.18.

    ‘덕적도 핵폐기장 결사반대 투쟁위원회’ 소속 덕적도 주민 30여 명, 답동 가톨릭회관 5층에서 핵폐기장 지정고시 철회를 요구하며 무기한 밤샘농성 시작
  • 1995.03.24.

    경기인천지역 대학총학생회연합, 25일까지 이틀 간 인하대학교에서 대의원대회를 개최하고 인천시민회관에서 열린 ‘핵폐기장 반대시위’에 참가, 인천시청까지 가두 행진 전개
  • 1995.03.25.

    인천 앞바다 핵폐기장 대책 범시민협의회, 인천시민회관에서 「인천 앞바다 핵폐기장 철회를 위한 인천시민 궐기대회」 개최. 이에 앞서 인천·부천청년연합 소속 대학생 및 덕적도 주민 등 1000여 명이 동인천 및 부평역 광장에서 각각 집회를 갖고 인천시민회관 앞까지 거리행진을 하여 궐기대회에 합류함
  • 1995.03.30.

    인하대학교 총학생회, 인하대학교 본관 앞 잔디밭에서 학생 5600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학원의 비민주적 요소 척결과 자치권 인정’을 요구하며 학생총회 개최. 총회 후 학생 2000여 명이 본관을 점거
  • 1995.04.12.

    인천·경기 북부지역 감리교회 목회자 150여 명, 신흥동 중앙감리교회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굴업도 핵폐기장 지정고시 철회를 요구하는 성명서 발표
  • 1995.04.14.

    인천·부천지역 대학총학생회 연합 소속 학생 500여 명, 인천대학교에서 집회를 갖고 ‘굴업도 핵폐기장 건설 저지 투쟁’을 본격화하기로 결정
  • 1995.04.22.

    인천지역 노동조합 대표자회의, 「임투전진대회」 개최
  • 1995.04.29.

    인천지역 노동조합 대표자회의, 9개 노동조합으로 구성된 선봉노동조합단 1차 대표자 회의 개최.
    인천앞바다 핵폐기장 대책 범시민협의회, 동인천 인천백화점 앞에서 「인천앞바다 핵폐기장 철회를 위한 제2차 시민궐기대회」 개최 사전문화공연으로 「정태춘과 함께하는 반핵평화의 노래」 공연
  • 1995.05.06.

    인천지역 노동조합 대표자회의, ‘통일특위’를 구성하고 특위장에 박노봉을 선출
    인천 등 6개 시·도 농업협동조합 노동조합, 시도별 조직을 해산하고 전국 단일 노동조합인 ‘전국농업협동조합 노동조합’을 결성해 노동부에 설립신고서 제출
  • 1995.05.13.

    인천지역 노동조합 대표자회의, 「산재추방 결의대회」를 개최하는 한편 지자체특위를 구성하고 특위장에 최동식을 선출
  • 1995.05.15.

    민주주의민족통일 인천연합 양재덕 의장 등 인천지역 시민·사회단체 대표 25명, 답동 가톨릭회관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핵폐기장 철회와 구속·연행자 석방을 요구하며 무기한 단식 농성에 돌입
  • 1995.05.16.

    인하대학교와 인천대학교 학생 11명, ‘인천앞바다 핵폐기장 건설 결사저지를 위한 청년학생결사대’라고 밝힌 후 인천시청 시장실에 들어가 소화기를 뿌리는 등 농성을 벌임
    인천여성의전화, 인천시청 기자실에서 「인천시의회 속기록 분석 보고회」에 관한 기자회견 개최
  • 1995.05.17.

    인천지역 노동조합 대표자회의, 「선봉노동조합단 간부결의대회」 개최
    ‘인천앞바다 핵폐기장 대책 범시민협의회’ 박영복 집행위원 등 6명, 인천경제정의실천연합 사무실에서 5월 20일까지 시한부 단식 농성에 돌입하며 ‘5백억 원 지역발전기금 사용과 관련한 공청회 취소, TV 토론회 개최, 구속자 석방’ 등을 요구
  • 1995.05.18.

    인하대학교 총학생회, 인하대학교 통일광장에서 「5·18 광주민중항쟁 15주기 기념 추모제」 및 「5·18 진상규명과 관련자 처벌 및 총체적 민생파탄과 민중탄압분쇄를 위한 청년인하 결의대회」를 개최하고 인천시민회관 앞까지 행진, 인천·부천지역 대학총학생회연합이 주최하는 「굴업도 핵폐기장 저지를 위한 5·18결의대회」에 참석. 이후 참석자들은 인천시청까지 평화 시위를 진행한 후 희망백화점 앞에서 해산함
  • 1995.05.20.

