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념관 건립

인천지역 민주화운동사 연표

  • 1980.01.28.

    문교부, 「선인학원 특별감사」 실시
  • 1980.02.06.

    인하대학교 교무위원회, 긴급조치와 관련해 제적 처분된 인하대학교 학생 18명(정학 4명 포함)에 대해 일괄 복교시키기로 결정하고 이에 따른 학칙개정시안을 문교부에 승인 요청
  • 1980.02.13.

    인하대학교 8개 서클이 참가해 ‘인하대학교 학원자율화 준비위원회’ 결성
  • 1980.02.14.

    1978년 4월 해고된 동일방직 해고노동자 최연봉 등 6명, 한국노동조합총연맹(한국노총) 위원장을 명예훼손, 출판물에 의한 명예훼손 등의 혐의로 서울지검에 고소장 제출. 이들은 한국노총 위원장이 1978년 1월 15일 전국 섬유노조위원장 주최 중앙회 회의석상에서 ‘동일방직 여성근로자들이 외부 불순세력에 의해 조종을 받고 독침을 갖고 다니며 문제를 일으키는 인물들’이라고 허위사실을 퍼뜨려 명예를 훼손했다고 주장함
  • 1980.02.18.

    인하대학교 학원민주화 추진위원회(가칭), 총학생회 부활을 목표로 하여 학내 15개 동아리가 참가해 결성. 위원장에 하종강 선출. ‘인하대학교 학원자율화 준비위원회’는 발전적 해체.
  • 1980.02.28.

    인하대학교 학원민주화 추진위원회, 인하대학교 5호관 소강당에서 300여 명이 모인 가운데 「학원 민주화를 위한 제1차 공청회」 개최
  • 1980.03. *

    동일방직 해고노동자 복직투쟁 위원회, 3월 정기모임을 개최하고 ‘동일방직 해고자 124명을 즉각 복직하라’, ‘노동귀족 회개하라’ 등의 주장이 담긴 ‘결의문’ 발표
    동일방직 해고근로자 복직 추진위원회, 성명서를 발표하여 동일방직 해고노동자 124명의 무조건적인 복직과 ’노동귀족‘에 대한 ’엄중한 심판‘ 요구
  • 1980.03.07.

    인하대학교 학술회장연합회(가칭), 인하대학교 교직원식당에서 23개 학과 학술회장들이 참석한 가운데 결성. 학도호국단이 주재한 학술회장 모임에서 의견의 불일치로 학도호국단 간부들이 퇴장한 가운데 학원자율화 작업을 주체적으로 담당할 공식적인 대의기구로서 출범
  • 1980.03.10.

    인하대학교 학원민주화 추진위원회, 「1만 인하인에게 알림(2) -학원 민주화를 위한 제언」이라는 성명서를 통해 ‘학도호국단이 지니는 제반문제는 부분적 개선이 아닌 전면폐지에 의해서만 해결될 수 있다고 확신하며 학도호국단을 존속시키려는 어떠한 절충적 시도도 시대착오적인 것임을 선언한다’고 밝힘
  • 1980.03.13.

    인하대학교 학술회장연합회, ‘인하대학교 총학생회 부활추진위원회 및 단과대학 학생회 부활추진위원회’로 개칭
  • 1980.04.01.

    인천공업전문대학 학생 200여 명, 학원자치권 강화 등을 요구하며 교내 시위 전개
  • 1980.04.02.

    인천대학교·인천공업전문대학, 교내 시위와 관련해 4월 10일까지 임시 휴강하기로 결정
  • 1980.04.04.

    인하대학교 총학생회장단 선거가 실시되어 총학생회장에 경영학과 3학년 황윤철이 당선
  • 1980.04.10.

    인하대학교 학원민주화 추진위원회, 성명을 내고 ‘재단과 학원운영 분리, 어용교수 퇴진’ 등을 요구
  • 1980.04.12.

    ‘동일방직 해고노동자 복직투쟁위원회’, 복직을 요구하며 거리 선전전 및 가두시위 진행
  • 1980.04.15.

    인하대학교 사범대학 교수협의회(가칭), 인하대학교 사범대학 교학과 사무실 벽에 게시하는 방법으로 인하대학교 교수협의회 결성을 촉구하는 결의문 발표
  • 1980.04.18.

    인하대학교 총학생회, 인하대학교 대강당에서 「4·19학생혁명 20주년 기념식」을 개최하고 작가 고은을 초청하여 기념 강연회 진행
    반도상사 노동자 30여 명, 96% 임금 인상을 요구하며 단식 농성 시작
  • 1980.04.19.

    앰네스티 인천지부, 답동 가톨릭회관에서 「4·19 20주년 기념 사월제(四月祭)」 개최
  • 1980.04.22.

    인하대학교 총여학생회 결성. 총여학생회장에 황우윤이 당선됨
  • 1980.04.23.

    선인학원 내 항도실업고등학교·운산기계공업고등학교·운봉공업고등학교 학생 1500여 명, 수업을 거부한 채 대운동장에 모여 ‘실습시간 연장, 보충수업료 인하, 재단의 간섭 반대, 무능교사 퇴진’ 등 8개 항의 요구 조건을 내걸고 농성 전개
  • 1980.04.25.

    인천제철 노동자들, 현행 임금제도 개선 등 8개 항의 요구조건을 내걸고 농성 시작
    동일방직 해고노동자 30여 명, 한국노동조합총연맹 위원장실에서 복직 및 노동조합 집행부 퇴진을 요구하며 단식 농성 시작
  • 1980.05. *

    화수동에 민들레 어린이집 개소. 인천도시산업선교회 부설 놀이방으로 설립되었음. 이후 ‘친목회’라는 이름의 후원회가 만들어져 ‘83친목회’(1983년 놀이방을 졸업한 아이들의 엄마 모임)를 처음으로, ‘569친목회’(1985·1986·1989년 졸업생 엄마 모임), ‘별난 친목회’(별나게 살아보자는 엄마 모임)‘ 등이 생겨남
  • 1980.05.01.

    인천제철 노동자들, 4월 25일부터 농성을 벌여오다가 ‘연차휴가 보상비 지불, 기능사원을 위한 통근버스 운행, 정기승급제 실시, 임금 인상 미달가 인상, 현행임금제도 개선, 어용중역 퇴진 등의 요구조건에 대해 회사 측과 합의를 보고 7일 만에 농성을 끝냄
    일신제강 인천제강소 노동자 100여 명, ‘임금 33% 인상, 상여금 연400% 지급’ 등 9개 항의 요구조건을 내걸고 정문을 폐쇄한 채 철야 농성 시작. 전국금속노조 일신제강지부 인천제강분회는 4월 25일에 개최된 노사협의회에서 40% 임금 인상을 요구하였으나 회사 측이 25%를 인상하자 33% 인상안을 제시하며 농성을 벌임
  • 1980.05.03.

    인천제철 노동자 2명, 포고령 위반 혐의로 구속. 이들은 4월 25일 인천제철 노동자들이 임금 인상 등을 요구하며 농성을 벌이던 중 차를 타고 회사 밖으로 나가던 총무이사, 총무부장, 운전사 등을 폭행하고 전무의 허수아비를 만들어 회사 소유 차량 위에서 불을 붙여 태운 혐의를 받음
  • 1980.05.06.

    코리아 스파이서 노동자 310여 명, 임금 인상 등을 요구하며 공장 식당에서 철야농성 돌입
    동양나일론 노동자 300여 명, 임금 28.9% 인상을 요구하며 농성을 시작했다가 회사 측으로부터 25.88% 인상 약속을 받고 해산함
    반도상사 노동자 500여 명, ‘임금 인상’ 등을 요구하며 작업을 거부하고 농성 돌입. 그중 노동조합 지부장 조금분 등 7명은 단식 농성 시작
    대양화성 노동자 230여 명, ‘임금 인상’ 등을 요구하며 농성 시작
    서음전자 노동자 350여 명, 임금 55.6% 인상을 요구하며 농성 시작 전국외국기관노동조합 부평분회 및 용산분회 종업원 124명, 서울 용산 주한유엔군사령부 영내에서 주한미군 당국이 한국인 종업원 428명 중 134명을 6월 6일부로 감원한다고 통보한 데 대해 항의하며 농성 전개
  • 1980.05.07.

    인하대학교 총학생회, 5월 7일부터 9일까지 3일 간을 ‘민주화대행진의 날’로 정하고 인하대학교 대운동장에서 3000여 명의 학생들이 모인 가운데 시국에 관한 선언문을 낭독하고 7개항의 결의문을 발표. 학생들은 ‘학원민주화는 학생에게 일임하라’, ‘유신잔당 물러가라’, ‘계엄령 철폐하라’, ‘노동3권 보장하라’, ‘언론자유 보장하라’ 등의 구호와 함께 교내에서 시위행진을 시작하며 인하대학교 정문에서 경찰과 대치. 오후 2시 30분경 1000여 명의 학생들이 인하사대부고 정문을 통해 빠져나와 학익동과 독쟁이를 거쳐 인천교육대학 앞까지 시가행진을 전개하였으며, 이들 시위대가 다시 학교로 돌아오던 중 인하대학교 ‘구정문’을 나와 학익동과 독쟁이로 행진하던 500여 명의 학생들과 합류, 용현동 사택입구 사거리에서 경찰과 대치함. 인하대학교 이재철 총장이 설득해 대부분의 학생들은 경찰과 무력 충돌 없이 학교로 돌아오고, 학생 400여 명은 경찰의 바리케이드를 뚫고 적십자병원을 거쳐 인천공설운동장에 도착함. 여기서 경찰이 진압을 시작하자 학생들은 두 그룹으로 나뉘어 200여 명은 도원동과 배다리를 거쳐 청과물시장 앞에서 경찰과 대치하고 다른 한편은 공설운동장에서 제2장로교회, 신흥동, 답동을 거쳐 동인천광장으로 나아감. 경찰의 계속된 진압으로 흩어진 학생들은 학교로 돌아와 교내 시위를 전개한 후 오후 7시경부터 학생회관에서 철야 집회에 들어감. 이날의 시위에서 기계과 2학년 조병희가 경찰에 연행됨
    천주교 정의평화위원회, 동일방직 해고근로자의 복직과 동일방직 노동조합의 정상화를 관계 당국과 회사 측에 촉구하는 성명 발표. ‘동일방직 해고근로자들은 무조건 복직되어야 한다’, ‘그들의 노동조합 활동은 보장되어야 한다’, ‘동일방직 해고근로자들의 재취업을 막은 ○○○는 국민에게 사죄하고 노동계에서 물러나야 한다’ 등을 요구
  • 1980.05.08.

    인하대학교 총학생회장 황윤철이 인하대학교 교내에서 ‘1만 인하인에게 고하는 성명서’와 ‘최규하 대통령에게 보내는 메시지’를 낭독하며 교내 시위를 시작함. 이때 인하대학교 후문 앞에 3대의 트럭에 나눠 탄 계엄군이 도착했으나 학생 대표의 요구로 곧 철수함. 학생들은 오후 8시경부터 철야 농성에 들어가 횃불을 들고 교내에서 침묵 행진을 했으며 인하대학교 본관 앞에서 부마사태 희생자들에 대한 초혼제와 위령제를 개최함
  • 1980.05.09.

    인하대학교 기계과 학생들이 오전 9시경부터 인하대학교 구정문과 후문가에서 연행 학생 조병희의 석방을 요구하며 연좌시위 시작. 정오 무렵 조병희가 42시간 만에 석방되어 나오자 인하대학교 본관 앞 잔디밭에서 2000여 명의 학생들과 함께 환영식 개최. 학생들은 이날 오후 3시 30분경 결의문을 채택한 후 3일간의 ‘민주화 대행진’을 끝냄
  • 1980.05.12.

    인하대학교 교수 130여 명, 전체 교수회의를 열어 현 시국과 학원 문제에 대한 대책을 협의한 후 7개 항목의 선언문을 채택하여 발표하고 인하대학교 교수협의회 결성
    인하대학교 총학생회, 이날부터 「민주역량 강화기간」에 돌입하여 요구가 관철될 때까지 무기한 운동을 전개하기로 결의
  • 1980.05.13.

    동일방직 해고노동자와 1000여 명의 노동자들이 ○○○ 한국노동조합총연맹 위원장과 금속노동조합 ○○○ 위원장의 퇴진을 요구하며 여의도 노총회관에서 농성. 농성과 함께 ‘우리는 복직이 될 때까지 이 자리를 지킨다’는 제목의 성명서 발표
  • 1980.05.15.

    인하대학교 학생 3000여 명, 오전 11시 30분 인하대학교 교내에 모여 학생총회를 개최하고 ‘계엄령을 해제하라’, ‘제도언론을 철폐하라’ 등의 플래카드를 앞세우며 가두시위 전개. 학생들은 주안역으로 가기 위해 학익로를 지나던 중 최루탄을 쏘는 경찰에 맞서 투석전을 벌이다가 인하대학교 학생 임학성·정해수 등이 불발 최루탄에 맞아 부상당함. 이중 경찰의 저지선을 뚫은 학생 1500여 명은 신기촌 방면에서 다시 모여 플래카드를 앞세우고 행진, 낮 12시경 주안역 앞에 집결했으며 경찰이 최루탄을 발사하자 다시 흩어짐. 이후 제물포역을 거쳐 동인천으로 향하던 학생들은 숭의삼거리에서 경찰의 저지에 막혀 다시 분산, 골목 등으로 피신하며 오후 2시 20분경 동인천역 광장에 재집결. 이곳에서 인천교육대학 여학생 800여명, 인천대학교 학생 200여 명이 합류함. 동인천역 광장에서 성토대회를 벌이려던 학생들은 경찰이 최루탄을 쏘며 막자 지하도 등을 통해 대피, 다시 옛 삼화고속 버스정류장 앞길에 모여 연좌 농성을 벌인 후 전철을 통해 서울로 향함
  • 1980.05.16.

    인천교육대학·인천대학교·인하대학교 학생대표를 포함한 전국 56개 대학 학생대표 96명, 오후 5시 50분경 이화여자대학교 연구관에서 「제1차 전국대학총학생회장단 회의」를 개최하고 이날 새벽에 결의한 ‘정상수업을 받고 가두시위를 일단 중지한다는 사항’을 재확인함
    천교육대학 학생 600여 명, 오전 10시 50분경 인천교육대학 강당에 모여 시국에 대한 성토대회를 개최한 후 오후 1시 30분경 해산
  • 1980.05.18.

    인천도시산업선교회, 이날 새벽 화수동 소재 사무실에 괴한이 난입해 출입문을 손상시킨 일과 관련, 비상계엄의 전국 확대와 총무 조화순 목사의 구속 등과 때를 같이 하는 일이니 종교탄압의 일면으로 보아야 한다는 입장을 밝힘
  • 1980.05.25.

    천주교 인천교구 사제단의 공동 집전으로 답동성당에서 「광주사태로 인해 희생된 영령들과 조국의 평화를 위한 미사」 봉헌. 당일 헌금액 27만 730원은 교구 사회복지회를 통해 광주에 전달
  • 1980.06.08.

    천주교 인천교구장 나길모 주교, 「인천주보」를 통해 광주 일원에서 발생한 사태에 대해 특별기도와 헌금 당부
  • 1980.06.13.

    천주교 인천교구, 5·18광주민주항쟁과 관련해 각 본당에서 보내 온 특별헌금 298만 2276원을 광주교구에 전달
  • 1980.08.02.

    반도상사 노동조합 지부장 조금분, 부지부장 김분겸, 지도위원 장현자 등이 계엄사에 연행됨. 이후 포고령 위반으로 경기지구 계엄 군법회의에 회부되어 20일 만에 기소유예로 석방
  • 1980.09. *

    민들레 어린이집 개설. 인천도시산업선교회 총무로 일하던 조화순, 김동완 목사와 유효순 교사를 중심으로 문을 열어 2~6세 맞벌이 빈곤층 어린이의 보육 사업을 통해 주민모임을 발전시켜나감
  • 1980.10.30.

    전국항운노동조합 인천항만지부·전국항운노동조합 인천운수지부, 「통합대의원대회」 개최
  • 1980.11.27.

    창영감리교회 청년회, ‘민중의 교회’라는 주제로 「제3회 바보제」 개최. 광야교회 정명기 목사가 주제 강연을 함
  • 1981.1.28.

    문교부, 인천대학을 비롯해 한양대학교, 경희대학교, 조선대학교, 명지대학교 등 5개 대학에 대해 2월 12일 까지 특별감사를 실시하고 3월 12일 각종 불법사례를 밝혀냈다고 발표. 대검특수부는 문교부의 감사결과를 통보 받고 전면수사에 착수함
  • 1981.02.24.

    창영감리교회에서 정기총회 개최
  • 1981.03.18.

    학교법인 선인학원 설립자이자 상무이사인 백인엽, 업무상횡령·배임수재 등의 혐의로 구속하고 학교법인 선인학원은 건축법 및 중기관리법위반 혐의로 입건됨.
  • 1981.04.20.

    인천기독청년협의회, 인천제일장로교회에서 「제4회 부활절 청년연합예배」 개최
  • 1981.05.18.

    ‘인하대학교 청진회 사건’ 발생. 이 날 밤 인하대학교 건물 외벽 곳곳에 붉은 색 페인트로 반정부 구호가 적혀 있는 것을 학교 당국이 발견해 지워버린 일과 관련해 경찰이 수사를 진행하던 중 인하대학교 지하서클 ‘청진회’를 적발, 같은 해 9월 경 현 회장과 초대 회장 등을 국가보안법 및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 위반, 건조물 침입죄 등으로 구속하고 2명을 지명 수배함
  • 1981.05.21.

    '인천제일교회 사건‘ 발생. 제일교회 대학부에서 5월 23일까지 ‘민족의 교회, 행동하는 신앙’이라는 주제로 청년 선교 대회 개최. 행사 첫날인 이날 한완상의 강연회가 끝난 후 1000여 명의 청년들이 스크럼을 짜고 ‘전두환 파쇼 물러가라’, ‘노동3권 보장하라’는 구호를 외치며 축현초등학교 앞까지 시위행진을 하다가 경찰에 의해 저지됨. 이 때 인천기독청년협의회 회장 이민우, 광야서점 대표 강우경, 인하대 학생 송영수 등이 경찰에 연행됨. 그날 밤 경찰이 광야서점을 급습해 직원 이생우와 부천공전 학생 김재봉을 연행하였고 경기다방에서 감리교 서울 신학교 2학년 서광석을 추가로 연행함. 이후 관련자들의 조사와 검거가 계속 이어져 7명이 구속되고 6월 20일, 전원 기소됨
  • 1981.05.29.

    인천기독청년협의회, 동인천 감리교회에서 「5·21 사건으로 인한 구속자 석방을 위한 기도회」개최. 감리교 인천 동지방 청년 연합회가 주관을 하고 한국기독청년협의회, 감리교 청년회 전국 연합회, 감리교 청년회 인천 서지방 연합회, 감리교 청년회 인천 남지방 연합회, 감리교 청년회 인천 북지방 연합회, 예수교 장로회 경기 서노회 청년 연합회, 기독교장로회 인천지구 연합회, 성공회 청년회, 구세군 혈화 청년회가 후원을 맡음
  • 1981.08.03.

    노동수기 「어느 돌멩이의 외침」의 저자 유동우(삼원섬유 분회장) 연행
  • 1981.12.26.

    인천전기 노동자 6명 해고당함. 이중 2명은 JOC 회원, 3명은 도시산업선교회 관련자로 알려짐
  • 1982.01.11.

    천주교 인천교구, 긴급 사제총회를 개최하고 부평특수사목팀 연행사건에 대한 대책 협의. 부평특수사목팀은 산곡동 성당에서 나길모 신부 등 4명이 부평지역 노동자들을 위한 교육프로그램과 상담을 담당하며 선교활동을 벌여 온 모임. 경찰은 1981년 11월부터 성탄절을 앞두고 노동자를 위한 카드제작과 관련해 수강생 15명을 연행함
  • 1982.01.20.

    천주교 정의평화위원회, 1월 11일의 이사회 결의에 따라 주식회사 서통, 원풍모방, 인천지역 JOC 문제와 관련된 노동문제 해결을 촉구하는 ‘공한’을 국무총리, 국가안전기획부장, 내무부장관, 노동부장관 등에게 발송
  • 1982.03.10.

    가톨릭노동청년회 인천교구연합회, 답동 가톨릭회관에서 「근로자를 위한 제37회 노동절 기념행사」 개최
  • 1982.04. *

    인천도시산업선교회, 민들레 의료생활협동조합 개소
  • 1982.04.11.

    천주교 인천교구 사제단, 부산미국문화원 방화사건과 관련해 구속된 최기식 신부에 대하여 교구장과 뜻을 같이해 ‘최기식 신부의 고난에 일치하여 동참하자’는 내용의 ‘성명서’ 발표
  • 1982.04.23.

    인천도시산업선교회 내에 민들레 협동조합 설립. 주민 250여명을 조합원으로 하여 각 지역 대표 선출하고, 박성근을 전체 회장으로 선출함. 인천기독병원 수련의 양요환, 서울대 치대생 전동균 등으로 조직된 의료진 20여명과 동구보건소에 근무하던 조옥화를 실무진으로 구성, 주말진료와 야간진료, 보건상담, 영유아 건강관리 등의 사업을 수행하여 의료혜택에서 소외된 지역주민에게 의료봉사를 통한 직접적인 의료 서비스 제공과 이를 통한 건강문제에 대한 의식 변화와 주민조직을 꾀함.
  • 1982.05.09.

    인하대학교 학생 김성진이 군입대 중 충주 오석교 전도사 장석재에게 보낸 편지가 문제가 되어 김성진을 비롯, 장석재와 인하대학교 학생 이우청·안영근·황홍규·이기선 등 6명이 연행됨
  • 1982.05.21.

    인하대학교 학생 김성진 등 4명, 군 입대 중 국가보안법 혐의로 구속됨
  • 1982.10.04.

    인천 감리교북지방 주최 청년집회가 경찰에 의해 방해 받음. 고영근 목사의 선교가 취소됨
  • 1982.10.22.

    천주교 인천교구, 11월 19일까지 매주 금요일에 「산업사회와 인간」이라는 주제로 답동 가톨릭회관에서 ‘청년금요강좌’ 개최
  • 1982.11.08.

    인하대학교 학생 이우청, ‘행동할 것인가 굴복할 것인가’라는 제목의 유인물 200여 장을 뿌리며 약 1시간 동안 교내 시위 주도. 다른 학생 한 명은 6호관 2층 난간에서 유인물을 낭독한 후 노래를 부르며 시위 주도. 시위 주동자 이우청은 이 날의 시위로 학교에서 제적당함
  • 1982.11.10.

    인하대학교 학생 최진우·이우청,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 위반 혐의로 구속
  • 1982.12.12.

    새봄교회, 이원희 목사가 노동자들의 신앙터전을 마련한다는 목적으로 효성동에 설립
  • 1983.04.19.

    천주교 인천교구 정의평화위원회, 부평1동 천주교회에서 「4·19 혁명 23돌 기념 순국 영령 추도미사 및 강연회」 개최. 일꾼교회 김동완 목사의 본기도, 호인수 신부의 강론에 이어 성내운 교수가 ‘4·19정신과 우리의 각오’라는 주제로 강연
  • 1983.05.27.

    천주교 인천교구 교육원, 답동 가톨릭 회관에서 ‘진리의 목소리를 갈망하며 대화의 장을 목말라 하는 젊은이들과 함께 시대의 징표를 나누자’는 취지 아래 「제1회 월례 청년 금요강좌」 개최. 함세웅 신부가 ‘가난한 사람들의 교회’라는 주제로 강연
  • 1983.07.31.

    가톨릭 노동청년회 인천교구연합회, 태창 노동자들의 해고 사건과 관련해 ‘부당 해고된 노동자들의 즉각 복직’을 요구하는 내용의 결의문 채택
  • 1983.08.26.

    천주교 인천교구 교육원, 8월 27일까지 이틀 간 답동 가톨릭 회관에서 노동운동사를 주제로 한 「월례 청년 금요강좌」 개최.
  • 1983.09.06.

    인천기독교도시산업선교회 총무 김정택, 서울 시청 앞에서 연행됨
  • 1983.09.23.

    인천대학교 학생 2명, 반정부 유인물을 살포한 혐의로 구속
  • 1983.09.28.

    인천기독청년협의회, 인천교회에서 「청년신앙」 강좌 개최. ‘동인천 도시산업선교센터’ 이국선 목사가 ‘산업사회와 교회’라는 주제로 강연. 동인천 도시산업선교센터는 1963년 6월 5일, 이국선 목사가 대성목재공업 주식회사 공장 전도목사로 부임한 때부터 시작. 1967년 2월, 송림동 253번지 2층에 30만 원의 전세를 얻어 센터를 개관하고 초교파적인 운영이사회(이사장 전택완 장로)를 조직. 실무진에는 원장 이국선 목사, 총무 고재식 전도사가 취임. 1970년 6월, WCC를 통한 서독교회 보조와 인천시 보조, 이사회 헌금 등으로 만석동에 새 건물을 신축하여 1971년 7월 11일 준공함. 동인천 도시산업선교센터는 ‘낮은 임금 근로자의 빈곤과 질병을 가난한 자의 복음으로 해방시켜 복지산업사회를 만드는’ 복음화와 민주화에 설립 목적을 둠
  • 1983.09.30.

    천주교 인천교구 교육원 강연 준비위원회, 이부영 전 동아일보 기자를 초청해 답동 가톨릭 회관에서 「민주사회와 언론 -70년대 언론 파동」이라는 주제로 「월례 청년 금요강좌」 개최
  • 1983.10.05.

    인하대학교 학생들, ‘이승만 동상에 관한 일만오천 인하인의 입장’이라는 유인물을 통해 이승만 동상 철거를 요구하는 한편, 학원 탄압 사례 등을 소개
  • 1983.10.06.

    인하대학교 학생 이기선, ‘언론자유 보장하라, 노동3권 보장하라’ 등의 구호를 외치며 시위 주도. 이 날 시위로 제적 당함 인하대학교 학생들이 반정부 구호를 외치며 교내에서 격렬하게 시위를 벌임. 시위 주동자 윤호영이 중상을 입음. 이 날 시위에서 이승만 동상이 끌어내려져 파손됨
  • 1983.10.11.

    인하대학교 학생 이민재·이기선·황홍규·윤호영, 학생시위를 주도한 것과 관련해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 위반 혐의로 구속
  • 1983.10.20.

    태평특수섬유 노동자 김용자·김옥섭, ‘혼사(작업 중 실이 잘못 섞인 경우)’ 문제 등을 이유로 박우범, 최점숙 등과 함께 해고당함. 김용자와 김옥섭은 동일방직 해고 노동자 출신임. 이들은 10월 27일 ‘태평특수섬유 해고자 일동’ 명의의 ‘호소문’을 발표하여 복직과 함께 ‘블랙리스트’ 철폐 등을 요구함
  • 1983.12.15.

    삼익가구 노동자 서기화, 태평특수섬유 노동자 김용자·김옥섭, 신도실업 노동자 신정희, 같은 해 9월~11월에 걸쳐 ‘블랙리스트’에 의해 해고당한 데 대해 노동부 인천지방사무소를 찾아가 ‘노동자의 복직, 블랙리스트 철폐, 근로감독 철저’ 등을 요구. 이에 대해 성의 있는 답변을 듣지 못했다고 판단한 4명은 다음 날인 12월 16일 오후 2시부터 노동부 인천지방사무소 근로감독관실에서 철야 농성과 단식에 돌입하였으나 12월 17일 새벽 2시에 전투경찰 50여 명에 의해 인천경찰서로 연행되었다가 오후 5시경 풀려나옴
  • 1984.01.18.

    인하대학교 교무위원회, 1980년 5·17 이후 학원 소요와 관련해 제적된 학생 18명 전원을 재입학대상자로 확정하고 이들의 명단을 각 단과대학별로 통보
  • 1984.01.24.

    천주교 정의구현 전국사제단, 블랙리스트 철폐를 위한 항의와 관련해 구속된 인천지역 해고노동자 6명의 석방을 촉구하며 ‘현 시국에 대한 우리의 견해’라는 제하의 성명서 발표
  • 1984.01.25.

    경인지구 제적학생 복교대책위원회 결성
  • 1984.02.26.

    여성평우회, 만석동에 큰물공부방 개원. 큰물공부방 주변 만석동 주부들은 공장이나 행상 등의 일을 나가고 있어 방과 후 방치되어 있는 아이들에게 ‘관심과 애정, 그리고 지도로써 가난한 지역 아동의 문화결핍, 학습부진 현상을 개선하도록 도와주는 데’ 그 목적을 둠. 월요일부터 토요일까지 매일 오후 2시~9시까지 개방함
  • 1984.02.29.

    인천전문대학 학장 이길영, ‘학장직무 불성실’을 사유로 선인학원 측으로부터 5월 27일까지 3개월간 직위해제 조치 당함. 이길영은 2월 27일자로 ‘선인학원 설립자 백인엽씨에게 고함’이란 제목의 성명서를 발표하여 ‘설립자에 의한 대학운영의 부당한 간섭’을 중지할 것을 촉구한 바 있음
  • 1984.03.01.

    신흥목재, 합판공장 가동을 중단. 이에 앞서 1월 28일 회사 정문에 해고 공고문을 게시하였으며 해고 대상자는 350여 명에 달함. 신흥목재는 도화동에 위치
  • 1984.03.30.

    천주교 인천교구 가톨릭대학생연합회 주최로 「월례 청년 금요강좌」 개최. 성내운 전 연세대학교 교수가 국민교육헌장의 문제점과 새로운 교육 방향에 대하여 강연
  • 1984.04.10.

    만수동 소재 경인공업사에서 화재가 발생해 노동자 6명이 사망. 무허가 건물인 공장의 노동자들 대부분은 미성년자로 확인됨
  • 1984.04.17.

    대한마이크로 노동조합 설립. 위원장에 곽순복, 부위원장에 서지숙을 선출. 이후 노동조합 지도부의 구속과 조합원들의 계속된 ‘강제 사직’으로 인해 1986년 1월경 노동조합을 해산함. 1987년 5월 제2차 노동조합 설립을 보았으나 1989년 다시 해산함. 1993년 6월 20일 제3차 노동조합 설립
  • 1984.04.22.

    곽한왕, 고규홍 등 5명이 ‘가톨릭 청년 운동의 새로운 방향 모색’을 목표로 ‘인천 가톨릭 청년회’ 구성
  • 1984.05.25.

    천주교 인천교구 가톨릭대학생연합회 주최의 「월례 청년 금요강좌」가 끝난 후 참가했던 학생들이 거리에서 ‘폭력정권 규탄시위’를 벌이다가 21명이 경찰에 연행됨
  • 1984.06.12.

    인천 가톨릭 청년회, 답동 가톨릭회관에서「제1기 민중대학」 개설. 10월 20일까지 매주 화·수요일 진행. 이에 앞서 6월 10일 개강식 및 오리엔테이션 개최
  • 1984.06.20.

    인천도시산업선교회, ‘민주노동자 블랙리스트문제 대책위원회’ 등과 함께 「폭력정치의 상징인 블랙리스트를 규탄한다」는 제목의 성명서 발표
  • 1984.08. *

    대우자동차 부평공장 용접공 송경평과 이용선 등이 중심이 되어 회사 측에 근로자의 군대경력 인정 등을 요구하며 기존 노동조합 집행부와 어용시비로 충돌이 일어남. 송경평은 ‘군필 복직자가 정당한 호봉 수 및 월차 계산에 있어서 부당한 처우를 받고 있다는 사실과 수당 지급 및 TQC 등의 문제점을 지적한 진정서’를 노동부에 제출하였으며, 회사 측은 송경평이 대학 출신이라는 사실을 밝혀 9월 22일자로 4급 사원으로 전보 발령을 냄. 송경평이 이를 거부하고 인천지방노동위원회에 ‘부당노동행위 구제신청’을 내고 본인이 근무하던 차체1과를 중심으로 진정서에 대한 서명을 받는 등 사건을 공개화 하다가 해고당함
  • 1984.08.15.

    한국노동자복지협의회, 부평1동성당에서 「노동자 문화 잔치」 개최
  • 1984.09.03.

    천주교 인천교구 가톨릭대학생연합회·인천기독청년협의회·인천지역 애국청년일동 공동 명의로 대통령의 일본 방문을 반대하는 내용의 ‘성명서’ 발표
  • 1984.09.04.

    인하대학교 학원자율화추진위원회, 「한일관계에 관한 심포지엄」을 개최한 후 ‘방일반대’ 등의 구호를 외치며 시위를 벌임. 인하대학교 후문을 통해 가두 진출을 시도하다가 경찰의 제지에 막혀 투석전 등을 벌임
    인하대학교 복교생 및 2학기 복학예정자 8명, 인하대학교 후문 앞에서 방일 반대 성명서를 낭독한 후 학도호국단 제1회의실에서 3일간 단식 농성 전개
  • 1984.09.05.

    인하대학교 학원자율화추진위원회, 인하대학교 본관 앞 잔디밭에서 「방일반대 성토대회」를 개최한 후 ‘연행학생 석방’과 ‘방일 반대’ 등의 구호를 외치며 교내 시위를 전개
  • 1984.09.06.

    인하대학교 학생 김성진, 인천경찰서에 연행되어 교내 및 교외 시위사건의 배후조종자라는 자백을 강요당함. 9월 9월 훈방 조치된 후 인천 길병원에 입원, 전치 6주의 진단을 받았으며 자백을 강요당하는 과정에서 폭행을 당했다며 관련 경찰관들을 상대로 인천지검에 고소장을 접수시킴
  • 1984.09.08.

    천주교 인천교구 정의평화위원회, 주교관에서 발기 총회를 갖고 정식으로 발족.
  • 1984.09.18.

    대우자동차 노동자들, ‘① 군필자에 대한 부당 처우, ② 84년도 3/4분기 상여금 미지불액 25% 지급, ③ 연장근로, 야간근로, 휴일근로수당 통상임금으로 지불, ④ 부당한 부서 이동 즉각 철회’ 등과 함께 ‘노조 집행부의 어용적 체질과 반조합적 성격’을 규탄하며 시위 돌입
  • 1984.10.24.

    인하대학교 학원자율화추진위원회, 인하대학교 비룡탑 앞에서 「총학생회 부활을 위한 공청회」 개최.
  • 1984.10.25.

    ‘인천지역 사회운동연합’ 발기
  • 1984.10.26.

    천주교 인천교구 가톨릭대학생연합회, 민청련 의장인 김근태를 초청하여 「월례 청년금요강좌」 개최. 강좌가 끝난 후 300여 명의 학생들이 한일군사동맹에 대한 반대와 함께 부천 반도기계 노동자 사망사건과 관련하여 ‘노동악법 개정하라’, ‘폭력경찰 물러나라’ 등의 구호를 외치며 20여 분 간 횃불시위 전개. 경찰에 의해 흩어진 학생들이 중앙극장 앞에 집결하여 도화동 파출소 등에 투석을 하며 시위를 이어감. 이 날 26명이 경찰에 연행됨
  • 1984.10.29.

    인천대학 학생들, 부마항쟁의 의의와 부활된 학생의 날을 기념하기 위하여 11월 2일까지를 「민주화대행진」 기간으로 설정
  • 1984.11.02.

    인하대학교 학생들, 인하대학교 서클연합회가 11월 1일부터 개최한 「제1회 서클제」 기간 중 「학생의 날 기념식 및 선배제위 추모제」, 「민주화운동청년연합 부의장 장영달 씨 초청강연회」 등을 진행한 후 오후 7시경 횃불시위를 벌이며 이승만 동상을 끌어내림
  • 1984.11.09.

    인하대학교 학원자율화추진위원회·서클연합회·복교생동지회·학술회장 등이 연합하여 ‘인하대학교 총학생회 부활추진위원회’를 구성하고 산하에 중앙선거관리위원회를 조직하여 총학생회 부활 운동을 본격적으로 진행. 이광현이 위원장에 선출됨
  • 1984.11.12.

    부평1동 성당에서 「반도기계에서 죽은 노동자를 위한 합동위령미사」 봉헌. 부천 반도기계에서 근무하던 이인영, 장용택, 이창진 등 사인을 모른 채 사망한 노동자들의 영혼을 위한 위령미사임
  • 1984.11.19.

    인천지역 사회운동연합, 답동 가톨릭회관 강당에서 200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창립총회 개최. 의장에 제정구, 총무 및 대변인에 황선진, 사회부장에 이민우, 운영부장에 이우재, 재정부장에 조용호, 여성부장에 최인숙을 선출한 후 창립선언문 채택
  • 1984.11.20.

    대우자동차 노동자 송경평·이용선, 폭력 및 공무집행 방해로 회사 측으로부터 고소를 당함
  • 1984.11.21.

    인천지역 사회운동연합 여성부,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 여성위원회 등 9개 단체와 함께 ‘여대생 추행사건 대책협의회’ 결성
  • 1984.11.23.

    인하대학교 총학생회 부활추진위원회, 11월 22일과 11월 23일 이틀에 걸쳐 총학생회장 선거를 실시해 이광현을 선출하며 전국 42개 대학 중 5번째로 총학생회를 부활시킴. 재학생 1만 4932명 중 6038명이 투표에 참가. 인하대학교 총학생회 부활추진위원회 선관위는 총학생회가 부활되었음을 발표하는 한편, 현 학도호국단 간부들의 자진 사퇴를 촉구함
  • 1984.12.03.

    천주교 인천교구, 답동 가톨릭회관에서 「제2기 민중대학」 개설. 1985년 2월 19일까지 매주 화·수요일 진행.
  • 1984.12.05.

    인천지역 사회운동연합 여성부, 한국기독교 교회협의회 여성위원회, 여성평우회 등 11개 여성 단체와 함께 ‘다시는 이 땅에 경찰에 의한 여대생 추행사건과 같은 비열한 폭력행위가 되풀이 되어서는 안됩니다!!’라는 제목의 공개 고발장을 서울지방 검찰청에 접수시키고 폭행자 처벌 및 책임자 문책을 요구
  • 1984.12.08.

    곽한왕 등 15명, ‘천주교 인천교구 청년회’ 발기대회를 개최
  • 1984.12.10.

    천주교 인천교구 정의평화위원회, 답동 가톨릭회관 504호에서 제3회 인권주일을 기념하여 「하느님이 주신 인권」이라는 주제로 유현석 변호사(전국정의평화위원회장)의 강연회 개최. 강연 후에는 목동지역 주민들의 철거사건, 여대생 추행사건 경위 보고 등 인권탄압 사례 발표가 진행됨
  • 1984.12.17.

    기독교교회협의회 인천위원회, 창영감리교회에서 「눌린 자에게 자유를」이란 주제로 인권주간 연합예배 개최. 김준영 목사가 학원문제, 노동문제, 주민문제 등의 인권탄압 사례 보고
  • 1984.12.25.

