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념관 건립

인천지역 민주화운동사 연표

  • 1970.01.05.

    인천기독교 도시산업선교위원회, 1월 5일부터 7월 15일까지 부평지역 현황조사 진행
  • 1970.02.11.

    전국외국기관노동조합 인천 POL특수지부 산하 인천·부평지구 경비분회원 474명, 미군 측이 92명을 감원한다고 통고한 데 항의하며 일괄사표 제출
  • 1970.02.17.

    전국외국기관노동조합 부평지부 일부 조합원들, 지부장 선출 문제와 관련하여 「4,000 부평지부 조합원 동지 여러분 우리들의 권익과 정의를 위하여 총궐기 합시다」라는 제목의 결의문 발표
  • 1970.02.21.

    기독교도시산업선교위원회·영등포도시산업선교연합회, 온양 수도호텔에서 경인지역 노동조합 대표급 지도자 20명(인천지역 10명)을 초청하여 ‘70년대의 경제발전에 따른 노동운동의 과제’를 주제로 「노동조합 지도자(지부장급) 연구회」 개최
  • 1970.02.23.

    전국부두노동조합, 3월 1일과 3월 23일 부산항과 인천항에 들어오는 콘테이너 수송선의 입항과 관련해 ‘대책없는 콘테이너 전용화 반대’를 요구하는 쟁의행위 가부투표를 2월 26일, 인천을 포함한 전국 18개 지부에서 거행하기로 결정
  • 1970.06.15.

    전국외국기관노동조합 인천 POL특수지부, ‘임금 30% 인상, 근로기준법 제47조 및 48조의 월차휴가 실행과 연차휴가 수당 실행’ 등의 요구 조건을 내걸고 중앙노동위원회에 제출한 쟁의신고에 대해 적법 판결을 받아 실력 행사를 위한 가부 투표 시행
  • 1970.06.23.

    전국 외국기관 노동조합 부평지구 하사관클럽분회, 미군 측이 조합원 33명에 대한 감원 통고를 하면서 한국인 근로자 15명에 해당하는 임금으로 미국 민간인 1명을 신규 채용하려 하는 등 노사 간 협의를 위배하고 있다며 해고 반대 궐기대회 개최
  • 1970.11.22.

    기독교도시산업선교위원회, 화수동 소재 대건중·고등학교 강당에서 ‘근로자의 사회참여와 국가발전’이란 주제로 박성종 신부, 이도선 교수 등을 강사로 초청하여 「노동대강연회」 개최. 강사로 예정됐던 노동청장은 참석하지 않았으며, 강연회 시작 강사 중 한 명이 전 신민당 노동정책 기조 팜플렛을 청중에게 배포해 물의를 빚음
  • 1971.01.13.

    전국외국기관노동조합 부평지부, 미 제20일반지원단사령부가 산하 조합원 340명을 2월 9일자로 집단 감원한다고 통보한 데 대해 반발하며 긴급운영위원회를 개최하고 투쟁위원회 결성.
  • 1971.02.08.

    인천기독교도시산업선교위원회, 「노동과 소명」 발행
  • 1971.03.03.

    전국외국기관노동조합 부평지부, 인천시 제2공보관 회의실에서 조합원 5백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제11차 정기대의원대회를 개최하고 서정곤을 지부장으로 재선출.
  • 1971.05.18.

    전국금속노동조합 경기지역지부 신진자동차 부평공장 분회, 인천상공회의소 회의실에서 조합원 6명이 참석하여 결성. 분회장에 김창수 선출.
  • 1971.06.08.

    인천기독교도시산업선교위원회, 위원회 사무실을 중구 인현동 26번지(혜성빌딩 5층)에서 동구 화수동 183번지로 이전
  • 1971.06.16.

    전국금속노동조합 경기지역지부 신진자동차 부평공장 분회 회장 김창수, 회사 측으로부터 해고당함
  • 1971.06.18.

    전국금속노동조합 경기지역지부 신진자동차 부평공장 분회, 전국금속노조 경기지역지부 간부 30여 명과 함께 회사 정문 앞에서 회사 측에서 주도한 또 다른 노동조합의 결성에 맞서 항의함. 인천도시산업선교위원회 소속 조지 오글 목사의 요청으로 현장을 찾은 한국노동조합총연맹 위원장 최용수도 설득을 시도했으나 결성대회는 강행됨
  • 1971.06.25.

    전국금속노동조합 경기지역지부 신진자동차 부평공장 분회 조합원 30여 명, 전국금속노동조합 본부에 몰려가 부당해고를 당한 분회장 김창수의 구제 등을 요구하며 농성을 벌임
  • 1971.07.18.

    전국외국기관노동조합 부평지부 하사관클럽분회, 분회원 350여 명이 임시총회를 열고 분회장 유충열이 인상된 노임으로 퇴직금을 계상하지 않아 분회원들에게 손해를 끼쳤다고 주장하며 임원 교체를 결의하고 신임 분회장에 신경수 선출
  • 1971.07.23.

    17개 산별노조 간부 70여 명, 금속노조가 신진자동차 부평공장에 두 개의 노조를 인정하고 있다며 항의. 이들은 금속노조가 신진자동차 부평공장에 노조분회 설립을 인정한 후, 노조원들이 임금인상을 요구하면서 노사분규가 일어나자 다시 회사 측이 만든 금속노조 신진자동차 지부를 인정했다고 주장함
  • 1971.08.16.

