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념관 건립

인천지역 열사 및 희생자

천덕명

2002.11.22 운명, 당시 38세, 마석 모란공원 민족민주열사묘역에 안장
  • 1964년

    경남 고성 출생
  • 1984년

    20살에 인천으로 상경, 합판공장에서 성실하게 근무
  • 1993년

    경인운수(전 영화교통) 입사
  • 1994년

    경인운수 노동조합 대의원으로 활동
  • 1996년

    경인운수 노동조합 회계감사
  • 2002년

    월급제 쟁취를 위한 인천민주택시 총파업에 열성적 참여
  • 2002년

    경인운수 노동조합분회 대의원
  • 2002년

    11월 22일 사측의 무자비한 월급제 탄압에 맞서 월급제 사수와 인간다운 삶을 위해 분신하여 운명

열사의 삶과 죽음

천덕명 열사는 경남 고성에서 가난한 농부의 아들로 태어나서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농사일을 돕다가 스무 살에 인천으로 상경하여 합판공장에서 공장 생황을 시작하였다.
93년 경인운수의 전신인 영화교통에 입사한 열사는 입사 초부터 노동조합의 대의원으로 활동하기 시작하여 회계감사를 역임하며 노조 간부로서 활동하는 가운데 누구보다 노동자의 권익확보를 위해 열성적으로 투쟁하였다.
특히 택시 노동자들의 염원인 완전 월급제 쟁취를 위한 민주 택시연맹 인천본부의 65일간의 총파업에 빠짐없이 참석했으며, 긴 파업 기간 동안 열사들이 흐트러지는 것을 막아내기 위하여 최선을 다하였다. 사측은 부당한 불성실근무 제재와 임의적인 성과급 감산, 개인택시 경력을 축소 조작하는가 하면 급기야 징계위원회에 회부하고 열사에게 참석을 통보하였다. 평소 남에게 상처를 주는 말을 하지 않았던 열사는 “이렇게 당하고 있을 수만은 없다”, “회사가 해도 너무한다”, “회사를 가만히 두고만 봐서는 안된다”며 분개하였다.
결국 열사는 개인택시 수령을 얼마 남겨놓지 않은 상태에서 회사 측의 부당한 노동탄압에 맞서기 위해 새벽 0시 30분 경 회사 내의 차고지에서 자신의 차량에 시너를 끼얹고 분신하여 운명하였다.

묘역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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