    인천지역 사회운동연합, 회보 「민주화의 물결」 창간
  • 1984.12.26.

    대우자동차 부평공장 노동자들, 기존 노동조합 집행부에 대해 불신임 서명운동을 전개하는 동시에 ‘노조정상화 추진위원회’를 구성, 활동을 시작함
  • 1984.12.27.

    천주교 인천교구 청년회, 답동성당에서 창립총회를 개최하고 회장 곽한왕, 부회장 김철우, 총무 고규홍 선출. 가톨릭 청년 평신도 사도직 운동의 활성화를 기본 목표로 함. 1985년 1월 16일 사제평의회에서 정식 교구 단체로 인준 받음
    인천지역 사회운동연합, 회원 안영근의 불법연행에 항의하는 성명서 발표
  • 1985.01.14.

    경동산업 노동조합 결성
    서울·인천지역 해고노동자 10여명, 여의도 민한당사에서 ‘해고자 전원의 복직, 블랙리스트 철폐, 노동조합 탄압중지’ 등을 요구하며 무기한 농성에 돌입. 농성 노동자들은 1월 26일 민한당사를 나와 노동부 청사로 향했다가 경찰과 충돌, 병원에 ‘강제입원’ 당한 후 1월 31일 밤 전원 경찰에 연행됨
  • 1985.01.16.

    천주교 인천교구 청년회, 사제평의회를 통해 천주교 인천교구의 공식적인 교구 단체로 인준 받음
  • 1985.01.19.

    인천지역 사회운동연합, 노동자 의식향상을 위한 교육용 소책자 「노동자의 벗」 제1호 발간
  • 1985.01.22.

    경동산업 노동조합, 성명서를 발표하여 노동조합 설립과 관련해 해고된 위원장과 2명의 조합원에 대한 원직복귀를 요구. 또한, 합법적인 절차를 밟은 노동조합인데도 회사 측이 온갖 방법을 동원해 파괴하려 하고 인천시청이 노동조합 신고필증을 내주지 않으며 금속노조연맹은 근로자의 교육을 기피한다고 주장하면서 이의 부당함을 고발
  • 1985.01.25.

    인천지역 사회운동연합 여성부, ‘가족법 개정을 위한 여성연합회’ 주최로 서울 YWCA 강당에서 개최된 「올바른 투표권 행사를 위한 여성대표자 간담회」에 참석. 81개 여성 단체, 100여 명이 참가한 이 날 간담회에서 ‘여성 유권자의 선언’이 발표됨
  • 1985.02.03.

    동보전기 노동자들, 회사 식당에 모여 전면 파업에 돌입할 것을 결정하고 정동근과 이형범을 공동대표로 선출. 파업은 5일간 진행됨
  • 1985.02.06.

    동보전기 노동자들, 파업 농성 중 노동조합 결성대회 개최. 위원장에 이남숙, 부위원장에 김정숙, 총무부장 겸 조직부장에 정동근이 선출됨
  • 1985.02.07.

    한국노동자복지협의회 인천지역협의회, 답동 가톨릭회관에서 노동자, 재야인사 200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창립총회를 개최하고 임원 선출
  • 1985.02.10.

    천주교 인천교구 정의평화위원회, 제12대 국회의원 선거를 앞두고 「이 땅의 민주화를 위하여 -제12대 국회의원 총선거를 맞아」라는 제목으로 부정선거 감시와 5공화국 비리 규명에 관한 성명서를 신자들에게 발표. 7개 항의 실천 방법 제시
  • 1985.02.28.

    인하대학교 학도호국단, 총학생회 부활 방침에 따라 간부 전원이 사퇴하면서 부활된 지 10년 만에 학도호국단 해체
  • 1985.03. *

    인천지역 공해연구팀·한국공해문제연구소 등이 참여하여 「반공해운동협의회」 창립. ‘공해추방운동’을 실천적 과제로 설정함
  • 1985.03.04.

    인하대학교 학생처장 명의로 학도호국단 해체 및 총학생회 구성 일정 공고
  • 1985.03.08.

    인천지역 사회운동연합 여성부, ‘여대생 추행사건대책협의회’ 소속 여성단체 등과 공동 주최하여 ‘민족, 민주, 민중과 함께 하는 여성운동’이라는 주제로 「세계여성의 날 기념 제1회 한국여성대회」를 서울 YWCA 중강당에서 개최
  • 1985.03.10.

    천주교 인천교구 가톨릭노동청년회, 답동 가톨릭회관 304호에서 300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노동절의 유래와 노동현실’이라는 주제로 「노동절 40주년 기념식」 개최. 이날 천주교 인천교구 가톨릭노동청년회는 ‘제40회 노동절을 맞이하여’라는 제목으로 성명서를 발표하고 5개 항의 요구사항 제시
  • 1985.03.13.

    한영알미늄 노동자들, 최저임금 4700원을 요구하며 회사 측에 임금 인상 교섭 제의
  • 1985.03.15.

    효성물산 노동조합, ‘노동조합이란 무엇인가’라는 주제로 조합원 교육 실시
  • 1985.03.16.

    한일스텐레스 노동자들, 김진국, 김재관 등을 중심으로 총회를 개최하고 손을선을 새 위원장으로 선출하여 민주노조 결성
  • 1985.03.17.

    효성물산 노동조합, 3월 29일까지 ‘최저생계비란 무엇인가’, ‘910원 임금 인상요구안의 정당성’ 등을 주제로 하여 45명씩 교대로 라인교육 진행
  • 1985.03.19.

    인천지역 사회운동연합, 임시총회를 개최하고 조직 개편. 중앙위원회 및 집행국을 신설하고 인천지역 문제에 관한 조사·연구·정책 수립을 담당하는 상임위원회 신설 등 합의
  • 1985.03.20.

    인하대학교 학생 400여 명, 인하대학교 본관 앞에서 「총학생회 합법성 쟁취대회」 개최. 학생들은 대회가 끝난 후 ‘총학생회 인정하라’, ‘규제조항 철폐하라’ 등의 구호를 외치며 시위를 전개하여 경찰과 투석전을 벌이는 한편, 100여 명의 학생들은 학생과로 들어가 철야농성을 이어감. 그중 이광현·김성진·한관훈 등 3명은 인하대학교 본관 2층 복도에서 ‘총학생회 즉각 인정’ 등을 요구하며 단식 농성 진행
  • 1985.03.29.

    천주교 인천교구 가톨릭대학생연합회, 답동 가톨릭회관 504호에서 ‘미국의 대외정책과 제3세계’라는 주제로 전 한국일보 논설위원이자 창작과비평 편집위원인 임재경을 초청하여 「월례 청년금요강좌」 개최
  • 1985.04.10.

    서울·인천지역 해고노동자들로 구성된 ‘노동운동 탄압저지 투쟁위원회’, 부평1동 성당에서 결성
    서울대학교에서 인하대학교·인천대학 등 36개 학생들이 참여한 ‘경인지구 학생연합’ 결성
    한국노동자복지협의회 인천지역협의회와 한국노동자복지협의회가 공동 주최하고 인천지역 사회운동연합이 후원하는 「노동운동탄압 규탄대회」가 부평1동 성당에서 개최됨. 경찰의 원천 봉쇄로 성당에 들어가지 못한 사람들은 부평역, 부평로타리 등에서 ‘임금 인상투쟁으로 생존권을 확보하자’ 등의 유인물을 배포하며 시위를 전개한 후 효성동사거리에서 기업주 및 노조탄압의 허수아비 화형식 가짐. 이 날의 시위로 해고근로자 이용선·인천지역 사회운동연합 최인숙 여성부장 등 6명이 3∼15일 구류처분을 받고 조상훈(성원제강 해고노동자)이 경찰의 폭행으로 부평안병원에 입원함
  • 1985.04.18.

    인천지역 사회운동연합·한국노동자복지협의회 인천지역협의회, 답동성당에서 「범인천연합 4·19학생혁명 25주년 기념대회」 개최. 700여 명 참석
  • 1985.04.19.

    효성물산 노동조합, 회사 측과 임금교섭이 진행되는 동안 오후 6시 30분부터 8시 30분까지 350여 명의 조합원들이 운동장에 모여 ‘10만 원짜리 내 인생 어떻게 살고 있나’라는 주제로 공개 토론회 진행
  • 1985.04.20.

    인하대학교 학생들, 성심여자대학교 학생들과 함께 역곡역 앞에서 수입개방 철폐와 대통령 방미 반대를 요구하는 연합 시위 전개. 31명 연행
  • 1985.04.22.

    대우자동차 부평공장, 4월 16일부터 계속된 농성과 관련해 휴업을 결정
  • 1985.04.23.

    인천지역 대학생 200여 명, 주안역 뒤 공단거리에서 대통령 방미 반대 가두시위 전개
    서울지역 대학생 100여 명, 농성중인 대우자동차 부평공장 후문 앞 청천사거리에서 ‘임금동결 철폐하라’는 플래카드를 들고 ‘대우근로자를 지지한다’는 유인물을 뿌리며 30여 분간 시위를 벌이다 경찰에 의해 해산됨
    대우자동차 해고노동자 송경평, 4월 19일 밤 대우자동차 노동자 300여 명이 철야농성 중인 기술연구실에 들어가 시위를 선동한 일과 관련해 제3자 개입금지 위반 혐의로 구속됨.
  • 1985.04.24.

    부평1동 성당, ‘한반도의 주변정세와 통일문제’라는 주제로 성균관대학교 장을병 교수를 초청하여 「부평지구 월례 수요강좌」 개최
  • 1985.04.25.

    대우자동차 부평공장 노동조합, 4월 16일부터 농성을 벌여오던 중 회사 측과 임금 인상에 대해 합의하며 파업 종료
  • 1985.04.26.

    인천지역 대학생들, 주안역 앞에서 수입개방 철폐를 요구하는 시위 전개
    천주교 인천교구 가톨릭대학생연합회, 답동 가톨릭회관 504호에서 ‘제3세계의 민족운동’이라는 주제로 김종철 평론가를 초청하여 「월례 청년금요강좌」 개최
    대우자동차 부평공장 노동조합, 4월 25일 열린 단체교섭에서 회사 측과 합의하고 4월 16일부터 진행된 파업을 끝낸 후 이날부터 정상 조업 시작
  • 1985.04.29.

    인하대학교와 성심여자대학교 학생 150여 명, 밤 9시 20분경 역곡역 광장에서 횃불시위를 벌이다 경찰에 의해 해산 당함. 인하대학교 학생 김지규 등 모두 31명이 연행됨
    인하대학교 주변 일대 주민 300여 명, 인하대학교 학생들의 잦은 시위로 유리창 등이 파손되고 최루탄 가스에 의해 호흡장애 등이 일어난다며 이에 대한 대책 마련을 요구하는 진정서를 문교부장관과 인하대학교 재단이사장 및 총장 앞으로 제출함
  • 1985.05.01.

    노동절을 기념하여 부평 ‘백마장 입구’에서 「노동자생존권 쟁취 집회」가 개최됨
  • 1985.05.04.

    대우자동차 부평공장 파업을 주도한 홍영표·유선희·한비석·이용규·정상국 등 5명,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 및 ‘폭력행위 등 처벌에 관한 법률’ 위반 혐의로 구속됨. 이들은 4월 19일부터 4월 25일까지 ‘불법적인 집회 및 시위’를 벌인 혐의를 받음
  • 1985.05.07.

    천주교 인천교구 청년회, 10일까지 「가톨릭 청년 사도학교 제1차 강좌」 개설. 문익환 목사가 ‘압제로부터 해방에 이르는 역사,’ ‘예언자를 통한 정의의 외침들’을, 박찬용 신부가 ‘가난한 사람들의 벗-성서’, ‘현실에 도전하는 성서’를 주제로 각각 강의
  • 1985.05.14.

    대우자동차 부평공장 파업 주동자로 수배 중이던 박재석, 서울 도봉동에서 붙잡혀 구속됨
  • 1985.05.15.

    인하대학교 학생 300여 명, 인하대학교 본관 앞 잔디밭에서 「광주민중항쟁 진상규명대회」를 개최하고 ‘광주진상 규명하라’ 등의 구호를 외치며 4시간 가량 교내시위를 벌인 뒤 자진 해산
  • 1985.05.17.

    「5월 광주민중항쟁 5주년 추모대회」가 인천지역사회운동연합 및 인천기독교 청년협의회, 천주교 인천교구 청년회, 인천기독교 도시산업선교위원회 등 4개 단체 연합으로 답동 가톨릭회관 6층 강당에서 개최. 추모대회 후 가톨릭회관 앞에서 전개된 시위로 인천지역 사회운동연합 부의장 김정택·사회부장 고남석·기획부장 조용호 등과 대학생들이 연행됨
  • 1985.05.22.

    천주교 인천교구 정의평화위원회, 답동 성당에서 700~800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광주사태 5주년 기념 추모미사」 개최. 이 자리에서 ‘광주 희생자를 위한 위령탑 건립기금’ 모금
  • 1985.06.01.

    한일스텐레스 노동자들, 회사가 경영악화를 이유로 조업 중단을 선언하자 ‘회사를 정상가동하라’는 구호를 외치며 농성 돌입
  • 1985.06.03.

    대우전자 앞에서 인하대학교, 서울대학교, 중앙대학교, 숙명여자대학교, 상명여자대학교 등 대학생 200여 명이 ‘대우자동차의 임금 인상 투쟁 만세’ 등을 외치며 시위를 벌임
  • 1985.06.04.

    한일스텐레스 노동자 200여 명, 1984년 10월부터 임금 인상 등을 요구하며 수시로 시위를 벌여오던 중, 6월 3일 회사가 조업 중단을 목적으로 기숙사를 폐쇄하자 이에 반발해 ‘부당노동행위를 중단하라’, ‘회사 정상가동하라’ 등의 구호를 외치며 회사 본관 앞에서 농성 시작
  • 1985.06.07.

    인하대학교 총학생회 전 총무부장 김성진, 1985학년도 1학기 동안 모두 7차례의 각종 시위를 주도한 혐의로 구속됨
  • 1985.06.08.

    한일스텐레스 노동조합의 농성을 지원하기 위해 효성동 소재 한일스텐레스 공장을 찾은 인천지역 사회운동연합 황선진 집행국장과 민주통일 민중운동연합 간부(계훈제 부의장, 정선순 사회국 간사, 사무처장 이창복, 민생위원장 이부영, 사회국장 조춘국, 회원 김원갑) 등이 정체불명의 사람들에게 1시간 동안 공장 내 창고 등지에 감금 및 집단폭행을 당하여 병원에 입원. 이에 대해 민주통일 민중운동연합은 6월 21일, ‘현 정권은 폭력적인 노동정책을 중지하라’는 제목의 성명서 발표
  • 1985.06.10.

    동흥전기 노동자 40여 명, 밤 11시 30분경 노동조합 결성대회 개최
    대림통상 회사 앞에서 40여 명의 노동자들이 200여 명의 회사 측 사람들에 의해 폭행을 당해 한국노동자복지협의회 인천지역협의회 위원장 등 10여 명이 부상을 당함. 이들은 부당해고를 항의하는 대림통상 해고 노동자들이 회사 내의 관리직·기능직 사원들로 구성된 ‘기동타격대’에 의해 집단폭행·협박·린치·감금 등의 행위를 당해 왔다고 주장하며 이를 항의하기 위해 대림통상을 방문하였음
  • 1985.06.14.

    한일스텐레스 노동조합 손을선 위원장 등 해고 당함
  • 1985.06.17.

    인천지역 8개 사업장 해고노동자 13명, ‘폭력적 탄압에 대한 진상 규명’, ‘부평경찰서장 처벌’, ‘해당사업주 처벌’ 등을 요구하며 신민당사에서 농성 시작. 이후 8일간의 단식을 포함해 15일간 농성을 이어감
  • 1985.06.18.

    동흥전기 노동자 이강혁·안재환, 노동조합 설립과 관련해 이강혁은 6월 8일, 안재환은 6월 12일, 각각 부당 해고를 당하였다고 주장하며 노동부 인천지방사무소에 진정서 제출
  • 1985.06.21.

    인천지역 사회운동연합과 한국노동자복지협의회가 주최하고 민주통일 민중운동연합이 후원하는 「노동운동탄압 규탄대회」가 답동 가톨릭회관에서 개최될 예정이었으나 경찰의 원천 봉쇄로 무산. 대회에 참석하기 위해 모인 노동자, 청년·사회단체 인사 등 200여 명은 동인천역 앞 인영빌딩 주변, 오성극장 앞 등지에서 격렬한 항의 시위 전개
  • 1985.06.24.

    한일스텐레스 노동조합 부위원장 이홍재·이경태, 조합원 박중식(싱크부)·박금순(검수부) 등 해고 당함
  • 1985.06.26.

    부평1동 성당, ‘한국언론의 실상과 허상’이라는 주제로 전 동아일보 편집국장 송건호를 초청하여 「부평지구 월례 수요강좌」 개최
  • 1985.06.27.

    천주교 인천교구 청년회, 명동성당 청년단체 연합회, 가톨릭노동청년회, 가톨릭농민회 등 천주교 사회운동 협의회 소속 단체 대표 40여 명과 함께 6월 27일부터 29일까지 3일간 노량진 소재 가톨릭노동청년회 본부에서 대우어패럴 노동자 및 이에 동조한 다른 사업장 노동자들의 연대 농성을 지지하는 단식 농성 진행
  • 1985.07.01.

    한일스텐레스 노동조합, 평조합원 소식지 「조합원의 소리」 창간호 발행
  • 1985.07.08.

    대한마이크로 노동자 71명, 여의도 한국노총 본부 사무실에서 ‘노조탄압 중지, 단체협약 체결’ 등을 요구하며 농성 돌입. 7월 16일 기본급 60% 인상 등을 약속하고 농성 해제
  • 1985.07.11.

    범한무전 노동자들, 7월 6일 회사가 부도로 인해 전면 휴업하자 이날 ‘믿을 것은 우리들의 단결뿐!!’이란 제목의 유인물을 배포하고 생산직 대표위원 2명을 선발해 수습대책위원회에 파견함. 범한무전 노동자들은 앞서 6월 10일이 지나도 5월 분 월급이 나오지 않자 점심시간에 회사 내에서 체불 임금 해결을 위한 농성을 벌였음. 이후 7월 중순경 160여 명의 서명을 받아 체불 건을 노동부에 고발함. 범한무전은 8월 22일 법정관리로 넘어갔으며 8월 27일, 7월 분 월급을 지급하기 전에 노동자 600여 명이 일괄 사표를 요구 받음. 그중 노동자 6명은 끝까지 사표를 제출하지 않았으며 이들은 8월 29일 출근 저지를 당하였고 9월 12일 해고 통보를 받음. 범한무전은 작전동에 위치하며, 카 스테레오 생산 업체임
  • 1985.07.18.

    대검찰청이 전국학생총연합 산하 ‘민족통일, 민중해방, 민주쟁취 투쟁위원회’(삼민투위)에 대한 중간 수사 결과를 발표해 핵심요원 63명을 검거하고 인하대학교 학생 1명을 포함, 모두 56명을 구속했다고 발표함
  • 1985.08.09.

    인하대학교 총학생회장 이광현,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구속. 이광현은 경찰로부터 신변을 보장한다는 약속을 받고 폭력과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 위반 혐의로 구속돼 재판이 진행 중인 인하대학교 총학생회 총무부장 김성진, ‘민족통일, 민중해방, 민주쟁취 투쟁위원회’(삼민투) 위원장 조명수의 증인으로 출두했다가 연행됨
  • 1985.08.20.

    경신공업 노동조합 전 위원장 김명종, 회사에서 해고된 후 한국노동자복지협의회 인천지역협의회에서 활동하던 중 사무실 근처에서 형사의 주민등록증 제시 요구에 항의하다 연행되어 공무집행방해 및 폭력 등의 혐의로 구속됨
  • 1985.09.04.

    천주교 인천교구 정의평화위원회, 답동 성당에서 오후 7시 30분, 1000여 명의 신자와 시민들이 참석한 가운데 ‘1. 학원안정법의 완전한 철회를 위하여 2. 노동자들의 생존권 보장을 위하여’를 주제로 한 「학원과 노동현장의 평화를 위한 기도회」 개최. 나길모 주교와 천주교 인천교구 사제단이 미사 집전을 맡고, 천주교 인천교구 정의평화위원장 이찬우 신부가 주제 강론을 함. 이 날 기도회에서 ‘학원과 노동현장의 평화를 촉구한다’는 제목의 성명서 채택
  • 1985.09.07.

    인하대학교를 비롯한 경인지역 9개 대학 학생 200여 명, 동구 송림동 현대극장 앞과 남구 주안6동 삼미쇼핑센터 앞에서 ‘학원안정법을 온몸으로 저지하자’는 내용의 유인물을 뿌리고 ‘구속노동자 석방하라’ 등의 구호를 외치며 시위를 벌이다 30분 만에 경찰에 의해 해산됨. 이 날 시위로 30여 명이 연행됨
  • 1985.09.08.

    천주교 인천교구 청년회, 김용환 신부 주재로 답동 가톨릭회관에서 「9월 한마당 잔치」를 개최하고 ‘학원과 노동 현장의 평화를 촉구한다’는 제목의 성명서 발표
  • 1985.09.10.

    쌍마교통 택시기사 31명, 노동조합 설립신고서를 인천시에 접수하여 9월 25일자로 신고필증을 교부 받음
  • 1985.09.11.

    인하대학교 총학생회, 비룡탑 앞에서 「학원탄압 규탄대회」를 개최하고 시위를 전개하다 경찰과 투석전을 벌임
  • 1985.09.12.

    인하대학교 총학생회 총무부장 이희정·과서클연합회장 성성윤, 각각 신체검사장과 자택에서 경찰에 연행됨
  • 1985.09.18.

    인하대학교 학원탄압저지 투쟁위원회, 인하대학교 후문과 구정문 등지에서 ‘학원탄압 중지’, ‘구속학우 석방’ 등의 구호를 외치며 정부의 학원정책을 규탄하는 집회를 개최하고 교문 밖 진출을 시도하다 경찰에 의해 저지됨. 이 과정에서 정·사복 경찰 200여 명이 인하대학교 교내에 진입하여 학생들을 강제 연행함
  • 1985.10.01.

    인천기독청년협의회 주민선교위원회, 만석동 43번지 17·18·19통 일대를 대상으로 한 「만석동지역 재개발 실태보고서」 발간
  • 1985.10.05.

    한국노동자복지협의회 인천지역협의회, 서울노동운동연합·한국기독노동자총연맹·안양지역 노동3권 쟁취위원회 등과 함께 「전국 노동자 민중·민주·민족통일헌법 쟁취위원회」 결성
  • 1985.10.08.

    부강교통 노동조합 결성. 부강교통은 가좌동에 소재
    천주교 인천교구, 답동 가톨릭회관 504호에서 「제3기 민중대학」 개강. 12월 11일까지 매주 화·수요일 운영
  • 1985.10.14.

    10월 19일까지 만석동 택지개발사업지구 내 50여 동의 주택이 강제 철거됨. 철거 도중 이를 저지하던 주민들이 철거반으로부터 폭행을 당해 다수가 부상을 입음
    대림자동차 회사 내에 공장의 창원 이전에 대한 회사 측과 노동조합 측의 무성의한 대책을 비판하며 노동조합 측이 10월 15일 식사시간에 그간의 과정을 해명하라고 촉구하는 내용의 ‘아아! 형제여, 대림형제여!’라는 제목의 유인물이 살포됨. 대림자동차는 부평에 위치한 오토바이 제조업체로 400여 명의 노동자들이 근무
    동보전기 노동조합, ‘9월분 체불임금 청산, 재입사자의 임금·퇴직금 지급, 회사 정상화 대책 마련, 임금 인상, 생존권 보장’ 등 5개 항의 요구 조건을 내걸고 파업 돌입
  • 1985.10.16.

    대림자동차 부평공장 노동자 120여 명, 회사 식당 앞 잔디밭에 모여 공장의 창원 이전에 반대하며 농성 돌입
  • 1985.10.18.

    천주교 인천교구 홍보교육국, 10월 21일까지 답동 가톨릭회관 304호와 부평1동 신용협동조합 강당 등에서 김지하 원작의 「밥」 초청공연을 진행하려고 하였으나, 첫날인 이 날 1회 공연이 끝난 후 사복경찰이 답동 가톨릭회관에 들어와 천주교 인천교구 직원을 비롯한 6명을 연행하면서 이후 공연이 무산됨
  • 1985.10.21.

    인천기독청년협의회, 기독교 문화선교기간을 맞이해 부평 목원교회에서 허병섭 목사(민중교육연구소장)를 초청해 ‘기독문화와 민중문화’라는 주제로 강연회 개최
  • 1985.10.25.

    성진운수 노동조합 결성
  • 1985.10.26.

    해고노동자 한덕희·박윤배·김흥섭 등 3명,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 위반 혐의로 구속됨
  • 1985.10.29.

    서울지검이 ‘민주화추진위원회 사건’ 발표. 서울대학교 졸업생 및 재학생 26명이 국가보안법 위반 등 혐의로 구속되었으며 그중 박문식은 ‘인천지역 노동운동탄압저지 투쟁위원회’를 조직해 노사분규를 주도하였다는 혐의를 받음
  • 1985.11.01.

    인하대학교·인천대학교·성심여자대학교 등 학생 500여 명, 인하대학교에서 「민중생존권 쟁취 연합투쟁대회」를 개최하고 인하대학교 후문에서 「군부독재 화형식」을 가짐. 이 과정에서 학교 안으로 진입한 경찰에 의해 다수의 학생들이 강제연행 당함. 이날 ‘부천·인천지역 군부타도 및 민중생존권쟁취연합 투쟁위원회’ 공동위원장에 인하대학교 학생 조명호가 선출됨
  • 1985.11.03.

    인천지역 구속자 가족협의회 결성. 인천지역에서 노동운동, 학생운동 등 민주화운동을 하다가 구속된 노동자·학생의 가족 21명이 모여 구성됨.
  • 1985.11.08.

    인천기독청년협의회·천주교 인천교구 청년회, 「만석동 재개발정책에 대한 주민공청회」 개최. 당초 송월동 소재 동인교회에서 개최할 예정이었으나 동부경찰서 소속 전투경찰대가 교회를 봉쇄하여 출입이 통제되자 대담자로 초청된 정일우 신부 등을 포함, 참석자들이 연좌농성을 벌인 후 일꾼교회로 이동해 진행함
  • 1985.11.14.

    인천지역 구속자 가족협의회, 소식지 창간
  • 1985.11.15.

    인천지역 사회운동연합, 십정동 성당에서 「전태일 15주기 추모미사 및 강연회」 개최. 홍창만 신부·이덕상 신부의 공동 집전으로 100여 명의 신자들이 참여한 가운데 미사가 봉헌되고 조화순 목사의 강연이 이어짐
  • 1985.11.19.

    부평1동 천주교회 내에 있던 전 부평신용협동조합 건물을 북구청이 가건물 사용 시효가 지났다는 이유로 무단 철거. 이에 대해 부평1동 천주교회(주임신부 호인수)는 북구청에 공개해명 요구서 제출
  • 1985.11.20.

    인하대학교 사범대학 학생 400여 명, 교내 본관 앞 계단에서 국·사립대 간 차별대우와 교원대학 폐지 등을 요구하며 시위 벌임
  • 1985.11.21.

    ‘인하대학교 민중·민주화 탄압저지 투쟁위원회’, 비룡탑 앞에서 「총학생회 규탄대회 및 민중생존권 쟁취대회」를 개최하고 총학생회 사무실을 점거하여 총학생회장의 면담을 요구하며 시위를 벌이다 교내에 진입한 경찰에 의해 연행됨
  • 1985.11.23.

    천주교 인천교구 정의평화위원회, 11월 8일 만석동 재개발지역주민들과 함께 개최하려던 「만석동 재개발정책에 대한 주민공청회」가 기관원들에 의해 강제 해산당한 데 대하여 ‘인천지역의 철거문제에 관한 우리의 견해’라는 제목의 성명서 발표.
  • 1985.12.01.

    여성평우회, 천주교 인천교구 여성연합회 후원으로 답동 가톨릭회관 504호에서 「여성문화 큰잔치」 개최. ‘여성노동과 그 창조적 극복을 위하여’라는 제하의 영상강연 등 진행
  • 1985.12.02.

    인천지역 기독노동자연맹, 구월동 창신교회에서 창립예배를 개최하고 창립선언문 발표
  • 1985.12.04.

    천주교 인천교구 정의평화위원회, 인권주일을 맞아 답동 성당에서 「인권수호를 위한 미사 및 특별강연」 개최. 김대중을 강사로 초청하였으나 연금 조치로 인해 참석하지 못했고 전국 J.O.C 담당 황상근 신부가 강론을 맡음
  • 1985.12.08.

    송림사랑방교회, 창립예배 개최
  • 1985.12.09.

    시·브라더즈 노동자들, ‘공장의 정상가동과 부당징계자의 원직복귀’를 요구하며 이날부터 3일간 농성 전개
  • 1985.12.13.

    동보전기 노동조합 조합원 14명, 오전 8시부터 ‘체불 임금 청산, 회사 정상화’ 등을 요구하며 한국수출산업공단 4단지 관리본부 상무이사실을 점거하며 농성 돌입. 오후 4시경 경찰에 모두 연행되었으며 농성 과정 중 조합원 조광철이 부상을 당함
  • 1985.12.16.

    동보전기 노동조합 위원장 이형범·총무부장 정동근, 한국수출산업공단 4단지 관리본부 점거농성사건과 관련해 집시법 및 건조물 침입 혐의로 구속됨
  • 1985.12.22.

    시·브라더즈 노동자 28명, 전국섬유노조연맹 사무실을 점거하며 농성 돌입
  • 1985.12.23.

    한국노동자복지협의회 인천지역협의회, 인천교구 가톨릭 노동청년회, 인천지역 사회운동연합, 천주교 인천교구 청년회, 인천지역 기독노동자연맹, 인천기독교도시산업선교회, 인천기독청년협의회 등이 공동 명의로 ‘노동문제 책임지고 독재정권 물러가라’는 제목의 성명서를 발표하고 시···브라더즈 노동자들이 12월 22일 한국섬유노조연맹 사무실을 점거 농성한 사건과 동보전기 노동자들이 한국수출산업공단 4단지 관리본부 사무실을 점거한 사건에 대해 논평을 함
  • 1986.01.*

    인천지역 민중교회 목회자 모임 출범. 소성교회, 사랑방교회, 한뜻교회, 해인교회, 예림교회, 새롬교회, 새봄교회, 백마교회, 일꾼교회, 하나교회 등이 참여함. 이 때 모임에서 ‘① 교단보다 지역 우위, ② 비공개, ③ 시간 엄수’ 등의 원칙이 합의됨. 인천지역 민중교회는 1985년부터 1986년 사이에 집중적으로 개척됐으며 이 무렵 개척된 교회는 예림교회(1985), 한뜻교회(1985), 해인교회(1986), 사랑방교회(1986), 새롬교회 등이 있었음. 이에 앞서 1982년 새봄교회, 1984년 샘터교회 등이 개척됨
  • 1986.01.16.

    대한마이크로 노동조합 위원장 곽순복·법규부장 박순이, 1985년 7월 8일 한국노동조합총연맹 위원장실을 점거해 시위를 전개한 일로 회사에서 해직됨. 이후 5월 17일, 곽순복은 징역 1년 6월·집행유예 3년, 박순이는 징역 1년·집행유예 3년을 선고 받음
  • 1986.01.17.

    한신여객 버스기사들, ‘체불임금 즉각 지급’ 등을 요구하며 파업
  • 1986.02.1.

    대학생 40여 명이 부평공단에서 ‘이 땅의 진정한 주인인 노동자 여러분께’라는 제목의 유인물을 뿌리고 부평경찰서 공단파출소에 화염병 1개와 돌을 던지는 등 시위를 벌이다 23명이 경찰에 연행됨
  • 1986.02.26.

    인천기독교 도시산업선교회 및 부설 일꾼자료실·광야서점·새벽서점 등에 대해 경찰이 압수 수색을 벌여 서류, 간행물, 자료집 등을 압수하고 관계자 5명을 연행함
    명성전자 노동자 정순이, 노동운동을 하기 위해 취업한 대학출신 노동자라는 이유로 청천동에서 경찰에 연행
  • 1986.02.27.

    이성전자 노동자 700여 명, 주안5공단 앞에서 임금 인상을 요구하며 가두시위 전개. 경찰에 의해 회사 안으로 밀려들어간 후 회사 식당에 모여 농성을 이어간 결과 회사 측으로부터 3만 원의 임금 인상을 구두로 약속받고 퇴근시 상여금을 지급받음
  • 1986.03.01.

    인천지역사회운동연합 이호웅 의장, 「인천의 소리」가 언론 기본법을 위반하였다는 혐의를 받고 경기도 경찰국 대공분실로 연행 당함. 이후 3월 6일 즉심 재판에 넘겨져 구류 10일을 선고 받음
  • 1986.03.03.

    송림사랑방교회, 송림 탁아의 집 개원. 같은 해 6월 ‘탁아소’라는 명칭이 북한의 집단 어린이 수용소 같은 어감을 준다는 제안에 따라 ‘송림어린이집’으로 명칭을 바꿈
    인천기독교 도시산업선교회, 2월 26일에 있었던 경찰의 압수 수색에 항의하여 일꾼교회에서 3월 9일까지 「노동운동탄압과 선교탄압 저지 연속 기도회」를 개최하고 가두방송을 하며 항의농성 전개
  • 1986.03.05.

    천주교 인천교구, 교구 신부 32명의 서명을 시작으로 개헌서명운동 돌입. 이후 용현 성당(4월 27일), 답동 성당, 역곡 성당, 고잔 성당, 주안5동 성당, 십정동 성당, 소사1동 성당(이상 4월 27일), 주안1동 성당, 부평3동 성당, 주원 성당, 원미동 성당, 소래 성당, 일신동 성당(이상 5월 4일) 등 20여 개 성당에서 개헌서명운동 전개
  • 1986.03.07.

    일꾼교회 간사 송규의, 공장 등을 돌며 유인물을 뿌린 혐의로 동부경찰서에 연행돼 조사를 받음
  • 1986.03.09.

    인천기독교 도시산업선교회, 화수동파출소 앞에서 300여 명이 모여 ‘군사독재 퇴진’, ‘노동운동 탄압 중지’ 등을 요구하며 시위를 전개함. 이 날 반월 원곡감리교회 서기원 전도사 등 6명이 경찰에 연행 당함
  • 1986.03.10.

    천주교 인천교구 가톨릭노동청년회(JOC), 부천 소사 성당에서 회원 및 노동자 250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노동절 41주년 기념식」 개최. 행사가 진행되는 동안 정사복 경찰 300여 명이 행사장 주변을 경계함
    인천지역 노동자연맹 회원 200여 명, 강화군 전등사에서 ‘임금 인상, 노동3권 보장’ 등을 요구하며 농성을 벌이다 경찰에 의해 해산 당함
  • 1986.03.25.

    천주교 인천교구 정의평화위원회, 인천지역 양심수가족협의회장 신복수를 통해 현재 구속 중인 노동자, 학생 등 양심수와 해고된 노동자들을 위해 기금 100만 원 전달
  • 1986.04.*

    송림동사랑방 진료소 개설. 홍학기, 김인수, 이원준 등 청계피복 노조 진료에 참여했던 경희대 출신 의료진과 성모자애병원 간호사 등이 결합해 양·한방, 치과 치료를 겸함
  • 1986.04.17.

    천주교 인천교구 정의평화위원회, 주안1동 성당에서 서울대교구 홍보국장 함세웅 신부를 초청하여 「필리핀의 민주화와 가톨릭교회」라는 주제로 「4·19 28주년 기념 강연회」 개최. 강연이 끝난 후 이찬우 신부의 주도로 개헌 서명운동을 전개하여 356명이 서명함
  • 1986.04.20.

    용현동 성당, 주일미사 후 개헌서명운동을 전개하여 319명의 신자가 서명
  • 1986.04.23.

    인하대학교 교수 20명, 「현 시국과 관련한 우리의 견해」라는 제목의 시국 선언문을 발표하고 ‘학문과 학원의 자유 보장, 학생들의 현실참여에 대한 당국의 물리적인 과잉저지 자제, 개헌서명운동 존중, 언론의 활성화’ 등을 당국에 촉구
  • 1986.04.25.

    천주교 인천교구 가톨릭대학생연합회, 답동 가톨릭회관 504호에서 박현채를 초청하여 「한국 노동현실에 대한 인식과 개선방향 모색」이라는 주제로 「월례 청년 금요강좌」 개최
  • 1986.04.27.

    해인교회, 창립 예배를 개최하며 북구 삼산동 74-4에 설립. 해인교회는 ‘인간해방’, ‘인천해방’이라는 의미를 담고 있으며 노동자들이 재정을 마련해 설립한 교회임. 노동법 교육, 풍물 배우기 등의 문화 활동 등을 진행하며 노동운동의 중심지 역할을 맡았다는 평가를 받음
    주안5동 성당, 신자들을 대상으로 개헌서명운동 전개
  • 1986.04.28.

    천주교 인천교구 정의평화위원회, 답동 가톨릭회관 512호에서 5월 4일까지 필리핀 라디오 베리따스가 제공한 「필리핀 민주화 사진 전시회」 개최. 전시회 기간 중 전시장 내에 ‘민주헌법을 위한 개헌서명대’를 설치하여 관람객 250여 명의 서명을 받음
  • 1986.05.*

    송현산마루교회 설립
  • 1986.05.03.

    인천 5·3항쟁 발생. 인천 시민회관 앞 신한민주당 개헌추진위원회 인천 및 경기지부 결성대회가 열릴 예정이었으나 노동자 학생 시민들 5만 여명이 가두시위를 전개함.
    - 오전 10시 30분경 시민회관 주변에 인파가 몰림.
    - 오후 2시 08분경, 시민회관 앞 사거리에서 150m 가량 떨어진 민정당 경기 제1지구당 심정구 사무실에 돌과 화염병을 던져 30분 만에 진화됨.
    - 오후 3시 40분경, 시위대가 주안역으로 향하는 도로 전봇대에 대형플래카드를 설치하려다가 경찰과 충돌함
    - 시위대가 주안사거리 길가에 주차된 레코드 승용차를 경찰을 향해 20여m 가량 끌고가다 차 안으로 화염병을 던져 전소시킴
    - 오후 4시 42분경, 시위대가 주안역 부근에서 최루탄이 실려 있던 경찰 복서트럭을 탈취하여 시민회관 앞 사거리 방향으로 300여m를 밀고가다 경찰에 의해 저지됨
    - 오후 5시 30분경, 시위대 중 300여 명은 제물포쪽으로 이동해 1시간 30여 분 동안 기습 시위를 벌임. 이 과정에서 제물포역 광장에 세워둔 동부경찰서 소속 기동순찰차 한 대에 불을 질러 반소시킴. 시위대가 경찰에 밀려 전철역 구내로 들어가면서 전철운행이 20여 분 동안 중단됨
    - 오후 5시 45분경, 경찰이 본격적으로 진압 시작.
    - 경찰에 밀려 시민회관에서 흩어진 시위대는 밤 8시 이후 남구 도화동, 중구 경동사거리, 부천역, 동인천역 등지에서 산발적인 시위 전개
    - 경찰, 5·3인천항쟁과 관련해 319명을 연행하여 인천경찰서, 동부경찰서, 부평경찰서 등에 분산해 조사 진행. 경기도경국장은 이 날의 시위에 대해 “민민련, 민통련, 인사련, 자민투 등 과격단체 회원 및 학생 등 4000여 명에 의해 저질러졌다”고 밝힘
  • 1986.05.05.