    ‘인천 앞바다 핵폐기장 건설을 결사반대하는 민족 시립 인천대학교 교수, 학생, 직원일동’ 명의로 ‘민족의 생존권인 인천 앞바다폐기장! 정부는 즉각 굴업도 핵폐기장 지정고시를 철회해야 합니다.’라는 제목의 광고가「한겨레신문」에 게재됨
    인천앞바다 핵폐기장 대책 범시민협의회, 비가 오는 가운데 동인천역 앞에서 「인천앞바다 핵폐기장 철회를 위한 제3차 시민궐기대회」 개최. 참가자들은 「서해의 한려수도, 핵폐기장 웬말인가!」라고 적힌 플래카드를 앞세우고 답동 성당, 대한서림 앞 등지로 행진을 이어가다 경찰의 진압에 밀려 답동성당 앞으로 집결. 일부 학생들은 폭력 진압 항의와 연행 학생 면담을 위해 중부경찰서 앞으로 이동하여 시위 전개. 이 과정에서 다수의 부상자가 발생하고 수십여 명이 연행됨
  • 1995.05.21.

    인하대학교 학생 100여 명, 전날인 5월 20일 개최된 「인천 앞바다 핵폐기장 반대를 위한 제3차 인천시민궐기대회」 당시 자행된 경찰의 폭력 진압을 규탄하며 인하대학교 후문 도로에서 「총체적 민생파탄 분쇄 및 연행학우석방촉구 결의대회」를 개최한 후 동인천역에서 진행 중인 인천·부천지역 대학총학생회연합 시민선전전에 합류
    인천부천지구총학생회연합, 전날인 5월 20일 개최된 「인천 앞바다 핵폐기장 반대를 위한 제3차 인천시민궐기대회」와 관련해 중부경찰서를 항의 방문하여 ‘폭력진압에 대한 책임자 처벌 및 연행자 전원 석방’ 등을 요구
  • 1995.05.23.

    인하대학교 총학생회, 인하대학교 통일광장에서 「총체적 민생파탄 분쇄와 김영삼의 폭력진압 규탄을 위한 청년인하 결의대회」 개최
  • 1995.05.24.

    5월 20일 개최된 「인천 앞바다 핵폐기장 반대를 위한 제3차 인천시민궐기대회」 당시 자행된 경찰의 폭력 진압과 관련해 민주당이 진상조사단을 인천에 파견하여 조사활동 진행
  • 1995.05.25.

    인하대학교 총학생회, 인하대학교 통일광장에서 「반민중적 핵폐기장 건설반대 및 총체적 민생파탄 분쇄, 폭력 탄압 분쇄, 청년인하 결의대회」를 개최한 후 인천시민회관까지 행진을 진행하려 하였으나 정석항공고등학교 앞에서 경찰과 대치하다 해산함
  • 1995.06.07.

    인천지역 노동조합 대표자회의, 「지자체 노동 공청회」 개최
  • 1995.06.09.

    한라중공업 노동조합, 쟁의발생을 결의하고 노동부와 중앙노동위원회에 쟁의발생 신고
  • 1995.06.10.

    인천지역 노동조합 대표자회의, 「95공동임단투 승리를 위한 인천지역 노동자 결의대회」 개최
  • 1995.06.11.

    인천지역 노동조합 대표자회의, 「인천 건설일용노조 합법성 쟁취 보고대회」 개최
  • 1995.06.13.

    인천대학교 공학관 앞 잔디밭에서 국방부가 제작한 것으로 알려진 대북선전용 전단을 담은 대형 풍선이 터져 학생 4명이 중화상을 입음
  • 1995.06.20.

    한라중공업 노동조합, 부분파업 돌입
    한양 노동조합, 쟁의행위를 결의하고 부분파업 돌입. 6월 28일부터는 전면파업에 들어가며 철야농성을 시작함
  • 1995.06.21.

    천주교 인천교구, 답동 성당에서 사제와 신자 2000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명동성당 공권력 난입에 따른 교회와 국가를 위한 미사」 거행
  • 1995.06.22.

