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념관 건립

인천지역 열사 및 희생자

김형선

2006.11.30 운명, 당시 40세
  • 1966년

    인천 출생
  • 1989년

    한양대학교 국어교육과 졸업
  • 1997년

    전교조인천 국공립중등지회 소식지 ‘처음처럼’ 창간호 발행
  • 1998년

    전교조인천 ‘인천교사신문’ 창간준비호 발행
  • 2002년

    전교조 인천지부 ‘인천교사신문’ 편집실장
  • 2005년

    ~06년 전교조인천지부 중등남부지회 사무국장
  • 2006년

    11월30일 교통사고로 급서

추모의 글 인천교사신문 사설(69호, 2006.12.7)

지령 69호 인천교사신문은 그대를 보내며 운다. 그대의 손길이 배지 않은 곳이 없고, 그대의 노고가 글줄마다 묻어나는 인천교사신문은 그대의 자식이었다. 첫째 아들 지훈이와 함께 그대의 탯줄을 물고 컸다. 부른 배, 부어오른 발로 교정지에 눈을 박고 밤샘 편집을 하던 그대의 가쁜 숨결을 인천교사신문은 욕심껏 들이마셨다.
전교조 합법화를 준비하면서 인천교사신문의 복간이 결정된 이후, 편집실무자는 김형선과 김영성 단 두 명. 4면의 신문지면을 채우기에는 턱없이 부족한 일손이었음에도 그대, 어렵다는 말 한마디 없이 총 12호의 준비호를 발간했다. 4면에서 8면으로 점차 늘어나던 지면은 항상 인천지부의 모든 일에 귀 기울이게 했고, 학교에서 들려오는 소식들에 대한 그대의 관심을 요구했다. 모든 지면을 알차게 채우고, 예정된 시간에 발행해야만 하는 것이 신문작업이다 보니, 그대의 하루24시 365일은 그렇게 인천교사신문 창간 준비호 만들기에 바쳐졌다.
99년 전교조 합법화와 동시에 편집실, 신문국 체계를 갖추고 인천교사신문이 재창간될 수 있었던 것은 온전히 그대의 힘이었다. 창간된 지 두 달 만에 받은 민주노총의 ‘알찬 노보상’ 수상은 그대의 노고에 대한 작은 상찬이었다. 창간 이후에도 신문국장으로 편집실장으로 인천교사신문과 함께 한 주말 밤샘작업은 지훈이를 낳는 순간에야 비로소 그대를 풀어주었다. 5년 동안 전교조 인천지부 기관지는 그대의 일상과 애정의 전부였고, 인천교사신문은 그대의 너른 품 안에서 올곧게 자랐다.
그렇게 성장한 인천교사신문이 그대의 부음을 전한다. 학교소식과 지부행사를 알렸던 그 자리에 그대의 영정과 동지들의 추도사를 전한다.
울면서...그대, 명복, 빌고 있다.
슬픔으로 지면이 눅눅하다. 김형선! 우리 사랑 우리동지 김형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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