    5·3인천항쟁과 관련하여 연행된 319명 중, 129명이 폭력행위 등 처벌에 관한 법률위반,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위반 혐의 등으로 구속되고 22명은 즉심에 넘겨짐. 재야단체 인사 10명을 포함 모두 37명에 대해서는 지명수배가 내림
  • 1986.05.15.

    천주교 인천교구 정의평화위원회, 부평1동 성당에서 800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광주의거 6주기 추모미사 및 민주화대행진」 개최. 이날 천주교 인천교구 사제단이 5·18광주민주화운동 6주기를 맞이하여 「민주화는 민족의 비극을 치유하는 오직 한 길입니다」라는 제목의 시국선언문 발표. 참석자들은 행사 후 십자가를 앞세우고 부평2동 성당까지 침묵 행진을 하려고 하였으나 부평1동 성당 앞에서 정문을 봉쇄한 경찰에 의해 무산됨. 행사 하루 전인 5월 14일, 부평경찰서장이 직접 천주교 인천교구 정의평화위원회 위원장 이찬우 신부를 찾아와 시가행진에 대한 ‘경고장’을 제시한 바 있음. 이찬우 신부는 이에 대해 경기경찰국장과 부평경찰서장 앞으로 항의서한을 발송
  • 1986.05.17.

    인천지역 기독노동자연맹, 한국기독노동자 총연맹·전남기독노동자 총연맹과 함께 「기독 노동자 시국 선언문」을 발표하고 ‘보안사에 의해 비밀리에 저질러지고 있는 노동자, 학생, 민주인사에 대한 강제납치, 잔인한 고문과 폭력’에 대해 규탄. 이 성명서에서 인천지역과 관련해서는 같은 해 4월 인천보안사 군인들이 백마교회와 부천 하나교회 노동자들을 ‘강제납치하여 무지막지한 고문’을 가했다고 주장함
  • 1986.05.30.

    인천지역 노동자연맹·서울지역 노동자연맹 소속 노동자 16명, 서울 영등포동 한미은행을 점거하고 ‘노동자의 피땀을 짜는 미국 몰아내자’라고 적인 플래카드를 건물 밖에 내건 채 ‘1천만 노동자 5월 투쟁 선언’ 등의 유인물을 뿌리며 농성을 벌이다 모두 경찰에 연행됨.
  • 1986.06.*

    송림사랑방교회, 노동야학 개설
  • 1986.06.05.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 인천지역인권선교위원회, 동인교회에서 문동환 교수를 초청하여 ‘평화와 인권’이란 주제로 「6월 목요강연회」 개최
  • 1986.06.07.

    5·3인천항쟁 관련 구속자 37명, 인천교도소 수감 중 ‘소요죄 철회’, ‘구속자 전원 석방’ 등을 요구하며 7일 간에 걸친 단식에 돌입. 이들 중 3명이 실신하여 병사로 이감됨
  • 1986.06.11.

    5·3인천항쟁 관련 구속자 가족들, 구속자들이 인천교도소 수감 중 7일 간에 걸친 단식에 돌입하자 신민당 중앙당사에서 무기한 농성 시작
  • 1986.06.19.

    항동 소재 ‘연안가스’에 근무하던 신호수, 6월 11일 형사들과 함께 나간 후 전라남도 여천에서 사망한 채 발견됨.
  • 1986.06.27.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 인천지역인권선교위원회 간사, ‘부천경찰서 성고문 사건’에 대한 사실 확인을 위해 교도소를 방문하였으나 교도소 측에 의해 면회가 거절당함
  • 1986.06.29.

    송림사랑방교회, 「사랑방 배움터 열림날」 개원식 개최.
  • 1986.06.30.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 인천지역인권선교위원회, ‘부천경찰서 성고문 사건’ 피해자가 변호사를 선임해 주기를 원한다는 사실을 전해 듣자 사건 개요를 알리고 변호사 선임 의뢰
  • 1986.07.02.

    인천지역 양심수 가족 30여 명, 부천경찰서에서 ‘부천경찰서 소속 문귀동 형사가 조사 중인 대학생 출신 해고노동자 권모 양에게 성적 고문과 추행을 저질렀다’고 주장하며 사건의 진상 공개와 관련자 처벌을 요구하며 농성을 벌임
  • 1986.07.03.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 인천지역인권선교위원회 임원들, 부천경찰서를 방문해 ‘부천경찰서 성고문 사건’ 및 7월 2일 부천경찰서 앞 시위 때 위원회 간사가 연행된 데 대해 항의함
  • 1986.07.04.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 인천지역인권선교위원회, 동인교회에서 「법과 인권」이란 주제로 인권예배를 진행하고 ‘부천경찰서 성고문 사건’ 보고 및 규탄
  • 1986.07.07.

    천주교 인천교구 청년회와 개신교 6개 청년·학생·사회운동 단체들이 공동주최하고 천주교 인천교구 정의평화위원회와 기독교 인권위원회가 공동 후원하여 답동 가톨릭 회관 5층 강당에서 「부천경찰서 여대성 성고문 추행사건 규탄대회」 개최. 대회 시작 전 경찰이 답동 가톨릭회관 출입구를 봉쇄하여 30여 명만이 입장한 가운데 진행됨. 이날 대회에서 사건 관계자의 처벌과 이를 보호 육성하는 군사정부의 퇴진을 요구하는 성명서 채택
    가톨릭회관에서 ‘고문 폭력정권 타도를 위한 인천지역 민중투쟁대회’ 개최
    천주교 인천교구 정의평화위원회, NCC인천지역인권선교위원회, 천주교 인천교구 청년회, 가톨릭노동청년회 인천교구연합회, 천주교 인천교구 가톨릭대학생연합회, 인천기독청년협의회, 인천지역기독노동자연맹, 인천지역사회운동연합 등 인천지역 8개 단체가 ‘부천서 성고문 사건’과 관련하여 ‘군사독재의 성적고문, 폭행을 규탄한다’는 제하의 공동 성명서 발표
  • 1986.07.28.

    고려대학교 학생 박은미·김영진·장근영 등 3명, 인천지방검찰청 현관에서 부천경찰서 성폭행사건을 규탄하는 구호를 외치며 시위를 벌이다 구속됨
  • 1986.07.30.

    천주교 인천교구 청년회·가톨릭노동청년회·가톨릭대학생연합회, 부천 심곡1동 천주교회에서 「성고문 추방과 인권회복을 위한 미사」 공동 주최. 400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호인수 신부 등 천주교 인천교구 사제 8명이 공동 집전. 이날 행사와 관련하여 김종일(인천교구 가톨릭대학생연합회장), 곽한왕(천주교 인천교구 청년회장), 안영근(인천지역사회운동연합 집행국장)이 사전에 경찰에 의해 연금을 당하였고 행사 전날부터 전투경찰이 배치되어 행사장을 봉쇄함. 성당에 들어가지 못한 참가자들이 노상 기도회를 개최하려고 하였으나 경찰의 무력 해산으로 성사되지 못한 채 31명이 연행 당함. 연행자들은 밤 12시경 전원 석방됨
  • 1986.08.*

    8월부터 10월 사이에 인천지역 교회 노동자들이 주체가 되어 여름 수련회를 개최함. 이를 토대로 인천지역 민중교회 실무자 모임이 자발적으로 형성됨. 이후 민중교회 연대 모임은 목회자 모임과 실무자 모임 두 개의 축이 별개로 활동하면서 인천기독교 연대모임에서 만남의 기회를 가짐
  • 1986.08.13.

    인천중앙감리교회에서 8월 13일부터 8월 16일까지 「감리교 전국 청년연합회 여름선교대회」 개최. 대회 마지막 날 새벽에 청년들이 새벽구보를 하며 ‘부천경찰서 성고문 강간사건’이란 제목의 유인물을 시민들에게 나누어 주자 경찰이 이들 18명을 연행함
  • 1986.08.17.

    인천기독노동자연맹, 답동 가톨릭회관에서 ‘해방과 노동자’라는 주제로 「제1회 8·15기념 인천지역 노동자 웅변대회」 개최
    600여 명의 학생·노동자들이 오후 7시 30분부터 8시 30분까지 부평역 앞에서 ‘헌법특위 분쇄하고 민주헌법 쟁취하자’는 등의 플래카드를 들고 가두시위를 전개. 일부 시위대는 미 헌병대 정문에 화염병을 던져 초소 유리창을 깨고 부평역 앞 광장에 바리케이드를 치고 시위를 벌임. 이날 시위로 41명이 연행되어 고려대학교 학생 1명이 구속됨
  • 1986.08.24.

    인천지역 구속자 가족협의회, 답동 성당 마당에서 「인천지역 양심수를 위한 한마당 잔치」 주최. 천주교 인천교구 정의평화위원회와 인천기독교 인권선교위원회가 공동 후원함. 인천지역 양심수 현황·인천교도소 내 투쟁현황 등에 대한 소개와 함께 ‘필리핀 민주화’와 ‘광주민중항쟁’ 사진전 등을 진행함
  • 1986.08.30.

    대검이 ‘민민투’와 ‘자민투’ 관련 대학생 180명을 검거해 그중 인하대학교 학생 이용주·이장한 등 2명을 포함, 모두 169명을 구속했다고 발표함
  • 1986.09.23.

    송림사랑방교회, 한국 기독교장로회 경인노회 ‘설립 공인 예배’를 진행함. 이와 관련해 송림사랑방교회 박종렬 목사는 교회의 방향성에 대해 다음과 같이 밝힘. “가장 기쁜 소식은 저희 교회가 경인 노회에 교회 설립 청원을 드려 허락을 받고 9월 23일(셋째 주일)에 정식으로 ‘설립 공인 예배’를 노회 주관으로 드릴 수 있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1985년 12월 8일 창립예배를 본 후, 본 교회 교인들은 보다 적극적으로 이 교회를 섬기고, 이 교회가 이 땅의 가난한 민중(특히 노동자와 빈민)이 하나님의 백성으로 하나님 나라를 건설하는 주인이 될 수 있도록 온 몸과 마음을 합쳐 노력할 것을 결심하고 실천하면서 예수 그리스도의 실천적이고 총체적인 해방 운동의 삶을 배우고 확인하고 있습니다. 이제 저희 교회가 정식으로 한국 기독교장로회 경인 노회 소속 교회가 되면서 많은 선배 교역자님과 믿음의 형제들의 격려와 성원에 의해 예수 그리스도를 따르고 믿는 신앙과 실천이 더욱 굳건해 질 것을 확신합니다.”
  • 1986.09.25.

    천주교 인천교구 가톨릭대학생연합회, 답동 가톨릭회관 강당에서 전 동아일보 편집국장 송건호를 초청하여 「한반도 주변정세와 통일전망」이라는 주제로 「월례 청년 금요강좌」 개최
    인하대 학생 이원용, 전두환 독재정권에 반대하는 시위 주도
  • 1986.09.28.

    인천지역사회운동연합, 「(운수노동) 인천의 소리」 창간
    전민학련 산하 서부지역평의회와 동부지역평의회 주도로 동인천역과 부평역 등지에서 아시아경기대회 반대를 위한 기습시위를 벌이려던 대학생 및 근로자 40여 명이 사전에 정보를 입수한 경찰에 의해 현장에서 연행됨
  • 1986.09.30.

    천주교 인천교구, 답동 가톨릭회관에서 130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제4기 민중대학」 개강. 12월 3일까지 매주 화·수요일에 운영
  • 1986.10.08.

    천주교 인천교구 정의평화위원회, 답동 성당에서 「월례강좌」 개최. 전국 정의평화위원회 위원장 이돈명 변호사를 초청해 「개헌과 언론」이라는 주제로 강연회를 하는 한편, 제정구의 막사이사이상 수상 보고회를 가짐
  • 1986.10.19.

    해인교회, 놀이마당 탈춤반 1기 시작
  • 1986.10.31.

    천주교 인천교구 가톨릭대학생연합회, 답동 가톨릭회관 504호에서 이재오를 초청하여 「한국 사회에서의 학생운동의 위치와 방향」이라는 주제로 「월례 청년 금요강좌」 개최
    문교부가 10월 14일부터 재단비리 문제로 학내분규를 겪고 있는 인천대학교에 대해 휴교령을 내림
  • 1986.11.01.

    10월 14일부터 설립자 백인엽의 퇴진 등을 요구하며 학장실 등을 점거하고 농성을 벌여온 인천대학교 학생들 중 13명이 교내에 진입한 경찰들에 의해 연행됨
  • 1986.11.05.

    문교부가 인천대학교 학내 분규 사태와 관련해 학사운영 전반에 걸친 종합감사에 착수함
  • 1986.11.08.

    천주교 인천교구 청년회, 만석동 재개발 지역 434세대를 철거하고 관광도로화한다는 정부의 재개발 정책에 따른 주민 공청회를 개최하려다 경찰의 제지로 강제 해산 당함
  • 1986.11.12.

    치안본부가 사회주의혁명을 일으킬 목적으로 ‘반제동맹당(AILG)’결성을 기도해 온 관련자 16명을 검거했다고 발표함. 치안본부의 발표에 따르면, 서울대학교 제적생들과 휴학생들인 이들은 11월 9일 인하대학교 휴게실에서 ‘반제동맹 준비위원회’와 ‘투쟁위원회’를 결성하고 조직부 산하에 주안지역 지도부와 부평지역 지도부 등을 두었다고 함
  • 1986.11.23.

    천주교 인천교구 정의평화위원회, 천주교 인천교구 청년회가 11월 8일 만석동 재개발 지역 주민 문제 해결을 위한 공청회를 열려다 경찰에 의해 강제 해산당한 데 대해 항의하는 성명서 발표
  • 1986.11.24.

    인천지역사회운동연합·인천기독청년협의회·인천지역 기독노동자연맹·천주교 인천교구 청년회·천주교 인천교구 가톨릭노동청년회·천주교 인천교구 가톨릭대학생연합회, ‘장기집권음모 분쇄를 위한 인천지역공동대책위원회’ 결성
  • 1986.11.30.

    인천지역 기독노동자연맹·천주교 인천교구 가톨릭노동청년회, 부천시 삼정동 성당에서 「86노동문화제」 개최
    천주교 인천교구 가톨릭노동청년회와 인천지역 기독노동자연맹이 공동으로 「조국 자주화와 민주화를 위한 그리스도 노동자 공동 선언」 발표
    천주교 인천교구 가톨릭대학생연합회, 답동 가톨릭회관 6층에서 100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민족해방의 성서·신학적 근거」라는 주제로 「‘86빡스제」 개최
  • 1986.12.04.

    천주교 인천교구 정의평화위원회, 답동 성당에서 500여 명의 수도자와 신자들이 참석한 가운데 나 굴리엘모 주교와 교구 사제단의 공동 집전으로 「민주화와 정의·평화를 위한 기원미사」를 봉헌하고 1987년 1월 1일까지 한 달 간 「민주화와 정의·평화를 위한 기원 운동」 전개
  • 1986.12.06.

    인천대학교 강치원·김주익 교수, 선인학원 설립자인 백인엽의 완전 퇴진 등을 요구하며 발생한 학내 분규와 관련하여 인천대학교 재단인 선인학원으로부터 ‘배후조종책임’을 사유로 해직 당함. 12월 9일에는 농성을 주도한 학생 5명이 제적당하고 17명이 무기정학 처분을 받음
  • 1986.12.14.

    장기집권 음모 분쇄를 위한 인천지역 공동대책위원회, 답동 가톨릭회관 5층에서 「나라의 민주화를 위한 인천시민대회」를 개최할 예정이었으나 경찰이 답동 가톨릭회관 출입구를 봉쇄하고 회관 내부에 들어와 5층 강당으로 통하는 통로를 폐쇄하여 무산됨
  • 1986.12.19.

    천주교 인천교구 정의평화위원회, 양심수 돕기 성금 모금을 통해 모인 300만 원을 인천교도소 양심수 가족 대표와 5·3인천사태 관련 구속자 가족 대표를 초대하여 전달
  • 1986.12.28.

    천주교 인천교구 청년회·천주교 인천교구 가톨릭 노동청년회·천주교 인천교구 가톨릭대학생연합회, 답동 가톨릭회관 312호에서 200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청년단체 연합 송년미사 및 송년잔치」 개최. 교육국장 김재영 신부는 강론에서 ‘민주화를 소망하는 바람은 우리 모두의 의지이며 그 일을 이루려다 우리 대신 차가운 감방에 갇혀 있는 양심수들을 기억하고 가톨릭인으로써의 직분에 맞게 행동해야 할 것’이라고 당부하였으며, 천주교 사회운동협의회 사무국장 이명준은 ‘가톨릭 운동과 ‘86년 정세분석’이라는 주제로 강연 진행
  • 1987.*.*

    놀이패 한광대 결성
    문화기획 일손나눔 결성
  • 1987.01.12.

    인천지역 사회운동연합 이호웅 의장, 5·3인천민주항쟁과 관련해 ‘소요죄’로 수배를 받아오던 중 경찰에 체포됨
  • 1987.01.25.

    인천기독청년협의회·인천지역 기독노동자연맹·인천기독교도시산업선교회, 일꾼교회에서 목회자, 노동자, 청년, 학생 등 350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고 박종철 군 추모예배 및 살인 고문 정권 규탄대회」 개최. 송림사랑방 교회 박종렬 목사가 설교를 맡음. 대회를 마친 참석자들은 ‘박종철을 살려내라!’, ‘고문정권 타도하자!’, ‘양심수를 석방하라’‘ 등의 구호를 쓴 어깨띠를 한 목회자들의 뒤를 따라 동인천역까지 침묵 시가행진을 하려고 했으나 경찰이 저지하면서 32명이 연행됨
  • 1987.01.26.

    천주교 인천교구 사제단과 평신도사도직협의회 공동 주최로 답동 성당, 부평1동 성당, 소사 성당 세 곳에서 「박종철 군을 위한 추모미사 및 진혼제」 동시 개최. 답동성당 추모미사에서 호인수 신부는 ‘우리는 모두 죄인이다. 하물며 대통령은 주인의 목숨을 앗아간 머슴이며 이 책임을 통감하고 사퇴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라면 나와 사제들은 두려움 없이 감옥을 향해 가고자 한다. 박종철의 죽음은 결코 있어서는 안 될 일이기에 우리는 모두 분노하고 그런 한편 기도하면서 의로운 마음을 행동으로 보여야 한다’는 내용의 강론 진행
  • 1987.02.*

    인천지역 소재 ‘써클’들이 모여 공동으로 대중사업을 추진하기 위해 ‘상록수’라는 이름의 써클협의체 구성. 후에 보안상의 이유로 명칭을 ‘교회’로 바꿈. 산하에 교육부, 홍보부, 투쟁지도부가 있었음. ‘교회’ 역량의 대부분이 후에 ‘인천지역 민주노조건설 공동실천위원회’에 참여함
  • 1987.02.07.

    천주교 인천교구 사제단, 전국적으로 진행된 「고 박종철군 국민추도회」에 맞춰 답동 가톨릭회관 6층에서 오후 2시부터 1시간 30분 동안 검은 조기를 걸고 옥외 추모방송 실시
  • 1987.02.08.

    감리교 인천 주안지방회의 결의에 따라 동암역 광장에서 청암교회·선린교회·만성제일교회·광명교회·만수교회·인천교회·만수중앙교회·샘터교회·미문교회 등에서 참가한 교인 200여 명이 모여 추모기도회를 진행함. 감리교 인천 주안지방회는 지방회 교역자회의 결의로 ‘① 2월 8일(일) 주일 예배를 고 박종철군 추모 예배로 드린다. ② 지방회 소속 2만 명 전교인은 추모 의미로 검은 리본을 단다. ③ 교단 총회 성명서를 2만 장을 인쇄하여 전교인에게 배포한다. ④ 주일 추모예배 후에 지방회 소속 교인들은 침묵 시가행진을 하여 동암역 북부역 광장에 집결해 연합 추모 기도회를 갖는다’ 등의 결의를 하였음. 이날 선린교회와 청암교회에는 경찰들이 배치돼 교회 정문을 차단하고 침묵 행진을 저지하였으나 선린교회에서는 교회 마당에서 600여 명의 교인이 모인 가운데 추도식을 개최함
    감리교 인천 북부지방, 지방회의 결의에 따라 갈월교회에서 「고문 추방 기도회」 개최.
  • 1987.02.10.

    창영교회에서 개최된 「제38회 동지방회」에서 지방회원의 결의로 「고문 추방을 위한 특별 기도시간」을 가짐
  • 1987.03.01.

    인천지역 사회운동연합, 인천지역 구속자가족협의회와 함께 인천시 남구 주안1동 140-8번지(4층)로 사무실을 이전
  • 1987.03.10.

    천주교 인천교구 가톨릭노동청년회, 답동 가톨릭회관에서 800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제42회 노동절 기념 노동자 잔치」 개최
  • 1987.03.15.

    주안5동 성당, 교육관에서 「노동자 월례미사」 봉헌
  • 1987.03.18.

    인천교도소에 수감 중인 양심수 86명, 교도소 측이 8명의 양심수를 ‘특별 사동’에 수감한 데 대해 ‘별사철폐’를 요구하며 무기한 단식 돌입. 그중 3월 12일부터 ‘특별 사동’에 수감된 양심수 8명은 당일부터 단식에 들어감
  • 1987.04.07.

    선린감리교회(당시 담임 권용각 목사)에서 인천지역 인권선교위원회 주최 제4차 목회자 세미나 개최
  • 1987.04.19.

    주안5동 성당, 교육관에서 「노동자를 위한 월례미사」 개최
    천주교 인천교구 청년회·천주교 인천교구 가톨릭대학생연합회·천주교 인천교구 가톨릭노동청년연합회, 주안1동 성당에서 「부활과 4·19기념미사」 봉헌
  • 1987.04.24.

    천주교 인천교구, 답동 가톨릭회관 504호에서 광주 민중항쟁 체험자 김현채를 초청하여 「광주여! 한반도의 십자가여!」라는 주제로 「월례 청년 금요강좌」 개최
  • 1987.04.29.

    천주교 인천교구, 긴급 사제총회를 개최하여 광주·전주·서울 교구에서 진행 중인 사제들의 단식기도에 대해 지지를 보낸 후 동참 결의
  • 1987.04.30.

    천주교 인천교구 사제단, 오후 8시 「민주개헌과 자주적 민주 정부 수립을 기원하는 미사」를 봉헌한 후 성명서를 발표해 광주·전주·서울교구 사제들의 단식기도에 동참한다는 입장을 밝히며 답동 가톨릭회관 6층에서 5월 6일까지 단식기도 돌입. 천주교 인천교구 평신도 사도직협의회가 사제단의 단식기도를 지지하며 대형 플래카드 3개를 제작해 답동 가톨릭회관 건물에 부착함
  • 1987.05.01.

    천주교 인천교구 청년회·가톨릭대학생연합회 등 청년 100여 명, 단식 중인 천주교 인천교구 사제들을 지지하며 답동 가톨릭회관에서 철야기도회 개최
  • 1987.05.03.

    인천지역 기독노동자연맹, 샘터교회에서 「8시간 노동제 쟁취기념 노동자 잔치」 개최. 인천기독교 도시산업선교회 후원
  • 1987.05.04.

    인천지역 선교위원회, ‘나라와 민족을 위한 금식기도 주간 선포 및 직선제 민주헌법 실현을 위한 서명운동 취지문 발표’를 마친 후 인천제일감리교회에서 20여 명이 무기한 단식농성에 돌입
    천주교 인천교구 신자 1000여 명, 단식중인 사제들과 함께 답동 가톨릭회관 정문을 나와 노상기도회 개최
  • 1987.05.05.

    천주교 인천교구 신자 1000여 명, 미사가 끝난 후 수도자들과 함께 답동 가톨릭회관 정문 앞에서 경찰과 대치하며 노상기도회 개최
  • 1987.05.06.

    천주교 인천교구 사제단, 답동 성당에서 나길모 주교의 주례로 신자 3000여 명과 함께 단식기도 폐회 미사를 봉헌한 후 「민주화를 위한 인천교구 사제단의 단식기도를 마치면서」라는 제목의 결의문 채택. 미사가 끝난 후 2000여 명의 신자들이 답동 가톨릭회관 정문 앞에서 노상기도회를 개최하고 각 본당으로 돌아가는 사제들을 전송함
    인천지역 기독노동자연맹, ‘호헌 철폐와 민주헌법 쟁취를 위한 성직자들의 단식농성을 적극 지지합니다’라는 제목의 성명서 발표
  • 1987.05.07.

    인하대학교 교수 28명, 개헌논의 조속한 재개를 촉구하는 시국성명 발표
  • 1987.05.08.

    부평1동 성당, 인하대 행정학과 김영규 교수를 초청하여 「우리의 현실과 소득재분배」라는 주제로 「부평지구 월례강좌」 개최
  • 1987.05.10.

    해인교회, 기독교 노동상담소(희망의 전화) 개설
  • 1987.05.13.

    해인교회, 노동자 공부방 1기 시작
  • 1987.05.14.

    송림동 성당 청년회 회원이자 15년 간 공장 생활을 한 박태영, 음독 자살
  • 1987.05.16.

    천주교 인천교구 청년회·천주교 인천교구 가톨릭대학생연합회·천주교 인천교구 노동청년회, ‘광주항쟁 7주기 추모행사’의 일환으로 5월 27일까지 추모기간으로 설정하고 추모 문화제 ‘그 모진 봄날에’를 개최. 광주 사진전·미술전·비디오 상영·연극 공연 행사 등이 주안1동 성당, 답동 성당, 부평1동 성당, 소사성당에서 각각 3일씩 개최됨
  • 1987.05.17.

    천주교 인천교구, 「광주항쟁 7주기 추모행사」의 일환으로 5월 17일~24일 간을 추모기도주간으로 설정(기도지향 : 광주영령 추모 및 민주화 기원)
  • 1987.05.20.

    천주교 인천교구 정의평화위원회, 「광주항쟁 7주기 추모행사」의 일환으로 답동 성당에서 추모미사 주관
  • 1987.05.24.

    호헌분쇄 및 민주개헌을 위한 인천지역공동대책위원회, 부평역 광장에서 「광주영령 추모 및 민주개헌을 위한 인천지역 시민대회」를 개최할 예정이었으나 경찰이 부평역과 백운역을 폐쇄함. 이에 맞서 학생 50여 명이 백운역 고가도로 주변에서 5분간 시위를 전개하였고, 이후 300~400여 명의 시위대열이 형성되어 부평시장 로타리, 부평1동성당 부근, 북구청 앞 도로, 백마장 입구 등지에서 투석전을 벌이며 시위를 전개함. 북구청 앞 도로에서는 2000여 명의 시민들이 모임
  • 1987.05.28.

    인천지역 사회운동연합 이호웅 의장, 인천지법 101호 법정에서 5·3인천민주항쟁과 관련해 ‘소요죄’로 재판을 받던 중 재판을 거부하며 퇴정
  • 1987.05.29.

    천주교 인천교구, 답동 가톨릭회관에서 한국정의평화위원회 위원장 이돈명 변호사를 초청하여 「제5공화국과 인권현실」이라는 주제로 「월례 금요강좌」 개최
  • 1987.06.*

    송림사랑방교회, 노동자들의 놀이공간을 위한 문화마당 개설(탈반)
  • 1987.06.10.

    오후 4시 20분경부터 답동 가톨릭회관에서 국민대회 참가를 알리는 가두 방송이 실시되고, 민주헌법쟁취 인천지역 공동대책위원회가 주최하는 인천시민대회가 부평역 앞에서 개최됨. 십정동에서 사전 회합을 가진 종교계 인사들이 부평역으로 이동, 목사 한 명이 십자가를 들고 부평대로에 나서면서 국민대회가 시작됨. 거리에 모인 사람들은 곧 북구청(지금의 부평구보건소) 방향으로 행진을 시작
  • 1987.06.28.

    인천지역 기독노동자연맹 여성부, 청암감리교회에서 ‘그대 벅찬 샘물처럼 -여성노동자의 기쁨과 슬픔 그리고 사랑’이라는 주제로 「제1회 인천지역 여성노동자대회」 개최
  • 1987.07.01.

    천주교 인천교구 가톨릭대학생연합회·천주교 인천교구 꾸리아 연합회·천주교 인천교구 노동청년연합회·천주교 인천교구 청년회, 답동 성당에서 오후 7시 30분, ‘주여! 이 시대가 요구하는 십자가를 지고서 당신을 따를 수 있게 하소서’라는 지향 아래 「조국의 민주화를 위한 기도회」 공동 주최. 천주교 인천교구 정의평화위원회와 천주교 인천교구 교육국이 후원한 가운데 1000여 명의 신자와 단체 회원들 참석.
    선일연마 노동자들, ‘임금 인상과 상여금 지급’을 요구하며 파업 농성 돌입
  • 1987.07.02.

    대성합성화학 노동자들, ‘임금 1500원 인상, 화공약품 사용에 대한 대책’ 등 14개 항의 요구 조건을 내걸고 파업 돌입. 대성합성화학은 청천동에 위치
  • 1987.07.08.

    인천지역사회운동연합 황선진 시민위원장과 홍성복 전 편집실장, 5·3인천민주항쟁으로 수배를 받아오다가 이 날로 수배 해제
  • 1987.07.09.

    영원통신 노동자들, ‘임금 인상, 각종 후생복지 개선’ 등을 요구하며 파업 농성 돌입
  • 1987.07.11.

    한독금속 노동조합 결성
  • 1987.07.12.

    인천지역 공동대책위원회, 인천지역 민주화실천 가족운동협의회, 인천지역대학생대표자협의회 공동 주최로 「고 이한열 열사 추모 및 양심수 전원 석방을 위한 인천 시민대회」가 자유공원에서 개최됨. 자유공원으로 향하는 모든 골목이 경찰에 의해 차단된 상태에서 대회장에 있던참가자들은 경찰에 연행되고 대회장에 들어가지 못한 사람들은 가톨릭 회관 앞에서 대회 개최를 시도하다가 경찰에 밀려 답동 가톨릭회관 안으로 들어가 농성
    한독금속 노동자 72명, 회사 내 식당에서 창립총회 개최
  • 1987.07.13.

    남일금속 노동자 37명, 7월 11일 설립된 어용노조에 맞서 민주노조 결성
  • 1987.07.14.

    서울조구 노동자 250여 명, ‘상여금 100% 지급, 하기 유급 휴가’ 등을 요구하며 파업 돌입. 7월 15일 회사 측이 요구 조건을 수락하면서 해산함. 서울조구는 효성동에 위치하며 200여 명의 노동자가 근무하고 있었음
  • 1987.07.16.

    성진운수 노동자 80여 명, '일일업적금제 실시' 등을 요구하며 파업 농성 돌입
    태원 노동자들, ‘임금 재인상, 보너스’ 등을 요구하며 파업 농성. 7월 20일 개최된 노사협의회에서 ‘임금 500원, 보너스 350%, 여름 유금 휴가’ 등에 합의하며 타결됨. 태원은 1987년 설립된 회사로 효성동에 위치하며 200여 명의 노동자들이 근무. 낚싯대 생산 업체임
  • 1987.07.17.

    인천지역 해고노동자협의회, 창립선언문 발표
  • 1987.07.19.

    인천지역 해고노동자협의회, 주안1동 성당에서 창립대회 개최
  • 1987.07.20.

    금강운수 노동조합 조합원 80여 명, 성진운수 노동자들의 파업에 동조하여 일일업적금제 등을 요구하며 파업 농성 시작
  • 1987.07.21.

    남일금속 노동조합, 「어용노조 타도 및 민주노조 쟁취대회」 개최
    신흥목재 노동자들, ‘여름 유급 휴가, 보너스 지급’ 등을 요구하며 7월 24일까지 파업 농성 돌입.
  • 1987.07.22.

    인천지역 기독노동자연맹·기독교 도시산업선교회·민주노조를 위해 싸우는 노동자일동·인천지역 해고노동자협의회·인천지역 민주노동자연맹, 7월 21일 남일금속 노동자들이 「어용노조 타도 및 민주노조 쟁취대회」를 개최하던 중 폭행당한 사건에 대하여 ‘남일금속에서 자행되는 살인적 폭력을 분쇄하자!’는 제목의 성명서 발표
    주안5동 성당에서 「고 민철기 선생 민주가족장」 거행. 민주통일민중운동연합 문익환 의장을 비롯, 민주인사, 학생, 시민 등 1000여 명이 참석. 민철기는 6·29 선언 이후에도 정부의 선별 석방조치에 따라 아들인 민경석(고려대학교 수학과 4년)이 석방에서 제외되자 이에 충격을 받고 쓰러져 7월 17일 사망
  • 1987.04.24.

    삼호목재 노동자들, ‘임금 1만 원, 근속 수당, 유급 휴가 실시’ 등을 요구하며 파업 돌입
    한성운수 노동자들, 성진운수 노동자들의 파업에 동조하여 파업 농성 시작
  • 1987.07.25.

    한세실업 여성 노동자들, 노동조합 결성. 8월 1일 신고필증 받음
  • 1987.07.26.

    가톨릭노동청년회 인천교구연합회·한국노동자복지협의회 인천지역협의회·인천지역 기독노동자연맹·인천민주노동자연맹·인천지역 해고노동자협의회 공동 주최로 부천 원미동 성당에서 「노동기본권 쟁취대회」 개최
    남일금속 해고노동자 및 현장 노동자 10여 명, 사장실을 점거하며 농성을 벌임
    동산운수 노동자들, 성진운수 노동자들의 파업에 동조하여 파업 농성 시작
    대우중공업 해고노동자 및 강제사직자, 내부 노동자 등 20여 명이 모여 ‘대우중공업 노동자 복직추진위원회’ 결성
    한전유화 노동조합 결성. 한전유화는 가좌동에 위치함
    태연물산 노동조합 결성. 태연물산은 1979년 설립된 봉제 회사로, 1986년 11월 29일 업종을 전자 완구로 변경하였음. 갈산동 152-12에 위치하며 170여 명의 노동자 중 남자가 30여 명, 여자가 140여 명임
  • 1987.07.27.

    메탈리안 노동자들, ‘임금 인상, 보너스’ 등을 요구하며 7월 28일까지 파업 농성 벌임
    신신교통 노동조합 결성
  • 1987.07.28.

    부광교통·성산교통 노동자들, 성진운수 노동자들의 파업에 동조하여 파업 농성 시작. 인천 택시기사들의 연대 파업 농성이 계속 이어지자 택시사업조합 측이 노사협의회를 요구하여 ‘20일 기준의 업적금제 실시’ 등 9개 항의 양보안을 제시, 일괄 타결됨. 이에 따라 성진운수를 제외하고 각 회사 노동자들이 파업 농성을 끝냄
  • 1987.07.31.

    세진화인케미칼 노동자들, ‘보너스 450%, 월차 수당’ 등 11개 항의 요구 조건을 내걸고 파업 농성. 회사는 가좌동에 위치
    한국그랜드 노동조합 결성. 회사는 효성동에 위치
  • 1987.08.01.

    인천지역 기독노동자연맹 주최로 충북 금강유역 매포수양관에서 인천·부천지역 노동자 350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노동자 여름수련대회」 개최. 이날 물에 빠진 동료를 구하려다 박용선·유인식·김현욱·이대용 등 4명이 사망함
  • 1987.08.04.

    인천조선 노동조합 설립. 8월 5일 노동조합 설립신고서를 제출하고 8월 17일 신고필증을 교부 받음. 인천조선은 1973년 설립한 회사로 중구 항동 74에 위치하며 생산직 노동자는 1200여 명 가량이 근무중
  • 1987.08.05.

    인천지역 기독노동자연맹, 8월 1일 발생한 「노동자 여름수련대회」 익사 사고와 관련하여 ‘네 분 노동동지께서 희생을 하신 사건경과를 밝힙니다’라는 제목의 유인물 발표
  • 1987.08.06.

    대우중공업 노동자들, ‘5만 원 인상, 상여금 600% 인상’ 등을 요구하며 파업 농성 돌입.
    대한마이크로 노동자 30여 명, 「노동조합 복구대회」 개최
    대한화학기계 노동자 50여 명 파업 농성 벌임. 회사는는 효성동에 위치
    세일 노동자들, ‘여름 휴가 5일, 보너스 400%’ 등을 요구하며 농성
  • 1987.08.07.

    경동산업 노동자 374명, 어용노조 집행부 불신임 총회를 열어 만장일치로 불신임안을 통과시키고 공장별로 새 대표부 구성. 같은 날, 새 대표부를 중심으로 ‘어용노조 퇴진, 민주노조 건설’을 외치며 파업농성 전개
    세화공업 노동자들 8월 8일까지 ‘임금 20%, 보너스 600%’ 등을 요구하며 파업 돌입
  • 1987.08.10.

    대우중공업 인천공장 노동자 1000여 명, 10월 5일부터 ‘임금 5만 원 인상’ 등을 요구하며 농성을 벌여오던 중 10월 9일 하루 휴식을 가진 후 이날부터 농성 재개
    신광기업 노동자들, ‘일당 1650원 인상’ 등을 요구하며 파업 돌입. 신광기업은 일신동에 위치함
    우아미 가구 노동자들, ‘노조 민주화 추진위원회’를 중심으로 8월 11일까지 ‘어용노조 퇴진과 민주노조 건설을 위한 서명’을 전개하여 생산직 노동자 70%의 지지를 받음
    인천조선 노동조합 결성
    한국종합기계 노동자 700여 명, ‘임금 11%, 보너스 600%’ 등 15개 항의 요구 조건을 내걸고 파업 돌입
  • 1987.08.11.