    신진자동차 부평공장 노동자들, 회사 측이 노동자 수백 명에 대해 대량 감원 공고를 내자 공장 옥상에서 농성에 돌입. 노동자 가족들도 8월 17일, 회사 정문 앞에 모여 ‘아빠의 실직은 가정의 비극이다’라고 쓴 플래카드를 들고 연좌농성을 벌임
  • 1971.08.17.

    전국금속노조 신진자동차 부평공장지부 조합원 700여 명, 회사 측이 208명의 종업원을 해고하겠다고 발표하자 이에 반발해 신진자동차 부평공장 기술센터 옥상에서 농성 전개
  • 1971.08.26.

    부평시장 노점상 500여 명, 노점상 철거를 위해 나온 북구청 직원 80여 명과 경찰관 50여 명에게 돌을 던지며 대치하다 해산
  • 1971.10.06.

    석재공급조합원 4000여 명, 돌 납품대 인상을 요구하며 무기한 작업 중지
  • 1971.10.14.

    전국외국기관노동조합 부평지부, TMP 수송관 미군 준위가 자신의 애인이 경찰 소환 당한 데 대해 앙심을 품고 한인종업원의 인권을 유린하고 있다며 미 애스컴 사령관에 처벌을 요구하는 한편, 적절한 조치를 취하지 않을 경우 작업 거부를 하겠다고 통보
  • 1971.11.01.

    경성공장주식회사 노동자 300여 명, 체불노임 2000만 원의 지급 등을 요구하며 농성 돌입. 경성공장주식회사는 청천동에 위치
  • 1971.11.07.

    미8군, 미 애스컴 55보급창 기구 축소로 인해 한인 종업원 122명을 11월 말까지 감원하겠다고 전국외국기관노동조합 부평지부에 통고.
  • 1971.11.22.

    전국외국기관노동조합 부평지부, 긴급운영위원회를 소집해 임금 40% 인상요구안 등을 결의하고 미8군에 서면으로 통보. 요구안이 관철되지 않을 경우 총파업에 돌입하기로 하고 투쟁위원회 구성
  • 1971.12.01.

    전국부두노동조합 인천지부 산하 7개 하역분회, 관수물자 하역노임의 인상쟁의행위 가부투표를 실시하여 전원의 찬성을 얻어 노동청에 통보
  • 1971.12.17.

    미8군, 전국외국기관노동조합 부평지부 산하 노무자 100명 감원, 47명 강등 단행.
  • 1971.12.14.

    한국베아링 공업주식회사 부평공장 노동자 황영환, 이날 새벽 근무 시간 중에 잠시 졸았다는 이유로 해고됨. 이로 인해 조합원과 지부장, 회사 측과 노동자들 사이에 분규가 발생하였고 황영환은 12월 23일 인천기독교도시산업선교위원회에 진정서를 제출함. 황영환은 1962년 5월 10일 한국베아링 공업주식회사 생산1과에 입사해 10년 간 근무해 왔으며 1971년 12월 야간감독이 졸고 있는 노동자 4명의 손등을 찌르자 비인도적 처사라고 항의하며 시정을 촉구한 바 있음. 한국베아링은 산곡동에 위치
  • 1972.05.10.

    동일방직 노동조합, 정기대의원대회를 개최해 주길자를 노동조합 사상 최초의 여성 지부장으로 선출
  • 1972.05.13.

    부두노동조합 인천지부와 인천하역협회, 현행 노임을 15% 인상해 4월 1일부터 소급 적용한다는 내용의 단체협약 갱신 체결
  • 1972.07.28.

    인천기독교도시산업선교위원회 조승혁 목사, ‘보라, 왜 이렇게 되었는가?’란 제목의 산업안전포스터 제작 건과 관련해 중앙정보부에 연행됨
  • 1972.07.13.

    인천 동지역 선교문제협의회, 화수동 성당에서 모임을 갖고 ‘산업학교, 지역사회를 위한 프로그램, 기독자 근로인 중심의 훈련’ 계획 등에 대하여 논의함
  • 1972.08. *

    기독교도시산업선교회, 인천서부지역위원회·인천 동구지역·부평지역 등 3개 지역위원회를 구성하기로 계획함
  • 1972.08.15.

    부평 애스컴 사령부, 기지 이동에 따라 산하 보급소 한국인 종업원 820명 중 415명을 9월 중에 감원하겠다고 외국기관노동조합 부평지부에 통고
  • 1972.11.02.

    자신의 집 담에 붙인 유신헌법안 공고문을 훼손시킨 남구 도화동 거주 이○○, 국민투표법 위반으로 동인천경찰서에 구속됨
  • 1972.12.10.

    기독교도시산업선교회 부평지역 선교회, 부평지역 선교회 사무실에서 첫 번째 ‘부평지역 공장 근로자 모임’을 가짐.
  • 1973.01.05.

    '넝쿨크럽', 정기총회를 개최하고 임원 선출. 회장 이혜숙, 총무·회계 박명숙. '넝쿨크럽'은 여성 회원으로 구성된 모임으로 도시산업선교회에 모임 장소를 두고 모임 목적을 ‘① 노동운동, ② 생활운동, ③ 자기훈련 ④ 설교훈련을 실시하여 이웃사람과 회원 상호간에 친목을 도모한다’에 둠
  • 1973.06.02.

    만석동 청년회, 화수동 183번지에서 발기대회 개최. 만석동 청년회는 만석동에 거주하는 청년들을 회원으로 하여 ‘회원 상호간의 친교와 지역사회 발전에 헌신하여 민주시민으로서의 자질 향상’에 목적을 둔 단체임
  • 1973.06.08.

    넝쿨크럽, 임시총회를 개최하고 임원 개선. 회장 장복순, 부회장 박명숙, 서기 김월순, 총무 이정순.
  • 1973.06.09.

