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희
2024년 6월 18일 별세. 현재 마석열사묘역에 안장
1959년
7월 13일(음) 서울 성동구 금호동에서 태어남1988년
청계천에서 공구노점, 폭력단속에 맞서 노점상 투쟁과 빈민운동 시작1990년
명동성당에서 한달간 노숙 농성1991년
전국노점상연합 가입1992년
서울시 포장마차 단속 투쟁1993년~1994년
연대사업국장 역임1995년~1997년
부의장 역임1995년
이덕인 열사 투쟁 이후 밥 연대 시작2007년
콜트콜텍 밥 연대를 시작으로 본격적인 해고노동자 밥 연대 시작2016년
십시일반 밥묵차 마련 모금 시작2024년
6월 18일 췌장암으로 별세열사의 삶과 죽음
1988년 청계천에서 공구 노점을 하던 유희 열사는 폭력적 단속에 맞서 싸우다가 노점상 투쟁과 빈민 운동을 시작하게 됐다.싸우는 이들의 밥을 지은 사람, 십시일반 유희
1988년 청계천에서 공구 노점을 하던 유희 동지는 폭력적 단속에 맞서 싸우다가 노점상 투쟁과 빈민 운동을 시작하게 됐다. 1991년 전국노점상연합에 가입해서 1995년 여성부장을 거쳐 부의장으로 3년간 활동했다. 1995년에는 그의 삶에서 도저히 잊을 수 없는 최정환과 이덕인 열사 투쟁이 있었다. 그해 3월, 양재역 인근에서 카세트테이프 노점을 하던 장애인 노점상 최정환이 서초구청의 단속에 항의하며 분신했다. 최정환 열사는 “400만 장애인을 위해서라면 죽어도 좋다, 복수해달라”는 유언을 남겼다. 유희 동지는 그의 유언을 끌어내 담았다. 최정환 열사 투쟁 당시 유희는 전노련 여성부장으로 활동했으며, 이후 부의장으로 선출됐다.
그해 11월엔 또 다른 장례 투쟁이 시작됐다. 인천 아암도 해안가로 떠밀려온 이덕인의 시신을 보았다. 두 손이 밧줄에 묶이고 온몸에 피멍이 들어 있었다. 경찰이 인천 길병원 영안실 콘크리트 벽과 유리창을 깨부수고 쳐들어와 그 시신을 탈취해 가는 모습을 보았다. 국가는 사인을 ‘익사’라고 했다. 그는 믿을 수 없었다. 그후 장례 일정까지 혼신의 힘을 다해 싸웠다.
가난하고 바쁜 시절이었다. 노점상에 대한 탄압을 약해진 사회적 연대로 막아내긴 역부족이었다. 투쟁할 사안은 많았기에, 끼니 거를 핑계도 많았다. 사정을 뻔히 아는 유희 동지는 “밥 먹었냐”는 말을 입에 달고 살았고, 농성으로 바쁠 때도 사람들의 밥을 지어 먹여야 직성이 풀렸다. 언젠가부터는 ‘집밥’을 해서 전국 각지의 농성장을 돌아다녔다. 2016년에는 밥묵차 푸드트럭까지 마련했다. 그의 활동을 응원하는 많은 사람들의 후원 덕분이었다. 유희 동지는 빈민 운동을 중심축에 두고 큰 솥에 국자를 담가 휘젓듯, 동심원을 그리며 연대 활동을 넓혀나갔다. 우리가 먹은 밥은 그의 활동 덕에 ‘십시일반’하여 차려진 밥상이었다.
유희 동지는 2022년 11월 췌장암 선고를 받았다. 4기였다. 수술할 수 없는 몸은 항암 치료를 받아들였다. 지난 5월, 복수가 차서 국립암센터에 입원했다. 퇴원하지 못하고 2024년 6월 18일 사망했다.
** 출처 : 2024.07.10 / 비마이너 “싸우는 이들의 밥을 지은 사람, 십시일반 유희” 강혜민 기자의 글 재구성함.
강철여인, 참 좋은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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