    보루네오통상 노동자들, ‘임금 인상, 보너스 인상’ 등을 요구하며 파업
    삼양식품공업 노동자들, 파업 농성. 회사는 효성동에 위치
    삼익악기 노동자 1000여 명, ‘어용노조 퇴진, 노조위원장 직선제, 임금 인상’ 등을 요구하며 파업 돌입
    신광전기 노동자들 ‘임금 인상, 보너스 지급’ 등을 요구하며 파업 돌입
    한일튜브공업 학생출신 노동자 3명을 포함한 11명의 노동자가 노조결성추진위원회 결성
    한국미싱공업주식회사 조립1과 노동자 11명, 봉급에 불만을 품고 잔업을 거부한 채 퇴근하여 모임을 가지면서 다음날 일당 차별 폐지와 임금 인상 등을 요구하기로 결의한 후 해산. 한국미싱공업주식회사는 부개동에 위치하며 250여 명 가량의 생산직 노동자가 근무하고 있음
    한국타이어 부평공장 노동자들, ‘임금 20%, 보너스 400%, 상여금 차등 지급 폐지’ 등을 요구하며 농성. 회사는 석남동에 위치
  • 1987.08.12.

    대원운반기계 노동자들, ‘보너스 300% 지급, 체불임금 지급, 유급휴가 실시’ 등을 요구하며 전원 파업 농성 돌입
    서울조구 노동조합 결성
    우아미 가구 노동자들 점심을 거부하고 8월 10일~11일 간 진행한 「어용노조 퇴진과 민주노조 건설을 위한 서명 보고대회 및 어용노조 규탄대회」 공고를 공개적으로 게시함. 이 일과 관련해 노동자 4명이 총무과장으로부터 유인물을 배포하고 노동자들을 선동했다는 사유로 구두 해고 당함
    인천중앙병원에 입원 중인 산업재해환자 800여 명, 가족 200여 명과 함께 8월 15일까지 ‘휴업보상 100% 지급’, ‘근본적인 생계대책 마련’ 등을 요구하며 농성.
    인천조선 노동조합, 회사 측의 휴업공고로 8월 19일까지 파업농성 돌입. 파업농성으로 사무장 박경배 등 4명이 구속 당함
    코리아스파이서 노동자들, 회사 측의 휴업 조치에 맞서 ‘부당휴업 철회, 어용 노조 퇴진’ 등을 요구하며 농성 돌입
    한국미싱공업주식회사 조립1과 노동자 11명, 전날 잔업을 거부하고 퇴근한 일로 인해 부서장에게 지하 식당으로 불려가 간부들에게 폭언과 폭행을 당함. 이를 본 공작3과 노동자들이 분노하여 조립1과 노동자들과 함께하기로 결의함. 노동자 30여 명이 오후 5시 30분 퇴근 후 모임을 갖고 다음날 오전 8시 30분 작업시작 벨이 울릴 때 모두 나와 옥상에서 농성하기로 결정
    한국종합기계 노동자들, ‘임금 인상’ 등을 요구하며 파업 농성 돌입
    풍산금속 노동자들, ‘어용노조 퇴진, 임금 30% 인상, 보너스 400%’ 등을 요구하며 농성
  • 1987.08.13.

    로얄토토 노동자들, 파업 농성에 돌입
    인천지역 민주노조건설 공동실천위원회, 일꾼교회에서 업무 시작
    삼경무역 노동자들, 파업 농성 벌임. 회사는 작전동에 위치
    성진운수, 노사 양쪽이 임금협상에 합의하여 29일간의 파업 농성을 끝냄
    세진음향 노동자 35명, 노동조합 결성식 개최. 세진음향은 가좌동에 위치함
    신광기업 노동자들, 회사 식당에서 노동조합 결성식 개최. 위원장에 김풍걸, 총부부장에 김승환 선출. 8월 20일, 노동조합 설립신고필증 교부 받음. 9월 19일, 현판식 개최
    신흥목재 노동자 40여 명, 7월 파업 때 농성을 주도한 노동자들에 대한 해고 공고가 나오자 이에 항의하며 농성을 벌임
    우아미 가구 노동조합 결성. 이 날 회사 관리자들이 정문을 차단하자 노동자들이 정문에서 노동조합을 결성함. 회사 안에 있던 노동자들이 작업에 들어가지 않고 있다가 정문을 개방시키고 합류하여 150여 명이 파업 농성을 시작함
    인천조선 노동자들, 회사 측과 교섭이 결렬된 후 오전 10시경 본관 앞 조회장에 집결해 농성 돌입. 8월 14일까지 농성을 진행하다가 월급을 수령한 뒤라 귀가하기를 원하는 조합원들이 많아 일단 해산한 후 8월 17일 다시 농성을 시작하기로 함
    코리아 스파이서 노동조합 조합원 487명, 임시총회를 열어 어용집행부에 대한 불신임안을 통과시킨 후 새로 임시집행부를 구성하고 위원장에 유학천 선임. 임시총회에서는 또한 ‘임금 인상 5만원’, ‘최저임금 일당 7000원’ 등 11개 요구사항을 결의하여 회사 측에 제시. 회사 측은 이날 조합원 총회가 예정되자 하루 전인 8월 12일 휴업공고를 냈음
    풍산금속 부평공장 노동자들, 지게차를 앞세우고 전원 파업 농성 돌입
    한국미싱공업주식회사 노동자 30여 명, 작업시작 벨이 울리자 일부는 정원에서, 일부는 옥상에서 농성을 시작. 참가 인원은 곧 45명으로 늘어났고 얼마 후 모두 옥상으로 집결해 농성 이어감. 회사 이사와의 협상에서 ‘일당 1500원 인상’, ‘상여금 400% 지급’, ‘공휴일 유급으로 처리’, ‘월차, 연차 휴가 실시’ 등 10개 항을 요구하여 임금을 다음 해 4월에 인상한다는 조건을 달고 합의서를 작성한 후 해산
    화인공예 파업 돌입. 회사는 갈산동에 위치함
  • 1987.08.14.

    신흥 노동자들, 파업 농성 돌입. 회사는 효성동에 위치
    인천조선 노동자 600여 명, ‘근속수당 현실화’ 등을 요구하며 농성 돌입. 8월 15일, 회사측으로부터 요구 조건을 적극적으로 수용하겠다는 약속을 받고 농성을 끝냄
    중앙병원 환자 150여 명, 휠체어를 타고 가족 50여 명과 함께 경인국도로 나와 도로를 점거한 채 농성을 벌임
    코리아스파이서 노동조합 조합원, ‘부당휴업 철회하라’ 등이 적힌 플래카드를 앞세우고 부평공단 한독시계, 대우자동차 후문 쪽을 경유하여 갈산시장까지 가두행진을 전개.
    코리아스테플 노동자들, ‘최저 생계비 보장, 상여금 400% 지급’ 등을 요구하며 농성 시작. 8월 18일 회사가 무기한 휴업공고를 내자 노동조합을 결성해 농성을 이어감
    한국미싱공업주식회사 노동조합 결성. 이 날 오전 8시 30분 회사 측이 무기한 휴업 공고를 내걸고, 몽둥이 등으로 무장한 회사 간부와 관리자들이 노동자들의 출입을 막음. 회사 측은 8월 13일의 합의사항이 백지화 되었다고 말하며 노동조합 결성을 절대 허용할 수 없다고 공표. 출입을 제지당한 회사 노동자들이 문 앞에서 농성을 벌이려 하자 회사 측 사람들이 집단폭행을 가하여 5명이 부상을 당했으며 다시 대열을 정비한 노동자들이 노동조합 결성식을 갖고 위원장에 정만호를 선출. 오후 3시경 인천시청에 노동조합 설립 신고서를 제출하러 갔으나 이미 회사측에서 신고서를 제출한 상태라 반려 당함. 45명의 노동자들은 오후 7시경 ‘노조 인정’ 등을 요구하며 농성에 돌입하였으니 밤 9시 30분경 경찰에 의해 해산 당함
  • 1987.08.15.

    부국철강공업 노동자들, 파업 농성 돌입. 회사는 도화동에 위치
    선창산업 노동자 400여 명, ‘임금 30% 인상’ 등 3개 항의 요구조건을 내걸고 농성 돌입
    인천조선 노동자들, 8월 17일 노사협의회를 열기로 합의한 후 농성 해제
    한세실업 노동조합, 14일 회사 측의 예고없는 잔업을 조합원들이 거부하자 관리자들이 정문을 폐쇄하고 노동자들을 폭행한 사건에 대해 ‘폭행관리자 공개사과’와 ‘노조와 교섭할 것’ 등을 요구하며 농성 돌입
    한영알미늄, 8월 15일부터 9월 2일까지 임금 인상 등을 요구하며 파업
    한국미싱공업주식회사 노동자 30여 명, 오전 8시경 회사 앞에서 농성 시작. 회사 대표가 노동자들을 유인해 회사 안 광장으로 데리고 들어간 후 사직서를 강요했으나 노동자들이 거부. 회사 측 사람들이 폭행을 가하기 시작했고 결국, 노동자들이 사직서를 쓰고 밖으로 나옴. 그 중 한 명은 회사 측이 난수표가 발견되었다고 선전하며 불순분자로 몰아 회사에 감금 당함.
  • 1987.08.16.

    대한마이크로 노동자 30여 명, 임시총회를 개최하고 노동조합 재건
  • 1987.08.17.

    인천지역 해고노동자협의회, 일꾼교회 3층에 사무실을 마련하고 입주식 개최
    경동산업 노동자들, 회사가 이틀간 휴업 공고를 내자 500여 명이 구사대를 밀치고 회사로 들어가 파업 농성 돌입. ‘일당 1400원, 해고자 복직, 어용노조 퇴진’ 등을 요구하며 8월 30일까지 파업 농성을 전개하여 ‘일당 1000원 인상, 해고자 6명 복직, 어용집행부 사퇴’ 등의 결과를 얻음
    고능 노동자들 파업 농성. 회사는 효성동에 위치
    신영전기 노동자 120명, 회사 측의 휴업에 항의 농성 전개
    대림통상 노동자 1500여 명, 파업 농성 돌입
    대우전자 노동자 800여 명, 파업 농성
    대흥기계 노동자 260명, 14일 간 파업 돌입
    동진화성 노동자들, 농성 벌임
    새한실업 노동자들, 임금 인상 등을 요구하며 파업 농성 돌입
    신한공기 노동자들, 임금 인상 등을 요구하며 파업 농성 돌입
    영창악기 노동자 2000여 명, ‘일당 1500원, 보너스 600%, 위원장 직선’ 등을 요구하며 파업 농성 돌입
    ‘왕자표 보일러’ 노동자 30명 전원, 파업 농성 돌입
    우진실크 노동자들, 임금 인상 등을 요구하며 파업 농성 돌입
    인천조선 노동자들, 오전 8시 30분경부터 전원이 작업을 거부하고 농성에 들어가며 노사간 협의를 시작했으나 8월 18일 재협상을 진행하기로 하고 퇴근함
    콜트악기 노동자 300여 명, ‘임금 5만 원, 보너스 600%’ 등을 요구하며 파업 돌입
    한국강관 노동자들, 파업 농성 벌임. 회사는 학익동에 위치
    한양목재 노동자 300여 명, 파업 농성 벌임
    한영알미늄 노동자들, ‘임금 1000원 인상, 민주노조건설’ 등을 요구하며 9월 2일까지 파업농성 전개
    한일튜브공업 노동자들, 임금 인상을 요구하며 파업 돌입
    현대철구사업부 농성 벌임
    협진염직 노동자들 파업 농성. 8월 18일, ‘임금 20%, 보너스 250%’로 타결을 봄. 회사는 효성동에 위치
    화영 노동자들, 임금 인상 등을 요구하며 파업 농성 돌입
    인성전자·인우데크레코 노동자들, ‘임금 30% 인상, 보너스 400% 지급’ 등을 요구하며 파업 농성 돌입. 두 회사는 법인은 다르나 같은 건물에서 함께 일을 함
  • 1987.08.17.

    경동산업 노동자 800여 명, ‘임금 인상, 어용노조 퇴진’ 등을 요구하며 영창악기 앞까지 가두행진 전개
    대양 노동자들, 파업 농성 돌입. 회사는 효성동에 위치. 랜드로바 제조업체
    대영기계 노동자들, 파업 농성 돌입. 회사는 효성동에 위치
    동부제강 노동자들, 파업 농성 돌입
    명성전자 노동자 400여 명, 파업 농성 돌입
    몬트레스공업 노동자들, 파업 농성 돌입. 회사는 청천동에 위치
    삼지실업 노동자 200여 명, 파업 농성 돌입
    승일제관 노동자 200여 명, 파업 농성 돌입
    신영전기 노동자들, ‘직급제 폐지, 기본급 인상, 강제휴업철폐’ 등을 요구하며 농성 돌입
    이건산업 노동자들 파업 농성 돌입
    이화산업 노동자들, 파업 농성 돌입. 이화산업은 석남동에 위치
    인천조선 노동자들, 회사가 휴업조치를 내리자 가두로 진출해 크레인 등으로 도로를 차단한 채 연좌농성 벌임. 경찰이 최루탄을 쏘며 진압을 시작해 일단 해산했다가 지게차를 끌고 나와 다시 농성을 시작함. 오후 3시경 해산함
    청보산업 노동자 80여 명, 옥상을 점거하며 파업 농성 돌입. 당일 노동조합 결성. 청보산업은 남구 도화동에 위치하며 자동차 부품을 납품하는 회사로 160여 명의 노동자들이 근무하고 있음
    한국강관 노동자 300여 명, ‘어용노조 퇴진, 임금 인상’ 등을 요구하며 농성 돌입
    한국보훈복지공단 목재사업소 노동자 120여 명, 파업 농성 돌입
    한일튜브공업 노동조합 결성식 개최
  • 1987.08.19.

    인천세광병원 노동조합 결성
    경동산업 노동자 300여 명, 구사대 400여 명과 충돌해 부상자 발생
    삼화실업 노동자들, 파업 농성 돌입
    인천조선 노동자 400여 명, 크레인 1대, 지게차 5대 등을 앞세우고 거리로 나와 농성을 벌임
    청보산업 노동자 200여 명, ‘일당 1500원 인상, 상여금 500% 지급, 법정 휴일보장, 각종 수당 지급’ 등을 요구하며 파업 농성 시작
    한국노동자복지협의회 인천지역협의회, 소식지 「투쟁의 소리」 제1호 발행
    제물포택시 노동조합, 현판식을 거행하며 창립
    코스모스전자 노동조합 결성
    태평양물산 노동자 100여 명, 파업 농성 돌입
    한국분말야금 노동자 100여 명, 파업 농성 돌입
    한국타포린 노동자 120여 명 파업 농성 돌입
    현대페인트 노동자 200여 명, 파업 농성 돌입
    오룡실업·흥부합섬·대한전기공업사·영창인물·삼익전자 노동자들, 파업 농성 돌입
  • 1987.08.20.

    코스모스전자 노동조합, 파업 농성 돌입하인벨 노동자 200여 명, 파업 농성 돌입
    홍일산업 노동조합 결성
    영풍기계 노동자 60여 명, 파업 농성 돌입
    신성무역 노동조합 결성 인정 받음
    한양공영 노동자 200여 명, 파업 농성 돌입
  • 1987.08.21.

    인천지역 민주노조건설 공동실천위원회, 창립취지문 발표
    대림통상 노동조합 주안공장 지부 결성
    영신연탄공장·대원강업·대중공업·삼원트레이딩·기상전자·신원포장·동남철강·영신산업 노동자들, 파업 농성 돌입
  • 1987.08.22.

    한일튜브공업 노동자들, 회사 측 관리자들이 ‘사원 여러분께 알립니다’라는 제목의 유인물을 배포하며 3명의 학생출신 노동자들을 ‘사회 불순분자’라고 충방할 것을 요구하자, 논의 끝에 이들 3명을 감금함. 감금당한 3명은 곧 경찰에 연행됨
    < 동신공업 노동조합 결성
    서울엔지니어링 노동조합 결성
    한국훼라이트·천일식품·서울제강 노동자들, 파업 농성 돌입
  • 1987.08.23.

    진성전자 노동조합 창립. 조합원 약 60여 명
    인천제철 노동자 1000여 명, ‘임금 30% 인상, 상여금 600% 지급, 부당한 부서 이동 철회, 3교대 근무제 실시’ 등을 요구하며 농성 돌입
    영창인물 노동자 60여 명, ‘임금 기본급 5만 원 인상, 상여금 500% 지급, 공휴일 휴무, 중식무료’ 등을 요구하며 파업 농성 돌입
    덕창기업·동양튜브·대한제분·신명물산·한국자동기(주)·후지테크 코리아·원진산업 노동자들, 파업 농성 돌입
  • 1987.08.25.

    새한미디어 노동자 1500여 명, ‘회사 측과 안기부가 한 통속이 되어 노조를 만들려고 하던 13명의 노동자들을 충주까지 끌고가 집단폭행’한 사건에 대하여 항의하며 파업농성 돌입
    동양철관 노동자들, ‘강제잔업 철폐, 임금 305 인상’ 등을 요구하며 농성 시작
    영착악기 노동자 1000여 명, 동부제강 앞에서 가두 연좌 시위 벌임
    동양철관·캄파리서울·삼원트레이딩·아성기업 노동자들, 파업 농성 돌입
    영동금속·덕수산업·고려산업개발·대신산업·선미산업 노동자들, 파업 농성 돌입
  • 1987.08.26.

    인천지역 민주노조건설 공동실천위원회 창립. 1987년 봄 비공개 조직인 ‘민주노조건설을 위해 싸우는 노동자 일동’을 공개활동으로 전환하여 창립하고 신문 ‘민주노조’를 만들어 전국적으로 배포하였으며 인노협 건설 이전 인천지역 노동운동의 실질적인 구심역할을 하였고 이후 1988년 10월 26일 부서원들 전체의 합의에 따라 ‘인노협과 인노운협이 인천지역의 노동운동을 이끌어 가는 것이 바람직하고 공실위의 조직적 목적이 달성되었다“고 공식적인 해체를 선언
    동양철관 노동조합 결성
    새한미디어 노동자들, ‘납치·감금·폭행 진상규명하라’, ‘사장은 공개사과하라’ 등의 구호를 외치며 농성
    대우자동차 해고노동자 홍영표·박재석·김남헌·이성재, 아침 8시경 회사 정문 앞에서 유인물을 배포하던 중 연행 당함. 이날 오후 2시 30분부터 대우자동차 노동자들이 ‘임금 3만 원 인상, 어용노조 퇴진, 해고자 복직’ 등을 요구하며 파업 농성에 돌입
    인천제철 노동자들 어용노조 퇴진을 요구하며 새 조합장 선거 실시
    영창악기 노동자 1000여 명, 오후 2시 30분경 고속도로를 점거하며 농성 시작. 오후 5시 30분경 경찰이 강제 해산을 시작하여 10여 명이 연행됨. 회사 안으로 돌아간 노동자들은 다시 돌을 던지며 시위를 하였으나 경찰이 최루탄을 쏘며 제지하자 회사 안으로 다시 철수함
  • 1987.08.27.

    인천제철 노동자 700여 명, 오후 2시경 지게차, 소방차, 덤프트럭 등을 앞세우고 공장을 나와 송현파출소 앞까지 진출, ‘민주노조쟁취, 위험수당지급’ 등이 적힌 플래카드를 내걸고 시위를 벌이다 오후 9시쯤 회사로 돌아감
    새한미디어 노동자 1500여 명, 8월 11일부터 시작된 파업 농성 중 노동조합을 설립하여 인천시청에 접수시킴. 이 날 1800여 명의 노동자들이 노동조합에 가입함. 그러나 인천시청에서 노조가 이미 접수되어 있다는 통보와 함께 노동조합 접수 서류가 반환됨
    진도 부평공장 노동자들, 회사 측이 어용지부를 결성하고 421원 임금 인상을 제시하자 이에 반발해 ‘400원이 웬말이냐, 1500원 건설하자’, ‘지부장을 직선으로 민주노조 건설하자!’ 등을 내세우며 1주일간 파업 농성 전개
    금영실업·신방전자·신도실업 노동자들, 파업 농성 돌입
    대한중기·진진양행·신주실업·흥창물산 노동자들, 파업 농성 돌입
  • 1987.08.28.

    인천지역 민주노조건설 공동실천위원회, 남구 도화동 392-3 인천지역 사회운동연합 사무실로 이전함
    강화관광노동조합, 전국자동차노동조합연맹 소속으로 강화군에 노동조합 설립 신고
    진진양행 노동자 150여 명, ‘일당 1000원 인상’, ‘보너스 400% 지급’, ‘해고자 복직’ 등을 요구하며 파업농성 돌입. 농성 중 노동조합 결성대회를 개최하여 노동조합을 정식 출범시킴
  • 1987.08.29.

    진진양행 노동자 150여 명, 전 날인 8월 28일부터 ‘일당 1000원 인상’ 등을 요구하며 파업 농성에 들어갔다가 요구조건을 100% 관철시키며 회사 측과 서면 합의를 봄
    인천제철, 노사분규로 인해 무기한 휴업에 들어감
  • 1987.08.30.

    인천지역 민주노조건설 공동실천위원회, 「민주노조」창간호 발행. 「공장의 소리」(제1호·제2호)를 이어받아 발간하였다고 밝힘. 인천지역 민주노조건설 공동실천위원회는 비공개 자료로 「공장의 소리」를 본보 2회, 속보 6회에 걸쳐 발행하였으며, 이후 공식 사업으로 1988년 10월까지 「민주노조」를 본보 23회, 속보 15회, 임투속보 17회, 선거속보 3회 발간하였음
    대영운수 노동조합 결성. 대영운수는 작전동에 소재하고 있으며 차량 24대에 기사 56명이 근무
    새한미디어 노동자 1500여 명, 8월 25일부터 파업 농성을 진행하던 중 ‘납치·감금·폭행에 대한 공개사과, 유령노조해체, 민주노조 인정, 아직도 생사불명인 이석윤씨 석방’ 등의 요구사항을 회사 측이 거부하자 회사 본관 건물을 점거함
  • 1987.8.31.

    삼양유지사료 인천공장 노동자들, 9월 1일까지 파업농성 전개
  • 1987.09.01.

    한영알미늄 노동자들, 파업 농성 중 구사대의 투석으로 26명이 부상 당함
    삼양유지사료 인천공장, 노사협의를 통해 ‘임금 인상, 법정공휴일 특근수당 지급, 자녀 학자금 지급, 하기 휴감 치 휴가비 지급, 분기별 100% 상여금 지급’을 내용으로 하는 ‘합의서’ 작성
    파업 중인 대우전자 인천공장이 무기한 휴업에 들어감
  • 1987.09.02.

    한영알미늄 노동자들, 회사 앞에 바리케이드를 치고 파업 농성을 진행하던 중 소방차를 동원한 경찰의 진압으로 10여 명이 연행됨
    대우자동차 노동자들 가두시위를 하던 중 경찰이 최루탄을 쏘며 진압하는 과정에서 4명의 중상자가 발생함
  • 1987.09.03.

    인천지역에서 빈민운동을 해오던 중견그룹들이 일정한 협의 형태의 모임이 필요하다는 인식을 함께 하고 송현산마루교회에서 첫 번째 실무자 전체모임을 개최
    인천지역 민주노조건설 공동실천위원회, 20명이 참석한 가운데 제1차 부서원 전체회의 개최
  • 1987.09.04.

    대우자동차 노동자들, 파업 철야 농성 중 경찰 22개 중대 2900여 명이 새벽에 진압을 시작하여 100여 명이 연행됨
  • 1987.09.06.

    ‘민주헌법쟁취 국민운동 인천본부’, 인천·부천 시민 1300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답동 성당에서 창립대회를 개최하고 출범.
  • 1987.09.07.

    금영실업 노동조합 결성. 금영실업 노동자들은 8월 28일부터 9월 12일까지 ‘임금 인사 투쟁’을 진행하였으며 농성 중 노동조합을 결성함. 회사는 효성동 225-2, JC공원 옆에 위치
  • 1987.09.11.

    경동산업 노동조합 조합원 총회를 하루 앞둔 이날 관리자들이 노동조합 사무실을 습격해 총회를 준비하던 임원들을 폭행하면서 노조민주화가 무산됨
  • 1987.09.13.

    천주교 인천교구 정의평화위원회, 답동 성당에서 황인철 변호사를 초청하여 「6·29선언 8개항의 허와 실, 민주화의 과제」라는 주제로 「정의평화 월례강좌」 개최
    해인교회, 해인청년회 조직
  • 1987.09.15.

    인천지역 해고노동자협의회·인천지역 기독노동자연맹·인천지역 민주노조건설 공동실천위원회·인천지역 민주노동자연맹, 9월 2일 벌어진 구사대의 한영알미늄 농성 진압 사태 등과 관련해 ‘군부독재의 노동자탄압 단결하여 분쇄하자!’는 제목의 유인물을 공동 명의로 작성·배포함
    서울지검 공안1부, 부평공단 부근에 ‘좌경용공학습소조 결성을 위한 비밀아지트’를 만들어 ‘민족해방 민중민주혁명 달성을 위해 노사분규 현장침투를 기도’한 7명을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구속하였다고 발표함
  • 1987.09.16.

    천주교 인천교구 부평노동사목, 9월 9일·16일·23일·30일에 산곡동 성당에서 「노동법 무료 강좌」 개최. ‘노동자란 누구인가?’, ‘근로기준법이란?’, ‘노동조합법이란?’, ‘노동자가 일을 하다 다쳤을 경우는?’ 등을 주제로 강연
  • 1987.09.17.

    인천지역 민주노조건설 공동실천위원회, 사무실 개소식 개최
  • 1987.09.18.

    동안물산 생산직 노동자 이예교, 9월 14일 아침 조회가 끝난 후 회사 밖으로 끌려나온 후 출근이 저지된 데 대해 부당노동행위라고 항의하며 회사 대표를 상대로 진정서 제출. 동안물산에서는 9월 14일 또 한 명이 강제사직당했으며 9월 15일부터 이들 두 명의 노동자들이 유인물을 나눠주면서 출근투쟁을 벌임. 동안물산 해고자들은 출근이 계속 저지당하자 9월 16일 관리자를 만나게 해줄 것을 요구했으나 봉고차에 실려 서울 외곽으로 이송 당함
  • 1987.09.19.

    학익동 교도소 8사에 수감중인 양심수들, 9월 23일까지 4일간 ‘구속자 석방, 관제언론 폐기, 군부독재 타도’ 등을 외치며 단식 농성
  • 1987.09.20.

    민주헌법쟁취 국민운동 인천본부, 답동 성당에서 「언론왜곡 보도 및 노동운동 폭력탄압 규탄 인천시민대회」 개최
    인천지역 기독노동자연맹·한국노동자복지협의회 인천지역협의회·가톨릭노동청년연합회·인천지역 해고노동자협의회·인천지역 민주노동자연맹, ‘노동자의 생존권 투쟁에 대한 군부독재의 폭력만행, 대량구속 분쇄를 위한 우리의 결의’라는 제목의 성명서 발표
  • 1987.09.24.

    대영운수 노동조합, 회사 측이 단체협약 체결을 거부하자 파업 돌입
  • 1987.09.25.

    민주교육추진 인천지역 교사협의회(인천교협), 주안5동 성당에서 창립대회를 개최할 예정이었으나 경찰의 원천봉쇄로 경기도 부천시 원미동 성당으로 이동하여 인천·부천지역 현직 교사 100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출범식을 거행. 회장 오원석(소명여중), 부회장 조용명(박문여고) 선출. 10월, 북구 십정동 천주교회 내에 사무실 마련. 인천교협 소속 교사들은 ‘민족·민주·인간화 교육의 실천을 위한 자주적인 교사 단체의 결성’ 필요성을 느껴 8월 24일부터 모임을 시작해 옴
    세일고등학교 평교사협의회 출범.
  • 1987.09.26.

    동일운수 노동조합, ‘단체협약체결, 상조회비 부당지출금 즉각 반환’ 등을 요구하며 파업 돌입. 동일운수는 용현동에 소재하며 차량 78대에 기사 174명 근무. 조합원은 173명임
  • 1987.10.*

    인천기독교 민중교육연구소 설립
  • 1987.10.01.

    신광기업 노동조합 위원장 김풍걸·조직부장 김승환·여성부장 나옥숙·교육선전부 차장 신문희 등 4명, 회사로 찾아온 경찰에 의해 연행됨. 이들은 대학생 출신 노동자로 회사측으로부터 9월 30일까지 퇴사할 것을 강요받아 왔음
    민주교육추진 인천지역교사협의회, 기관지 「인천교사신문」창간. 편집인은 오원석, 조용명, 원종찬. 경인교협이 발족한 후 1988년 3월 1일자 4호부터 「경인교사신문」으로 제호를 바꾸었다가 9호(1988. 11. 01)부터 다시 「인천교사신문」으로 개제하여 발간.
  • 1987.10.02.

    신광기업 노동조합 위원장 등 4명, 9월 30일부터 10월 3일까지 농성을 주도한 혐의로 경찰에 구속됨
  • 1987.10.03.

    인우데크레코 노동조합 현판식 거행
  • 1987.10.05.

    서울시경찰국, 부평지역 공장들에 취업해 노동자들에 대한 ‘학습과 선동’을 실시해 온 ‘인천지역 노동자해방 투쟁위원회’를 적발, 7명을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구속하고 10명을 수배했다고 밝힘.
  • 1987.10.06.

    인천지역 민주노조건설 공동실천위원회, 능곡 평화의 집에서 민주노조 간부 세미나 개최
  • 1987.10.10.

    인천지역 14개 신규노동조합 간부 35명, 10월 11일까지 신규노조 간부수련회 개최
  • 1987.10.13.

    천주교 인천교구 청년회, 답동 가톨릭회관 504호에서 150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제5기 민중대학」 개강식 개최. 「제5기 민중대학」은 12월 17일까지 매주 화·목요일에 운영
  • 1987.10.15.

    남구 학익동 산540번지 일대 50여 채 가옥 주민들, 포크레인을 동원한 1000여 명의 무장경찰·예비군 복장의 청년들·철거반원들에 의해 강제 철거 당함. 하루 전 날인 10월 14일, 무허가주택을 명목으로 한 철거계고장이 발송된 바 있으며 주민들은 ‘대책없는 강제 철거 반대한다’며 저항함
  • 1987.10.17.

    인천지역 민주노조건설 공동실천위원회·한국노동자복지협의회 인천지역협의회·인천지역 해고노동자협의회·기독노동상담소·인천지역 기독노동자연맹, 10월 15일 서울 국민운동본부에서 농성에 들어간 창원시 소재 통일산업 등 6개 사업장 농성 노동자들에 대해 「통일산업 등 6개 사업장 노동자들의 연대투쟁을 지지하며 현 정권의 노동자 탄압을 규탄한다」는 제목의지지 성명서 발표
  • 1987.10.19.

    인천중앙병원에 입원 중인 산업재해환자 700여 명, 병원 전체를 점거하고 농성 돌입. ‘휴업급여 100% 지급’, ‘노동부장관 면담’, ‘최루탄 발사에 대한 사과’ 등 요구.
  • 1987.10.24.

    민주헌법쟁취 국민운동 인천본부, 기관지 「민주인천」창간.
  • 1987.10.28.

    인천지역 민주노조건설 공동실천위원회, 화수동 성당에서 300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노동법 개정 촉구대회 개최
    진성전자 노동조합 총무부장 김미정, 해고 당함
    학익동 교도소에 수감 중인 구속 노동자들이 10월 28일부터 11월 7일까지를 ‘노동운동 탄압 분쇄를 위한 실천주간’으로 정하고 “1. 구속노동자 석방, 2. 해고노동자 복직 3. 노동악법 철폐와 노동3권 보장, 4. 서책제한 철폐, 5. 노동운동 탄압하는 군부독재 타도” 등을 주장하며 단식농성 등을 전개
  • 1987.10.29.

    천주교 인천교구 정의평화위원회, 주안1동 성당에서 ‘공명선거를 통한 민간정부 수립’을 지향으로 하여 정의평화위원회 사제단의 공동집전으로 「민주정부 수립을 위한 미사」 개최
  • 1987.10.31.

    인천지역 민주노조건설 공동실천위원회, 기만적 노동법 개정 규탄 설명서 발표. 같은 날 김영삼 민주당 총재와 42개 민주노조 간담회를 주선하는 한편, 「민주당에 보내는 인천지역 노동자들의 제언」 발표
    인천지역 민주노조건설 공동실천위원회·인천지역 기독노동자연맹·인천지역 해고노동자협의회·기독교 노동상담소·인천지역 민주노동자연맹, ‘10월 28일 국회 보사위원회에서 의결된 기만적인 노동법 개정을 규탄한다!’라는 제목의 성명서 발표. 성명서에서 단체들은 개정 노동법에 대하여 아래와 같은 점을 문제점으로 지적하고 요구 조건을 제시함
    ① 개정 노동법은 어용 노조가 있는 사업장에서의 민주노조 건설을, 어용 노총 및 연맹에 반대한 민주노조 연합의 건설을 전면 금지하고 있다.
    ② 전두환 정권의 출범과 더불어 국보위에서 신설된 제3자 개입 금지 조항과 박정희 군사 정권의 출범과 함께 만들어진 정치 활동 금지 조항이 여전히 남아 있다.
    ③ 노동쟁의 조정법은 냉각 기간을 20일 이내에서 10일(공익 사업의 경우 15일)로, 중재기간을 20일에서 15일로 단축시켰을 뿐 여전히 ‘자유로운 파업’을 금지하고 있다.
    한광산업 노동조합, 9월 파업 농성 때 합의한 사항을 회사 측이 이행하지 않자 ‘미지급 추석보너스 50% 지급’, ‘조합간부 2명 상근보장’ 등을 요구하며 파업 농성 시작. 이후 15일간 진행된 농성 과정에서 11월 9일 노조위원장을 비롯한 간부 7명이 해고 당함
  • 1987.11.*

    인천문화운동연합(약칭 인문연) 창립. 인문연의 기본사업은 선전 선동으로 인노협의 강화. 대공장 노조 민주화 투쟁을 통해 전노협 결성투쟁, 전교조 합법투쟁, 반노전선의 강화로 집중되도록 공연을 통한 선전 선동을 수행해 나감
  • 1987.11.01.

    제물포택시(주) 노동조합, 「제물포노보」창간호 발행
  • 1987.11.03.

    진흥요업 노동자 김성애, 북구 구산동 소재 중앙병원에서 치료 중 투신하여 사망. 김성애는 1985년 16세의 나이로 학익동 소재 진흥요업에 들어와 근무하다 쓰러져 3개월 간 혼수상태로 있다가 깨어났으며 이후 산업재활원을 거쳐 중앙병원에 입원중이었음. 10월 16일, 중앙병원 산재환자들이 생존권 보장을 요구하는 농성을 시작하자 김성애는 이를 보고 관계 부처에 보상을 요구하는 진정을 냈으나 거절당하였으며 이를 비관하여 자살함. 당시 김성애의 가족들이 회사 측과 합의하여 치료비 이외에 어떠한 민형사상 책임을 묻지 않는다는 각서를 작성해 놓은 상태였으며 각서에 대한 공증도 끝난 상황이었음
  • 1987.11.07.

    진흥요업에서 근무하다 산업재해로 입원 중 자살한 김성애의 노제가 부평역에서 개최될 예정이었으나 장례행렬이 송내삼거리를 지나던 중 경찰에 의해 강제 해산 당함
  • 1987.11.08.

    국민운동 인천본부, 주안1동 성당에서 「선거를 앞두고 생각을 정리하는 자리」 마련. 문익환이 ‘공명선거를 하려면’, 권인숙이 ‘아직도 갇혀있는 양심수’라는 주제로 강연
  • 1987.11.10.

    경인여객 노동조합·경향여객 노동조합·부성여객 노동조합·제물포버스 노동조합, 「임시합동대의원 대회」를 열고 ‘8월 22일 체결한 노사 간 8개 항의 합의사항 이행’ 등을 요구하며 11월 11일부터 파업에 돌입하기로 결의
    부평여객 운전기사 60여 명, ‘현 노조 집행부 퇴진’ 등을 요구하며 운행을 거부한 채 농성 돌입
  • 1987.11.13.

    인천지역 민주노조건설 공동실천위원회, 계산동 성당에서 700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전태일 열사 추모집회」 개최
    중앙병원 노동조합, ‘48명의 간호과 소속 조합원에 대한 병원 측의 강제 부서이동 철회’를 요구하며 4일 동안 부분 파업 진행
  • 1987.11.16.

    한광산업 노동조합 조합원 30여 명, ‘위원장을 포함한 조합원 10여 명에 대한 부당해고 철회’, ‘파업기간 유급처리’ 등을 요구하며 주안1동 성당에서 농성 돌입
    경인에너지 노동조합 조합원 230여 명, 9월 초 파업 농성때 타결을 보지 못한 내용에 대해 회사 측이 확답을 미루고 있다고 주장하며 ‘보너스 200% 인상’, ‘수당신설(학자금, 주택수당)’ 등 9개 요구조건을 내걸고 철야농성 시작
  • 1987.11.18.

    인천기독교민중교육연구소 운수노동상담실, 「인천·부천 운수노보」창간.
    중앙병원 노동조합 조합원 150여 명, ‘월급 8만 5000원 일률 인상’, ‘부당 노동행위 즉각 중지’ 등을 요구하며 전면 파업 돌입
  • 1987.11.19.

    학익동 교도소에 수감 중인 여성노동자 16명, ‘태연물산 박인숙 위원장 복직’, ‘민주노조 탄압 분쇄’, '교도소내 인권탄압종식‘ 등을 요구하며 9일 동안 단식투쟁 전개
  • 1987.11.22.

    주안1동 성당·석남동 성당·십정동 성당, 「군부독재 종식과 공명선거를 위한 행사」의 일환으로 사진전 및 비디오 상영 진행. 주안1동 성당과 석남동 성당은 마당극도 함께 공연
    인천지역 신규노동조합 노동자들을 대상으로 한 「인천지역 신규노조 창립기념 대잔치」가 신광기업 운동장에서 69개 노동조합 600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개최
  • 1987.11.25.

    경동산업 해고노동자들, 십정동 사거리 3번 종점 앞에서 「만남의 광장, 경동인의 집」이라는 간판을 걸고 생계유지를 위한 포장마차 개점
  • 1987.11.26.

    인천지역 노동조합 조합원 70여 명, 부평4공단 소재 태연물산 정문 앞에서 ‘태연민주노조사수 집회’ 개최. 경찰과 구사대에 의해 집회가 해산되는 과정에서 다수가 부상을 당하고 그 중 31명이 경찰에 연행됨. 이 사건과 관련해 같은 날 인천지역 노동자 150여 명이 부평경찰서 앞에 몰려가 ‘폭력구사대 처벌’, ‘연행자 전원 석방’ 등을 요구하며 철야농성을 진행하는 한편, 10개 노동조합 홍보부는 「11월 26일 태연물산 구사대 폭력사태 진상보고」라는 제목의 속보를 제작해 다음날 각 노동조합에 배포함
    대우자동차 노동조합 조합원·구속자 가족들, 주·야간 2회에 걸쳐 7000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대우자동차 구속노동자 전원 조기석방 촉구대회」 개최
  • 1987.11.27.

    대우자동차 노동조합 조합원 구속자 가족들, 회사 앞에서 자녀들과 함께 마스크를 쓰고 구속자 조기 석방을 위한 침묵시위 전개
  • 1987.11.28.