    인천기독교 도시산업선교위원회 부평지역 선교위원회, 부평지역 기독교인 공장 근로자들을 대상으로 산곡감리교회 교육실에서 8월까지 월 2회 「부평지역 평신도 지도자 훈련 프로그램」 시행. 훈련 목적은 ‘노동계의 사도로써 자기성화와 회원 간의 굳은 사귐과 주와 나와 너를 하나되게 함으로써 산업평화 조성과 사회정의를 실현하며 국가경제 발전에 이바지함에 있다’고 명시
  • 1973.06.15.

    전국금속노동조합 지엠코리아 자동차 부평공장 및 부산공장 지부, 회사 측에 「임금인상요구서」 제출
  • 1973.06.28.

    인천기독교 도시산업선교위원회, 6월 28일부터 6월 30일까지 산곡동 천주교회에서 부평지역 미혼 직장 여성을 대상으로 한 「부평지역 숙녀학교」 운영
  • 1973.07.03.

    인천기독교 도시산업선교위원회, 7월 3일부터 7월 6일까지 위원회 교육실에서 「제10회 노동조합 지도자 훈련」 프로그램 실시
  • 1973.07.31.

    경기매일신문사, 경기일보사, 연합신문사 등 경기도 내 3개 신문사 대표들이 올림포스 호텔에서 모임을 갖고 ‘3개 신문사 통합추진위원회’를 결성. 위원장에 이백호를 선출한 후 8월 31일부로 문공부에 폐간계를 제출하기로 결정
  • 1973.09.15.

    인천기독교 도시산업선교위원회 노사분과위원회, 9월 16일까지 이틀간 소사 버들 캠프장에서 연구회 개최. 지용택을 초청하여 ‘경제발전과 노동조합 활동’을 주제로 한 강연 등을 진행
  • 1973.10.27.

    인천기독교 도시산업선교위원회, 「제1회 근로자 신앙 강좌 : 노동자 예수」 개최
  • 1973.11.23.

    인하대학교 기독학생회, 「기독학생선언」 발표
  • 1973.11.27.

    인천기독교 도시산업선교위원회, 답동 가톨릭회관 5층에서 11월 30일까지 4일간 노동조합 간부 등을 대상으로 한 「제11회 노동조합 정기 지도자 훈련」 실시
  • 1973.12.02.

    경기간호전문학교 여학생 50여 명, 밤 9시부터 12월 3일 새벽 1시까지 강당에 모여 구국기도회를 개최하고 구속학생 석방 등을 요구하는 결의문 채택. 학교 측은 12월 10일 예정이었던 방학을 앞당겨 12월 3일부터 방학에 들어감
  • 1973.12.12.

    삼원섬유 노동조합 설립. 전국섬유노동조합 경기지부 삼원섬유분회로 설립됨. 삼원섬유는 작전동에 위치함.
  • 1973.12.19.

    인천기독교 도시산업선교위원회, 산곡동 성당에서 「노동자 첫모임 : 작은이들의 숨결」 행사 개최
  • 1974.01.21.

    전국화학노동조합 경인에너지 지부 결성
  • 1974.02.20.

    인화여자고등학교 학생 1200여 명, 학교 측이 학생증을 발급해주지 않고 주산, 타자 등의 특활시간을 인천공업전문대학에서 받도록 하는 등 부적절한 조치에 불만을 갖고 2월 21일까지 등교 거부 단행. 2월 22일부터 정상수업 시작
  • 1974.02.26.

    반도상사 노동자들, 한순임의 호소문 낭독을 시작으로 임금인상 및 근로조건향상 투쟁 전개
  • 1974.03. *

    삼원섬유 노동조합, 노동조합 결성 4개월 만에 임금을 제외한 단체협약을 체결하여 '분회장 상근, 유니온샵 제도, 노동조합사무실 제공‘ 등을 확보
  • 1974.03.05.

    반도상사 노동자들, 노동조합 결성대회를 개최하려 했으나 남자 경비원을 지부장으로 선출하려는 회사 측의 방해로 무산되자 단식농성 돌입. 경찰이 단식 농성장을 포위하고 기숙사 등을 수색하는 과정에서 연행되었다가 이틀 후 모두 석방됨
  • 1974.03.06.

    수도피아노사 노동자 300여 명, 회사 내 노조회관에 모여 체불임금 지급과 공장 정상 가동 등 2개 조건을 내걸고 무기한 농성에 돌입하였다가 사장으로부터 체불임금 지급을 약속받고 3월 7일 해산함. 작전동에 위치한 수도피아노사는 운영난으로 1월 22일부터 공장 가동을 중지한 채 1973년 11월부터 1974년 1월까지의 임금을 지급하지 않고 있었음
  • 1974.03.10.

    인천기독교도시산업선교회, 답동 가톨릭회관 강당에서 「노동자의 날 축하예배」 개최
  • 1974.03.13.

    수도피아노사 노동자 80여 명, 노동청에 몰려가 체불임금 1700여만 원을 받게해달라고 호소함
    삼송산업 노동자들, 노동조합을 결성하고 분회장에 유선영 선출
  • 1974.03.24.

    인천부두노동조합, 우리나라 부두노동조합 사상 최초로 조합원의 정년퇴직제와 퇴직금 지급제도 신설
  • 1974.03.25.

    경기은행 노동조합 결성
  • 1974.04.15.

    전국섬유노동조합 반도상사 부평공장지부 결성대회를 속개하고 창립총회를 개최함. 지부장에 한순임, 부지부장에 이경애·장현자, 사무장에 옥판점을 선출
  • 1974.04.18.