    린나이 노동조합, 쟁의행위를 결의하고 부분파업 돌입. 6월 24일 기본급 8만 원 인상 등을 타결함
  • 1995.07.07.

    쌍용자동차 노동조합, 부평 등 4개 지부에서 전면 파업 돌입
  • 1995.07.11.

    인천지역 노동조합 대표자회의, 7월 23일까지 「통일특위 통일교실」 진행
  • 1995.07.15.

    동인천역에서 95년 산업재해추방의 달 인천지역공동사업추진위원회가 진흥정밀화학 산재참사 1주기 추모제 및 산재추방 결의대회 개최. 산재없는 일터회, 인천지역노동조합대표자회의, 인천연합노동위, 평화의원 상담실, 진정추인천시본부, 인천대 산업안전공학과, 건치인천지회, 산보연, 건약, 상담협 이 참가함
  • 1995.07.16.

    대한마이크로 노동조합, 계양구 계산동 싸이클 경기장에서 조합원 33명이 참가하여 조합원 총회를 개최하고 김명숙을 위원장으로 선출. 김명숙은 1995년 2월 28일 위원장에 당선된 바 있으나 회사 측이 참석인원을 문제 삼아 인정하지 않았으며 6월 27일 유인물 배포 등을 이유로 해고 당함
  • 1995.07.24.

    천주교 인천교구 정의평화위원회, 검찰이 7월 18일 ‘5·18광주민주화운동’ 관련자들에 대해 공소권 없음을 이유로 불기소 처분한 데 대해 「성명서」를 발표하고, ‘국회는 5·18 학살자 처벌을 위한 특별법을 제정하라’, ‘정부는 특별검사를 임명하여 5·18 관련 진상을 규명하는 데 앞장서라’, ‘인천시의회는 5·18 관련 검찰 결정의 무효화와 기소촉구 결의문을 채택하라’ 등을 요구
  • 1995.08.03.

    인천여성의전화, 부평구 부평5동 동사무소 안에 ‘성폭력 상담소’를 개설하고 개소식 개최
  • 1995.08.04.

  • 1995.08.05.

  • 1995.08.12.

    인천지역 노동조합 대표자회의, 「8·15민족공동행사 인천 노동자 참가단 발대식」 개최
  • 1995.08.14.

    한국대학총학생회연합, ‘조국통일범민족청년학생연합 제1차 중앙위원회’와 판문점에서 개최되는 ‘민족공동행사’에 첨석하기 위해 인천대학교 건축학과 3학년 제적생 정민주, 가톨릭대 성심교정 회계학과 2학년 이혜정 등 여대생 2명을 남측대표로 하여 베를린범청학련 공동사무국 사무국장 최정남과 함께 북한에 파견했다고 발표
  • 1995.08.15.

    「인천일보」노동조합, 회사 측이 노동조합 간부 등을 타지역 지방주재기자로 발령낸 데 항의해 사장을 부당노동행위 등으로 인천지방노동청에 고발
  • 1995.08.21.

    「인천일보」 편집국 기자 40여 명, 회사 측이 노동조합 간부 등을 타지역 지방주재기자로 발령 낸 데 대하여 항의하며 밤샘농성 돌입
  • 1995.08.22.

    인천앞바다 핵폐기장 대책 범시민협의회, 인천시장에게 핵폐기장 타당성 조사를 위한 민관합동 조사기구 설치 건의
  • 1995.08.27.

    ‘인천지역 노동조합’ 명의로 ‘5·18관련자와 12·12쿠데타 주동자를 구속기소’, ‘내란 주동자의 처벌을 위한 특별법 제정’을 내용으로 하는 ‘불량품과 같은 역사, 이제 더 이상 없어야 합니다!’라는 제목의 광고가「한겨레신문」에 게재
  • 1995.09.04.

    「인천일보」 노동조합, 비상총회를 개최하고 회사 측이 노동조합 간부 7명을 노동조합과의 협의 없이 타 지역으로 발령 낸 조치에 반발하여 신문제작을 거부하기로 결정
  • 1995.09.22.

    인천지역 노동조합 대표자회의, 인천대학교 인문관에서 선봉노동조합단 해단식을 개최하고, ‘5·18학살주범 기소촉구’를 위한 조합원 서명운동 전개
  • 1995.09.23.

    부평 동아시티백화점 앞에서 「5·18불기소 처분 반대 및 특별법 도입을 위한 인천시민대회」 개최.
  • 1995.09.25.