    천주교 인천교구 공정선거추진위원회, 답동 가톨릭회관 411호에 본부를 설치하고 본격적인 활동 시작
  • 1987.11.29.

    부평1동 성당·계산동 성당, 「군부독재 종식과 공명선거를 위한 행사」의 일환으로 사진전 및 비디오 상영 진행. 부평1동 성당은 마당극도 함께 공연
    구속자가족협의회·한영해고자동지회, 답동 가톨릭회관 304호에서 구속노동자 월동대책, 가족들의 생계대책마련, 해고노동자 복직을 위한 일일찻집 개최
  • 1987.12.*

    송림사랑방교회 노동청년회 결성. 분반활동으로는 시사상식반, 기타합창반, 연극반, 근로기준법반 등이 있었음. 박종렬 목사는 송림사랑방교회 노동청년회에 대하여 “본 교회 노동청년회는 초보노동청년들을 위한 문화마당프로그램과 일상적인 교육프로그램을 통해 엮어진 노동자들 간의 신뢰와 인간다운 삶을 추구하는 단결된 실천의 한 성과로서 형성된 것이며 앞으로 자기발현의 장으로 모임을 활용하면서 노동청년들의 주체적 활동을 계획”하고 있으며 “지역노동현장에 필요한 지원과 연대를 발전시키면서 인천지역 노동운동에 일정부분 자기 역할을 다하게 될 것을 기대”한다고 밝힘
    인천빈민지역활동가협의회 발족. 1980년대 초·중반부터 빈민지역공부방, 탁아소 등에서 일하던 활동가, 실무자 15명이 역량을 모아 영세민 밀집촌 철거에 공동대처하고 주민운동의 영역을 넓혀가기로 함
  • 1987.12.01.

    인천지역 노동자들, ‘노조탄압분쇄 대책위’를 구성하고 노조탄압 규탄대회 개최
    인천지역 민주노조건설 공동실천위원회, 12월 25일까지 「민주노조」 선거속보 3회 발간
  • 1987.12.02.

    인하대학교 학생 30여 명, 부평동 민정당 제2지구당에 화염병 5개를 던지고 달아남
  • 1987.12.05.

    용현동 성당·강화 성당, 12월 5일∼6일 이틀간에 걸쳐 「군부독재 종식과 공명선거를 위한 행사」의 일환으로 사진전 및 비디오 상영 진행. 용현동 성당은 12월 6일 마당극도 함께 공연
  • 1987.12.06.

    문화기획 일손나눔, 창립식 거행. 사무실은 남구 도화2동 80-25에 위치
    민주교육추진 인천지역 교사협의회, ‘청소년과 교육환경’이란 주제로 교사 토론회 개최
  • 1987.12.07.

    인천지역 대학생 대표자협의회 소속 학생 350여 명, 인하대학교 대강당에서 「공정선거 감시위원단 1차 교육」을 실시하고 시내로 나와 가두 캠페인을 벌이다 경찰의 저지로 교내에 들어가 총장실과 복도 등에서 농성 전개
  • 1987.12.12.

    ‘민주쟁취 국민운동 인천본부 부평(북구)지부’ 창립
    인하대학교 김영규 교수 등 인천지역 교수 12명, ‘현 대통령선거 시국에 대한 제언’이라는 성명을 발표하고 ‘공정선거의 보장’을 촉구
    인천지역 민주노조건설 공동실천위원회, 「민주노조」 제7호 - ‘선거호외 제1호’ 발행
    제물포택시, 노사분규 발생
  • 1987.12.15.

    금영실업 노동조합 교선부장 강승욱, 11월 26일 발생한 ‘태연물산 구사대 폭력사태’ 당시 부평경찰서에 연행되었다가 풀려난 일 등으로 인해 ‘회사명예 훼손’, ‘이력서 허위기재’ 등을 이유로 해고 당함
  • 1987.12.16.

    삼화실업 노동조합 문화부장 심재환, 청천동 소재 자취방에서 시신으로 발견됨. 삼화실업 노동조합 조합원들은 12월 15일·16일 양일간 자취방에 찾아갔을 때 문이 안으로 잠겨 있었다는 등의 이유를 들어 심재환의 사망에 의문을 제기
  • 1987.12.17.

    인천세광병원 노동조합 조합원 100여 명, ‘기본급 인상, 상여금 지급, 유니온 샵 제도 인정, 인사권 참여 등의 단체협약 재체결’ 등을 요구하며 파업 농성 돌입. 병원 측은 12월 21일 농성 가담자 중 96명을 해고하였으며 12월 22일에는 인천시에 휴업 신고를 제출하였다가 곧 철회함. 이후 12월 31일 요구조건이 모두 수용되며 파업을 끝냄. 한국여성민우회가 12월 30일, 인천세광병원 노동자들의 ‘14일간의 철야농성’을 지지하는 성명서 발표
  • 1987.12.19.

    천주교 인천교구 청년회·노동청년회·가톨릭대학생연합회, 속보를 발행하여 인천지역 내에 있었던 부정선거를 유형별로 밝힘
    한광산업 노동조합 위원장·조직부장·교선부장, 복직 등의 요구가 받아들여지지 않자 12월 15일부터 노동조합 사무실에서 농성을 진행해 오던 중 구사대에 의해 진압되며 그중 조직부장과 교선부장이 경찰에 넘겨짐
  • 1987.12.20.

    천주교 인천교구 청년회·가톨릭노동청년회·가톨릭대학생연합회, 12월 17일자 「서울신문」호외를 근거로 하여 컴퓨터 조작이 노태우 대통령을 당선시켰으며 선거는 무효화되어야 한다고 선언
  • 1987.12.27.

    놀이패 한광대, 「광대세상」창간호 발행
    봉명산업 노동자 90여 명, 회사 식당에서 노동조합 결성
    신광기업 노동조합, 12월 19일 집행유예로 석방된 전 조직부장 등 3명과 함께 「조합원 총회 및 석방자 환영대회」 개최.
  • 1987.12.31.

    경기교통 노동조합 김장수 조합장, 노동조합 내의 분열로 인해 조합장 사임. 부조합장이었던 김만수가 조합장 직무대리가 됨
  • 1988.01.*

    인천지역 민주노조건설 공동실천위원회, 「‘88임금인상투쟁지침서」 발간
    인천기독교민중교육연구소, 인천지역 민주노조건설 공동실천위원회(공실위)에 가입.
  • 1988.01.04.

    현대철구사업본부 노동자 50여 명, 송현동 소재 회사 주변 식당에서 노동조합 결성. 개정 노동법에 의해 1988년 최초로 결성된 노동조합이라는 점에서 주목 받음. 1월 27일 현판식 거행
    놀이패 한광대, 겨울방학을 맞이해 풍물 초급(주부, 일반인, 교사, 고등학생, 단체 등 대상), 풍물 중급, 탈춤 강습 진행
  • 1988.01.07.

    부평중앙감리교회에서 「인천지역 공정선거 감시단 발대식」 개최
  • 1988.01.15.

    한양정밀 노동조합 결성
  • 1988.01.16.

    인일전자 노동자 25명, 북구 효성동 소재 회사 근처 음식점에서 노동조합 결성
    제3한강통운 노동조합, 노동자들이 노동조합을 결성하고 단체협약을 요구하자 회사 측이 인천사무소 상호를 북성유조(주)로 변경한 후 기사 23명을 전원 해고한 데 대해 항의하며 농성 돌입
    신광기업 해고노동자 배태식, 조숙, 반현희 등, 회사 근처인 일신동 12번 종점 인근에 ‘한마음 분식’ 개업
  • 1988.01.17.

    인천지역 민주쟁취 국민운동본부, 부평1동 성당에서 500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박종철군 1주기 추모제 및 부정선거 실상 폭로대회」 개최.
    대하전자 노동조합 결성
    ‘일하는 여성의 나눔의 집’ 개원. 1983년 초부터 노동운동에 헌신하고자 하는 몇몇 여성노동자들이 모여 여성노동운동 측면에서 실천적 방안을 모색해 옴. 이후 ‘① 선배여성노동자가 현장에 다시 들어가 활동하는 것이 현실적으로 어려우므로 외곽에서 여성노동운동을 지원, 지도하면서 선배들이 활동할 수 잇는 장을 마련하고 ② 초보적 노동자들을 접하는 대중공간을 마련하여 여성노동자들에게 초기부터 여성문제와 노동문제를 결합한 총체적 인식을 바르게 할 수 있는 여성노동자교육을 실시하며 ③ 늘어나는 기혼여성노동자들의 현실적 문제인 육아문제 해결을 위한 탁아소를 마련하며 ④ 기혼여성의 취업을 위한 기술훈련 지도’를 목적으로 ‘일하는 여성의 나눔의 집’을 개원함
  • 1988.01.19.

    부평안병원 노동조합 결성. 1월 23일에 현판식 거행
  • 1988.01.23.

    인천지역 민주노조건설 공동실천위원회, 「노동조합 여성부 활동 활성화를 위한 1차 간담회」 개최
    부평·주안지역 13개 노동조합 홍보부원 27명 및 인천지역 민주노조건설 공동실천위원회 홍보부, 능곡 평화의 집에서 홍보부 연대활동 활성화를 위한 자체 교육 실시
    대우자동차 부평공장 르망공장 조립부 조합원 600여 명, 잔업을 거부한 채 ‘휴업기간 중 로얄공장으로의 파견 근무 계획 철회, 애초대로 8~9일의 유급휴업 보장’ 등을 요구하며 스크럼을 짜고 회사 내에서 시위를 벌인 후 회사 측으로부터 ‘확약서’를 받음
  • 1988.01.24.

    주안5동 성당에서 500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구속·해고노동자를 위한 만남의 자리」개최
  • 1988.01.25.

    한양정밀 노동조합 조합원 23명, ‘노동조합 인정, 조합사무실 집기 및 전화가설’ 등을 요구하며 파업 농성 시작
  • 1988.01.27.

    민주교육추진 인천지역교사협의회, 같은 경기도교육청 산하의 경기지역교사협의회와 연합하여 민주교육추진 경기·인천교사협의회(경인교협) 창설. 회장 오원석, 부회장 조용명 선출.
  • 1988.01.28.

    인천택시 노동조합, ‘단체협약 준수, 악덕관리자 퇴진, 부당노동행위 중지’ 등을 요구하며 파업 돌입
    인천지역 해고노동자 협의회, 「노동법 공개강좌」 개최
  • 1988.02.*

    인천·부천민주노동자회(약칭 인부노회 혹은 인노회) 창립. 인천지역노동운동단체협의회에 참가하여 활동하며 노조활동 지원, 노동법개정투쟁, 광주항쟁현장 순례, 전두한 노태우 구속 투쟁 등을 사회단체들과 공동으로 진행하였으며 89년 2월부터 공안당국에 6명의 조직원과 회장 안재환이 구속되면서 활동이 중단되었음
  • 1988.02.03.

    진도 노동조합 노조위원장 선거(주안, 부평, 경남 언양 등)에서 1987년 8월부터 민주노조추진위원장으로 300여 명 규모의 부평공장 임금 인상 및 민주노조건설투쟁을 이끌어 온 김성종이 당선됨. 어용노조를 누르고 당선됐다는 데 주목을 받음
    인천지역 16개 노동조합 조합원 100여 명이 참여하여 임금 관련 교육 실시
  • 1988.02.13.

    삼화고속관광 노동조합 설립. 삼화고속관광은 삼화고속에서 독립법인으로 분리된 업체로 차량 21대에 기사는 24명임
  • 1988.02.16.

    인천지역 해고노동자 협의회, 한영알루미늄, 한국타이어, 경동산업, 대동플라스틱, 한양목재 등 9명의 노동자가 참석한 가운데 「해고반대복직투쟁 결의 모임」 개최
  • 1988.02.17.

    근기운수 노동조합 결성대회 개최. 조합장에 김승권을 선출하고 2월 22일 신고필증 교부 받음. 근기운수는 연안부두 인근에 위치한 화물운송업체임
  • 1988.02.24.

    인천지역 민주노조건설 공동실천위원회, 지역 내 임금 인상투쟁의 통일적 지원사업을 위하여 임금인상투쟁상황본부 설치. 인천지역 해고노동자협의회, 인천기독교 도시산업선교회, 인천기독교 민중교육연구소, 문화기획 일손나눔, 인천지역 민주노동자연맹, 인천지역 노동자연합회준비위원회 등 7개 단체 참여.
    경기교통 노동조합 전 조합장 김장수와 전 운영위원 공석용, 회사 측으로부터 해고 예고 통보를 받음
  • 1988.02.27.

    성광기공 노동자들, 임금 인상을 요구하며 파업 농성 시작
  • 1988.02.29.

    인천지역 16개 노조 80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인노협 준비위 결성에 관한 공청회」 개최
    한영알미늄 해고노동자들, 반월공장에서 인천해고노동자와 반월해고노동자가 공동으로 출근투쟁 전개
  • 1988.03.01.

    경기교통 노동조합 전 조합장 김장수, 해고 철회를 요구하는 단식농성 중 회사 식당에서 분신을 기도하여 인천 중앙 길병원에 입원. 3월 9일 사망함
  • 1988.03.02.

    인천지역 민주노조건설 공동실천위원회 임금인상투쟁상황본부,「민주노조(임투속보)」제1호 발간.
  • 1988.03.03.

    인천지역 민주노조건설 공동실천위원회, 사무실을 북구 십정동 481-4로 이전
    인천지역 택시 노동조합, 인천택시에서 「인천택시 파업 지지결의대회」 개최. 23개 노동조합 조합장들이 공동 수습대책 결의문을 채택하였으나 구체적인 실천을 요구하는 조합원들의 항의에 직면하자 공동결의문을 다시 채택하고 조합원들과 함께 철야 농성 돌입
  • 1988.03.04.

    인천지역 택시 노동조합이 연대 농성중인 농성장에 경찰이 난입, 조합원 8명이 연행되고 다수가 부상 당함. 이에 항의해 택시 조합장 30여 명 단식 농성 돌입.
    신창전기 노동자들, ‘일당 750원 인상’ 등을 합의하며 3일간의 파업 농성을 끝냄. 신창전기 노동자들은 성광기공 노동자들과 북구 청천동 소재 공장부지를 함께 사용해 왔는데 성광기공 노동자들이 2월 27일부터 임금 인상 등을 요구하며 파업 농성을 전개하는 과정에서 신청전기 ‘구사대’가 지게차를 앞세우고 해산시키려 하자 파업에 들어감
  • 1988.03.05.

    인천지역 민주노조건설 공동실천위원회, 140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사무실 입주식 개최
    우리마당, 부평동에 인천지회 개소. ‘인천지역 우리마당 준비위원회’에 참가했던 이진구가 대표를 맡음
  • 1988.03.06.

    ‘일하는 여성의 나눔의 집’, 인천대학 체육관에서 800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3·8 세계 여성의 날 기념 「일하는 여성 봄맞이 큰잔치」 개최
    청보산업 노동조합, 2월 말에 결성한 ‘임금인상 대책위원회’를 ‘임금인상 투쟁위원회’로 전환
  • 1988.03.07.

    인천기독병원 노동조합 위원장, 2월 17일부터 임금교섭을 진행해 오던 중 3월 11일까지 단식 농성에 들어감
  • 1988.03.09.

    경기교통 노동조합 전 조합장 김장수, 해고 철회를 요구하는 단식농성 중 회사 식당에서 분신을 기도하여 인천 중앙 길병원에 입원 중 사망
    한독금속 노동조합, 파업 농성 시작. ‘임금을 제날짜에 지급할 것,’ ‘부당징계 조항을 철회할 것,’ ‘작업시간 중 정당한 노동조합 활동을 보장할 것,’ ‘불법적인 산업평화조항 철회’ 등을 요구
    신창전기 노동자들, 3월 4일 ‘일당 750원 인상’에 합의하며 3일간의 파업 농성을 끝낸 후 이 날 노동조합 결성하고 위원장에 김덕근을 선출 *「투쟁속보」 제2호에는 노동조합 결성일이 3월 8일로 기록됨
  • 1988.03.10.

    인천지역 민주노조건설 공동실천위원회, 「임금인상투쟁 전진대회 및 공실위 임투상황본부 발대식」개최
    천주교 인천교구 가톨릭노동청년연합회(J.O.C), 제42주년 노동절을 맞아 가톨릭회관 5층 강당에서 「노동자의 잔치」개최
  • 1988.03.12.

    3월 1일 분신을 시도해 3월 9일 사망한 경기교통 전 노동조합 위원장 김장수의 장례를 위해 ‘고 김장수 열사 장례 투쟁 대책위원회’ 구성
  • 1988.03.13.

    인천지역 민주노조건설 공동실천위원회, 대원 후지카 오범근 사망에 대한 성명서 발표
    인천지역 해고노동자 협의회, 「양심수 석방 및 해고노동자 원직복직 결의대회」개최
  • 1988.03.14.

    인천기독병원 노동조합, 3월 11일 임시총회에서 전권을 위임받은 노조집행부가 최저생계비 보장 등의 요구조건을 내걸고 응급실·수술실·병실 근무자를 제외한 상태에서 파업에 돌입하였다가 당일 병원 측과 합의하고 파업을 끝냄
  • 1988.03.16.

    인천지역 12개 노조 70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인노협 건설의 필요성에 관한 공동교육」 개최
  • 1988.03.17.

    진성전자 노동조합, 2월 초부터 교섭에 들어가 3월 9일 위원장을 교체하고 새집행부를 구성해 임금교섭을 진행해 오다가 이날 회사 측과 임금 18% 인상, 정기호봉승급, 장기근속수당신설 등에 합의함
  • 1988.03.18.

    인천지역 노동조합협의회 준비위원회 홍보부, 「투쟁속보」발행 시작
  • 1988.03.19.

    일진교통 노동조합 설립총회 개최. 전체 76명의 기사 중 35명 참석. 3월 22일 신고필증 교부 받음
    인천지역 노동조합협의회 준비위원회, 소속 노동조합 조합원 300여 명이 파업 농성중인 한독금속에 모여 ‘한독농성투쟁 지지대회’ 개최
  • 1988.03.20.

    전일기계 노동조합 결성
  • 1988.03.22.

    인천지역민주청년회(가칭) 건설준비위원회 발족. 7명의 준비위원이 모여 결성한 후 김성진을 준비위원장으로 내정하고 활동 시작. 임시 사무실은 주안동 136-1, 버거잭프라자빌딩(구 궁전빌딩) 416호에 마련.
    남일금속 노동조합, ‘임금인상 쟁취위원회’ 구성
  • 1988.03.23.

    인천택시 분실 장례위원회 주관으로 「고 노동열사 김장수 조합장 영결식」 거행. 중앙 길병원에서의 발인제를 시작으로 경기교통 앞에서 노제를 지낸 후 5·6공단과 부평공단을 거쳐 김포 고려공원에 안장
  • 1988.03.24.

    영창악기 노동조합(북구 가좌동), 조합원 5500여 명이 25.5% 임금 인상 등을 요구하며 ‘최저생계비 보장하라’고 쓴 리본달기 운동 시작
  • 1988.03.25.

    대우자동차 노동조합, 3차 임금교섭이 결렬된 후 조합원 총회를 열고 전체 조합원 9627명 중 7779명이 투표에 참가해 7315명의 찬성으로 쟁의 결의. 다음 날 노동부에 쟁의발생신고 마침
    로얄토토, ‘임금인상투쟁 준비위원회’ 결성
  • 1988.03.26.

    경일화학 노동조합, 현판식 개최
  • 1988.03.27.

    인천지역 노동조합협의회 준비위원회, 22개 노동조합 1500여 명이 참석하여 발족식을 갖고 「88년 임투전진대회」개최
  • 1988.03.29.

    천주교 인천교구 가톨릭대학생연합회, 답동 가톨릭회관 504호에서 방용석 전 노동자복지협의회장을 초청하여 「노동자의 생활과 우리의 자세」라는 주제로 「월례 청년강좌」 개최
  • 1988.03.31.

    대림통상 노동조합 주안공장 조립반 노동자 김응훈, 철야근무를 끝내고 건조실에서 수면을 취하던 중 사망. 장례는 4월 3일 노동조합장으로 치름.
  • 1988.04.03.

    오성실업 노동조합 결성. 이후 회사 측에 의해 「노조결성 보고대회」가 무산되었으며 4월 7일 신고필증을 교부받았으나 4월 11일 노조간부 6명이 해고 조치됨. 이들은 4월 13일부터 ‘부당해고 철회 및 노조활동 보장’을 요구하며 정문에서 농성에 돌입함. 오성실업에서는 1월 초 ‘오성쪽가위’란 이름으로 노동자들이 모임을 만들었으며 2월 말, 그중 한 명이 ‘프락치 역할’을 한 것으로 드러나 ‘오성쪽가위’를 해체하고 노동자 8명이 노동조합 준비위원회를 결성함.
  • 1988.04.05.

    콜트악기 노동조합 결성
  • 1988.04.06.

    ‘김장수 열사 추모사업회’ 구성
    대림통상 노동조합 주안공장 노동자 1000여 명, 조립반 노동자 김응훈의 사인이 열악한 근로조건 때문이라고 판단하고, 노동조합이 이를 개선하기 위해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자 파업 농성 돌입
  • 1988.04.07.

    기풍 노동조합 결성
  • 1988.04.08.

    대림통상 노동조합 주안공장 노동자들의 농성 현장에 회사 측이 부평공장, 김포공장 등지에서 조직한 400여 명의 구사대가 난입, 폭력을 휘두르며 강제 해산시킴. 100여 명이 부상당하고 농성 중이던 김수용, 김향순은 머리를 다쳐 뇌수술을 받음.
  • 1988.04.12.

    삼경무역 노동조합 결성
  • 1988.04.13.

    대흥기계 노동조합, 부평·부평공장이 공동으로 부평 JC공원에서 ‘대흥 88임투전진대회 및 체육대회’ 개최
  • 1988.04.15.

    대흥기계 노동조합, 파업 결의대회를 개최하고 90%의 찬성으로 파업 결의
    삼효정공 노동자들, 이 날 하루 작업 거부 진행
  • 1988.04.16.

    인천지역 민주노조건설 공동실천위원회, 「임투 완전승리쟁취 결의대회」개최
  • 1988.04.17.

    총선대책특별위원회, 「4·19 기념식 및 민정당정권 타도 결의대회」개최
    동국무역 노동자들, 한독금속 노동조합 사무실에서 ‘임금인상투쟁위원회’를 결성
  • 1988.04.18.

    총선대책특별위원회, 인천지역 민주후보 초청 간담회 개최. 평민당과 민주당 후보 7명이 참석하여 반 민정당 투쟁을 공동으로 진행하며, 상호 비방을 중지하고, 민중 생존권 투쟁에 지지·동차한다는 내용의 결의문 채택. 민중후보추대위원회 민중후보인 오순부, 송경평은 보수야권 후보와의 차별성을 내세워 불참을 통보함
    금영실업 노동조합 조합원 34명, 1987년부터 계속된 회사 측의 단체교섭 거부에 항의하며 점심시간을 이용해 쟁의 가부투표를 진행한 뒤 100% 찬성으로 집단 조퇴를 단행, 임시 조합원 총회를 개최함. 이 자리에서 4월 19일부터 쟁의 발생 신고 및 쟁의 대책위원회 구성과 함께 냉각기간 동안 집단 조퇴를 진행한 후 조합원 총회를 개최하기로 의결함
    동국무역 노동자 150여 명, 노동조합 결성식을 개최하고 ‘임금 인상 투쟁’에 돌입. 91명이 노동조합에 가입한 가운데 위원장에 김정이 선출. ‘일당 1200원 인상, 8시간 노동 실시, 법정공휴일은 휴무처리, 근속수당 지급’ 등을 요구
  • 1988.04.19.

    대흥기계 부평·부천 노동조합, 임금 2125원을 요구하며 파업 농성 돌입
    흥부합성 노동조합 결성
    동성상공 노동자 22명, 백마교회에서 노동조합을 결성하고 위원장에 조현오 선출. 동성상공은 효성동에 위치함
  • 1988.04.20.

    동성상공 노동조합 신고필증 교부받음. 이날 출근과 동시에 파업 돌입
  • 1988.04.21.

    대우자동차 노동조합, 원용복 노조위원장을 비롯한 집행부와 회사 측간의 잠정타결안(기본급 47,350원 인상, 근속수당 5000원 인상, 생산장려수당 1만 원 인상, 부당해고자 계열사로 취업알선, 인사위원회 동수구성거부 등)이 조합원 찬반투표 결과 반대 4001, 찬성 3491로 부결
    동성상공 생산직 전사원이 조합원으로 가입함
  • 1988.04.22.

    인천지역노동조합협의회 준비위원회, 부평4공단 소재 동국무역 내에서 ‘민주노조 사수와 노동운동 탄압 규탄 대회’ 개최
    코스모스전자 노동조합, 4월 초부터 ‘일당 1500원 인상’, ‘근속수당 지급’, ‘토요일 오전근무제’ 등을 요구해오다가 출퇴근 파업농성 시작
  • 1988.04.25.

    대우중공업 인천·창원·영등포·부곡 등 4개 공장 노동자 4700여 명, 5월 30일까지 동시 파업 시작. 5월 30일에 ‘기본금 6만 9860원 인상, 파업기간 중 임금은 생활보조금 10만 원으로 대신, 보너스 50% 지급’ 등의 조항에 합의
    대우자동차 노동조합 조합원들, 노동조합 집행부가 회사 측과 잠정 합의한 6만 2350원에 대한 가부 투표를 진행하여 부결시킴
  • 1988.04.26.

    한도물산 노동조합 결성.
  • 1988.04.27.

    상민전자 노동조합 결성.
    동신전자 노동자들, 회사 측이 폐업 신고를 하자 공장 기숙사에서 위장폐업 철회를 요구하며 농성 돌입
    대우전자 인천·주안·구미 공장 노동자들, 임금 24.2%, 근속수당 5000원 인상을 요구하며 전면 파업 돌입
    ‘고 김장수 열사 추모사업회’, 동일운수에서 4월 14일 기사 4명이 ‘쟁의보복으로 부당해고’를 당했다고 주장하며 ‘부당해고자의 즉각 복직’을 촉구하는 성명서 발표
  • 1988.04.28.

    코스모스전자 노동조합, 직장폐쇄 및 노동조합 탄압에 대한 항의집회 개최. 인천지역 노동조합 협의회 준비위원회가 이 소식을 듣고 인근에서 파업중인 대우자동차·로얄토토·대흥기계·동성상공 노동조합 조합원들을 동원하여 지원 투쟁에 나섬. 100여 명의 노동자들이 이날 밤 철야농성 돌입
  • 1988.04.30.

    로얄토토 노동조합, 일당 1400원 인상을 요구하며 회사 측의 직장폐쇄에 맞서 파업 돌입
    천주교 인천교구 가톨릭대학생연합회, 답동 가톨릭회관 504호에서 5·18광주민중항쟁동지회 김현채를 초청하여 「광주 민중항쟁의 현재적 의의」라는 주제로 「월례 청년강좌」 개최
    인천노동조합협의회(준), 「세계노동절 기념식 및 임금 인상 완전 승리 쟁취대회」(콜트악기 앞, 1,000여 명), 가두투쟁
  • 1988.05.01.

    동인산업 노동조합 결성
    해인교회, 북구 작전동 865-16으로 교회 이전
  • 1988.05.02.

    삼우실업 노동조합 결성
    협우실업(북구 효성동) 노동자 30여 명이 모여 노동조합 결성
    한독금속 노동조합, 회사 측이 제시한 ‘1700원 인상’, ‘생산목표 달성시 특별상여금 지급’안에 대해 조합원 찬반투표를 실시하여 통과시킴
  • 1988.05.03.

    인천지역 민주노조건설 공동실천위원회, 파업 기금 12만 9200원을 모급하여 인천지역 노동조합협의회 준비위원회에 전달
    원등산업 노동조합 결성. 위원장에 도천수 선출.
  • 1988.05.04.

    미미양행 노동조합 결성
    태양강관 노동조합 결성
  • 1988.05.05.

    광기정밀 노동조합 결성
    해인교회, 인하대학교에서 노동자 생활극 ‘대결’ 공연
  • 1988.05.06.

    「콜드 민주노조사수 결의대회」 개최
    동신전자 노동조합 결성. 동신전자는 도화동에 위치하며 금성사에 납품하는 하청업체로 콘덴서 전자부품을 생산함. 평균연령 18~19세의 노동자 80여 명이 근무하며 그중 60여 명은 야간학교에 다님
    대양전기 노동조합 결성. 7월 9일 현판식을 개최
    대흥기계 노동조합, ‘일당 1500원 인상, 해고자 복직, 파업기간 중 임금 100% 지급’ 등에 합의하고 이에 따라 2월 2일 해고된 학생출신 노동자 조계순의 원직 복직이 이루어짐
  • 1988.05.07.

    동진산업 노동조합 결성
    부강교통 노동조합, ‘승무변경 신청, 단체협약 및 합의된 사항 이행, 조합장 및 조합원에게 폭언, 폭력행위 근절’ 등을 요구하며 파업 돌입
  • 1988.05.09.

    협우실업 노동조합 조합원 3명, 대학교 출신이라는 이유로 회사 측으로부터 해고 당함. 조합원들은 이에 항의해 농성 시작
  • 1988.05.10.

    코스모스전자 노동조합, 4월 22일 이후 파업을 이어오다가 회사 측과 ‘일당 1500원 인상’, ‘쟁의기간 중 유급처리’를 합의함
  • 1988.05.11.

    삼효정공 노동자들, 파업농성과 함께 노동조합 결성
  • 1988.05.14.

    인천지역 민주노조건설 공동실천위원회, 교육부 교육부원 정창현(정창교)이 국가보안법으로 구속됨. 이후 10월 25일 집행유예로 풀려남
    인천지역 노동조합 협의회 준비위원회, 동신전자에서 「동신전자 위장폐업 분쇄 결의대회」개최
  • 1988.05.15.

    진흥정밀화학 노동조합 결성. 진흥정밀화학은 1978년 설립된 농약원제 생산 업체임. 가좌동에 위치하며 종업원 수는 120명으로 평소 3교대 근무를 하고 있음
    동국무역 노동자들, ‘노조 인정’, ‘임금 인상’ 등을 요구하며 농성 중 경찰에 의해 연행되어 2명이 구속됨
    민주교육추진 경·인교사협의회, 부천 원미산 정상에서 「교사의 날 기념 경기·인천지역 민주교육 대동제」 개최
  • 1988.05.17.

    간석동 산71번지 판자집 5채가 포크레인 등을 동원한 남동구청 철거반원들에 의해 강제 철거 당함. 주민 100여 명이 이에 항의해 간석4거리 차도를 막고 연좌 농성을 벌임
  • 1988.05.18.

    인천지역 민주노조건설 공동실천위원회, 부서원 전체회의를 개최해 ‘인노협 건설·강화와 공실위의 조직전망’에 대한 토론회를 가졌으며 사무차장을 ‘반조직적 행위’를 이유로 제명 조치함
    천주교 인천교구, 주안1동 성당에서 300여 명의 신자와 일반 시민이 참석한 가운데 이석재 신부와 교구 사제들의 공동 집전으로 「광주의거 8주기 추모미사」 봉헌. 천주교 인천교구 정의평화위원회 위원장 김용환 신부는 강론에서 “학살의 관계자들이 중심을 이룬 현정권조차 8년 전 광주에서의 일을 민주화운동의 일환이었다고 시인할 수 밖에 없게 된 것은 그동안 온 국민이 흘린 피와 땀의 대가이지만 보다 더 확실한 진상이 규명되지 않는 이상 완전한 광주문제의 해결은 불가능 할 것”이라고 강조. 이날 조성만 추모제도 함께 진행함
    해인교회, 5월 21일까지 「광주항쟁 비디오 상영 및 사진전」 개최
    인천지역 노동자들, 경찰이 5월 15일 동국무역 노동자들을 연행해 그중 2명을 구속한 일과 관련하여 「구속노동자 석방 촉구대회」를 개최하던 중 52명이 경찰에 연행됨. 이후 5월 18일과 5월 19일 밤, 노동자 500여 명이 이를 항의하며 부평경찰서 앞에서 항의 집회를 전개하다가 경찰에 의해 해산당하였으며 그 과정에서 172명이 연행됨
  • 1988.05.19.

    인천지역노동조합협의회 회원 400여 명, 인노협 간부 연행에 항의하며 5월 20일까지 부평경찰서 앞에서 시위 전개
    학익1동 주민 120여 명, 시청앞 광장을 점거한 채 ‘대책없는 강제철거 반대’, ‘책임자는 강제철거의 진상을 밝히고 해명하라’ 등을 요구하며 농성 전개
  • 1988.05.21.

    인천지역노동조합협의회 준비위원회 의장 황재철 구속. 인천지역 노동조합 협의회 준비위원회 노동자들은 이 날부터 황재철 의장의 석방을 촉구하며 평민당 김용석 사무실에서 점거 농성을 시작해 6월 10일 해산함
  • 1988.05.22.

    인천지역 민주노조건설 공동실천위원회·인천지역 해고노동자협의회·인천지역 노동자복지협의회·인천가톨릭노동청년회·인천기독교산업선교회·인천기독교민중교육연구소·인천지역 민주노동자연맹·인천·부천민주노동자회, 인천지역 노동조합협의회 준비위원회 황재철 의장이 5월 21일 집시법과 노동쟁의조정법 위반으로 구속된 데 대하여 「인천지역 노동조합협의회(준비위) 황재철 의장을 즉각 석방하라!」는 제목의 성명서 발표
    천주교 인천교구 석남동 성당을 비롯한 5개 본당, 5·18광주민주항쟁 관련 비디오 상영 및 사진 전시회 등 진행
    천주교 인천교구 청년회 및 가톨릭대학생연합회 회원·일반 신자 70여 명, 인천지역 시민·학생 900여 명과 함께 5월 23일까지 1박 2일간의 일정으로 광주를 순례하고 망월동 묘역 참배
  • 1988.05.25.

    인천지역 노동조합 협의회 준비위원회, 부평1동 성당에서 「황재철 의장 석방 촉구대회」 개최
    협우실업 여성노동자들, 회사 내에서 ‘일당 1300원 인상’ 등을 요구하며 농성을 벌이던 중 구사대 50여 명에 의해 구타를 당해 노동조합 위원장 전효숙 등 5명이 부상을 입음
    인천지역 노동운동단체협의회(인노운협) 결성. 황재철 인천지역 노동조합 협의회 준비위원회 의장 구속으로 노동조합 대표자들과 지역 노동단체들이 평민당사에서 농성을 벌이는 과정에서 논의되어 인천지역 민주노조건설 공동실천위원회, 인천기독교도시산업선교회, 인천기독교 민중교육연구소, 인천해고노동자협의회, 한국노동자복지협의회, 인천부천민주노동자회, 인천지역민주노동자연맹, 인천가톨릭노동청년회 등 8개 단체들이 발족을 결의하고 창립 되었으며 같은 해 6월 7일 전국 노운협이 결성되었음
  • 1988.05.26.

    한진 인천지점 운전기사 200여 명, 지점 내 주차장에 모여 ‘현행 능률급제 폐지와 완전월급제 실시’ 등을 요구하며 철야농성 돌입
  • 1988.05.27.

    승일제관 노동자들, 노동조합 결성.
  • 1988.05.28.

    ‘노동조합탄압저지와 구속자 석방을 위한 인천지역 공동대책위원회’ 결성. 황재철 인천지역 노동조합협의회 준비위원회 의장의 구속을 비롯한 노동조합 활동 탄압에 맞설 목적으로 노동자, 시민, 학생이 연대하여 출범
  • 1988.05.30.

    인천지역노동조합협의회, ‘노동악법 철폐와 구속자 석방’을 요구하며 평민당 중앙당사 점거 농성 전개
    승일제관 노동자 200여 명, 임금 인상 등을 요구하며 파업 농성 시작
    학익1동 16통·21통 주민 120여 명, 인천시청을 점거한 채 ‘대책없는 강제철거 반대’ 등을 요구하며 농성 전개
  • 1988.06.*

    인천민중교회연합, 해인교회에서 발족. 회장에 김정택 전도사(송현산마루 교회)를 선출하고 지역 단위로 분화하여 부평지구·주안지구·동인천지구·부천지구 등 4개 지구로 구성.
    제성정밀 노동조합, 81명의 종업원 중 78명이 참가해 결성됨. 제성정밀은 1985년에 설립된 스피커 제조업체로 북구 서운동에 위치
    인천기독교 목회자협의회 결성. 인천지역 40~50대 중진 목회자들이 중심적으로 활동하는 목회자 단체임. 인천지역 인권선교위원회가 확대 발전하여 창립됨
    송림동 나눔의 집·송현샘 공부방 개소
  • 1988.06.04.

    인천지역 노동운동단체 협의회, ‘인천시경은 구속 등 노조탄압을 즉각 중단하라!’는 제목의 성명서 발표
    인천지역노동조합협의회, 700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황재철 의장 석방 2차 촉구대회」개최
  • 1988.06.08.

    쌍용자동차 부평공장 노동조합 조합원 300여 명, 작업을 거부하고 식당에 모여 ‘임금 5만 2000원 인상’ 등 4개 항의 요구조건을 내걸고 농성을 벌임
  • 1988.06.09.

    인천시 철거민협의회 발족. 회장 양병주, 부회장 최찬식·노원석·이순식 선출
  • 1988.06.10.

    인하대학교 학생들, 교내에서 출정식을 갖고 연세대학교에서 열리는 「남북학생회담 출정식」에 참석하기 위해 서울로 향함
  • 1988.06.12.

    인천지역 철거민 300여 명과 시민 200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강제철거 반대 및 구속자 석방 결의대회」 개최
  • 1988.06.13.

    인천지역 노동조합 협의회 준비위원회, 400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미미양행에서 폭력구사대 추방 집회 개최
    동신전자 노동조합 조합원 11명, 서울 신림동 금속노련 사무실에서 ‘위장폐업 철회’ 등을 요구하며 농성을 벌임
    인하대학교 학생들, 학교 내에서 학생들의 동태를 파악하던 의경을 붙잡아 모두 4명의 의경이 인하대학교 내에서 정보수집 활동을 해왔다는 사실을 확인한 후 풀어줌
  • 1988.06.15.

    동양이화 노동조합, 파업 농성에 돌입. 이후 11시간 만에 ‘임금 인상 1600원, 노조인정, 해고자 복직’ 등 11개 항에 합의하며 파업을 끝냄
  • 1988.06.16.

    민주교육추진 경·인교사협의회, 십정동 성당에서 「오늘의 교육현장 무엇이 문제인가」라는 주제로 교사 대토론회 개최
  • 1988.06.18.

    인천지역 노동조합 협의회, 효성동 성당에서 창립총회를 개최하고 정식 출범. 27개 노동조합, 42명 대의원 참석.
  • 1988.06.20.