    반도상사 노동조합, 전국섬유노동조합 위원장으로부터 지부 인준필증을 교부받음
  • 1974.04.25.

    일본 반공해운동단체 지도자들, 일본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도야마 회사가 인천에 머큐로크롬 공장을 건설하는 등 공해유발산업인 머큐로크롬 제조공장 장비를 한국에 수출하려는 계획에 반대한다는 입장 발표
  • 1974.05.15.

    인천기독교도시산업선교회 총무 조화순 목사, 노동자들과의 예배에서 행한 설교가 문제가 되어 긴급조치 1호 위반으로 구속됨. 조화순 목사는 1월 17일 김경락 목사 등의 구속과 민청학련 사건에 대해 ‘이 분들은 죄를 지어 감옥에 간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살았기 때문’이라고 발언함
  • 1974.06.23.

    만석감리교회 청년회, 만석감리교회에서 「제1회 근로자 연합 헌신 예배」 개최
  • 1974.07.24.

    천주교 인천교구 나길모 주교, 지학순 주교의 구속과 관련해 전국의 신부들에게 기도회를 부탁하는 서한을 발송
  • 1974.08.06.

    천주교 인천교구 가톨릭노동청년회, 화수동 성당에서 「지학순 주교와 사회정의를 위한 기도회」를 개최하고 사건이 공정하게 해결될 때까지 매주 화요일 기도회를 갖기로 함
  • 1974.08.26.

    천주교 인천교구 사제단, 「지학순 주교를 위한 기도회」를 개최하고 ‘우리의 주장’이란 제목의 성명서 발표
  • 1974.08.31.

    전국섬유노동조합 경기지부, 삼원섬유 주식회사 사장 앞으로 삼원섬유 분회장 유해우의 제명을 결의하는 통지문 발송.
  • 1974.10.17.

    인하대학교, 학생들이 시위를 할 기미가 있다는 정보를 입수하고 긴급교수회의를 개최하여 10월 26일까지 휴강하기로 결정. 이후 10월 26일 재차 긴급교수회의를 열고 10월 31일까지 휴강 연기 결정
  • 1974.10.20.

    천주교 인천교구 소속 신부, 수녀, 신도 등 2500여 명, 인천 답동 천주교회에서 「성년대회」를 개최한 후 ‘민주헌정 회복하라’, ‘지학순 주교 석방하라’ 등의 문구가 적힌 플래카드와 피켓을 들고 시위 전개. 참가자들은 ‘유신헌법 철폐’, ‘정치범 석방’, ‘노조결성의 자유 승인’ 등의 구호를 외치며 정문을 통해 거리로 나서려고 하였으나 경찰의 저지로 교회 안으로 들어갔으며 이들 중 100여 명은 경찰의 저지선을 뚫고 경동사거리로 나와 시위를 벌이다 성당으로 돌아감. 이날 나길모 주교는 ‘인권회복’, ‘노조결성의 자유보장’ 등 4개 항을 선언
  • 1974.11.06.

    인하대학교 학생 1000여 명, 인하대학교 대강당에서 성토대회를 갖고 시국선언문을 낭독한 뒤 ‘민주헌정질서를 확립하라’, ‘구속학생 및 인사들을 조속히 석방하라’ 등 7개항의 결의문 채택
  • 1974.11.11.

    천주교 인천교구, 답동 성당에서 「인권회복을 위한 기도회」 개최. 천주교 사제단 주최로 인천을 포함 전국 14개 도시에서 동시에 개최됨
  • 1974.11.14.

    천주교 인천교구 부주교 시노트 신부(한국명 진필세), 11월 11일부터 가톨릭여학생회관에서 계속해 온 구속자 석방을 위한 단식기도가 끝난 후 구속자가족협의회 회원 30여 명과 함께 종로 3가까지 가두 행진을 벌이다 경찰에 연행되어 같은 날 오후 훈방 조치됨
  • 1974.11.19.

    동인천산전센터·기독교도시산업선교회, 인천내리교회에서 「구속자와 함께 드리는 기도회」 개최
  • 1974.11.20.

    인천을 포함 전국 12개 도시에서 천주교 신자들이 「인권회복을 위한 철야기도회」개최
  • 1974.11.21.

    천주교 인천교구 부주교 시노트 신부, 비상군법회의에서 형을 받은 구속자 가족 19명이 종로구 소재 미국대사관 앞뜰에서 ‘더 이상 못참겠다 구속자 석방하라’ 등의 플래카드를 들고 시위를 벌이다 15분 만에 경찰에 전원 연행되어 경찰 버스에 실리자, 이에 항의하며 버스에 함께 올라타고 이동함
  • 1974.11.23.

    천주교 인천교구 부주교 시노트 신부, 11월 23일과 11월 29일 두 차례 인천출입국관리소에 소환되어 입국목적에 위배되는 행동을 하지 말 것을 경고 받음
  • 1974.11.26.

    인천교구 가톨릭노동청년회는 지학순 주교를 위한 화요기도회를 개최하기로 결정하고 11월 26일 송림동 성당, 12월 3일 산곡동 성당, 12월 10일 숭의동 성당, 12월 16일 주안 성당으로 장소를 결정
  • 1974.12.10.

    화수동 성당 등 인천시내 3개 성당에서 「인권회복을 위한 기도회」 개최. 이날 천주교 정의구현전국사제단과 한국정의평화위원회가 공동 집전하는 「인권회복을 위한 기도회」가 세계 인권선언일을 맞이해 전국 13개 교구에서 동시에 개최됨
  • 1974.12.11.

