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념관 건립

인천지역 열사 및 희생자

황영환

황영환 열사 약력 및 생애 주요활동
  • 1937년

    11월 17일 강화군 교동면에서 출생
  • 1954년

    부평 미군기지 취업(6개월 근무)
  • 1961년

    인천산업전도위원회 산곡감리교회 가입, 초기부터 활동
  • 1962년

    5월 한국베아링주식회사부평공장 생산 1과 취업
  • 1968년

    산업전도회를 산업선교회로 변경
  • 1971년

    2월 13일 한국베아링, 새벽 근무 중 졸다가 발각 권고사직 요구, 해고
  • 1972년

    3월 5일 한국베아링 노조 대의원대회에서 황영환 조합원 자격 박탈
  • 1972년

    3월 8일 노조지부장 강준석의 부정사실을 서울지검 인천지청에 고발
  • 1973년

    6월 27일 고등법원에서 승소 판결, 회사 측이 상고를 제기
  • 1974년

    6월 28일 원고(황영환) 승소 판결, 회사 측은 또다시 상고
  • 1978년

    3월 18일 대법원민사부가 고등법원의 판결을 확정함으로써 사건 종결
  • 1979년

    ~2000년 한국기독교사회문제연구소 노동상담소 소장 역임
  • 2001년

    ~2005년 성수동 노동상담소 소장 역임
  • 2023년

    7월 2일 13시 지병으로 운명

열사의 삶과 죽음

황영환 열사는 부당해고 사건으로 고등법원 대법원을 세 번이나 심리한 기록을 세우고, 이 소송은 7년이 걸렸다. 이 과정에서 황영환의 인생 방향은 엄청난 각도로 휘어져서 운명에 떠밀리듯이 한길을 걸어가게 된다. “노동운동을 하지 않으면 안 되는 팔자이고 운명이다. 피해갈 수 없다면 모든 것을 받아들인다.” 이 독백 같은 다짐은 이후 똥물을 뒤집어쓰고 해고된 동일방직 여공들을 다독이면서 했던 말이기도 하다. 독실한 기독교인이었던 황영환은 그리스도가 자기에게 부여한 사명은 힘없고 억울한 노동자의 동반자, 안내자, 지도자로 가는 길이라 결심했고, 어느 해 과로로 인한 뇌출혈로 쓰러질 때까지 단 한 번도 딴 길로 가지 않고 그 길을 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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