    용현동 성당 청년협의회, 크리스찬 사상연구소 양한모 소장을 초청해 ‘민족통일을 위한 교회의 역할’이란 주제로 강연회 개최
  • 1988.06.22.

    택시노동조합연맹 인천지부, 조합장 총회를 열고 총파업을 결정
  • 1988.06.23.

    택시노동조합연맹 인천지부, ‘기본급 인상’ 등을 요구하며 총파업 시작
  • 1988.06.25.

    ‘평화통일을 위한 인천지역 청년학생 공동위원회’, 인하대학교 대강당에서 ‘잃어버린 반쪽 조국을 찾아서’라는 주제로 「통일염원 강연회」 개최
    대흥공업사(서구 석남동) 노동자 47명, 서구 석남동 ○○다방에 모여 노동조합 결성
    동성상공 노동조합 현판식 개최
  • 1988.06.26.

    인천지역노동조합협의회, 34개 노동조합 1000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인천대학교 체육관에서 「인노협 결성보고 및 구속노동자 석방 촉구 결의대회」 개최. 당일 문화행사 기획은 인천우리문화사랑회가 담당함
  • 1988.06.27.

    한도물산 노동자 40여 명, 4월 18일부터 ‘기본급 일당 1500원 인상’ 등을 요구하며 농성을 전개해 오던 중, 구사대가 몰려와 난투극을 벌여 20여 명이 부상 당함
    대흥공업사 노동조합, ‘노동조합 결성 보고대회’ 개최. 대회가 끝난 후, 경찰이 불법 주거침입으로 회사 측의 신고를 받고 출동했다며 대회에 참석한 콜트악기 노동조합 위원장 등 외부 인사 3명을 연행해 가자 대흥공업사 노동조합 조합원들이 항의하며 태업 실시
  • 1988.06.28.

    인천지역 민주노조건설 공동실천위원회 임금인상 투쟁 상황본부를 해체함
    세창물산 노동자들, 임금인상 등을 요구하며 파업 돌입
  • 1988.06.29.

    세창물산 노동조합 결성
  • 1988.06.30.

    대흥공업사 노동조합, 회사 측이 단체교섭 요청을 거부하고 노동조합을 인정하려 하지 않자 파업 및 철야 농성 시작
    인천지역노동조합 여성부 연대모임, 경일화학노동조합 사무실에서 몬트레스 2명, 서전기업 4명, 경일화학 2명, 진성전자 1명, 콜트악기 1명, 남일금속 1명, 흥부합섬 1명, ‘일하는 여성의 나눔의 집’ 4명 등 총 16명이 참여한 가운데 개최됨
  • 1988.07.03.

    주안1동 성당 청년협의회(초·중등부 교리교사회, 성가대, 대학생회, 청년회, 레지오), 주안1동 성당에서 「전두환·이순자 부정비리 전면공개 수사 촉구 서명운동」 전개
  • 1988.07.05.

    인천조선 노동조합, 임금교섭문제로 7월 16일까지 태업 및 파업 돌입
    인천조선 노동자 남훈희, 이력서 허위 기재를 이유로 해고 당함. 이후 해고무효소송을 제기하였으나 지방법원과 고등법원에서 승소판결을 받은 후 1990년 12월 7일 대법원에서 기각됨. 남훈희는 1991년 7월 1일부터 회사 후문 앞에서 복직을 요구하는 농성을 벌이다가 7월 23일 건강 악화로 쓰러져 병원에 입원함
  • 1988.07.06.

    만수2동 쇼핑센타 앞 노점상 시장에 남동구청 직원 30명, 전투경찰 3개 중대 등이 투입되어 노점상 단속. 이 과정에서 노점상 박상말이 발목에 금이 가는 부상을 당해 인천 길병원에 입원
  • 1988.07.07.

    대흥공업사 노동조합 파업대책위원회 홍보부, 소식지 「햇새벽」 제1호 발간
  • 1988.07.11.

    인천지역노동조합협의회, 「삼효·데크레코 위장폐업 분쇄 결의대회」 개최
    대흥공업사 노동자 40여 명, 노동조합 인정 등을 요구하며 농성을 벌이던 중 구사대 70여 명에 의해 해산 당함
  • 1988.07.13.

    인천지역 노동조합 협의회, 「인노협신문」 창간
  • 1988.07.14.

    대흥공업 노동조합 위원장 김희연, 노동조합 인정 등을 요구하며 회사 안에서 농성을 주도한 혐의로 구속됨
  • 1988.07.15.

    인천 소재 세창물산, 송철순 사무장 파업기금 마련을 위한 연대집회 준비 중 현수막을 걸다가 지붕이 내려앉아 추락, 중태에 빠짐
  • 1988.07.17.

    전국노동운동단체협의회 주최로 인천대학교 운동장에서 「노동운동탄압 분쇄 및 노동악법 개정촉구와 노동부장관 퇴진 수도권 노동자 결의대회」 개최
    세창물산노동조합 사무장 송철순, 파업농성 중이던 1988년 7월 15일 공장 옥상에서 현수막을 부착하던 중 추락하여 치료를 받던 중 사망. 세창물산은 6월 28일부터 파업 농성 중에 있었음
    주안1동 성당, 「현시기 민족통일운동의 방향」이라는 주제로 민주통일민중운동연합 의장 문익환 목사의 강연을 개최하고 마당극 「통일맞이 대동제」 공연
    인천우리문화사랑회, 「인천지역 문화진흥 기금 마련을 위한 하루장터·주막거리」를 인천우리문화사랑회 사무실에서 개최
  • 1988.07.21.

    용현동 성당, 「공해」라는 주제로 최열 한국공해문제연구소장을 초청해 「목요강좌」 개최
  • 1988.07.22.

    부강교통 운전기사와 가족 40여 명, 77일째 파업을 이어가던 중 인천지방노동청 복도에 몰려가 쟁의가 장기화됨에 따라 생계에 위협을 받고 있다며 노동부가 적극 개입해 줄 것을 요구
  • 1988.07.23.

    삼효정공·한국데크레코·대호전자 노동조합 임원 및 조합원 7명, 평민당 노동분과위원장 김용석과 함께 인천지방노동청을 방문하여 3개 공장의 ‘위장폐업’ 문제 해결에 적극적으로 나설 것을 촉구
  • 1988.07.26.

    세창물산 전 사무장 송철순 장례식 거행. 주안공단의 가두행진을 거쳐 장례식을 개최한 후 공단관리사무소 앞에서 노제를 치르고 장지에 안장됨.
  • 1988.07.27.

    삼효정공·한국데크레코·대호전자 노동조합, 부천 소재 대호전자에서 200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위장폐업 분쇄 문화 대동제」 개최.
  • 1988.07.29.

    인천지역노동조합협의회, 8월 2일까지 2차에 걸쳐 450여 명의 노동자들이 참여한 가운데 「인노협 여름대잔치」 수련회 개최
    삼효정공·한국데크레코·대호전자 노동자들, 위장폐업분쇄 공동대책위원회 결성
    삼효·데크레코·대호 위장폐업분쇄 공동대책위원회, 인천지역노동조합협의회를 대표해 참석한 미미양행 위원장과 ‘인천지역 노동운동단체 협의회’를 대표해 참석한 공실위 사무장과 함께 서울 신림동에 소재한 전국금속노동조합연맹 사무실을 찾아가 ‘위장폐업’에 대한 연대 투쟁 요구
    명신기계 노동자 위평복, 강제 사직 당한 데 대해 항의하며 회사 정문 앞에서 온몸에 신나를 붓고 분신 기도.
  • 1988.07.30.

    한두물산, 6월 말부터 노사분규가 진행되어 오다가 이 날 폐업공고를 냄
  • 1988.07.31.

    삼효·데크레코·대호 위장폐업분쇄 공동 대책위원회, 효성동 소재 한국데크레코에서 150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위장폐업분쇄 연대의 밤」 개최. 이 날 전국금속노조연맹 정승국 조사통계차장과 홍보차장이 ‘위장폐업’에 대한 금속연맹의 공식적인 입장을 성명서로 낭독하고 연대할 것을 결의하였고, 인천지역노동조합협의회 회원 50여 명이 수련회를 마치고 격려 방문을 함
  • 1988.08.01.

    삼효·데크레코·대호 위장폐업분쇄 공동 대책위원회, 50여 명이 전국금속노조연맹 대표들과 함께 인천지방노동청을 방문하여 건물 앞 마당에서 연좌농성을 전개하고 요구사항 전달
    대신전기 노동조합 결성하고 작업을 거부한 채 회사 식당에 모여 ‘일당 1500원 인상, 노동조합 인정’ 등을 요구하며 농성 돌입. 대신전기는 주안동에 위치한 자동차부품 제조업체임
  • 1988.08.03.

    인천지역 민주노조건설 공동실천위원회, 운영위원회 해체
  • 1988.08.05.

    인천지역민족민주운동연합 준비위 발족, 참여 단체는 인천지역사회운동연합, 인천지역민주노동자연맹, 인천지역민중문화운동연합, 인천지역민주시민공동회, 인천천주교사회운동연합(준), 인천지역빈민활동가협의회, 인천지역민중운동협의회, 인천대학생대표자협의회
  • 1988.08.06.

    천주교 인천교구 사회운동협의회 준비위원회(천사협), 8월 7일까지 1박 2일간 소속 단체(노동청년회, 도시빈민회, 청년회, 가톨릭대학생연합회, 농민회준비위원회 등) 임원과 회원 30여 명이 참여한 가운데 영종도 운서리 공소에서 하기 수련회 개최. 6·10남북학생회담 내용을 담은 비디오 「우리는 결코 둘일 수 없다」를 감상하고 천주교사회운동에 대한 진단과 더불어 조국통일 운동에서 교회가 맡아야 할 역할 등에 대해 논의함
    신립섬유 노동조합 조합원 40여 명, 하계휴가를 간 틈을 이용해 회사 측이 7월 30일 폐업 신고를 하자 폐업 철회를 요구하며 농성 돌입
  • 1988.08.09.

    인천노동조합협의회, 노동법 개정 대책위 구성
  • 1988.08.10.

    한국로아 노동자 70여 명, ‘어용노조 퇴진’ 등을 요구하며 농성 돌입. 한국로아는 효성동에 위치한 가발 생산업체임
  • 1988.08.12.

    코리아 하이답프 노동자들, ‘임금인상 및 노동조합 인정’ 등을 요구하며 농성을 벌이던 중 회사 사무실에서 1985년부터 1987년 10월 사이에 해고된 인천지역 해고노동자 180명의 이름이 적혀 있는 블랙리스트 발견
    인천지역노동조합협의회, 사무실 개소식 개최
  • 1988.08.13.

    미미양행, 노동조합 현판식 개최
    대신전기 노동자 34명, 회사 안에서 농성 중 공장 안으로 들어온 경찰에 의해 연행됨. 그 과정에서 수 명은 부상을 당해 병원에 입원함
  • 1988.08.15.

    인천시철거민협의회·인천빈민지역활동가협의회, 「인천 철거지역 투쟁에 관한 보고서」 발간
  • 1988.08.16.

    대신전기 노동자 10명, 서울 여의도동 평민당 중앙당사에서 10월 13일 경찰이 파업중인 노동자들을 강제연행한 데 항의하며 농성 돌입
  • 1988.08.17.

    영본가구 노동자 26명, 인천지역 노동조합 협의회 사무실에서 노동조합 결성. 영본가구는 부개동에 위치한 가구업체임
    인천신문사 편집국 기자 11명, 노동조합을 설립하고 항만부 차장 최남일을 위원장으로 선출
    인천기독교 민중교육연구소 8월 17일부터 9월 7일까지 매주 수요일 「제1기 노동조합 교실」 개최
  • 1988.08.18.

    서울대학교 출신 박인규·차영진, 8월 15일 효성동 소재 한국로아에서 농성중인 노동자들에게 통일 관련 슬라이드를 상영한 일과 관련해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구속하고, 이들로부터 슬라이드를 입수했다는 정보를 얻은 경찰이 백마교회에 전경차량 2대를 출동시켜 정문을 봉쇄한 후 ‘불법의료’를 이유로 의료기구, 의약품, 주민진료 기록지 등을 압수하고 신철호 목사 등 6명을 연행함
    영본가구 노동조합, 노동조합 결성 보고대회를 개최하고 총 110명의 노동자 중 89명으로부터 조합원 가입원서를 받음.
    인천조선 노동조합, ‘근로조건 개선, 안전화 무상지급’ 등을 요구하며 인천시와 인천지방노동위원회에 쟁의 발생 신고
  • 1988.08.19.

    인천·부천지역 위장폐업 공동대책위원회와 전국노동운동단체협의회, 서울 종로구 연지동 기독교회관 인권위원회 사무실에서 성명서를 발표하고 삼효정공, 대호전자, 한국데크레코, 한도물산, 신립섬유, (주)원방 등의 폐업은 노동조합 파괴를 위한 위장폐업이라고 주장하며 위장폐업의 즉각 철회를 촉구
    제물포버스 등 인천 시내버스 6개사 노동조합, 관할구청에 쟁의 발생 신고
  • 1988.08.21.

    인천지역 민주노조건설 공동실천위원회, ‘공실위의 발전적 해체와 이에 따른 향후 전망’이라는 주제로 「공실위 창립 1주년 기념 좌담회」 개최
    백마교회 신도 및 인천지역 목회자 200여 명, 부평경찰서 앞에서 「선교자유 수호를 위한 노상기도회」를 개최하고 백마교회 신철호 목사를 연행한 경찰의 처벌과 압수한 의료기구의 즉각 반환을 요구
  • 1988.08.22.

    영본가구 노동조합, 소식지 「영본노보」창간호 발행
    인천노동조합협의회, 위장폐업 분쇄 결의 기간(∼27)
  • 1988.08.24.

    인천운수 노동조합 조합원 59명, 회사 측이 단체협약 체결을 거부한 데 항의하며 택시운항을 중단한 채 농성 돌입
  • 1988.08.25.

    영본가구 노동조합, ‘노동조합 인정, 상근자 2명 인정, 일당 1400원 인상, 추석상여금 100% 지급’ 등에 대한 요구를 내세웠으나 회사 측이 노동조합은 인정하되 상근자는 인정할 수 없다는 방침을 세우고 협상을 진행하지 않자 쟁의발생 신고를 하고 잔업을 거부함. 이튿날인 8월 26일 잔업거부에 참여하는 조합원들이 집행부 15명 정도로 축소되자 회사 측이 노동조합 간부 3명을 근무태도 불량을 이유로 해고조치하고 2명은 출근정지처분을 내림
  • 1988.08.27.

    인천민주청년회, 인하대학교 본관 교수회의실에서 창립대회를 개최하고 출범
    인천지역노동조합협의회, 「황재철 의장 석방 환영대회」 개최
  • 1988.08.28.

    인천지역노동조합협의회, 「위장폐업 분쇄 및 구속노동자 석방 촉구대회」에 500여 명 참석
  • 1988.08.29.

    청년치과의사회, 「백마교회 진료소에 대한 불법탄압을 즉각 중지하고 진료활동 보장하라 -백마교회 진료활동탄압에 대한 견해」라는 제목의 성명서 발표
  • 1988.09.*

    전국민족민주운동인천연합 창립. 인천지역 사회운동연합, 인천민중연합, 인천지역 노동운동단체협의회, 인천민주청년회, 천주교사회운동연합, 인천기독교사회운동연합, 인천민중문화예술운동연합 등이 가입. 초대 의장으로는 이호웅 인천지역 사회운동연합 의장 선출. 인민연은 민중생존권 지원과 5공비리 관련자 처벌, 조국통일운동을 당면 중점과제로 설정하고 당시 대량 해직사태를 맞은 전교조 인천지부와 인천지역노동조합협의회를 지원함.
  • 1988.09.02.

    영본가구 해고노동자들, 출근투쟁 시작.
    ‘건강사회실현 약사협의회’ 등 11개 의료단체, 8월 18일에 있었던 ‘백마교회 의료봉사 탄압 사건’과 관련해 ‘백마교회 의료봉사활동탄압에 대한 의료단체 공동대책위원회’를 결성하고 9월 15일, 부평중부감리교회에서 규탄대회를 가짐
  • 1988.09.03.

    세창물산 회사 측에서 경영난과 강경노조로 인해 회사 문을 닫겠다고 공표
  • 1988.09.04.

    인천지역 노동조합운동연합 추진위원회, 일꾼교회에서 「단일한 노동조합운동연합을 건설하기 위한 공청회」 개최
  • 1988.09.05.

    인천지역 민중교회운동 협의회·인천기독청년협의회·인천기독교도시산업선교회 등 인천지역 기독교 3개 단체 회원들을 중심으로 ‘인천지역 기독교사회운동협의회 준비위원회’ 발기인 대회 개최. 준비위원회는 위원장, 사무국장, 민중교회운동 협의회 4명, 기독청년협의회 3명, 인천기독교도시산업선교회 2명 등 모두 11명으로 구성되었음. 위원장에 박종렬 목사 선출
    인천지역 민주노조건설 공동실천위원회, 「공실위의 발전적 해체와 이에 따른 향후과제 설정」이라는 주제로 부서원 전체회의를 개최하고 인천지역 노동조합협의회와 인천지역 노동운동단체협의회 등 새로운 대중활동체가 등장한 시점에서 발전적 해체를 하기로 결정함
  • 1988.09.08.

    인천민족민주운동연합, 인사연 사무실에서 제1차 중앙위원회를 개최하여 규약 및 조직을 확정하고 창립
  • 1988.09.11.

    해인교회, 해인청장년회 조직
    ‘인천지역 민족민주운동연합’, 주안1동 성당에서 「창립보고대회 및 전두환·이순자 처벌 결의대회」 개최. 인천지역 사회운동연합, 인천민중연합, 인천지역 노동운동단체협의회, 인천민주청년회, 천주교 인천교구 천주교사회운동협의회, 인천기독교 사회운동연합, 인천민중문화예술운동연합이 참여. 의장에 이호웅 선출
  • 1988.09.14.

    인천교육대학 학생들, 학교 측에 ‘기성회비 내역공개’를 요구하며 농성 시작
    진보정당건설을 위한 정치연합(진보정치연합) 결성, 민중의 당 북구을지구당(위원장 송경평) 진보정치연합 인천지부로 조직변경
    인천지역 노동조합운동연합 추진위원회 발족 선언문 발표
    인천교육대학 학생 1000여 명, 기성회비가 유용되고 있다고 주장하며 수업을 전면 거부한 채 기성회비 사용내역 공개를 요구하는 농성 전개. 그중 250여 명은 교내 체육관과 총학생회 사무실 등에서 철야농성에 들어감
  • 1988.09.18.

    세창물산 노동조합, 회사 내 운동장에서 「제1회 세창물산 위장폐업 분쇄 및 결의대회」 개최. 인천지역 노동조합 협의회 회원 등 500여 명 참석
  • 1988.09.21.

    인천교육대학, 학생들이 학장퇴진과 기성회비 공개 등 13개 항을 요구하며 8일째 농성을 계속하자 전체교수회를 열고 무기한 휴업을 결정함
  • 1988.09.22.

    민주교육추진 인천지역교사협의회, 십정동 성당에서 「인천교협 창립 1주년 기념대회」 개최
  • 1988.09.30.

    미술패 갯꽃, 서울 미술집단 ‘가는패’와 함께 10월 26일까지 한 달 동안 한독금속 노동조합 외벽에 벽화 제작. 공장벽화로는 최초의 작품으로 평가됨
  • 1988.10.*

    민족통일민주주의노동자동맹(약칭: 삼민동맹, 인천에서는 인노맹) 결성. 1987년 11월부터 노동자 정치신문을 표방한 「노동자의 깃발」을 발행하였으며 1990년 28호까지 발행하였고, 1988년 8월 인천 청천동에 인천노동회관을 설립하여 노동 상담과 교육을 실시하였음
  • 1988.10.01.

    우리문화연구회 창립기념공연이 ‘쑥골마루’에서 개최됨.
  • 1988.10.02.

    천주교 인천교구 가톨릭노동청년회, 답동 가톨릭회관 6층에서 「J.O.C 발전을 위한 공청회」 개최
  • 1988.10.06.

    성신화학 노동조합 결성. 성신화학은 아크릴 액자를 생산하는 업체로 1989년 무렵 생산직 노동자는 남자 48명, 여자 27명으로 그중 조합원은 남자 30명, 여자 27명이었음
    인천교육대학 학생 200여 명, 학교 측이 10월 8일 총학생회장 등 8명을 무기정학 등 징계하기로 방침을 정한 데 항의해 교내 강당에서 ‘징계방침 철회’ 등을 요구하며 시위를 벌임
  • 1988.10.07.

    인천교육대학 학생 200여 명, ‘기성회비 내역공개’를 요구하며 농성을 주도한 총학생회장 유진호 등에 대한 학교 측의 징계 결정에 대해 ‘징계방침 철회’ 등을 외치며 교내 강당에서 농성 진행
  • 1988.10.08.

    세창물산 노동조합, 「제2차 위장폐업 분쇄결의 및 노동악법 폭로대회」 개최
  • 1988.10.09.

    아남전기 노동조합 결성
    해인교회, 현장 노동자들을 대상으로 12월 4일까지 9회에 걸쳐서 「제7기 놀이마당」 개최.
  • 1988.10.11.

    제물포버스, 노동조합원들의 파업으로 차량 운행이 중단되자 이에 맞서 인천시와 인천지방노동위원회에 직장폐쇄 신고
  • 1988.10.12.

    인천교육대학 재직 교수 74명 중 71명, 학생들의 농성과 관련해 ‘학생지도에 한계를 느껴 사직서를 제출하게 됐다’고 밝히며 집단으로 학교에 사직서 제출
    노래패 물결, 인하대학교에서 ‘‘긴밤 지새우고’ -해금조치 이후 김민기를 다시 생각하며…‘ 공연. 노래패 물결은 대학 YMCA의 한 분과로 당시 10여 명의 회원으로 구성되어 있었음
  • 1988.10.13.

    인천교육대학, 총학생회 주선으로 학생들의 징계 철회 요구를 받아들이기로 결정. 교수와 학생 간에 5개항의 합의안 타결
  • 1988.10.15.

    인천민중문화운동연합 준비위원회의 후원으로 부평신용협동조합 5층에서 놀이패 한두레가 ‘민주노조지원기금마련’을 위해 ‘우리공장 이야기’ 공연
    영본가구 노동조합, 2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현판식 개최
  • 1988.10.16.

    인천기독교 민중교육연구소, 인천대학교 대학원 본관 4층 강당에서 김말룡 가톨릭노동문제상담소장을 초청하여 ‘노동법개정투쟁의 방향과 과제’라는 주제로 「인천·부천운수노보 창립 1주년 기념강연회」 개최
    주안5동 산동네 철거지역 세입자들, 오후 8시 인천시청 관계자가 참석한 가운데 11개 반 대표를 선출하고 협의회 구성. 11월 21일 ‘주안5동 산동네 세입자 대표협의회’ 공식 결성
  • 1988.10.16.

    주안5동 산동네 세입자들을 중심으로 ‘주안5동 산동네 세입자 대표협의회’ 구성
  • 1988.10.17.

    인천민중문화운동연합, 창립총회를 개최하고 임원진 구성
  • 1988.10.22.

    천주교 인천교구 가톨릭노동청년회 회장 강석태, 이날 새벽 교통사고를 당해 사망. 향년 27세. 강석태는 1987년과 1988년 가톨릭노동청년회 회장을 지냈으며 1987년 회사에서 해고를 당함.
    인천빈민지역활동가협의회, 인천빈민지역활동 보고서 발간. 보고서에는 조직의 창립과정과 활동, 평가 및 발전방향 모색 등을 수록함
  • 1988.10.23.

    천주교 인천교구 천주교사회운동협의회(천사협), 용현동 성당에서 창립대회 개최. 천사협은 천주교 인천교구 내 가톨릭노동청년회·청년회·대학생회·노동사목·도시빈민회·가톨릭농민회준비위원회·공동체 지향 등 7개 단체의 협의체로, 사회복음화와 민주화, 교회쇄신과 민족자주·통일을 지향하며 발족. 이날 가톨릭노동청년회 회장이었던 강석태의 추도식을 가진 후 의장에 곽한왕, 부의장에 장정옥을 선출
  • 1988.10.26.

    인천지역 민주노조건설 공동실천위원회, 해체식 개최
    노래패 햇살, 10월 26일과 11월 1일 노동자선교대회 때 ‘나를 보내소서’ 공연. 노래패 햇살은 1987년 8월 초, 노동자선교대회를 준비하며 결성된 단체로 8∼9명의 회원으로 구성되어 있었음.
  • 1988.10.27.

    인하대학교 민중민주전선, 「민중민주전선」창간호 발행
  • 1988.10.30.

    인천민중문화운동연합, 창립 보고대회 개최
    세창물산 노동조합·녹십자병원 노동조합 공동주최로 인천대학교에서 「위장폐업 분쇄 및 노동법 개정 출정대회」를 개최한 뒤 거리 시위 전개
  • 1988.10.31.

    천주교 인천교구 가톨릭대학생연합회, 답동 가톨릭회관에서 「전두환·이순자 구속 처벌을 위한 1천만 서명운동 경과 보고회」를 갖고 정문 앞에서 전두환·이순자 부부의 구속을 촉구하는 홍보전단을 시민들에게 나누어 주며 가두서명운동 전개
  • 1988.11.*

    인천신문사 노동조합, ‘회사 측의 불합리한 인사발령 백지화와 노동조합 사무실 개설’ 등을 요구하며 중구청과 인천지방노동위원회에 쟁의발생 신고
    천주교 인천교구 청년회, 「제6기 민중대학」 개강. 12월 15일까지 매주 화·목요일 운영
  • 1988.11.02.

    인천민족민주운동연합, 주안1동 성당에서 인권운동가인 서준식을 초청해 「사회안전법 철폐를 위한 특별 강연회」 개최
  • 1988.11.06.

    인천지역 노동조합 협의회, 인천대학 운동장에서 「인천지역 노동자 문화대동제」 개최.
  • 1988.11.07.

    인천지역 목회자 정의평화실천협의회 창립. 박동일 목사가 회장을 맡음. 인천·부천지역 20~30대의 젊은 목회자들을 중심으로 조직된 목회자 단체임
  • 1988.11.08.

    인천민족민주운동연합, 주안1동 성당에서 서준식을 초청하여 「사회안전법 철폐를 위한 강연회」 개최
    인하대학교 단과대학 학생회장들, ‘총장퇴진과 학원민주화 쟁취를 위한 대책위원회’를 구성하고 통일광장에서 학생 1000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총장퇴진을 위한 집회 개최
  • 1988.11.09.

    인하대학교 학생 800여 명, 본관 1층에서 총장퇴진을 요구하는 집회를 개최한 후 서울 방대동 소재 총장 자택으로 가려다가 경찰의 제지를 받고 도화동 경인의원 앞 삼거리에서 시위를 벌인 뒤 해산
    원광해운 노동조합, ‘보조항로 선원급료 미지급분의 정부환수 대신 개인 지급, 항로 구별없이 동일한 호봉 인정’ 등을 요구하며 쟁의 발생 신고
  • 1988.11.10.

    청보산업·동신전자 등 주안지역 11개 노동조합 위원장들, 세창물산에서 ‘세창물산 위장폐업 철회 및 노동악법 개정’을 요구하며 3일 간 단식농성 진행
  • 1988.11.12.

    천주교 인천교구 사회운동협의회·인천지역사회운동연합·인천지역 대학생대표자협의회 등 4개 단체, 오후 3시 부평역 광장에서 「전두환·이순자 구속 및 노태우정권 퇴진을 위한 궐기대회」를 개최할 예정이었으나 경찰의 원천봉쇄로 무산되자 부평시장에서 시민·학생 300여 명이 참여한 가운데 평화행진을 갖고 오후 6시경 자진 해산함
  • 1988.11.14.

    노래패 산하, 회보 「산하」 창간호 발행
    세창물산 노동자 50여 명, 위장폐업 철회를 요구하며 73일째 농성을 벌여오던 중, 확실한 진상조사 실시를 촉구하며 송학동 소재 인천지방노동청 2층 청장실 점거 농성에 돌입해 다음날 해산함
  • 1988.11.17.

    인하대학교 총학생회, 이 날을 ‘총장퇴진을 위한 총궐기의 날’로 선포하고 인하대학교 학생 300여명과 함께 시위 전개
  • 1988.11.19.

    인천지역 민족민주운동연합, 부평역 광장에서 「광주학살, 5공비리 주범 전두환일당 처벌 및 노태우 퇴진 인천대회」를 개최하고 ‘전두환 구속’, ‘노태우 퇴진’ 등의 구호를 외치며 부평로-천마로-청천로를 거쳐 청천동 백마교회 앞까지 가두행진 전개. 백마교회 앞에서는 시민·학생 500여 명이 「전두환 일당 화형식」을 가진 뒤 자진해산함
    신립섬유 노동자들, 위장폐업 철회를 요구하며 농성 돌입
  • 1988.11.20.

    ‘주안5동 산동네 세입자 대표협의회’, 주안5동 산동네 삼거리에서 도시빈민연구소 제정구 소장, 천주교 도시빈민 선교협의회 정일우 신부, 기독교 도시빈민 선교협의회 김성훈 목사, 상계동 철거민, 인하대학교 학생, 주민 등 120여 명이 모여 ‘도시철거민들의 단결에 대한 강연’을 듣고 주안북초등학교∼주안5동 사무소∼주안6공단 등으로 가두행진을 한 뒤 해산함
  • 1988.11.24.

    인천운수 운전기사 50여 명, 단체협약 이행을 요구하며 농성 전개
  • 1988.11.26.

    천주교 인천교구 천주교사회운동협의회, 답동 가톨릭회관에서 「5공화국 부정비리 척결과 현세질서의 그리스도화」를 지향으로 월례기도회 개최
    우리마당 인천지회, 11월 27일까지 부평1동 소재 신협회관에서 극단 ‘현장’을 초청해 박노해 원작의 노래극 ‘노동의 새벽’ 공연
    인천민중문화운동연합, 인천대학 체육관에서 창립기념공연으로 ‘너흰 우릴 막을 수 없어’ 공연
  • 1988.11.30.

    제일자동차공업사 정비공 27명, ‘상여금 200% 인상 지급’ 등을 요구하며 철야농성 돌입
  • 1988.12.03.

    인천지역 노동자들, 부평1동 성당에서 「노동악법 및 반민주악법 개폐 결의대회」 개최
  • 1988.12.05.

    봉신중기·봉신산업·명신기계 노동자 150명, 연합노동조합 결성. 봉신·명신 노동조합은 각기 사업장과 대표이사를 달리하는 봉신중기, 봉신산업, 명신기계 노동자들이 연합하여 결성한 노동조합임
  • 1988.12.06.

    해태음료 노동자 50여 명, 회사 2층 사장실과 상무실을 점거한 채 사장 면담을 요구하며 농성을 벌임
    학익2동 한양주택에 거주하는 주민 40여 명, 신동아건설이 인근에 아파트 공사를 하면서 발파작업을 해 벽에 금이 가는 등 피해를 봤다며 인천시청에 몰려가 공사중지 및 피해보상을 요구
  • 1988.12.08.

    인천·대전·안산지역 해고노동자 37명, ‘해고노동자 전원 복직과 구속노동자 석방’ 등을 요구하며 여의도동 한국노총에서 철야농성 전개
    인천지역 교사협의회 소속 평교사 300여 명, 십정동 성당 내에 위치한 인천지역 쇼사협의회 사무실에서 교육법 쟁취 대회를 갖고 교육법 개정 촉구
  • 1988.12.09.

    해태음료 노동자 및 인천지역 노동자 400여 명, 작전동 해태음료 정문 앞에서 「해태음료 구사대 폭력 규탄 및 민주노조 쟁취 결의대회」 개최
  • 1988.12.10.

    인천지역 교사협의회 소속 평교사 150여 명, 인천시민회관 앞에서 「교육법 개정 촉구대회」 개최
    인천상공회의소 노동조합, 찬반투표를 통해 파업을 결정하고 요구사항이 받아들여지지 않을 경우 12월 21일 파업에 돌입하기로 결의함
    인천지방노동청, 회사를 양도한 신립섬유 대표와 회사를 양도 받아 노동조합 조합원 32명을 사직시킨 동생을 근로기준법 및 노동조합법 위반 혐의로 구속함
  • 1988.12.11.

    세창물산 노동조합, 「투쟁 100일 보고 및 위장폐업 완전추방을 위한 공청회」 개최
  • 1988.12.12.

    인천민족민주운동연합, ‘12·12 내란주범’ 고발
  • 1988.12.15.

    동아건설노동조합 부평지부 출범
  • 1988.12.18.

    인천민중연합 결성
    인천지역 민족민주운동연합, 인천대학교 체육관에서 「전두환 구속처벌 및 노태우 정권 폭로대회」를 개최하고 동인천역 등지에서 시위 전개
    인천민주시민공동회 창립대회 개최
  • 1988.12.19.

    한국비철분말, 노동조합을 결성함과 동시에 ‘상근자 2명, 유해수당 5만 원 지급’ 등을 요구하며 파업 돌입
  • 1988.12.24.

    인천기독병원 노동조합, 인천지방노동위원회와 중구청에 쟁의 발생 신고
  • 1989.01.*

    인천지역 해고노동자 협의회, 소식지 「해고노동자 회보」창간호 발행
    대우중공업 노동자복직추진위원회, 소식지「동지들」창간호 발행
    ‘인천전자업종 노동조합 연대모임’, 부평신협회관에서 800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전자인의 밤」 개최
  • 1989.01.05.

    화성산업 노동조합 결성
    삼민화학 노동조합 결성
    태양연마 노동조합 결성
  • 1989.01.07.

    인천기독병원 노동조합, 노동쟁의 돌입에 대한 찬반투표를 실시해 찬성 197표, 반대 46표로 파업 돌입 결의
  • 1989.01.08.

    US마그네틱스 노동자 60여 명, 회사 측의 자본 철수(위장폐업)에 맞서 농성 돌입
  • 1989.01.13.

    인천여성노동자회 창립준비위원회 결성. 35명 참석
    세화상사 노동조합 결성
  • 1989.01.14.

    전국노점상연합회 인천지부, 만수동 만수시장 내에 사무실을 마련하고 현판식 개최
  • 1989.01.16.

    인천교사협의회 소속 교사 50여 명, 교육경력이 없는 일반직 공무원을 북부교육구청장에 임명한 데 항의하며 부평동북부교육구청 앞에서 항의 시위 전개
  • 1989.01.17.

    세창물산 노동조합 조합원 30여 명, 인천지방검찰청사 현관을 막고 위장폐업 철회와 회사대표의 구속 등을 요구하며 연좌농성 전개
  • 1989.01.18.

    인천노동회관 교육연구실, 「제1기 노동학교」 개강. 2월 25일까지 총 7회에 걸쳐 진행함
  • 1989.01.21.

    ‘민족통일마당집(회관) 한돌쌓기운동 인천지역 추진위원회’, 김승묵 변호사, 홍성훈 의사 등 각계 대표 30명이 참여해 발족
  • 1989.01.22.

    선미산업 노동조합 결성
  • 1989.01.23.

    인천여성노동자회 창립준비위원회, 제1차 모임을 개최함. 이후 2월 2일 제2차 모임을 갖고 창립총회일을 2월 25일로 결정함
  • 1989.01.24.

    인천기독교도시산업선교회·인천지역 해고노동자 협의회, 신립섬유와 세창물산에서 간부대상 「89임투교실」 개최. 1월 24일부터 2월 3일까지 총 8회 진행
  • 1989.01.26.

    인천·부천민주노동자회 회원 유봉인·정규옥, 청천동 자택에서 치안본부(홍제동 대공분실)로 연행되어 다음날 국가보안법 위반 등의 혐의로 구속됨. 치안본부는 두 사람이 1987년 7월부터 1988년 10월 27일까지 ‘민주노조건설공동실천위원회’ 홍보부장 등으로 있으면서 「민주노조」 1∼23호를 제작·발간하며 민중문학을 통한 노동자계급 투쟁을 전개하였다고 발표함
  • 1989.01.27.

    인천시, 1988년 12월 12일부터 12월 20일까지 접수를 받은 결과 1980년 인천지역에서 삼청교육대에 끌려가 피해를 당한 사람이 사망자 13명을 포함 모두 133명에 달한다고 발표
  • 1989.01.28.

    인천지역 기계·노동조합 추진위원회, 십정동 ‘소성 노동자의 집’에서 결성
  • 1989.01.29.

    송철순 민주노동열사 추모위원회·일하는 여성의 나눔의 집, 「세창물산 야간학생 노동자 학비마련을 위한 노래극 공연」 개최
  • 1989.02.*

    인천지역 탁아위원회 창립
  • 1989.02.01.

    인천민중교회연합, 인항교회에서 임시총회를 개최하고 그동안 4개 지구로 분화돼 있던 구성을 인천지역의 경우 북인천지구(8개 교회)와 동인천지구(8개 교회) 2개 지구로 재편성하는 안을 통과시킴. 인천지역은 이전까지 부평지구(백마, 해인, 진실, 새봄), 주안지구(인항, 한뜻, 샘터, 소성, 한길, 예림), 동인천지구(사랑방, 산마루, 송현샘, 새벽, 일꾼)로 구분되어 있었으며 부천지구(새롬, 하나, 제자)가 있었음. 부천지구는 독립하는 안이 제기됨
  • 1989.02.11.

    서울지방검찰청, ‘인천·부천민주노동자회 사건’ 발표. 손형민·안재환 등 6명에 대해 구속영장 신청. 이들에 대한 영장은 법원에서 기각되었으나 검찰이 재신청해 2월 17일 5명에 대해 구속영장이 발부됨
  • 1989.02.12.

    태평양물산 노동조합 결성
  • 1989.02.13.

    그로리아가구 노동조합 결성
    ‘인천·부천민주노동자회’·전국노동운동단체협의회·전국민족민주운동연합 등 3개 단체, 인천·부천노동자회 사건과 관련해 성명을 내고 ‘치안본부는 민주노동운동단체 파괴음모를 즉각 중단하라’고 요구하는 한편 ‘구속노동자 즉시 석방, 국가보안법 철폐’ 등을 촉구
    고잔동 고잔어촌계 어민 100여 명, 한국화약의 공유수면 매립 공사로 어패류를 잡을 수 없어 어민들의 생존권이 위협받는다고 주장하며 한국화약 정문 앞에서 피해보상을 요구하는 철야 농성 돌입
  • 1989.02.14.

    인천민주시민공동회, 2월 14일부터 3월 21일까지 매주 화·금요일 「제1회 민중학교」 진행
  • 1989.02.16.

    인천지역 노동조합 협의회, 세창물산에서 ‘인천지역 노동법개정 및 임금인상투쟁본부’ 발대식 및 「위장폐업분쇄 결의대회」 개최
    한국OA시스 노동조합 결성
  • 1989.02.17.