    삼원섬유 노동조합 분회장으로 재직 중 섬유노동조합 경기지부의 제명조치로 해고당한 유해우, 부평경찰서에 폭력행위 등 처벌에 관한 법률위반혐의로 구속됨. 이날 삼원섬유 노동자 4명은 같은 혐의로 입건됨. 유해우는 1973년 12월 12일 삼원섬유 노동조합 분회장으로 선출된 후, 1974년 7월 10일부터 YWCA가 실시한 「노조간부 훈련세미나」에 같은 회사 여성노동자 10여 명과 함께 참석한 일이 있어 빌미가 됨. 같은 해 8월 31일 섬유노조 경기지부가 ‘명령불복종’ 등을 이유로 제명하여 같은 날 회사에서 해고됨. 유해우는 경기도 지방노동위원회에 부당노동행위 구제신청을 제기해 계류된 상태였음.
  • 1974.12.13.

    전국도시산업선교회 소속 목사와 구속자가족협의회 회원 등 30여 명, 서울 종로5가 기독교회관 소회의실에서 천주교 인천교구 부주교 시노트 신부와 감리교 선교사 조지 오글 목사에 대한 소환 심문은 정부의 종교탄압의 구체적 표현이라고 주장하며 이를 중지할 것을 요구하는 성명서 채택
  • 1974.12.14.

    인천 등지에서 산업선교활동을 벌여온 미국인 선교사 조지 오글 목사, 입국 목적 이외의 활동을 했다는 이유로 법무부로부터 강제 퇴거 명령을 받고 출국함.
  • 1974.12.16.

    삼원섬유 노동조합 조합원들, 구속된 분회장 유해우를 석방시켜달라는 진정서 제출
  • 1974.12.17.

    전국섬유노동조합 반도상사지부, 조합원 보급용으로 「조합이란」 제목의 책자 제작
  • 1974.12.24.

    동인천 도시산업선교센터 소속 이국선 목사, 대성목재주식회사 공장촉탁을 맡고 있던 중 노동자들에게 나눠준 성탄프로그램의 설교 요지에 ‘근로자는 충분한 보수를 받아야 한다’, ‘기업주가 종업원을 혹사한다’ 등의 내용이 담겨 있는 것이 문제가 되어 해촉됨. 이국선 목사는 1965년 5월 대성목재 산업선교실 후생부장 겸 목사로 위촉되었다가 정년퇴직 후 목사직만 맡아 오고 있었음
  • 1974.12.26.

    한국교회노동자인권위원회, 삼원섬유주식회사 노동조합 분회장 유해우의 구속 사건에 대한 조사단을 구성해 진상조사 시작
  • 1975.02.10.

    동일방직 노동조합, 주길자 지부장의 후임으로 이영숙 지부장 선출
  • 1975.02.28.

    전국섬유노동조합 반도상사 부평공장지부, 소식지 「한마음」창간호 발행
  • 1975.03.08.

    민주회복 국민회의 인천시지부, 화평동 덕성반점에서 결성. 대표최고위원에 인천도시산업선교회 총무 조화순을 선출하고 고문에 최양옥, 조철구와 전 신민당 인천시당 부위원장 김진두를 위촉함
  • 1975.03.11.

    대양화성 노동자들, 노동조합 결성(전국화학노동조합 대양화성 직할분회). 분회장에 권정희 당선
  • 1975.03.24.

    천주교 인천교구, 답동 성당에서 나길모 주교의 집전으로 입건된 사제와 구속된 목사, 재야인사 및 위정자, 조국의 평화를 위한 기도회 개최
  • 1975.04.10.

    인하대학교 총학생회, 인하대학교 대강당에서 비상학생총회를 개최하고 ‘긴급조치 7호를 즉각 철회하라’, ‘학원의 자유화를 보장하라’, ‘자유와 민주를 회복하라’ 등 현 시국에 대한 4개 항의 결의문 채택. 이후 인하대학교 정문과 후문 등지로 진출해 가두시위를 벌이려다 경찰이 교문을 봉쇄하면서 학내에서 시위를 전개한 후 해산. 일부 학생들은 정문을 빠져 나가 용현고개까지 이동하며 가두시위를 전개하였으나 최루탄을 쏘며 저지하는 경찰의 진압에 막혀 해산함.
  • 1975.04.12.

    인하대학교, 학생 시위로 인해 임시 휴강에 들어감. 4학년은 4월 23일에, 1·2·3학년은 5월 9일에 수업 재개
  • 1975.04.14.

    천주교 인천교구 부주교 제임스 시노트 신부, 인천 출입국 관리소로부터 종교 이외의 활동을 하지 말라는 3번째 경고를 받음
  • 1975.04.18.

    인천교구 가톨릭대학생회 주최로 4·19 기념미사가 답동 성당에서 개최됨. 나길모 주교의 집전으로 학생 신도 등 400여 명이 참석하였고 가톨릭 전국학생연맹은 시국선언문을 통해 유신헌법의 철폐를 요구
  • 1975.04.25.

    천주교 인천교구 부주교 제임스 시노트 신부, 법무부 인천 출입국 관리소로부터 체류 연장을 불허 받고 출국하라는 출국지시서를 받음. 시노트 신부는 1960년 8월 29일 내한하여 4월 28일 체류기간이 만료돼 4월 14일자로 체류기간 연장신청을 제출했음
  • 1975.04.29.

    천주교 인천교구, 답동 성당에서 정의구현전국사제단 60여 명이 모인 가운데 「시노트 신부를 위한 기도회」 거행
  • 1975.04.30.

