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념관 건립

인천지역 열사 및 희생자

이문식

2004.3.23 운명, 당시 40세
  • 1964년

    1월 28일 전남 강진 출생
  • 1983년

    의림양행 노조위원장
  • 1990년

    7월 한양공영입사
  • 1991년부터 대의원, 1993년 교육선전부장, 98년 문화부장
  • 1999년

    비상대책위원회 창원지부 체육부장 역임
  • 2002년

    3월~6월 금속산업연맹 편집차장
  • 2004년

    1월 동양산기(주) 입사
  • 2004년

    3월 23일 산재로 사망

열사의 삶과 죽음

이문식 열사는 1964년 1월 23일 전남 강진에서 4남매 중 장남으로 태어났다. 초등학교 졸업 후 강진에 있는 목공소에서 노동자 생활을 시작하였고 16세 때 서울로 상경하여 천호동 소재 목공소에서 일하였다.
20세 전후에 인천으로 내려와 용접공으로 남동공단에서 본격적인 노조 활동과 정치활동을 시작하였다. 남동공단의 작은 사업장에서 노조를 창립해 위원장을 맡기도 하였고 민중당 인천시당 청년노동분과위원장을 역임했다.
1990년 7월 주안6공단 소재 한양공영에 용접공으로 입사한 후 노동조합 교선부장, 풍물패장, 문화부장 등으로 활동하던 중 2000년 정리해고에 맞서 마지막까지 투쟁했다.
공장이 폐업된 이후 남동공단 사업장 등에서 일하던 중 2004년 3월 23일 남동공단 한 사업장에서 작업 중 산재사고로 사망했다.

추모의 글

진짜 노동자 문식이!
봄이면 너의 남녘 고향에 내려앉는 따사로운 햇살처럼,
훈훈하게 불어대는 바람처럼,
그 햇살과 바람에 반짝이며 일렁이는 풀잎처럼,
열사에게 항상 포근하던 문식이!
90년 진선미 예식장 앞에서 적들을 향해
네가 날렸던 꽃병의 불꽃처럼
삶의 마지막 끝자락까지 포기하지 않았던
너의 양 손목의 불끈 솟아있던 힘줄처럼, 상처처럼.
세상 그 어떤 모든 것에도 치열했던 문식이!
- 정윤섭 한양공영노조 전 위원장(민주노총 인천본부 초대의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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