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념관 건립

인천지역 열사 및 희생자

이경심

1979.6.14 선종, 당시 33세 천주교 백석 하늘의문 묘원에 안장
  • 1949년

    10월 9일 1남7녀 중 장녀로 출생
  • 1968년

    12월24일 영세 받음
  • 1969년

    JOC투사선서, JOC 북부연합회 회장 역임. 노조지원활동으로 중앙정보부에 의해 감시와 탄압을 받음
  • 1975년

    동일방직 투쟁지원과 노동자 지원활동
  • 1976년

    나마진 신부, 권조희 수녀와 부평노동사목 공동설립
  • 1978년

    부평노동사목 실무자로 근무
  • 1979년

    6월14일 선종

열사의 삶과 죽음

이경심 세실리아 열사는 가톨릭 노동운동에 있어 특별한 존재이다. 70년대 인천지역 노동운동의 주요근거지였던 부평노동사목의 창립멤버이며 JOC 활동가로 민주노조를 세우고 노동자들을 교육하는데 일생을 바쳤다.
전북 정읍에서 태어나 가난한 시골 살림의 장녀로서 초등학교만 졸업하고 동생들 뒷바라지를 위해 서울로 상경하여 버스 안내양, 식모살이, 공장 노동자 등으로 억척스레 살았다. 우연한 기회에 하느님의 부르심을 받아 세례를 받았고 JOC를 알게 된 후 주님의 자녀인 노동자들이 권리를 뺏기고 착취와 혹사를 당하며 인간대접을 못 받는 것을 그냥 지켜볼 수만은 없다며 행동하는 투사가 되었다.
서울 북부 연합 소속으로 해양섬유, 태광섬유 노조를 조직하는데 중추적 역할을 하는 등 신앙에 근거한 굳센 의지로 노동자들을 교육, 조직하였고 군사독재의 탄압과 어용노조에 맞서 민주노조를 세우는데 고군분투하였다.
동일방직, 반도상사, 태평특수 등의 사건 속에서 노동자들이 겪는 박해를 지켜보면서 열사는 헤아릴 수 없는 심적, 육체적 고통을 겪을 수밖에 없었다.
79년 부천 지역 JOC 조직을 활성화하기 위해 거처를 부천으로 옮겨 생활하던 중 난소암이 온몸에 전이된 상태인 것을 알았고, 발병 후 3개월여의 투병 생활 끝에 “어려운 때 가게 되어 미안해요. 용기를 잃지 말고 항상 즐겁게 지내세요.”라는 유언을 남기고 지인들의 눈물 속에 고이 눈을 감았다.
그 후 1997년 열사를 따르는 노동자들이 주축이 되어 그녀의 이름을 딴 장학회를 만들어, 현재까지 10년 동안 경제적으로 어려운 노동자 가정의 자녀를 지원하고 있다.

묘역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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