    시노트 신부, 출국 직전 ‘내가 사랑하는 한국국민과 복음을 전파하는 동료 사제들과 목사님께 드린다’란 제목의 성명서를 발표한 후 오후 7시 출국
  • 1975.05.09.

    인하대학교, 학원사태로 휴강중이었다가 이 날 부터 전면 개강함
  • 1975.05.23.

    대양화성 노동자 권정희(전국화학노동조합 대양화성 직할분회 분회장), 4월 7일자로 구두 해고를 통보받은 데 대해 ‘노동조합을 파괴하려는 악랄한 처사’라는 내용의 진정서 제출
  • 1975.08.25.

    태평특수섬유 노동자들, 전국섬유노동조합 경기지부 태평특수 분회 결성. 유니온샵 형태로 3개월 이상 근무한 반장급 이하 근로자들이 조합원으로 가입함. 분회장에 이상례가 선출됨. 태평특수섬유는 효성동에 위치하며 300여 명의 노동자가 근무하고 있었음
  • 1976.03.24.

    천주교 인천교구, 답동 성당에서 오후 7시 나길모 주교의 집전으로 ‘3·1 명동사건’ 때 입건된 사제, 목사, 재야인사들을 위해 위정자들이 올바른 판단을 할 수 있기를 바라는 기도회 개최
  • 1976.04.03.

    동일방직 노동조합, 정기대회를 개최할 예정이었으나 회사 측이 대회의 무산을 꾀해 회사 측 대의원 ○○○ 등 4명에게 불참하라는 지시를 내리자 이들이 대의원 대회에 참가하지 않고 송도로 야유회를 가면서 대회가 무산됨. 이로 인해 동일방직 남성 노동자 300여 명, 여성 노동자 1000여 명이 참가해 시위를 전개
  • 1976.04.23.

    동일방직 노동조합, 정기대회를 개최할 예정이었으나 회사 측이 대회의 무산을 꾀해 회사 측 대의원 ○○○ 등 4명에게 불참하라는 지시를 내리자 이들이 대의원 대회에 참가하지 않고 송도로 야유회를 가면서 대회가 무산됨. 이로 인해 동일방직 남성 노동자 300여 명, 여성 노동자 1000여 명이 참가해 시위를 전개
  • 1976.06.14.

    신우섬유 노동자 이춘봉, 근무성적이 불성실하다는 이유로 총무부장 등 회사 간부들에게 수위실로 끌려가 집단 폭행당해 전치 2주의 상해를 입음. 6월 24일, 폭행을 주도한 총무부장은 구속되고 회사 대표 등은 입건됨. 이 과정에서 신우섬유 노동자 180여 명 중 159명이 월 1만 원 이하의 저임금을 받고 있는 것으로 확인됨
  • 1976.06.19.

    동일방직 여성 노동자 500여 명, 회사 측의 어용노동조합 결성에 반대하며 농성 시작
  • 1976.07.22.

    동일방직 노동조합, 본조의 임원이 참석한 가운데 보고대회를 개최하려 하였으나 회사 측의 방해로 보고대회가 유회됨
  • 1976.07.23.

    동일방직 회사 측 대의원들이 대의원대회를 개최하였으나 여성 조합원들은 대의원 대회가 무효라고 주장하며 농성 진행
  • 1976.07.25.

    동일방직 노동자들 반나체 시위 진행함. 여성 조합원들은 이영숙 지부장과 이총각 총무를 경찰이 연행한 것에 항의하며 농성을 진행하는 과정에 72명이 연행되었으며 70여 명이 부상당함
  • 1976.07.26.

    동일방직 여성노동자 300여 명, 회사에 출근하지 않고 서울의 섬유노동조합 본조로 몰려가 연행된 사람들의 석방을 요구. 이날 밤 11시경 지부장과 총무가 석방됨
  • 1976.08.19.

    천주교 인천교구, 3·1 명동사건 공판을 앞두고 ‘구속 사제를 위한 9일 기도회’를 교구사제단과 모든 신자들이 봉헌
  • 1976.10.30.

    천주교 인천교구 정의평화위원회 구성. 정식 명칭은 ‘한국 천주교 정의평화위원회 인천교구 위원회’ 초대 위원장에 김병상 신부 선임.
  • 1976.12.25.

    동일방직 노동자들, 경기도로부터 배달되어온 동일방직 단체협약 승인 공문을 보고 크게 반발해 ‘동일방직지부 사건수습투쟁위원회’를 결성하고 ‘사건 해부식’을 2월 6일에 갖기로 결의
  • 1977.02.04.

    동일방직지부 사건수습투쟁위원회, 서울 명동 천주교 문화회관에서 「전국 섬유노동조합 인천 동일방직 사건 해부식」을 개최하려 하였으나 노동청이 합의를 주선하고 모든 요구조건을 들어주겠다는 전달을 해와 해부식을 취소하고 6개 항에 합의
  • 1977.03.21.

    노동청, 동일방직 등 전국 12개 면방업체 16개 공장에 대해 임금을 직권 조정하여 3월부터 지난해 11월분 기준으로 평균 25%씩 인상해 지급하라고 통고
  • 1977.04.04.

    동일방직 대의원 대회를 앞두고 회사 측 대의원들이 방해할 조짐을 확인하고 조합원들이 대의원 대회장을 둘러싼 가운데 대의원대회를 진행하고 참석 대의원 31명의 전원 지지로 이총각을 지부장으로 선출 함.
  • 1977.04.24.

