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념관 건립

인천지역 열사 및 희생자

신현기

2006.3.14 운명, 당시 49세, 부평공원묘지에 안장
  • 1957년

    3월 9일 수원 출생(평산 신씨)
  • 고아원 생활하다 11세에 과수원집 입양
  • 19세 과수원집에서 나옴
  • 2002년

    3월 인천 만수향촌 이주(만수2동 81-113번지 거주)
  • 2002년

    6월 ‘청솔의 집’근무. 독거노인, 소년소녀가장 봉사활동
  • 2006년

    3월 13일 인천시청, 남동구청, 주택공사가 환경개선사업이란 미명아래 주택공사 용역깡패 300명을 앞세워 향촌세입자들에 대한 무차별 철거 자행
  • 2006년

    3월 14일 강제철거 부당성에 항의투쟁 중 친구집에서 시신으로 발견

열사의 삶과 죽음

2002년 12월 인천 남동구청과 대한주택공사가 만수동 향촌지구에 2,852호 규모의 주택을 새로 건설하는 주거환경개선사업 결정하였다. 이에 향촌 주민들은 2005년 2월 10일 향촌 세입자 철거대책위원회 결성하고 다양한 평수의 임대(분양)아파트, 영구임대아파트를 건립하고 가옥주만이 아니라 세입자들에게도 가수용단지와 영구임대아파트 입주권을 보장할 것을 요구했다.
철대위 소속 주민의 70%는 월세의 경우 보증금 300만원에 10만원 이하, 전세의 경우 500만원 이하의 열악한 주거생활을 하고 있고 주민 중 50%가 월수입이 50만원 이하의 가난한 생활자들이었다.
2006년 3월 13일 오전 11시경 주공 측은 사전 계고도 없이 철거 깡패 300여 명과 포크레인 4대, 살수차 3대, 리프트 2대와 2.5t 트럭 7대를 동원하여 주민들이 주거하고 있는 집 30여 곳에 대한 철거를 자행하였고, 신현기 열사가 살던 집도 이날 철거되었다. 2006년 3월 14일 오전, 열사가 목을 매어 사망한 상태로 발견되었고, 타살 의혹이 확산되자 국립과학수사연구소에 부검을 의뢰하였다. 부검 후 3월 17일 인천 남구청과 경찰은 영안실의 시신을 탈취하여 부평 공동묘지에 강제 매장하는 반인륜적인 행위를 자행하였다. 이후 ‘故 신현기 열사 장례 및 만수향촌 생존권 해결을 위한 인천시민사회단체 대책위원회’가 결성되어 투쟁하였고, 2007년 5월 31일 오전에 향촌 민중장으로 거행하여 고인의 영혼을 위로하였다.

묘역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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