    「인천일보」사태와 관련해 인천지역 각계 인사 278명이 기자회견을 갖고 노동조합 간부 등을 지방 주재기자로 발령 낸 조치를 부당인사라고 주장하며 인사 철회와 대기발령 기자의 전원 원상복직을 촉구. 「인천일보」노동조합은 이날 상여금 체불과 관련해 사장을 근로기준법 위반 혐의로 인천지방 노동청에 고발함
  • 1995.09.29.

    인하대학교 민주화를 위한 교수협의회·교직원 노동조합·총학생회로 구성된 ‘범인하인 서명 및 대회 추진위원회’ 주최로 「5·18 학살자 처벌과 김영삼정권 규탄을 위한 범인하인대회」가 통일광장에서 개최됨. 교수·학생·교직원 등 1500여 명 참여. 대회가 끝난 후 동인천으로 향하기 위해 후문을 나선 학생들은 용현고개 삼거리에서 행진을 저지하는 경찰과 대치하며 시위 전개
  • 1995.09.30.

    인천시민회관 앞에서 「5·18학살자 처벌과 특별법 제정을 촉구하는 제5차 국민대회」 개최.
  • 1995.10.03.

    한국대학총학생회연합에서 ‘조국통일범민족청년학생연합’ 남측대표로 북한에 파견한 정민주·이혜정, 군사분계선을 넘어 귀환하다가 임진각 자유의 다리에서 우리 정부 관계자에게 인계되어 국가보안법 혐의로 구속됨
  • 1995.10.06.

    인천·부천지역 대학총학생회연합, 인하대학교 통일광장에서 「5·18학살자 처벌과 김영삼 정권 퇴진을 위한 인부총련 제2차 결의대회」 개최. 대회가 끝난 후 인하대학교 후문을 통해 가두 행진을 하였으나 성광교회 앞에서 경찰에 의해 강제 해산 당함
  • 1995.10.07.

    동인천역 광장에서 「인천 앞바다 핵폐기장 저지를 위한 인천시민결의대회」 개최. 덕적도 주민 300여 명과 학생·시민 등 1백여 명 참여.
  • 1995.10.10.

    인천지역 노동조합 대표자회의, 「민주노총 인천지역본부 건설을 위한 기획토론회」 개최
  • 1995.10.11.

    인천지역 노동조합 대표자회의 소속 54개 단위노조 위원장들, 인천시청 기자실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5·18특별법 제정을 촉구
  • 1995.10.14.

    인천지역 노동조합 대표자회의, 10월 15일까지 확대간부 수련회를 개최하고 민주노총 인천지역본부 건설 논의
  • 1995.10.23.

    대한마이크로 노동조합 사무실이 회사 측에 의해 철거당함
  • 1995.10.25.

    대한마이크로 노동조합, 조합사무실 철거에 항의해 정문 앞에서 농성 전개
  • 1995.10.28.

    인천지역 노동조합 대표자회의, 「인천노동자 가을문화제」 개최
  • 1995.10.31.

    감리교 중부연회 목회자협의회 이화식 목사 등 인천지역 목회자 140여 명, ‘노태우씨를 즉각 구속하라’는 내용의 성명서 발표
  • 1995.11.03.

    인천·부천지역 대학생 1000여 명, 동인천역 앞에서 5·18특별법 제정 등을 촉구하는 집회를 열고 답동 성당까지 거리행진 전개
  • 1995.11.23.

    ‘대한마이크로전자 노동조합 탄압 및 성폭행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인천지역 공동대책위원회’ 결성. 김영규 인하대학교 교수, 최동식 인천지역 노동조합 대표자회의 의장, 김경희 인천연합 노동위원장, 최상림 여성노동자회 회장, 김명숙 대한마이크로 노동조합 위원장, 이영진 해협 사무장, 김창호 인천민중연합 부의장 등 7명이 참가해 결성함
  • 1995.11.25.

    인천지역 노동조합 대표자회의, 「진도·마이크로 노동조합 탄압 분쇄와 5·18특별법 제정을 위한 수도권 노동자 결의대회」 개최
    ‘대한마이크로전자 노동조합 탄압 및 성폭행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인천지역 공동대책위원회’, 대한마이크로전자 정문 앞에서 성명서를 발표하고 ‘조합사무실 강제철거를 공식 사과하고 원래의 상태대로 원상복구, 집단폭행과 성폭행을 한 남자관리자 처벌’ 등을 촉구
  • 1995.11.28.