    전국섬유노동조합 동일방직 지부가 주최하고 인권위원회, 한국교회사회선교협의회, 산업선교 전국연합회, 전국정의평화위원회, 가톨릭 노동청년회, 천주교 인천교구, 교회여성연합회, 여성유권자연맹 등이 후원하는 가운데 서울 가톨릭명동문화관에서 「노동청 규탄대회」 개최
  • 1977.06.15.

    동일방직 노동조합 조합원 674명, 노동조합에 복귀
  • 1977.07.29.

    인천도시산업선교회, ‘노동자로서 어떻게 살 것인가’란 주제로 7월 31일까지 자월섬에서 「하기수련회」 진행
  • 1977.09.10.

    인천도시산업선교회, 11월 12일까지 3개월 간 11개 공장 실무자 25명을 대상으로 인천도시산업선교회에서 강연회 개최
  • 1977.11.07.

    인천부두노동조합, 인천하역협회에 작업시간 8시간을 제외한 취업에 대해서는 연장근로수당을 지급해 줄 것을 요청
  • 1977.11.11.

    동흥물산 노동자 8명·서광산업 노동자 8명, 노동운동 관련 책자 등을 돌려 본 혐의로 부평경찰서에 연행됨
  • 1977.12. *

    천주교 인천교구 김병상 신부·조화순 한국교회사회선교협의회 회장 등 35명, ‘학생탄압을 중지하고 학문의 자유를 보장하라!’는 성명서를 발표하고 학원사찰 및 경찰의 폭력 행위 등에 대한 중지와 구속 학생 석방 등 요구
  • 1977.12.11.

    인천지구 인권위원회, 송림중앙 감리교회에서 수도교회 김상근 목사를 초청하여 ‘인권 현장에 찾아온 예수’라는 주제로 「77년 인권주간예배」 진행
  • 1978.01.12.

    윤보선·지학순·조화순·함석헌·천관우·박형규·정구영, 시국간담회를 갖고 ‘민주국민에게 고함’ 발표. ‘유신체제 철폐, 긴급조치 철폐, 모든 양심수의 석방, 언론의 자유’ 등을 주장
  • 1978.01.31.

    창영감리교회 청년부실에서 김성수, 강우경, 이민우, 정세일, 김성일(통합), 이병웅, 김성복 등이 모여 황규록 목사 설교로 1부 예배를 거행하고 ‘경기기독청년협의회(EYC)’ 창립총회를 열어 김성수를 회장으로 선출. 한국기독청년협의회는 1976년 1월 29일 창립총회를 개최함. 한국기독청년협의회는 창립 이전, 1975년 4월 7일 경북지구협의회 결성을 시작으로 서울지구협의회(1975. 05. 13), 충북지구협의회(1975. 05. 17), 부산지역협의회(1975. 05. 24), 충남지구협의회(1975. 05. 24), 전북지구협의회(1975. 06. 05), 전남지구협의회(1975. 06. 22) 등 각 지구협의회의 결성이 이어져 왔음. 인천지역에서는 창립 당시부터 '경기기독청년협의회‘라는 단체명 대신 ’인천기독청년협의회‘라는 명칭을 사용했다고 보기도 함
  • 1978.02.21.

    ‘동일방직 똥물 투척 사건’ 발생. 동일방직 노동조합 대의원 선거일인 이 날 새벽 5시 30분, 회사 측 노동자들이 투표하러 온 여성근로자들에게 똥물을 투척하며 선거를 방해한 사건
    태평특수섬유 노동조합 조합원들, ‘노동조합 활동 인정’ 등을 요구하며 중식을 거부
  • 1978.03.06.

    동일방직 노동조합 지부장·부지부장·총무 등 의장단이 본조에서 제명 처분을 받았으며, 본조는 현 노동조합을 사고지부로 처리함
  • 1978.03.09.

    태평특수섬유노동조합 조합원 250여 명, ‘노동조합 분회장 자격 인정’ 등을 요구하며 부평 성당에 모여 농성을 진행함
  • 1978.03.10.

    동일방직 노동자들, 서울 장충체육관에서 열린 노동절 행사장에서 ‘동일방직 똥물 투척 사건’에 대해 항의 시위 전개. 31명이 연행되었고 최명희·김연심·김민심 등이 구류 25일을 받음. 노동자 17명은 명동성당에서 항의 단식 농성 돌입
  • 1978.03.12.

    답동 성당에서 「신·구교 연합 노동절 예배」가 끝난 후 동일방직 노동자 50여 명이 단식 농성 돌입. 이 날 명동성당 농성자들이 인천으로 내려왔으며 이총각 지부장이 연행돼 이튿날 29일 구류처분을 받음
  • 1978.03.15.

    동일방직 노동자들, 68명이 답동 성당에서 인천산업선교회로 장소를 옮겨 단식 농성을 이어감
  • 1978.03.17.

    동아자유언론수호투쟁위원회, 동일방직 노동자들의 투쟁에 동조하는 단식 농성 돌입. 3월 22일까지 5일간 계속됨
    동일방직 노동자 41명, 명동성당에서 단식 농성을 진행함
  • 1978.03.20.

    동일방직·원풍모방·방림방적 노동자 100여 명, 기독교 방송국에 몰려가 동일방직 문제 등 고난 받는 사람들에 대한 보도를 외면하는 언론의 타락을 규탄하는 시위 전개
  • 1978.03.21.

    인권운동협의회·사회선교협의회·방림방적대책위원회·삼고사대책위원회·평화시장근로자대책위원회 등 5개 단체, 「고난 받는 동일방직근로자를 위한 기도회」 공동 개최
  • 1978.03.23.

    동일방직 노동자들, 서울과 인천에서 진행한 단식 농성을 풀고 인천도시산업선교회에서 머뭄
  • 1978.03.26.