    인천지역 사회운동연합, 4월 25일까지 매주 화·금요일에 「제3기 인천민주시민학교」 진행
  • 1989.02.18.

    천주교 인천교구 내 청년신자들의 소그룹 공동체인 ‘지향’이 주안1동 성당에서 총회를 개최하고 보다 적극적인 활동을 전개하고자 명칭을 ‘가톨릭민중교육연구회’로 바꿈
    인천지역 노동자·학생·교사·시민 등 700여 명, 인천대학교 체육관에서 「반민주악법 개폐 결의대회」를 개최하고 ‘국가보안법, 노동법, 교육법’ 등 ‘반민주 악법’의 철폐를 촉구
    성헌고등학교 평교사협의회 회장 김순래·부회장 도성훈 등 교사 5명, 동료 교사들과 함께 1988년 12월 1일 강제사직당한 서중석 교사의 부당징계철회를 요구하며 항의한 일과 관련, 학교 측으로부터 명령불복종 및 위계질서문란 등의 사유로 파면해임을 통보받음. 이날 성헌고등학교 학생 1000여 명이 ‘재단퇴진’과 ‘교사에 대한 부당징계 철회’ 등을 요구하며 학교 운동장에서 농성을 전개함
  • 1989.02.19.

    마미손 노동조합 결성
    삼원프라스틱 노동조합 결성
    상원실업 노동조합 결성
  • 1989.02.20.

    영신금속 노동조합 결성
  • 1989.02.21.

    마미손 노동자 80여 명, 파업에 돌입해 3월 23일 노동조합을 인정받음
  • 1989.02.24.

    인천·부천민주노동자회 사건 관련자 가족 등 20여 명, 서울 여의도 평민당 중앙당사에서 구속자 석방 및 수배 해제 등을 요구하며 무기한 농성 돌입
  • 1989.02.25.

    인천여성노동자회, ‘일하는 여성의 나눔의 집’에서 창립총회를 개최하며 발족 동일방직·삼원섬유 등에서 해고된 여성노동자들이 주축이 되어 결성. 전 삼원섬유 노동조합 부분회장 김지선이 회장으로 선출됨. 사무실은 도화동에 위치
    인천지역주민회 창립, 인천빈민지역활동가협의회와 민주헌법쟁취국민운동본부와 통합하여 창립. 햇님방 대표인 홍미영, 김정택 목사가 초대 회장을 역임. 주민회는 동별 모임체를 골간으로 유아놀이방, 굶는 어린이를 위한 밥집, 취학 아동공부방 등을 운영하고 여성사업, 주민사업, 소식지 등을 통해 주민들과 지역문제를 공유, 여론화하며 공동체의식을 높여나감
  • 1989.02.26.

    협진사 노동조합 결성
    세인산업사 노동조합 결성
    불티나상사 노동조합 결성
    인천지역 민족민주운동연합, 동인천역 광장에서 「노태우 정권 규탄 국민대회」를 개최할 예정이었으나 경찰의 원천봉쇄로 무산됨. 시민·학생들은 답동 가톨릭회관 입구와 주안사거리, 부천역 등지에서 소규모 집회를 산발적으로 개최하였고 경찰이 이를 강제해산하는 과정에서 시민들이 대피한 가톨릭회관과 주안1동 성당 안까지 들어와 강제연행을 단행함
  • 1989.03.01.

    대동플라스틱 노동조합 결성
    신흥화학 노동조합 결성
  • 1989.03.02.

    대우자동차 부평공장 노동자들, 노동조합 위원장 불신임을 위한 조합원 총회 개최를 요구하며 작업 거부 돌입
  • 1989.03.04.

    인천지역 노동조합 협의회, 「위장폐업 완전추방 및 임금인상 쟁취 결의대회」 개최
  • 1989.03.05.

    인천지역 노동조합 협의회 여성국·인천여성노동자회, 인천대학교 학생회관 체육관에서 「3·8세계여성의 날 기념 인천여성노동자회 창립 보고대회 및 여성노동자 대동제」 개최
  • 1989.03.10.

    천주교 인천교구 가톨릭노동청년연합회, 가톨릭회관 304호에서 위장폐업 사업장 지원을 위한 일일찻집 행사 개최. 이 날 행사에는 세창물산 노동자들이 자신들의 이야기를 담은 노래극을 만들어 공연함
    인천지역 노동법개정 및 임금인상투쟁본부, 효성동 JC공원에서 「89임투전진대회」 개최
  • 1989.03.11.

    덕창기업 노동조합 결성
    (주)대성 노동조합 결성
    원자표보일러 노동조합 결성
  • 1989.03.14.

    고려강철 노동조합 결성
  • 1989.03.15.

    인천기독교 목회자협의회 인권위원회, ‘고문기술자’ 이근안에 대한 「조선일보」의 청룡봉사상 시상 보도와 관련해 성명을 발표하고 ‘즉각 이씨의 수상을 취소하라’고 촉구
    린나이 노동조합 결성
  • 1989.03.16.

    삼양유지 노동자들, 노동조합을 결성하고 ‘임금 50% 인상, 2교대를 3교대로 전환’ 등을 요구하며 파업 돌입. 3월 22일에는 조합원 부인들도 농성에 참여함
    세창물산 원미정 위원장·박상옥 사무장·박필규 문화부장 구속
    신립섬유 문진희 사무장 구속
  • 1989.03.16.

    삼양유지사료 노동조합 결성. 당일 전국화학 노동조합연맹에 가입하고 이튿날인 3월 17일 인천직할시 중구청장으로부터 ‘노동조합설립신고증’을 발부 받음
    삼양(장유) 노동조합 결성
    목재노동자회 박영우, 보르네오 ‘임투’와 관련해 제3자 개입 혐의로 구속
  • 1989.03.17.

    지성병원 노동조합 결성
  • 1989.03.20.

    인천기독교 사회운동협의회 준비위원회 등 전국 12개 기독교 사회운동단체로 구성된 한국기독교사회운동연합(기사련)이 서울 종로6가 동대문교회에서 창립총회를 개최함
    한신보일러 노동조합 결성
  • 1989.03.22.

    보루네오 노동자들, ‘어용노조 퇴진 및 민주노조 인정, 일당 3천원 인상, 3개월 호봉승급 100원, 위험·위생수당 2만 원’ 등의 요구조건을 내걸고 파업농성 돌입
    대동플라스틱 노동자들, ‘노동조합 인정과 임금인상’ 등을 요구하며 농성을 벌여오던 중, 이 날 새벽 각목 등을 들고 들어온 구사대에 의해 무차별 폭행을 당함
  • 1989.03.23.

    인천지역 대학생대표자협의회 소속 학생 400여 명, 인천대학교 학생회관 앞에서 「광주학살·5공비리 주범 노태우 정권퇴진을 위한 청년학도 1차 실천대회」 개최
    (주)대동 이신우 문화부장 구속
  • 1989.03.26.

    영원통신 노동조합 결성
  • 1989.03.27.

    동진산업 노동조합 결성
    태흥산업 노동조합 결성
    인천지역 민족민주운동연합, 문익환 목사 방북지지 성명 발표
    천주교 인천교구 천주교사회운동협의회, 가톨릭회관 304호에서 「현장교회의 그리스도화를 위하여-참된 노동의 의미」라는 주제로 월례 기도회 개최. 노동사목 전국협의회 사무국장 정인숙이 주제발표를 하고 「깡순이, 슈어프로덕츠 노동자」 비디오 상영 등으로 진행
  • 1989.03.29.

    인하대학교 학생 150여 명, 통일광장에서 「총장직선 및 등록금 완전동결 쟁취 1차 결의대회」 개최
  • 1989.03.30.

    봉신·명신 노동조합, 단체협약의 조속한 체결을 요구하며 파업 시작
  • 1989.03.31.

    삼양유지사료 인천공장 노동조합, 3월 21일 쟁의발생신고를 하고 이날부터 파업 돌입. 4월 7일부터 노사 간 협상이 진행되었으며 4월 11일 부평역 앞 노동위원회에서 진행된 노사협의회에서 회사 측이 1987년 9월 1일 체결된 합의서의 내용을 전면 백지화한다고 선언
  • 1989.04.01.

    인천사랑학우회, 창립대회 개최
    인천지역 노동조합 협의회, 경찰이 현대중공업 파업농성을 강제진압한 데 대해 항의하며 주안1동 성당에서 철야농성 돌입
    목재노동자 300여 명, 인천대학 체육관에서 「목재노동자 임금인상 쟁취대회」를 개최하고 결의문 발표
    인천지역 노동조합 협의회 소속 노동자 700여 명, 주안1동 성당에서 「현대노동자 탄압하는 노태우 정권 규탄 인천지역 노동자 결의대회」 개최
    인천·부천민주노동자회 회원 이광석, 국가보안법 위반혐의로 구속됨
  • 1989.04.02.

    로버트쇼 노동조합 결성
  • 1989.04.03.

    인천·부천민주노동자회 소속 강병원 등 노동자 3명, 국가보안법 위반혐의로 구속됨
  • 1989.04.04.

    인천지역 사립중·고등학교 교사 300여 명, 인천대학교 대학원 소강당에서 「인천사립교사협의회 창립대회」 개최. 회장에 인화여자고등학교 황진도 교사 선출
    보루네오 노동자들, 14일 째 파업농성을 전개하던 중 1500여 명의 구사대에 의해 강제 해산 당함. 이 과정에서 180여 명이 연행되어 6명이 구속되고 9명이 불구속 입건됨. 이후 4월 8일 11명, 4월 10일 30여 명 등 농성 참가자들에 대한 해고가 이어져 4월 15일에는 해고자가 60여 명에 달함
    천주교 인천교구 정의평화위원회, 가톨릭회관 512호에서 월례회를 개최하여 1987년 대통령 선거 이후 활동이 침체되었던 점을 지적하고, ‘불의한 사회와 함께 특히 사람을 변화시키는 역할’, ‘인천지역의 일반사회운동단체와 교회 내 천주교사회운동협의회 등 액션단체를 지원’, ‘돌아가는 정세를 올바르게 인식하여 그때 그때 복음정신에 입각한 교회 자신의 목소리로 방향을 제시’ 등의 사항을 결의함
    천주교 인천교구 신부로 있던 중 1975년 4월 강제출국당한 시노트 신부, 4월 9일 경북대학교에서 개최되는 「인혁당 15주기 기념식」에 참석하기 위해 입국함
    인하대학교 총학생회, 학생 2000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인하대학교 통일광장에서 「민주총장 선출 및 등록금 동결 쟁취를 위한 수업거부 결의대회」를 개최하고 총장 직선과 등록금 동결 등을 요구하며 4월 6월부터 수업을 전면 거부하기로 결의함
  • 1989.04.06.

    보르네오 손명구·배호연·임수철·정연미·백도연·이성환·엄홍경 구속
  • 1989.04.07.

    알파제약 노동조합 결성
    인하대학교 총학생회, 4월 6일부터 ‘총장직선제’ 등을 요구하며 수업 거부를 해오던 중, 학교 측과 ‘교수회의를 이달 안으로 개최’, ‘직선 총장선출을 위한 개정회칙안 결정’, ‘교수·학생·교직원 대표로 학원발전 추진위원회 구성’, ‘등록금 인상 철회’ 등에 합의하고 4월 10일부터 수업에 들어가기로 결정함
    삼우공업 노동조합, 회사 측과 4차에 걸친 임금교섭이 부결되자, 일당 2150원 인상, 주 44시간 노동 보장 등을 요구하며 파업 돌입
  • 1989.04.08.

    인천민주시민공동회, 사무실 이전 개소식 개최. 의장은 황선진
  • 1989.04.09.

    태평양물산 김성종 조합원·대림통상 양동만 조합원, 현대규탄시위와 관련해 구속됨
    흥업사 노동자 최완용, 산곡동 천마산 중턱에서 몸에 신나를 뿌리고 분신한 변사체로 발견. 현장에서 ‘중앙병원으로 옮겨주십시오’라고 적힌 유서가 발견됨. 최완용은 3월 1일, 공장에서 작업 도중 손가락 네 개가 절단되는 사고를 당한 뒤 치료를 받아 왔음
    인천지역 노동조합 협의회·인천지역 노동운동단체협의회, 부평역 광장에서 「현대중공업 노조탄압 규탄 및 89임투승리 전진대회」를 개최하려 하였으나 경찰에 의해 무산되자 이에 항의하며 북구청 로타리, ‘백마장 입구’ 등지에서 시위를 벌임
  • 1989.04.10.

    동명통산 노동조합 결성
    경동산업 박병우·이수일 구속
    ‘주안5동 산동네 세입자 대표협의회’를 해체하고 ‘주안5동 산동네 세입자 주택건립추진위원회’ 발족
  • 1989.04.11.

    영동금속 노동조합 결성
  • 1989.04.12.

    인천지역 대학생대표자협의회, 4월 12일∼14일간을 「4·19계승 인천지역 5만학도 전진대회」 기간으로 선포
  • 1989.04.13.

    인천지역 대학생대표자협의회, 인천대학교 민주광장에서 「문익환목사 환영 및 노태우정권 퇴진을 위한 청년학도 결의대회」를 개최하고 ‘민중운동 탄압하는 노태우정권 타도하자’, ‘문목사의 정당한 평양방문에 대한 사법조치를 철회하라’, ‘통일·민주운동 탄압하는 국가보안법 즉각 철폐하라’ 등 7개항의 결의문 발표. 이후 ‘정주영은 애국자고 문익환은 간첩이냐’라고 적힌 플래카드를 앞세우고 선화여상 앞 도로로 나가 최루탄을 쏘며 저지하는 경찰에 맞서 시위를 벌이다 자진 해산함
  • 1989.04.14.

    영동금속 노동조합 파업 시작
    천주교 인천교구 천주교사회운동협의회, ‘민주화를 위한 비디오 순회’ 행사 시작. 주안1동 성당(14,15일), 답동 가톨릭회관(18,19일), 부평3동 성당(25,26일)에서 구로부정투표함 사건을 다룬 「어둠을 뚫고 태양이 뜰 때까지」 등의 비디오를 상영하였고, 4월 21일과 22일에는 주안1동 성당에서 영화 「오! 꿈의 나라」를 상영하여 매회 300여 명이 관람하는 성황을 이룸
  • 1989.04.17.

    주안지역 파업사업장 주최로 봉신중기에서 「주안지구 임금인상 완전쟁취 승리의 밤」과 「봉신가족협의회 발대식」을 개최하고 ‘봉신명신 노동조합 가족협의회’ 결성
  • 1989.04.19.

    인하대학교 학생 200여 명, 오후 1시경 인하대학교 후문 근처에서 「4·19혁명 계승 및 문익환 목사 구속 규탄 결의대회」 개최
    인천전문대학 학생 300여 명, 오후 3시경 교내 사자상 앞에서 「4·19혁명 기념식」을 개최한 후 선인고등학교 정문 앞으로 진출해 시위를 벌임
    인하공업전문대학 학생 1500여 명, 교내 운동장에서 「등록금 인상철회 투쟁 결의대회」를 개최하고 학장실을 점거한 채 철야 농성 돌입
    인천기독교목회자협의회·인천기독교목회자협의회 인권위원회, 대우자동차 해고노동자 전희식과 이성재가 4월 8일 대우자동차 부평공장 앞에서 유인물을 나눠주다 경찰에 연행돼 집단폭행을 당했다고 주장하며 부평경찰서 서장 및 수사과장 등 관련자 12명을 인천지검에 고발함
  • 1989.04.21.

    인천지방노동청이 산마루교회 노동문제상담원으로 있으면서 노동조합 활동을 지원해 온 인하대학교 건축공학과 제적생 도재민에 대해 노동쟁의조정법 위반혐의로 구속영장을 신청함
    영본가구 노동조합, 3월 20일부터 시작한 임금협상이 별다른 진전을 보이지 못하자 회사 측의 임시총회 기간 중 무노동무임금 원칙에 항의하며 파업에 돌입함
  • 1989.04.22.

    삼양유지사료 인천공장 노동자들, 1987년 9월 1일 체결된 합의사항의 이행과 임금인상 등을 요구하며 농성을 해오던 중, 새벽 5시경 경찰 500여 명이 투입돼 강제해산 당하고 노동조합 위원장 송계선 등 38명이 경찰에 연행됨
  • 1989.04.23.

    인천지역 민족민주운동연합·인천지역 대학생대표자협의회, 인천대학교 민주광장에서 시민·노동자·학생 등 900여 명이 참여한 가운데 「노정권 규탄대회」 개최. 이날 행사에서 참석자들은 문익환 목사의 방북을 빌미로 민족민주운동에 대한 전면적 탄압이 자행되고 있다고 규탄하며 ‘공안합수부 해체하고 국가보안법 철폐하라’, ‘노동운동탄압 분쇄하고 세계노동절 쟁취하자’, ‘문목사 석방하고 자주적 민간교류 쟁취하자’, ‘학살원흉·비리주범 노태우를 몰아내자’ 등 4개 항을 결의. 이후 ‘국가보안법 철폐하고 문목사를 석방하라’고 적힌 플래카드를 들고 선인고등학교 정문으로 진출해 「노태우 대통령 허수아비 화형식」을 가진 후 최루탄을 쏘는 경찰에 맞서 시위를 벌이다 오후 6시 30분경 해산함. 그중 100여 명은 오후 7시 40분경 중구 신포동 시장 입구에서 유인물을 뿌리고 경동파출소에 화염병을 투척하는 등 시위를 벌임
  • 1989.04.24.

    인천민중문화운동연합 등 전국 12개 문화예술인 단체, ‘문화예술인 공동 시국선언’ 발표
    삼양유지사료 노동조합 송계선 위원장·최성철 홍보부장·이영택 문화부장 구속
    세기자동차 최완식 부위원장, 삼양유지사료 노동조합 ‘임투’와 관련해 제3자 개입 혐의로 구속
  • 1989.04.25.

    인천지역 민족민주운동연합, ‘현시국에 대한 우리의 입장’이란 제목의 성명을 발표하고 ‘공안합동수사본부 해체’를 촉구
    인천기독교 사회운동협의회 준비위원회, 4월 22일 삼양유지사료(주) 노동조합의 농성장에 공권력이 투입돼 강제해산이 단행된 사건과 관련하여 「성명서」를 발표하고 ‘공안합수부 해체, 제3자 개입금지 조항의 철폐, 구속자의 석방’ 등을 촉구
  • 1989.04.26.

    ‘건강사회를 위한 치과의사회 서울·경인지부’, 「건강사회를 위한 치과의사회 창립총회」와 동시에 창립됨.
  • 1989.04.27.

    인천지역 기독교 사회운동협의회 준비위원회·서울기독교사회운동연합·수도권지역 신학대학 (총)학생회연합과 공동으로 감리교 신학대학 종합관 대강당에서 「문익환 목사 석방촉구 및 애국민주세력 탄압저지를 위한 기도회」 개최. 기도회 이후 거리로 나가 촛불평화행진을 하려고 했으나 경찰에 의해 저지됨
    봉신중기 노동자들이 단체협약체결을 요구하며 29일째 농성을 이어가는 가운데 구사대원 200여 명이 몰려와 가스총을 쏘며 강제 해산시킴
  • 1989.04.28.

    ‘주안 가톨릭 노동 사목 불법 난입 사건’ 발생. 주안5동 성당 백순기 신부와 사무장 김흥수, 주안 가톨릭노동사목에 찾아온 (주)영원통신 사장으로부터 폭행을 당함. (주)영원통신 사장은 수배를 받아오다 자수해 5월 8일 폭력행위 등 처벌에 관한 법률 위반 혐의로 구속
    인천지역 대학생대표자협의회, 「인대협신문」창간
    인천·부천지역 전문대 민주화투쟁학생연합, 인천전문대학 해방광장에서 발대식 개최
    인천지역 노동악법 개정 및 임금인상투쟁본부 산하 주안지구 22개 노동조합, 봉신중기 농성 노동자 강제연행에 항의하며 하루 동안 작업 거부 단행
  • 1989.04.29.

    봉신명신 위원장·부위원장 및 홍영표, 곽노우 등 구속
    동신전자 전 쟁의부장 한기태·그로리아 노동조합 김광철·로버트 쇼 노동조합 김익순, 4월 28일의 주안 집회와 관련해 구속
  • 1989.04.30.

    인천지역 노동조합 협의회·인천지역 대학생대표자협의회 소속 노동자·학생들, ‘전국노동법 개정 및 임금인상투쟁본부’ 주최로 서울 여의도 광장에서 개최 예정이던 「세계노동절 1백주년 기념 한국노동자대회」에 참석하기 위해 부평역에서 출정식을 가지려 하였으나 경찰의 원천봉쇄로 무산됨. 노동자·학생들은 부평시장로터리 부근에서 규탄시위를 벌이는 한편, 석바위와 인천시민회관 앞에서 차도를 점거한 채 연좌시위를 하며 시위를 이어감
    인천민주청년회 김효선 운영위원, 인천시민회관 앞을 지나던 중 노동절 행사를 앞두고 실시된 경찰의 검문에 걸려 동부경찰서로 연행 당함. 이후 국가보안법으로 구속
    동신전자 노동조합 조병규·임영식 및 인하대학교 장훈, 4월 28일의 주안 집회와 관련해 구속
    천주교 인천교구 사제단, 4월 28일 발생한 「백순기 신부 폭행 및 주안노동사목 무단난입」 사건과 관련하여 주안5동 성당에서 나길모 주교가 참석한 가운데 긴급사제단회의를 열고, ‘교회의 교권과 노동사목에 대한 중대한 침해행위이며 공권력 남용에 의한 노동운동탄압’으로 사건을 규정한 후 교회가 적극적으로 대처해야 한다는 데에 의견을 모음
  • 1989.05.01.

    인천지역 노동조합 협의회 산하 근로자 및 학생 2500여 명, 각 지구대별로 「세계노동절 1백주년 기념식 및 4·30 보고대회」를 가진 뒤, 오후 5시경 세계노동절 1백주년 기념대회 행사장인 부평역으로 가두행진을 시도하였으나 경찰의 원천봉쇄로 무산되자 2차 집결지인 시민회관 앞 등지에서 산발적인 시위를 벌이다 오후 8시경 해산. 시위 현장에서 인천지역 노동조합 협의회 간사 정장교가 연행되어 구속됨
    주안5동 성당, 4월 28일 발생한 「백순기 신부 폭행 및 주안노동사목 무단난입」 사건과 관련하여 항의문을 작성해 본당 신자 647명의 서명용지와 함께 인천시청을 방문, 시장에게 전달함. 인천시경은 면담을 거절하여 우편으로 발송. 이후 5월 3일 오후 9시부터는 200여 명의 신자들이 철야 기도회를 가짐
    인천민주청년회 등 서울·경기지역 20여 개 청년단체, 5월 1일부터 5월 7일까지 서울 대학로에서 「제1회 서울·경기 청년문화대동제」 개최
    인천·부천민주노동자회, 기관지 「일꾼의 함성」 창간
  • 1989.05.02.

    인천공립중등교사협의회, 답동 가톨릭회관에서 창립대회 개최
    경찰 70여 명이 인천민주청년회 사무실을 수색하고 김성진 회장과 이용주 교육부장 등 3명을 연행함. 김성진과 이용주는 국가보안법 위반혐의로 구속됨
  • 1989.05.03.

    인천초등교사협의회, 교사 300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인천교육대학교에서 창립대회 개최
    천주교 인천교구 사제단, 4월 28일 발생한 「백순기 신부 폭행 및 주안노동사목 무단난입」 사건과 관련하여 오전 9시 30분경 답동 가톨릭회관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교권침해와 노동운동 탄압하는 현 정권을 규탄한다!」라는 제목의 성명서 발표. 이에 앞서 5월 1일 성명서를 발표한 전국노동사목협의회도 5월 3일부터 전국 각 교구의 노동사목 종사자와 사목담당 사제, 수녀 등 25명이 서울 가톨릭회관에서 무기한 단식농성에 들어감
    대경여자상업학교 학생 천여 명, 학교 교정에서 재단비리 척결과 학생회 자치활동 보장 등을 요구하며 5월 8일까지 철야농성 진행
    해인교회, 인하대학교에서 노동자 생활극 ‘우리것 우리가 찾으러’ 공연
    대흥기계 노동조합 위원장 홍상철, 부평공장 사무실에서 회사 측과 단체교섭을 벌이던 중 노동쟁의조정법 위반혐의로 사전영장을 발부받은 인천지방노동청 근로감독관 5명에게 강제연행되는 와중에 손에 수갑을 차고 달아남
  • 1989.05.04.

    천주교 인천교구 평신도사도직협의회, 4월 28일 발생한 「백순기 신부 폭행 및 주안노동사목 무단난입」 사건과 관련하여 오후 7시 비상회의를 열고 「교권탄압과 폭력행위를 규탄한다」는 제목의 성명서 발표
    천주교 인천교구 천주교사회운동협의회, 4월 28일 발생한 「백순기 신부 폭행 및 주안노동사목 무단난입」 사건과 관련하여 오후 3시 회원 40여 명이 ‘교회의 교권과 노동사목 침해 행위를 즉각 중단하라’ 등의 피켓을 들고 답동 가톨릭회관 앞에서 인천시경까지 시가행진을 하며 항의 시위 전개. 이어 오후 6시경에는 (주)영원통신 앞에서 ‘영원통신의 노조활동을 보장하라’ 등의 피켓을 들고 시위
  • 1989.05.05.

    세창물산 노동조합, 신립섬유 노동조합과 함께 세창물산 운동장에서 「투쟁보고대회」를 개최하고 244일 간에 걸친 농성을 끝냄.
  • 1989.05.07.

    주안5동 성당 평협, 4월 28일 발생한 「백순기 신부 폭행 및 주안노동사목 무단난입」 사건과 관련해 오전 11시 미사가 끝난 후 본당 신자 400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주안1동 성당까지 침묵시위 전개
  • 1989.05.08.

    인천지역 의료보험 노동조합 창립
    천주교 인천교구, 4월 28일 발생한 「백순기 신부 폭행 및 주안노동사목 무단난입」 사건과 관련해 답동성당에서 1000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교권수호와 노동자를 위한 기도회」 개최. 기도회가 끝난 후 천주교 인천교구 사제단은 가톨릭회관 6층에서 오후 7시 30분부터 다음날인 5월 9일 오후 7시 30분까지 24시간 단식기도에 들어감
    대경여자상업학교 학생 1000여 명이 5월 3일부터 재단비리 척결 등을 요구하며 철야 농성을 벌여오자, 학교 측은 임시휴업을 결정하고 부평경찰서에 공권력 투입을 요청하여 학생들을 해산시키고 김상필 교사와 학생회장을 구속시킴
    인천교육대학 재학중 입대한 이상철 등 서울시경 제3기동대 97중대(사복체포조, 속칭 백골단) 소속 전투경찰 6명, 소속부대를 나와 여의도 평민당 중앙당사에서 양심선언문 발표. 이들은 ‘우리들은 동의대 사건으로 참변을 당한 분들의 죽음이 너무나 억울하게 생각되어, 죽음의 의미를 왜곡, 탄압의 칼을 휘두르는 정치권력자들의 속셈을 폭로하기 위해 위험을 무릅쓰고 이 자리에 섰다’고 밝히고 ‘전투경찰대의 대간첩작전 전념과 경찰의 정치권력으로부터의 독립’을 요구. 이상철 등 3명은 5월 28일 전투경찰대 설치법 위반 혐의로 구속되고 나머지 3명은 자체 징계를 받음
  • 1989.05.10.

    인천지역교사협의회, 답동 가톨릭회관 5층 강당에서 교사 150여 명이 참여한 가운데 「제3회 교사의 날 기념 및 교직원노조 건설을 위한 인천교사전진대회」를 개최하고 신맹순을 준비위원장으로 선출
  • 1989.05.11.

    인천민주청년회·인천기독교청년협의회·천주교 인천교구 청년회, 5월 15일까지 답동 가톨릭회관 512호실에서 민족민주운동탄압 중지와 구속자 석방을 촉구하며 철야농성 진행
    천주교 인천교구 청년꾸리아·가톨릭청년단체협의회, 오후 7시 주안5동 성당에서 회원 200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이석재 신부의 주례로 「교권수호와 노동자를 위한 미사」 봉헌
    5월 3일부터 ‘족벌재단 퇴진, 학교재정 공개, 학생자치활동 보장’ 등을 요구하며 농성을 별여 오던 대경여자상업고등학교 학생회장과 부학생회장 등 2명, 업무방해 및 폭력행위 등 처벌에 관한 법률위반 혐의로 구속됨
  • 1989.05.15.

    인천민주청년회·인천기독교청년협의회·천주교 인천교구 청년회, 5월 11일부터 5월 15일까지 답동 가톨릭회관에서 민족민주운동탄압 중지와 애국인사 석방을 촉구하며 철야농성을 진행한 후, 이날 오후 7시 답동 가톨릭회관 앞 도로에서 「민주화를 위한 노상 촛불기도회」를 개최하여 「광주희생자와 조성만열사 추모기도회 및 이철규열사 고문치사 보고대회」 가짐
    햇살 어린이집, 청천동에 설립됨
  • 1989.05.18.

    인천지역 대학생대표자협의회, 인하대학교 통일광장에서 학생 500여 명이 참여한 가운데 「이철규 군 고문살인 진상규명 및 노태우정권퇴진을 위한 5만학도 결의대회」를 개최한 후 가두행진을 벌임
    인천대학교 학생들, 인천대학교 민주광장에서 700여 명이 참여한 가운데 「광주항쟁 추모제 및 재단이사진 퇴진을 위한 결의대회」 개최
    해인교회, 5월 30일까지 「광주 비디오 상영 및 사진전」 개최
    백령도 연화3리 어민 50여 명, 북포1리 해병부대 정문 앞에 몰려가 군 당국의 조업 과잉통제에 항의하며 농성 진행
  • 1989.05.19.

    삼양유지 노조탄압 대책협의회, 4월 22일 공권력이 투입돼 농성중인 노동자들을 강제해산한 사건이 발생한 삼양유지사료(주) 인천공장이 삼양식품의 계열회사인 점을 들어 ‘삼양식품 불매운동’의 시작을 선언. 삼양유지 노조탄압 대책협의회는 인천지역노동조합협의회, 진보정치연합 인천지부, 인천지역노동상담·교육단체협의회, 인천여성노동자회, 인천지역 노동운동단체 협의회, 천주교 인천교구 천주교사회운동협의회, 인천지역 기독교 사회운동협의회 준비위원회 등이 참여해 구성
  • 1989.05.20.

    인천지역 민족민주운동연합, 인천전문대 본관 앞에서 「고 이철규 열사 고문치사 진상규명대회」 개최. 학생, 시민, 노동자 800여 명이 참여하여 대회를 끝마친 후 동인천역 앞까지 평화적인 가두시위 벌임. 개정된 집시법에 따라 당국의 허가를 받고 열린 인천 최초의 집회였음
  • 1989.05.21.

    인천지역 기독교사회운동협의회 준비위원회, 제2동인장로교회에서 「광주 5월항쟁 기념예배」 개최. 5월 17일부터 5월 20일까지는 새봄교회, 백마교회, 해인교회, 송림사랑방교회, 일꾼교회에서 「광주 5월항쟁 기념 비디오 상영」 행사 진행
  • 1989.05.22.

    문교부는 전국교직원노동조합 결성을 추진한 교사들 중 처벌대상자를 54명으로 확정하고 그중 국·공립학교 교사 37명은 국가공무원법에 따라 직위해제함과 동시에 징계위원회에 회부하여 파면시키고 형사고발하라고 전국 시도교육위원회에 지시함. 인천지역 징계대상자는 박문여자고등학교 교사 조용명, 제물포고등학교 교사 신맹순, 신현초등학교 교사 이청연 등 3명임
  • 1989.05.23.

    신현북초등학교 이청연·인천제물포고등학교 신맹순·박문여자고등학교 조용명 등 교사 3명, 5월 14일 개최된 「전국교직원노조 발기인 대회 및 준비위원회 결성대회」와 관련하여 인천시교육위원회에 의해 직위해제된 후 징계위원회에 회부됨. 같은 날 오후 이청연·신맹순은 인천지방검찰청에 고발되고 조용명은 사학재단 측에 중징계하도록 통보됨
  • 1989.05.24.

    인하대학교 학생 700여 명, 후문 광장에서 「구속학우 석방을 위한 범인하인 실천대회」를 개최한 후 가두 시위 전개
  • 1989.05.26.

    인천지역 대학생대표자협의회·천주교 인천교구 천주교사회운동협의회·인천지역 사회운동연합·인천지역 주민회·인천민주청년회·인천·부천민주노동자 일동·인천·부천민주노동자회, 「애국학생 고 이철규열사 고문살해사건에 즈음하여」라는 제목의 성명서를 공동 명의로 발표. 이 성명서에서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수배 중이던 조선대학교 전자공학과 4학년 이철규가 익사한 시신으로 발견된 사건에 대해 진상규명 등을 요구
  • 1989.05.27.

    인천지역 노동조합 협의회·인천지역 대학생대표자협의회·인천지역 민족민주운동연합, 인하대학교 통일광장에서 시민, 학생, 노동자 500여 명이 참여한 가운데 「이철규열사 살해 진상규명 및 전국교직원노조 결성지지 결의대회」 개최
  • 1989.05.30.

    주안5동 성당, 4월 28일 발생한 「백순기 신부 폭행 및 주안노동사목 무단난입」 사건과 관련해 성당 정문과 사무실 벽에 부착한 ‘신부님 폭행사건 진상을 규명하라!’, ‘동부경찰서장을 파면하고 파출소장을 구속하라!’는 내용의 현수막과 사제단 명의의 고발장이 이날 밤과 다음날 새벽 사이에 신원 미상 사람들에 의해 불태워짐
    인천대학교 총학생회장 안영환 등 학생 40여 명, 인천대학교 총장실을 점거한 채 재단이사진 퇴진을 요구하며 밤샘 농성 전개
  • 1989.05.31.

    명신여자고등학교 학생 1600여 명, 5월 29일 학교 측이 전국교직원노동조합에 가입한 평교사회 회장 강신오 등 교사 4명을 부평경찰서에 고발한 데 항의하며 학교 운동장에서 농성을 벌이다가 해산함. 이날 학교 측은 관련 교사들에 대한 고발을 철회함
    대우자동차 노동조합, 중앙노동위원회와 노동부에 쟁의발생 신고
  • 1989.06.01.

    금성하니웰 노동조합 결성. 금성하니웰은 1984년 럭키금성과 미국 하니웰사가 합작해 설립한 회사로 1985년 9월 부평공장을 설립했다가 1995년 3월 천안으로 공장을 이전함
  • 1989.06.02.

    인천지역 노동법개정 및 임금인상 투쟁본부 소속 노동조합 위원장 30여 명, 민주당 인천북 갑지구당 정정훈 의원 사무실에서 구속 노동자 석방을 요구하며 시한부 농성 돌입
  • 1989.06.03.

    제물포고등학교 출신 대학생 350여 명, 제물포고등학교에서 체육대회를 개최하고 수배중인 신맹순 제물포고등학교 교사에 대한 사전구속영장 철회를 촉구하는 서명운동 진행
  • 1989.06.04.

    인천지역 노동법개정 및 임금인상투쟁본부, 인하대학교 통일광장에서 구속노동자 석방 및 노동운동탄압 중지 등을 촉구하며 집회 개최
    세경의류 노동자들, 노동조합 결성식을 거행. 6월 5일 「노동조합 결성 보고대회」와 함께 임금 인상 등을 요구하며 파업 돌입. 세경의류는 1987년 2월 설립된 의류봉제 업체로 주안6공단에 위치함. 남자용 자켓을 생산하며 전량을 미국·일본·유럽 등지로 수출. 1989년 1월 중순 활동가 1인과 미싱사 2인이 노동조합의 필요성에 인식을 함께하고 모임을 결성. 이후 또래 모임을 조직해 나감. 4월 말 9명이 모여 노동조합 준비위원회를 만든 후 6월 4일 노동조합 결성식을 개최함. 파업은 7월 6일에 종결됨
  • 1989.06.05.

    인천·부천 민주노동자회 회장 안재환,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구속
    명신여자고등학교 재단 대표·교사 대표·학부모 대표 등 11명이 학교정상화를 위한 모임을 갖고 6월 15일까지 명신여자고등학교 교도주임을 퇴진시키는 데 합의함
  • 1989.06.06.

    대우자동차 노동조합, 부평공장을 비롯한 전국 6개 지부별로 투표를 진행해 전체 조합원 53.2%의 찬성으로 파업 결의
  • 1989.06.07.

    인천지역 학부모·교사 200여 명, 답동 가톨릭회관 5층 강당에서 「교직원 노조지지 학부모대회」 개최
    전국노동운동단체협의회, 인천·부천민주노동자회 의장 안재환의 구속과 관련해 성명을 발표하고 구속자 석방 및 수배자 해제 등을 촉구
  • 1989.06.08.

    인천대학교 교수협의회·인천대학교 교직원 노동조합·선인학원 교사협의회·인천대학교 학생회·인천전문대 학생회 등 선인학원 5개 단체 소속 500여 명, 인천대학교 체육관에서 집회를 갖고 설립자 백인엽과 이사진을 학원에서 퇴진시키기로 결의함
  • 1989.06.09.

    국제사면위원회, 전국교직원노동조합 인천지부장 신맹순 교사를 ‘표현의 자유에 대한 권리를 비폭력적으로 행사한 양심범’으로 규정하고 ‘즉각적이고 무조건적인 석방’을 요청하는 서한을 정부 당국에 보내옴
    다우정밀 노동조합 결성. 6월 26일에 인천지역 노동조합 협의회에 가입함
  • 1989.06.10.

    전국교직원노동조합 인천지부 준비위원회, 인천대학교 대학원 강당에서 전국교직원노동조합 인천지부 결성. 지부장에 신맹순 제물포고등학교 교사 선출
  • 1989.06.14.

    고창산업 노동조합 결성
    일하는 여성의 나눔의 집, 「제4회 일하는 여성을 위한 수요 강좌」 개최. 김지선 여성노동자회 회장이 ‘산업사회의 여성의 역할과 지위’라는 주제로 강연함
  • 1989.06.18.

    ‘주안5동 산동네 세입자 주택건립 추진위원회’, 만수동 이주 정착지(전 만수동 중국인 공동묘지)에서 ‘(가칭)삶의 자리’ 상량식 개최
    인천기독교사회운동연합 결성. 1988년 9월 5일 인천지역민중교회연합, 인천기독교청년협의회, 기독교도시산업선교회, 등 3개 기독교운동단체들 중심으로 준비위원회를 구성하여 1989년 2월 인천부천목회자정의평화실천협의회가 추가로 참가하여 결성됨
  • 1989.06.19.