    아암도 장애인 노점상 이덕인, 아암도 해변에서 시신으로 발견됨
  • 1995.12.*

    인천민중교회연합, 월미도 문화의 거리에서 「산재 노동자와 함께 하는 작은 음악회」 개최
  • 1995.12.06.

    고백교회, 「창립 6주년 행사」의 일환으로 ‘노동상담소 개소강연회’ 개최
  • 1995.12.21.

    인천지역 노동조합 대표자회의, 비상대표자회의 개최
  • 1995.12.22.

    인천환경운동연합, 인천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 등 인천지역 6개 시민단체, 성명서를 발표해 동국제강, 동양화학 등 특정폐기물을 불법 매립한 것으로 의심되는 모든 기업들을 대상으로 한 철저한 조사를 검찰에 촉구
    인천지역 노점상·학생 등 300여 명, 인천시민회관 앞에서 「장애인 노점상 살인적 강제철거 규탄대회」를 개최하고 시청 앞까지 거리 행진 전개
  • 1995.12.29.

    인천지역 노동조합 협의회, 민주노총 건설에 따라 발전적 해체를 결정하고 공식 해산. 이후 1996년 1월 31일,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 인천지역본부(민주노총 인천지역본부) 창립. 민주노총 인천지역본부는 ‘창립 선언문’에서 ‘이제 노동자의 진정한 사회, 정치적 권리의 확보와 조국의 통일, 노동자 통일을 위해서도 산별노조의 쟁취는 반드시 이루어나가야 하며 노동자 중심의 모든 민중세력의 연대는 적극적으로 모색해야 한다’고 명시함
  • 1996.03.21.

    부평4동 성당 170여 명의 교사들이 참여하여 전국교직원노동조합 인천지부 전진 대회 및 지회 총회 개최
  • 1996.05.00.

    인천사랑여성모임 창립, 지역에서 활동하는 각계 여성 전문직업인들을 중심으로 창립되어‘인천 사랑’의 시각에서 지역사회 전반과 특히 시정의 문제를 비판적 시각에서 바라보고 시민의 권리와 삶의 향상을 위해 활동 전개
  • 1996.05.26.

    전국교사대회(공립132명, 초등73명, 사립22명, 유치원22명) 교원처우와 교육환경 개선 및 교원의 노동기본권 교원처우개선 투쟁에 대한 2차 선전물 배포(20만 부)
  • 1996.06.00.

    80년대 학생운동 출신의 청년층이 중심이 되어‘평화와 참여로 가는 시민문화센터’를 창립, 이후 98년 6월 시민문화센터에서 인천연대로 개칭하고 각 지부 대표 4인과 3개 부설기관 대표 등이 참여하는 공동대표 체제로 전환했다가, 2000년 6월 상임대표 중심으로 체제를 개편.
  • 1996.06.13.

    교사 100여 명이 참여하여‘교육자치와 학교운영위원회’라는 주제로 전국교직원노동조합 인천 지부 창립 기념 강연회 개최. 전국교직원노동조합 인천지부 소식지 1호 3,000부 발행
  • 1996.07.04.

    전국교직원노동조합 인천지부 소식지 2호 2,000부 발행
  • 1996.07.08.

    인천연합과 시민문화센터, 민중교회연합 등 14개 단체가 중심이 되어 ‘인간띠잇기 사업본부’발족
  • 1996.08.11.

    부평 미군 부대 앞 인간띠잇기 행사는 경찰의 원천봉쇄로 무산됐고 학생, 시민 64명이 연행되어 8명이 불구속 입건되고 40여명이 구류 등의 처벌
  • 1996.08.13.

    박광남(인천지역기독노동자연맹 활동), 전남 신안에서 익사. 사망 당시 23세
  • 1996.09.20.

    인천지역 34개 시민사회단체가 참여하여‘우리 땅 부평미군부대 되찾기 및 시민공원조성을 위한 인천시민회의(시민회의) 발족식이 부평신협 강당에서 개최
  • 1996.11.00.

    인천시 부개1동 평화의원에‘인천평화의료생활협동조합’ 창립.
  • 1996.11.10.

    전국교직원노동조합 합법화와 올바른 노동법 개정 쟁취 전국교사대회
  • 1996.12.00.