    동일방직 해고노동자 정명자를 포함한 노동자 6명, 여의도광장에서 열린 개신교 부활절 연합예배에서 단상을 점거하고 ‘노동3권 보장, 동일방직사건 해결, 산업선교는 빨갱이가 아니다’ 등을 외치며 시위 전개. 이 일로 6명 전원이 구속됨
  • 1978.03.27.

    ‘동일방직사건 긴급대책위원회’ 결성
  • 1978.04.01.

    동일방직 노동자 124명, 해고당함. 이후 해고노동자들은 인천도시산업선교회 2층에 에서 기거하며 이곳에 ‘전국섬유노조 동일방직지부 임시사무실’을 두고 복직 투쟁을 전개함
  • 1978.04.26.

    동일방직 해고노동자 60여 명, 회사로 찾아가 부당해고 철회 등을 요구하며 농성을 벌이다가 동부경찰서로 연행되었으며 그중 이 총각·김인숙이 구속돼 징역 10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고 9월 12일 석방됨. 석정님·임재옥·정의숙·최연봉·최명희·김연심·김민심 등 7명은 불구속 입건됨.
  • 1978.05.15.

    동일방직 해고노동자 등 15명, 섬유노동조합 위원장의 부산지역 통일주체국민회의 대의원 선출을 저지하기 위해 유인물을 살포
    인하대학교 여학생회, 조화순 목사를 초청하여 ‘동일방직 사건의 전모를 밝힌다’란 주제로 초청강연회 개최. 인하대학교 여학생회는 이 자리에서 ‘동일방직 해고 근로자들에게 드리는 글’을 발표하는 한편, 인하대학교 각 호관에 동일방직 해고 노동자들을 위한 모금함을 설치함
  • 1978.06.04.

    동일방직 해고노동자들, 성남 공단에서 유인물을 배포하다가 김명자·김영숙과 성남주민교회 김종국 등 3명이 구류를 받음.
  • 1978.07.18.

    동일방직 해고노동자들, 재판정에서 회사 측 증인들과 충돌하여 7명이 구류를 받음
  • 1978.09.25.

    서울 기독교회관에서 「동일방직 해고근로자들을 위한 기도회」가 개최되던 중 경찰 100여 명이 진입해 참석자 40여 명을 연행함. 그중 인천도시산업선교회 실무자 유재남은 구류 25일, 동일방직 해고노동자 석정남·김요자·최연봉은 구류 20일, 동일방직 해고노동자 전창순·이향자·김영순·안동순·안순애·조효순과 인천 광야교회 교인 임선임은 구류 15일 등을 받음
    인하대학교 학생 안영근, 교내에서 유신헌법 폐지를 촉구하는 ‘민주회복에 관한 인하대학생의 선언문’이란 제목의 유인물을 제작·배포
  • 1978.10.17.

    인하대학교 학생 조용호(응용물리 3)·안영근(행정 3)·곽한왕(국문 3)·양흥영(기계 3), 인하대학교에서 유인물 살포. 이 사건으로 「긴급조치 제9호」 위반이 적용돼 구속됨
  • 1978.11.03.

    인하대학교 학생 김상우(기계 2)·박성룡(기계 2), 인하대학교에서 유인물을 살포하고 시위를 전개. 이 사건으로 「긴급조치 제9호」 위반이 적용돼 구속됨
  • 1978.11.07.

    인천도시산업선교회 총무 조화순 목사, 11월 6일 「신·구연합기도회」에서 행한 인권사례보고 내용이 문제가 돼 「긴급조치 제9호」 위반으로 구속됨.
  • 1979.02.06.

    자유실천문인협의회, 인천에서 「김지하 문학의 밤」 개최. 1000여 명 참석.
  • 1979.02.25.

    답동 가톨릭회관에서 개최 예정이었던 「동일방직사건 1주년 모임」이 경찰에 의해 강제 해산됨. 참가자들은 이에 항의하며 가두시위를 전개
  • 1979.03.18.

    ‘천주교 인천교구 평신도사도직 협의회’ 창립총회 개최
  • 1979.04.19.

    앰네스티 인천지부 결성
  • 1979.06.14.

    부평가톨릭 노동사목에서 활동하던 이경심, 만성 복막염과 합병증인 암으로 사망
  • 1979.09.22.

    앰네스티 인천지부, 답동 가톨릭회관 304호에서 연세대학교 김동길 교수를 초청하여 ‘역사와 지식인’이란 주제로 「제3회 인권강연회」 개최
  • 1979.11.19.

    비상계엄조치로 휴교에 들어갔던 인하대학교, 23일 만에 개교
  • 1979.11.24.

    재야 민주화세력들이 서울 명동 YWCA강당에서 결혼식을 위장하여 ‘통대선출 저지 국민대회’를 개최하던 중 계엄군의 진압으로 140여 명이 연행되고 18명이 기소, 70여 명이 즉결심판을 받음.
  • 1979.12.05.

    동일방직 해고노동자들, ‘저희들이 노동할 수 있는 일자리를 주십시오’라는 문건을 통해 소위 ‘블랙리스트’에 의해 취업이 어렵다고 호소
  • 1979.12.12.

    인하대학교, 교무위원회를 개최하고 1975년 4월 이후 긴급조치 위반으로 제적된 조용호(응용물리학과 2년) 등 학생 13명 전원을 1980년도 새 학기에 복학시키기로 결정함. 이를 위해 ‘데모 성토 및 정치 활동에 참여한 학생은 제적한다’는 학칙 제63조의 규정을 삭제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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