    인하대학교 교수 김영규,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구속돼 인천교도소에 수감 중인, 본인의 강좌 ‘정부와 경제’ 수강 학생 이용주에 대해 성적평가를 위한 특별면회 신청
    학익동 교도소에 수감중인 양심수들, ‘운동시간 연장, 양심수 합사, 부식 개선, 소내 폭력 근절, 서책 및 서신 검열 폐지’ 등을 6월 24일까지 들어줄 것을 교도당국에 요구
    대우자동차 부평공장, 노사 양쪽이 임금인상에 합의하며 정상조업 시작
  • 1989.06.20.

    인천지역 유업판매원 500여 명, 주안 고려예식장 지하에서 ‘인천지역 유업 판매원 총연합회’ 결성식 개최
  • 1989.06.22.

    전국교직원노동조합 인천초등지회 결성. 지회장에 이영규 산곡초등학교 교사 선출
    선인학원 7개 학교 소속 교사 200여 명, 인천대학교 대학원 강당에서 「전국교직원노동조합 선인학원 연합분회 결성식」 개최
  • 1989.06.23.

    인천시교육위원회가 징계위원회를 열고 전국교직원노동조합 인천지부 사무장 이청연을 국가공무원법 위반으로 파면 의결함
    인천조선, 인천노동조합협의회 가입
  • 1989.06.24.

    인천민중문화운동연합, 인천지역 노동조합 협의회 1주년 기념행사로 인천지역 각 민주노조의 참여 하에 「해방가요제」 개최
    천주교 인천교구 천주교사회운동협의회, 답동 가톨릭회관 312호에서 문국주 평화연구소 부소장을 초청하여 「민족공동체의 실현을 위하여」라는 주제로 월례기도회 개최
    천주교 인천교구 부평1동 대학생회, 부평1동 성당에서 고려대학교 고성국 교수를 초청하여 「민족통일과 우리의 과제」라는 주제로 「통일염원 초청강연」 개최
    인천민주시민공동회·한겨레신문 인천지사, 「제1회 민중역사기행」으로 ‘갑오농민전쟁터 기행’ 진행
  • 1989.06.25.

    「가톨릭신문」에 4월 28일 발생한 「백순기 신부 폭행 및 주안노동사목 무단난입」 사건과 관련하여 (주)영원통신 대표이사 도홍식 명의의 「성직자 폭행에 대한 사과문」 광고가 게재됨. 천주교 인천교구 사제단은 사건이 아직 법원에 계류중에 있는 상황에서 교회가 적당한 타협을 하였다고 비판하며 유감을 표명
  • 1989.06.26.

    인천지역 구속자가족협의회, 학익동 교도소 보안과장을 만나 수감 중인 양심수들이 6월 19일 제시한 요구사항의 수용을 강력히 촉구함
  • 1989.06.27.

    민주화를 위한 교수협의회 인하대학교 지회, ‘민주화를 위한 전국교수협의회 인하대학교 지부회원 일동은 다음과 같이 전교조 지지에 대한 입장을 밝힌다’라는 제목의 성명서를 통해 대한교육연합회 산하 인천시 교육회를 탈퇴한다는 선언과 함께 전국교직원노동조합에 대한 지원과 더불어 교수 일반의 교직원노조 참여 권유 사업을 적극적으로 추진하겠다는 입장을 발표함
    홍성훈 등 인천지역 인사 39명, 「참교육 실천을 위한 전국교직원노동조합의 결성을 적극 지지합니다!」라는 제목의 전국교직원노동조합 출범 지지 선언문 발표
    인천지역 노동조합 협의회, 인하대학교 대강당에서 「제1회 노동해방 가요제」 개최
    구월중학교 교사 이경호, 광주에서 개최된 전국교직원노동조합 창립대의원대회에 참석했다가 경찰에 연행돼 구속됨
  • 1989.06.28.

    인천지역 노동조합 협의회, 「인천지역 노동조합 협의회 1주년 기념대회」를 1500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효성동 JC공원에서 개최
  • 1989.06.29.

    인천지역 각계 인사들이 모여 ‘목요회」 창립
    인천·부천지역 노동자회 사건 구속자·수배자 가족들, 평민당 박영록 부총재와 민주당 김동영 부총재 등 국회의원 75명을 포함, 각계인사 1007명으로부터 구속자 석방 및 수배 해제 등을 요구하는 서명을 받아 서울형사지법에 제출
    ‘민주화를 위한 전국교수협의회 인하대학교 지회’ 소속 교수 17명, 전국교직원노동조합 결성 지지 성명을 내고 대한교련 산하 인천시교육회를 탈퇴하고 밝힘. 이 날 인천지역 의사·변호사·신부·목사 등 39명도 전국교직원노동조합지지 성명을 발표함
  • 1989.06.30.

    가톨릭 민주시민 공동체(가칭), 답동 가톨릭회관 304호에서 창립모임 개최
    대학생 20여 명이 ‘노태우 정권 퇴진’ 등의 구호를 외치며 간석동 석암파출소 맞은편에서 시위를 벌임. 오후 8시경에는 용현동 소재 민정당 인천시 남구을 지구당 건물에 대학생으로 추정되는 10여 명이 화염병을 던지고 달아남
  • 1989.07.01.

    전국교직원노동조합 인천지부 사립지회 결성
    대우자동차 부평공장 노동조합, 임금협상 당시 6월 30일까지 지급하기로 한 상여금을 회사 측이 자금사정을 이유로 7월 10일 이후로 미루자 이에 반발해 노동조합 간부를 제외하고 조합원들이 출근을 하지 않음
  • 1989.07.04.

    전국택시노동조합연맹 인천지부 소속 57개 택시노동조합, 각 단위 노동조합별로 조합원 총회를 열고 준법투쟁 돌입
  • 1989.07.05.

    인천지역 대학생 30여 명, 5월 5일부터 시작된 대학생들의 명동성당 단식 농성을 지지하는 단식 농성 시작
    인천조선, 노동자들이 ‘노동조합 위원장 퇴진과 파업기간 유급처리’ 등을 요구하며 6월 23일부터 11일째 작업 거부를 계속 하자 회사 측이 무기한 휴무에 들어감
    인천·서울·경기지역 14개 대학 교수 90여 명, 민주교수협의회 사무실에서 전국교직원노동조합 가입 성명 발표
  • 1989.07.07.

    인천·경기지역 6개 대학 교수 106명, 인하대학교 교수회의실에서 ‘인천·경기 민주화교수협의회 창립대회’를 개최하고 회장에 인하대학교 임명방 교수 선출
    전국교직원노동조합 인천지부, 경찰이 답동 소재 사무실에 대한 압수수색을 실시하여 전교조 신문, 플래카드, 피켓 등 40여 점을 압수당하고 사무실에 들어가려던 중앙초등학교 강승숙 교사 등 6명이 연행됨. 이 날 압수수색은 검찰이 7월 9일 예정인 전국교직원노동조합 전국대회를 앞두고 전국 15개 전교조 지부 사무실을 대상으로 밤 7시부터 자정까지 일제히 실시함에 따라 이루어짐
    대영기계 노동조합 현판식 거행. 대영기계는 효성동에 위치함
    인천노동교육연구소, 7월 28일까지 매주 금요일마다 부평4동 431-24 소재 연구소에서 노동자들을 대상으로 한 정기 교육 실시
  • 1989.07.09.

    송철순민주노동열사추모위원회·인천여성노동자회·인천지역노동조합협의회가 공동 주최하는 「송철순열사 추모 및 노조탄압규탄 인천노동자결의대회」가 인천대학교 체육관에서 개최됨. 송철순은 세창물산노동조합 사무장으로, 파업농성 중이던 1988년 7월 15일 현수막을 부착하다가 공장 옥상에서 추락하여 이틀 뒤인 7월 17일 사망함
    한국특수실업 노동조합 현판식 거행.
  • 1989.07.10.

    인천노동교육연구소, 회보 「인천노동교육」 창간호 발행
  • 1989.07.12.

    전국교직원노동조합 인천지부 소속 초등학교 교사 5명, 전교조 탄압에 대한 항의 표시로 단식 수업에 돌입
    노동자대학 설립추진위원회, 소식지 「노동자대학」창간호 발행
  • 1989.07.13.

    전국교직원노동조합 인천지부 사립중등지회 소속 교사들, 전교조 탄압에 대한 항의 표시로 수업 시간 중 식사를 하지 않겠다고 결의한 후 점심식사를 생략하는 부분 단식 수업 시작
    인천 노점상연합회 회장 윤상준, 7월 12일 오전 11시경 남동구 만수동 남부소방서 옆 인도에서 노점상 50여 명과 함께 생계대책 마련 등을 요구하며 1시간 가량 시위를 벌인 일과 관련하여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 위반 혐의로 남부경찰서에 입건됨
  • 1989.07.14.

    전국택시노동조합연맹 인천지부 소속 52개 사가 임급 협상 문제로 쟁의발생 신고. 이튿날인 7월 15일 노사 양측이 임금 25% 인상 등 6개항에 합의하면서 쟁의 하루만에 타결됨
  • 1989.07.15.

    한국노동조합총연맹, 화평동·용현동·부평동에 소재한 일일노동자 대기소에 노동상담소 설치
    인천길병원 노동조합 부위원장 내정자 신태식, 남구 주안동 소재 세광병원에서 인천길병원 노동조합이 결성된다는 소식을 듣고 관리사원들과 함께 찾아온 인천중앙길병원 관리과장으로부터 폭행을 당해 전치 10일의 상해를 입음. 해당 관리과장은 폭력행위 등 처벌에 관한 법률 위반 혐의로 인천동부경찰서에 입건됨
  • 1989.07.18.

    현대건설 철구사업본부 노동조합 조합원 70여 명, 시급 400원 인상 등을 요구하며 파업 돌입
  • 1989.07.20.

    인천·부천민주노동자회 사건과 관련해 같은 해 2월 구속·기소된 손형민 등 5명, 결심 공판에서 손형민 징역 4년, 나머지 4명에게 징역 3년이 구형됨. 검찰은 논고문에서 인천·부천지역민주노동자회가 ‘민족해방민중민주주의혁명(NLPDR) 이념을 기초로 한 이적단체’라고 규정함
  • 1989.07.22.

    인천지역 차량정비 노동조합, 자동차 정비업소 분야에서는 전국 최초로 결성대회를 갖고 출범함. 위원장에 장기철 선출
  • 1989.07.28.

    인천지역 고등학생 200여 명, 인하대학교 교수회의실에서 개최된 「미추홀 학생축제」에 경찰이 진입하여 강제 해산 당함. 이 과정에서 고등학생 48명과 대학생 5명이 연행되어 조사를 받음. 경찰은 ‘인천지역 고교생연합회’를 결성하려는 움직임이 있어 병력을 투입했다고 밝혔으나 행사에 참석한 일부 고등학생 및 대학생들은 경찰의 강제 해산을 항의하며 후문 등지에서 시위를 벌이다 자진 해산함
    전국교직원노동조합 인천지부, 7월 18일 현재 조합원 명단을 「한겨레신문」에 게재해 공개함
    ‘전국교직원노조를 지지하는 인천지역노동조합 일동’ 명의로 ‘전국교직원노조에 대한 우리의 입장’이라는 성명서가 발표돼 8월 5일자 「한겨레신문」에 게재됨
  • 1989.07.29.

    인천외국어학교 교사 12명, 전국교직원노동조합 가입 문제와 관련해 파면·해임 당함
    인천지역 노동조합 협의회, 370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금남캠프장에서 「여름대잔치」 개최
  • 1989.07.30.

    천주교 인천교구 사제단, 7월 29일 문규현 신부 북한파견과 관련해 천주교 정의구현전국사제단 신부 3명이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구속되자 긴급 사제총회를 소집하여 40여 명의 사제가 참석한 가운데 정의구현전국사제단의 입장을 수용하고 신자들에게 드리는 글을 교구 신자에게 강론으로 홍보하기로 결정. 천주교 정의구현전국사제단은 이튿날인 7월 31일 긴급총회를 소집해 문규현 신부 북한 파견 사실을 만장일치로 추인한 후, ‘① 노태우대통령에게 7·7선언의 진의와 통일 정책을 공개 질의한다. ② 8월 7일부터 국가보안법 철폐와 5공 청산, 광주문제 해결을 위한 전국민 서명운동을 전개한다. ③ 민족의 화해와 일치를 위한 전국 교구별 순회기도회를 개최한다. ④ 이에 대한 정부의 응답을 예의주시하며 지속적으로 대책을 마련한다’ 등의 대책을 마련함
  • 1989.07.31.

    7월 28일 개최된 「미추홀 청소년축제」와 관련해 경찰이 고교생연합회 결성 여부 조사를 위해 고교생 8명을 불러 조사함
  • 1989.08.01.

    7월 28일 개최된 「미추홀 청소년축제」에 참가한 고등학생들을 연행해 조사중인 경찰이 이날 행사가 ‘인천지역 고교생 대표자 협의회’ 결성을 위한 사전 모임이라고 조사결과를 발표함
    경찰이 도화동 만두리서점과 주안동 시민서점을 압수수색영장 없이 수색해 「갑오농민전쟁 제2부」 등 판금서적 69점을 압수하고 만두리서점 주인 김용환을 입건함
    주안5동 산동네 강제철거로 인하여 세입자 100여 세대가 만수동 중국인 묘지터로 집단 이주함. 주택이 미완공된 상태에서 이주하였으며 12월 10일 주민투표로 마을 이름을 ‘한우리 마을’로 정함
  • 1989.08.05.

    신광기업·US마그네틱코리아·대원화학·삼우기업 등 4개 업체 노동자 152명, 인천지방노동청 앞마당에서 노사협상 중재를 요구하며 농성을 벌이다 전원 경찰에 연행됨
  • 1989.08.08.

    제물포고등학교 졸업생 30여 명, 전국교직원노동조합 인천지부 사무실에서 ‘전교조지지 및 신맹순 교사 석방을 위한 제물포고 동문 대책위원회’ 결성
  • 1989.08.10.

    참교육을 지지하는 학부모 모임, 주안5동 성당에서 「선생님에게 노조를 아이들에게 참교육을」이라는 주제로 모임 개최
  • 1989.08.11.

    천주교 인천교구 천주교사회운동협의회, 8월 11일·12일 이틀간 답동 가톨릭회관 312호에서 「제3회 좋은 영화 감상회」를 개최하여 「어미」, 「이철규씨 사인의 진상을 밝힌다」 등을 상영
    인천지역 노동조합 협의회, 500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노동탄압 분쇄 및 임금인상 완전쟁취대회」 개최
  • 1989.08.13.

    인천시민공동회 사무실이 경찰에 의해 수색당하고 의장 황선진 등 5명이 연행됨
  • 1989.08.16.

    인천시교육위원회가 전국교직원노동조합 가입 교사들의 징계에 따른 학생들의 반발과 고교생협의회 구성 움직임에 대비해 학교별로 교장을 반장으로 한 ‘학생선도대책반’을 구성하여 운영하라는 지시를 내림
  • 1989.08.18.

    노동자대학 설립추진위원회 구성원 1명이 사무실 앞에서 형사에 의해 부평파출소로 강제 연행 당함. 시민의 제보로 이 사실을 안 노동자대학 설립추진위원회 구성원 전원이 부평파출소를 항의 방문하여 연좌 시위 전개
  • 1989.08.21.

    천주교 인천교구 천주교사회운동협의회 주관으로 답동 가톨릭회관 304호에서 본당별 JOC·PAX·청년회장 및 기타 단체장이나 임원을 대상으로 한 ‘국가보안법 철폐와 구속사제 석방을 위한 평신도단체 연석회의’ 개최. 이날 모임에서 ‘국가보안법 철폐와 구속자 석방’을 위한 모든 사업에 공동대처하기로 결정하고 ‘평신도공동대책위원회’ 결성
    코리아스테플 노동조합 노동자 6명, 회사 운동장에서 회사 직원들과 충돌해 화염병을 던지고 사무실에 화염병 3개를 가지고 있다가 경찰에 연행돼 업무방해 및 폭력행위 등 처벌에 관한 법률 위반 혐의 등으로 입건됨
  • 1989.08.22.

    인천지역 사회운동연합, 8월 22일부터 10월 3일까지 매주 화·금요일에 시민교양강좌 개최
  • 1989.08.23.

    대공장풍물패 대표회의, 8월 15일에 개최된 「인천시민 큰잔치」 행사를 계기로 결성된 후 1차 회의 개최
  • 1989.08.25.

    세일고등학교 학생 1500여 명, 원종찬 교사의 복직을 요구하며 농성 전개. 8월 26일에는 전교생 투표를 실시해 822명의 찬성으로 수업전면거부 돌입. ‘학생징계, 평교사협의회 인정’ 등에 합의하고 9월 1일부터 수업을 재개하였으나 방과 후 농성은 계속 이어감
    인천지역 노동조합 협의회, 신광기업에서 400여 명의 노동자들이 참석한 가운데 「노동해방 가요제」 개최
  • 1989.08.27.

    천주교 인천교구, 공안정국이 확대되는 상황을 우려하여 8월 27일부터 9월 4일까지 「민족의 화해와 일치를 위한 9일 기도」를 각 본당에서 동시에 봉헌하고 국가보안법 철폐 서명운동을 시작
  • 1989.08.28.

    성헌고등학교 학생 300여 명, 직권면직된 도성훈 교사 등 8명이 학교 안으로 들어오려는 것을 학교 측과 경찰이 막자 2시간 동안 농성을 벌임
    세일고등학교 학생 1500여 명, 오전 9시경부터 해직된 원종찬 교사의 복직을 요구하며 교실복도에서 연좌농성을 전개하다 낮 12시경 귀가함
  • 1989.08.29.

    대우자동차 부평공장 프레스부 소속 주간반 노동자 400여 명, 유해수당 지급 협상과정에서 소음문제가 배제되자 이에 대한 해명을 요구하며 작업을 거부하고 농성 전개
  • 1989.08.31.

    전교조와 관련해 직권면직된 맹관호 등 성헌고등학교 교사 7명과 서은희 등 인천외국어고등학교 교사 7명, 각각 성헌학원과 정월학원을 상대로 면직(해임)처분 무효 확인 및 임금가지급 가처분 신청을 인천지법에 제출. 전국교직원노동조합 관련 교사들이 가처분신청을 낸 것은 이번이 처음임
  • 1989.09.01.

    인천시경 기동 3중대 소속 의경 130여 명, 오후 3시경 청천동 기동대 숙소를 이탈해 부평역 광장에서 인격적인 대우를 해줄 것을 요구하며 1시간여 동안 연좌농성 벌임
    전교조 인천지부 사무실을 경찰이 수색해 유인물 등을 압수하고 전 신현초등학교 교사 이청연과 인천교육대학교 학생 강석균 등 10명을 연행함
    인천지역 노동조합 협의회, 「노동조합 탄압 분쇄 및 전국교직원노조 사수대회」 개최
  • 1989.09.03.

    참교육 실현을 위한 인천지역 학부모회, 답동 가톨릭회관 5층 강당에서 창립대회 개최
    인하대학교 민주동우회 창립
  • 1989.09.04.

    경동산업 노동자 강현중·김종화 등 5명이 부당 징계 방침 철회를 요구하며 철야농성을 벌이던 중 노무이사 강의신의 사무실에서 온몸에 신나를 끼얹고 분신, 화상을 입고 인천병원과 한강성심병원 등에 분산 치료를 받음. 당시 이를 지켜보던 최운규 등 2명도 칼로 배를 찔러 자해를 시도함. 경동산업 노동자 21명은 8월 31일부터 회사 내 친목서클인 ‘디딤돌’ 간부 3명이 일일찻집을 열었다는 이유로 징계위원회에 회부된 데 대해 항의하며 복지관 4층 옥상에서 농성을 진행해 옴
    천주교 인천교구, 답동 성당에서 「‘민족의 화해와 일치를 위한 9일 기도’ 파견기도회」를 갖고 「‘국가보안법 철폐와 구속사제 석방을 위한 인천교구평신도공동대책위’ 발대식」를 개최함
  • 1989.09.05.

    경동산업 노동자탄압 분쇄대책위원회 결성. 인천지역 노동조합 협의회, 인천지역 민족민주운동연합, 인천지역 대학생대표자 협의회, 인천지역 교육·상담소 협의회, 인하대학교 민중운동탄압 분쇄 특별위원회 등 참여
  • 1989.09.06.

    천주교 인천교구 정의평화위원회, 답동 가톨릭회관에서 ‘통일과 민족경제’라는 주제로 조선대학교 박현채 교수를 초빙하여 월례모임 개최
    노동자대학 설립추진위원회 사무국장 신현직, 인천북부교육구청에 의해 사회교육법 위반 혐의로 부평경찰서에 고발 당함. 인천북부교육구청은 노동자대학 설립추진위원회가 문교부장관의 인가를 받지 않고 ‘대학’의 명칭을 사용하며 「노동자대학 」 1.2.3호를 발간했다고 주장함
  • 1989.09.07.

    경동산업 노동자 이재학·최운규·최성춘·채중영 등 4명, 9월 4일 발생한 경동산업 노동자 분신 사건과 관련해 ‘화염병 사용에 관한 법률’ 위반과 ‘폭력행위 등 처벌에 관한 법률’ 위반, 업무방해 등의 혐의로 구속됨.
  • 1989.09.08.

    천주교 인천교구, 답동 가톨릭회관에서 「구속사제·임수경양 석방과 국가보안법 철폐를 위한 결의대회」 개최
  • 1989.09.09.

    ‘경동산업 노동자탄압분쇄 공동대책위원회’, 700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인천대학교 대학원 강당에서 「경동산업 노동자 탄압분쇄 결의대회」 개최. 대회가 끝난 후 인천대학교 교문 밖으로 진출하려다가 저지하는 경찰에 맞서 화염병 등을 던지며 시위 전개
    경동산업 노동자 강현중, 부당징계 철회를 요구하며 9월 4일 분신을 단행해 서울 한강성심병원에 입원중 사망함. 하루 전인 9월 8일에는 함께 화상을 입은 경동산업 노무관리이사 강의신이 사망함
  • 1989.09.12.

    인천기독교 사회운동연합, 일꾼교회에서 「제1회 정책협의회」 개최
  • 1989.09.18.

    경동산업, 정상조업 시작
  • 1989.09.21.

    인천교도소에 수감중인 인천민주청년회 회장 김성진 등 시국 관련 수감자 50여 명, ‘국가보안법 철폐, 양심수 석방’ 등을 요구하며 단식농성 돌입
  • 1989.09.22.

    천주교 인천교구 민중대학 동창회, 답동 가톨릭회관 304호에서 「참교육과 전교조」라는 주제로 제물포고등학교 해직 교사인 전국교직원노동조합 인천지부장 신맹순을 초청하여 공개강좌 개최
  • 1989.09.27.

    인천지역 노동조합 협의회·인천지역 민족민주운동연합·진보정치연합·경동산업 분신 노동자 유가족 등 40여 명, 여의도 평민당사에서 경동산업 노동자 분신사건과 관련해 국회차원의 진상조사를 요구하며 철야농성 전개
  • 1989.09.28.

    부평1동성당에서 참교육학부모회 인천지부 창립. 전국 16개 시도지부가 결합한 전국참교육학부모회와 동시에 창립. 학부모회는 열악한 교육환경, 촌지문제 등 교육비리와 출세지향적인 입시경쟁 교육을 비판하며 교육의 본질을 파헤침. 소식지로 「인천 학부모」 발행
  • 1989.09.30.

    노동자대학, 부평5동 376-6 소재 옛 신립섬유 자리에 마련한 대학 건물에서 400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개관식 거행. 이 날 행사에서 백기완 통일문제연구소 소장을 교장으로 위촉하고 염낙빈 삼원플라스틱 노조부위원장을 학생자치회 준비위원장으로 선임
  • 1989.10.*

    인천노동자문학회, 가톨릭 노동사목 독서목임에서 제1기 문예교실 개최
  • 1989.10.04.

    경동산업 노동자 강현중·김종하 등 2명의 영결식이 주안5공단 운동장에서 500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거행. 참가자들은 이후 경동산업 앞마당으로 자리를 옮겨 노제를 진행함
  • 1989.10.05.

    인하대학교 운동장에서 8000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참교육실현을 위한 정태춘 전국순회 무료공연」 개최
  • 1989.10.06.

    삼우공업사·협우실업·세경의류 노동조합, 「위장폐업분쇄 및 노동악법철폐 결의대회」 개최
  • 1989.10.12.

    중앙대학교 학생 20여 명, 간석동 소재 안기부 인천분실(일명 인하공사) 정문 입구에서 화염병 20여 개를 던지며 기습시위 전개. 이들은 건물 담에 ‘이내창 살해한 안기부 해체’라는 문구를 스프레이로 쓰고 ‘의혈 중앙대 애국결사단’이란 명의의 유인물을 배포한 뒤 인천시청 방향으로 달아남
  • 1989.10.15.

    노동자대학, 부평동 소재 노동자대학 건물 3층에서 「노동자대학 합법성 쟁취 결의대회」 개최. 참가자들이 결의대회를 마치고 도로를 따라 부평역으로 거리행진을 하는 과정에서 45명이 경찰에 연행당한 후 10월 17일 전원 석방됨. 그중 10여 명은 신원진술과 지문채취를 끝까지 거부
  • 1989.10.16.

    천주교 인천교구, 천주교 정의구현전국사제단이 주관하는 교구순회기도회의 다섯 번째 모임인 「이 땅의 민주화와 민족통일을 위한 기도회」를 답동성당에서 개최. 1000여 명이 모인 가운데 문정현 신부가 특별강론을 진행함. 이날 기도회에서 ‘구속사제석방과 국가보안법철폐를 위한 천주교 인천교구 공동대책위원회’가 ‘민족공동체로의 출애굽여정을 시작하며’라는 제목의 성명서를 발표한 후, 십자가를 든 사제단을 선두로 참석자 전원이 촛불거리행진을 하려고 하였으나 경찰의 원천봉쇄로 인해 진행하지 못함
    노동자대학 설립추진위원회, 자체 입수한 「노동자대학 설립관련 동향」이라는 문건을 공개하고 경찰·교육청·관할구청 등 관계기관이 조직적으로 노동자대학 설립 인가를 방해하고 있다고 주장
  • 1989.10.18.

    인천지역 민주노동자연맹 중앙상임집행위원장 오동렬 등 핵심 조직원 15명, 국가보안법 위반혐의로 구속
    인천지역 노동조합 협의회, 부평1동 성당에서 400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단병호 의장 강연회 개최
  • 1989.10.19.

    인천지역 민주노동자연맹 소속 최병국(조직1국 현장지도책)·이현영(조직2국 현장지도책) 등 2명, 국가보안법 위반혐의로 구속
    인천기독교 민중교육연구소, ‘인민노련 사건’과 관련해 치안본부가 인천기독교 민중교육연구소를 인천지역 민주노동자연맹 하부조직으로 발표한 데 대해 항의하는 성명서 발표. 10월 21일에는 ‘인천기독교 민중교육연구소 소장 박종렬 목사, 임직원 일동’ 명의로 ‘치안본부의 인노련 탄압행위와 인천민교연에 대한 왜곡발표를 규탄한다’는 제목의 성명서를 「한겨레신문」에 게재함
  • 1989.10.22.

    천주교 인천교구 가톨릭노동청년회, 백석 하늘의 문 묘원에서 전국JOC지도 황상근 신부의 미사집전으로 「고 강석태 형제 1주기 추모미사」 진행
  • 1989.10.24.

    천주교 인천교구 청년회, 답동 가톨릭회관 504호에서 「제7기 민중대학」 개강. 12월 15일까지 매주 화·목요일 진행
    인천민주시민공동회 부설 민중학교에 대해 남부교육청이 사설강습소법 위반을 이유로 사무실에 폐쇄공고문을 게시하고 폐쇄조치함
  • 1989.10.25.

    인천지역 노동조합 협의회 여성국, 「인천지역 여성부장 교육」 진행
    천주교 인천교구 가톨릭대학생연합회, 가톨릭회관 504호에서 「공안정국의 의미와 대응」이라는 주제로 「월례 청년강좌」 개최
    인천지역 노동조합 협의회, 700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인천대학교에서 「인천지역 노동조합 협의회 문화대찬치」 개최
  • 1989.10.28.

    인천지역 의료보험 노동조합, ‘노조간부의 노조활동 보장, 월차 휴가 실시’ 등을 요구하며 인천시와 인천지방노동위원회에 쟁의발생 신고
    전국교직원노동조합을 비롯해 전국 18개 단체가 공동주최한 「참교육을 위한 국민걷기 대회」가 인천지역에서는 답동성당~월미도 문화의 거리를 코스로 하여 진행됨
  • 1989.10.29.

    협신사 노동조합 조합원 이재호, 주안5동 성당이 운영하는 노동상담소에서 상담을 마친 뒤 인근 강화주점에서 술을 마시고 귀가하던 중 0시 40분경 주안4동 419 태양주차장 앞길에서 둔기에 맞아 사망한 채 발견됨.
  • 1989.11.*

    인천여성노동자회, 「일하는 여성의 사랑과 투쟁 -노동자의 결혼관을 갖자」라는 제목의 미혼여성들을 위한 교재 발간
  • 1989.11.01.

    용현동 성당에서 민주화실천가족협의회 공동의장 서준식을 초청하여 「국가보안법 철폐를 위한 서준식 선생 초청강연회」 개최
  • 1989.11.04.

    인천민중문화운동연합, 노동자대학에서 「인천민중문화운동연합 창립 1주년기념 놀이패 한두레 초청공연」 개최
  • 1989.11.08.

    인천지역 의료보험 노동조합 소속 조합원 245명, 이날 각 조합에 월차휴가원을 제출한 뒤 11월 9일 단체휴가에 들어가기로 함
    인천지역 대학생대표자협의회 의장 안영환, 국가보안법 위반혐의로 구속 기소됨
    인천대학교 학생 박영태·정수영, 전국대학생대표자협의회 산하 ‘청년구국결사대’에 참가해 서울 가락동 민정당 중앙정치연수원 점거 농성 단행
  • 1989.11.10.

    인천교도소에 수감중인 김성진 등 시국관련 사범 60여 명, ‘5공비리 척결 및 광주학살주범 처단, 추곡 전량수매’ 등 4개 항을 요구하며 11월 13일까지 4일간의 시한부 농성 돌입
  • 1989.11.11.

    서울 보라매 공원에서 개최될 예정이었던 「전노협 결성을 위한 전국 노동자대회」가 경찰의 원천봉쇄로 무산되어 서울대학교로 장소를 옮겨 진행되었으며, 이날 동국대학교로 들어가려던 인천지역 노동조합 협의회 최동식 의장이 경찰에 연행됨
  • 1989.11.14.

    노동자대학, ‘친일파, 그들은 지금 무엇을 하고 있는가’라는 제목으로 첫 교양강좌를 개최할 예정이었으나 경찰의 원천봉쇄로 미리 들어와 있던 40여 명만이 참석한 가운데 강의가 진행됨. 노동자대학은 이날부터 11월 28일까지 세차례에 걸쳐 강의를 진행할 예정이었음
    인천지역 노동조합 협의회 산하 단위 노동조합 위원장 50여 명과 남일금속 노동조합 조합원 150여 명, 최동식 의장의 석방을 요구하며 부평경찰서 앞에서 연좌농성 전개. 이후 부평시장 앞까지 거리행진을 한 뒤 해산함. 남일금속 노동조합 조합원 500여 명은 이에 앞서 회사 내에서 임시총회를 개최하고 부평경찰서까지 행진하던 중 갈산초등학교 앞에서 최루탄을 쏘며 저지하는 경찰에 밀려 해산함
  • 1989.11.15.

    인천지역 노동조합 협의회 소속 조합원들, 11월 11일 연행된 최동식 의장의 석방을 요구하며 서운동, 효성동, 작전동 인터체인지 일대에서 시위
  • 1989.11.16.

    인천지역 노동조합 협의회 산하 40여 개 노동조합 조합원 7000여 명, 최동식 의장의 구속에 항의하며 파업 전개. 이날 오후 부평역 앞 광장에서 개최할 예정이었던 「인노협 최동식 의장 구출 및 전노협 건설 탄압분쇄결의대회」가 경찰의 원천봉쇄로 무산되자 노동자 3000여 명은 주안역, 작전동 JC공원 등 부평 시내 곳곳에서 산발적인 시위를 벌이다 108명이 연행됨
    전 인천지역 노동조합 협의회 파업자위대 제4지구대장 겸 대흥기계 임금투쟁 파업자위대장 ○○○, 서울 여의도 평민당사에서 양심선언문을 발표하고 ‘지난 1월부터 10월까지 대흥기계에 직원으로 있으면서 이 회사 및 부평경찰서, 안기, 노동부 등의 정보원으로 일해왔다’고 밝힘
  • 1989.11.17.

    ‘지역·업종별 노동조합 전국회의’ 산하 전국 12개 지역노동조합 협의회 소속 230여 개 노동조합, 각 단위 사업장별로 작업을 거부하고 정부가 11월 12일 보라매공원 노동자대회를 원천봉쇄한 데 대해 항의하는 임시총회 개최. 인천지역 노동조합 협의회 소속 조합원 600여 명은 총회를 마친 후 인하대학교에서 「노동운동탄압 분쇄결의대회」를 개최한 후, 인하대학교 정문을 나와 가두 시위 전개
  • 1989.11.21.

    인천지역 노동조합 협의회 소속 간부 50여 명, 최동식 의장의 석방과 대흥기계 전 노동조합 간부 변태욱의 ‘프락치 사건’ 진상규명을 요구하며 11월 24일까지 시한부 밤샘농성 돌입
  • 1989.11.22.

    인천지역 대학생 대표자협의회 의장 안영환(인천대학교 총학생회장),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구속기소되었다가 징역 1년 6월·집행유예 3년을 선고 받고 석방됨
  • 1989.11.24.

    세기자동차 노동자들, 부당해고 철회를 요구하며 28일째 농성을 벌여오던 중 회사에 투입된 경찰에 의해 시위용품을 압수 당함
  • 1989.11.25.

    인천지역 사회운동연합 남부지부, 창립총회 개최. 사무실은 숭의동 120-17(3층)에 위치
  • 1989.11.26.

    인천지역 노동조합 협의회, 대흥기계 노동조합 전 파업대장 ○○○의 프락치 활동 양심선언과 관련하여 ‘프락치 공작 진상규명대책위원회’ 구성
  • 1989.11.28.

    노동자대학 집행위원 박재영, 이날 백기완을 초청해 개최할 예정이던 노동자대학 교양강좌를 원천봉쇄한 데 대해 부평경찰서장을 직권남용혐의로 고소
  • 1989.11.29.

    인천지역 진보정당 준비모임 결성. 운영회의 의장에 이호웅, 부의장 박귀현, 집행위원장 송경평, 총무국장 안영근, 기획국장 김종용 등을 선임
  • 1989.11.30.

    인천지역 의료보험 노동조합 조합원 77명, 남구 의료보험조합 4층 전산실을 점거해 농성을 벌이던 중 경찰에 연행됨. 그중 사무국장 오성수 등 4명이 업무방해혐의로 구속됨
    인천지역 노동조합 협의회, 12월 1일까지 「제1차 지도자교육」 실시
  • 1989.12.*

    인천여성노동자회, 월간지 「인천여성노동자」 창간
  • 1989.12.02.

    인천지역 노동조합 협의회 등 6개 단체, 만수동 성당에서 「최동식 의장 석방과 프락치공작 규탄 및 민주운동탄압 분쇄 결의대회」 개최
  • 1989.12.09.

    인천지역 노동조합 협의회, 인천대학교에서 1500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꽃다지’ 공연 개최
  • 1989.12.10.

    인천지역 노동조합 협의회, 노동조합별로 총회를 열고 전국노동조합협의회 건설 기금 모금 사업 시작
    전국교직원노동조합, 인천 제일감리교회에서 334명의 대의원들이 모인 가운데 「제2차 임시대의원대회」를 개최하고 ‘조직이 대탄압 이전의 수준으로 회복되었다’고 공식 선언
  • 1989.12.13.

    인천지역 노동조합 협의회, 부평3동 성당에서 300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전노협 건설을 위한 백기완 선생 강연회」 개최
  • 1989.12.14.

    인천조선 노동조합, ‘휴무기간 임금지급, 김장보너스 지급’ 등 7개 항의 요구조건을 내걸고 쟁의행위 여부를 묻는 찬반투표를 진행해 70.2%의 찬성을 얻어 파업 결의
  • 1989.12.15.

    인천대공장풍물패 협의회 준비위원회, 인문연 부평지부에서 개최된 「대공장 풍물패 송년의 밤」에 100여 명의 풍물패 회원들이 모여 발족
    인천기독교목회자협의회 인권위원회, 송림동 동인교회에서 열린 「세계인권선언 41돌 기념 연합예배」 행사 중, 1984년 구속돼 복역 중인 인천 창영교회 이창국 장로가 고문수사에 의해 허위자백을 강요당했다며 전면 재조사를 요구
  • 1989.12.18.

    인천·부천지역 대학생 100여 명, 오후 4시경부터 10분 동안 인현동 대한서림 앞부터 용동고개까지 도로를 점거하고 ‘광주학살주범 처벌하라’ 등의 구호를 외치며 시위 전개. 오후 6시경에는 경기도 부천시 심곡동 소신여객 앞에서 ‘인천지역 대학생 대표자협의회’ 명의의 유인물을 뿌리며 시위
  • 1989.12.20.

    대한마이크로 노동조합 위원장 김미령·사무장 노명희·홍보부장 박수현·대의원 조승분 등 4명 해고 당함. 대한마이크로 노동조합은 최동식 인천지역 노동조합 협의회 의장의 구속에 항의해 11월 16일 파업을 전개하였는데 이에 대해 회사 측이 무노동무임금을 적용해 월급을 지급하자 2시간 작업거부를 한 바 있으며 이를 이유로 해고조치가 내려짐. 대한마이크로 노동조합은 12월 21일 쟁의발생신고를 하였으며 해고 노동자들은 출근투쟁을 이어감
    대우자동차 르망승용차 생산부 노동자 1000여 명, 연말 상여금 100% 지급 등을 요구하며 작업 거부
  • 1989.12.25.

    인천지역 민주노동자연맹 회원 권우철·노회찬 등 2명이 이적단체 가입 등 혐의로 구속되고, 노동운동단체협의회 소속 차명진이 이적표현물 제작 반포 등의 혐의로 구속됨. 경찰은 이들이 10월 18일 인천지역 민주노동자연맹 간부 17명이 구속되자 조직을 재건할 목적으로 활동을 벌여왔다고 발표
    ‘인천지역 노동자그룹 사건’ 발생
  • 1989.12.27.

    천주교 인천교구 정의평화위원회, 답동 가톨릭회관 2층에 사무실을 새로 마련하고 입주식 거행
  • 1989.12.29.

    한일스텐레스 노동자 105명(생산직 63, 사무직 42), 경영난을 이유로 집단 해고 당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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