    민족화해 통일을 위한 인천지역종교인협의회’(인종협) 창립대회가 답동 가톨릭회관에서 개최.
  • 1996.12.07.

    법안의 부당성을 지적하는 입법예고에 대한 전국교직원노동조합의 의견서 교육부에 제출
  • 1996.12.26.

    ‘날치기 노동법, 안기부법 개악철회와 민주수호를 위한 인천대책위원회’를 구성.
  • 1997.01.29.

    전국교사 1,577명 2차 교사시국선언 발표
  • 1997.03.00.

    부평미군부대 공원화추진 시민협의회’(공추협) 결성. 부평시민모임, 인천감리교목회자협의회, 부평사랑회, 부평청년회의소, 산곡·부평동 주민대책위, 부평시장농산물상인연합회 등 6개 단체가 참여.
  • 1997.03.05.

    전국교직원노동조합 인천지부 사립위원회 비상 총회
  • 1997.03.08.

    영흥도 화력발전의 대기오염 확산영향 알아보기 위한 풍선 날리기 행사 개최
  • 1997.03.09.

    박영상(강원대, 인천 전국교직원노동조합), 부평공고 근무 중 급사. 사망 당시 37세
  • 1997.03.27.

    인천의제21 추진협의회’결성. 98년 10월 22일 선포. 2002년 남구 협의를 시작으로 인천광역시의 모든 군, 구청이 ‘의제21’을 구성하였음.
  • 1997.04.14.

    북한동포돕기운동 인천본부’를 발족. 우리밀살리기 인천본부, 인천종교인협의회, 인천환경운동연합, 인천경실련, 민주주의민족통일 인천연합 등 61개 시민단체가 대거 참여
  • 1997.04.22.

    우리민족서로돕기운동은 종교단체를 중심으로 가톨릭회관에서 창립대회를 갖고 옥수수 1천 톤 보내기를 목표로 모금운동에 돌입
  • 1997.04.30.

    영흥도 대책위 주민들 부지조성 공사현장 점거농성
  • 1997.05.09.

    경기여상 정상화와 사립학교 개혁을 위한 시민사회단체 공동대책위원회 (김귀식외 5명 공동대표) 구성, 경기여상 관선 이사 파견 촉구
  • 1997.05.14.

    전국교직원노동조합 인천지부, 미군기지 되찾기 걷기 대회 참여
  • 1997.05.17.

    영흥도 주민 답동성당 농성(구속 수배된 주민의 수는 21명). 98년 6월까지 370일간 진행 됨.
  • 1997.06.00.

    인천연합 제6기 발대식 개최. 천주교인천교구 청년연합회, 가톨릭청년연대, 전국교직원노동조합 인천지부, 인천부천대학총학생회연합, 통일을여는 민주노동자회, 인천여성노동자회, 인천기독노동자연맹, 현장문예단 좋은세상 등 9개 단체로 출범
  • 1997.06.11.

    전국교직원노동조합 인천지부, 인천시교육감 선거 관련 건의서 제출
  • 1997.06.17.

    경기여상 관선이사 선임
  • 1997.09.04.

    인천시학력고사에 대한 교사 설문 조사
  • 1997.10.14.

    교육공약 마련을 위한 교사대상 전화 여론조사(1,000명)
  • 1997.11.02.

    올바른 대선 공약 촉구 및 학교 교육정상화와 전교조 합법화를 위한 전국교사결의대회
  • 1997.11.09.

    전국노동자 대회(여의도) 전교조 인천지부 참여
  • 1998.02.24.

    최명아(이화여대, 글로리아 입사, 인천노동조합협의회 교육부장, 민주노총 조직국장), 진료 차 서울대 병원에서 쓰러져 사망.
    사망 당시 35세
  • 1998.05.17.

    배동복(롯데기공), 교통사고로 사망. 사망 당시 37세
  • 1998.06.00.

    인천 학교운영위원회 협의회 창립 및 세미나 개최
  • 1998.10.08.

    인천교사신문 복간 준비호 발행, 미복직자 6명 복직
  • 1998.10.22.

    인천교사 신문 복간 준비 2호 발행
  • 1998.11.08.

    전국교사대회 ‘98 민중대회 개최, 3,000여 명의 교사 참여
  • 1998.11.19.

    ILO이사회, 교원, 공무원 노조 인정 권고
  • 1998.12.02.

    인천교사 신문 복간 준비 제 4호
  • 1998.12.14.

    전국교사서명 국회 청원 84,424명 참여
  • 1998.12.22.

    전교조 인천지부장 상경투쟁과 수도권 조합원 한나라당 규탄대회
  • 1998.12.29.

    교원노조법 국회 환경노동위 통과
  • 1999.07.19.

    대우그룹 구조조정 발표와 정부의 긴급 구제금융조치로 ‘대우사태’가 현실화
  • 1999.08.29.

    비정규직 여성의 고용불안 해결, 자녀와 함께하는 직장 양립을 위한 프로그램 지원 및 여성권익 향상을 위한 제도개선 활동을 목표로 여성노동조합 인천지부 창립
  • 1999.09.08.

    전국교직원노동조합 인천지부, 교육청 교육개혁팀과 교육연대 간담회
  • 1999.09.15.

    전국교직원노동조합 인천지부, 부광고등학교 분회 결성
  • 1999.09.16.

    전국교직원노동조합 인천지부, 만수중학교 분회 결성
  • 1999.09.17.

    전국교직원노동조합 인천지부, 인화여자고등학교 분회 결성
  • 1999.10.00.

    ‘대우사태의 올바른 해결을 위한 인천시민대책위원회’를 발족하였으며 대표로 김영규 양재덕 오순부 이총각(이상 민주개혁시인천민중연합대 대표), 김창한(민노당 인천창당준비위 상임대표), 염성태(대우중공업노동조합위원장), 최동식(민주노총인천본부장), 추영호(대우자동차 노동조합위원장) 등 8인으로 구성
  • 1999.10.01.

    전국교직원노동조합 인천지부, 인천기계공고 분회 결성
  • 1999.10.05.

    전국교직원노동조합 인천지부, 상인천중 분회 결성
  • 1999.10.06

    전국교직원노동조합 인천지부, 인수초등학교 분회 결성.
  • 1999.10.09.

    전국교직원노동조합 인천지부, 유치원 지회 결성
  • 1999.10.22.

    전국교직원노동조합 인천지부, 부평초등학교 분회 결성
  • 1999.10.26.

    전국교직원노동조합 인천지부, 선학초등학교 분회 결성
  • 1999.10.28.

    전국교직원노동조합 인천지부, 신현초등학교, 승학초등학교 분회 결성
  • 1999.11.00.

    ‘평화와참여로가는인천연대’와 경실련, YMCA, 민주주의민족통일 인천연합 등이 연합하여‘경인고속도통행료 납부거부시민대책위’구성
  • 1999.11.03.

    전국교직원노동조합 인천지부, 주안남초등학교 분회 결성
  • 1999.11.09.

    전국교직원노동조합 인천지부, 동인천중학교 분회 결성
  • 1999.11.12.

    전국교직원노동조합 인천지부, 구월서초등학교, 소양초등학교 분회 결성
  • 1999.11.22.

    전국교직원노동조합 인천지부, 남동초등학교 분회 결성
  • 1999.11.23.

    전국교직원노동조합 인천지부, 성리초등학교, 인천여공예고등학교 분회 결성
  • 1999.11.24.

    전국교직원노동조합 인천지부, 제물포중학교 분회 결성
  • 1999.11.26.

    전국교직원노동조합 인천지부, 전자공고, 정석항공고, 산곡여중, 용일초등학교 분회 결성
  • 1999.11.30.

    전국교직원노동조합 인천지부, 능허대초등학교 분회 결성
  • 1999.12.00.

    부평인터체인지 근처 근린공원에서 2천 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통행료 폐지 촉구 궐기대회’개최
  • 1999.12.01.

    전국교직원노동조합 인천지부, 부개초 분회 결성
  • 1999.12.02.

    전국교직원노동조합 인천지부, 석천초 분회 결성
  • 1999.12.03.

    전국교직원노동조합 인천지부, 논곡초, 구월중 분회 결성
  • 1999.12.04.

    환경·시민단체들은 연수구 동막역 앞에서 해안 철책선 제거를 위한 ‘인천시민 바다 되찾기 운동 시민걷기대회’ 를 열어 본격적인 운동에 돌입
  • 1999.12.10.

    전국교직원노동조합 인천지부, 불로초 분회 결성
  • 1999.12.17.

    전국교직원노동조합 인천지부, 만수북중, 동산고, 주원초 분회 결성
  • 1999.12.18.

    전국교직원노동조합 인천지부,인현동 학생 참사 위령제 개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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