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념관 건립

인천지역 열사 및 희생자

이석주

1991.9.19 운명, 당시 26세, 북한산 인수봉에 추모동판 설치
  • 1965년

    12월 4일생
  • 1984년

    인천교대 입학
  • 1985년

    설악산 적벽 개척 등반
  • 1986년

    설악산 토왕적벽 개척 등반
  • 1987년

    설악산 노적봉 개척 등반
  • 1988년

    인천교대 졸업, 서곶국교 발령
  • 1985년

    5월 전교조 가입
  • 1991년

    건지국교 근무, 교과 모임 활동
  • 1991년

    9월19일 안나푸르나 등반 사망
  • 1992년

    5월10일 제 3회 참교사상 수상

추모시

허 완

인심 좋은 강원도 정선땅에서 태어나
그 산천 맑은 물 맑은 공기로 잔뼈 굵었다
이 땅의 올곧은 선생 한 번 되어보자고
어렵게 저 혼자만 대학 들어간 것
많은 형제들에게 늘 미안하다 했다
대학 산악부 시절에 온갖 궂은 일
문간방 머슴 앞마당 쓸 듯 하면서도
궁지렁거리는 소리 한 마디 없었다
웃사람에게 깍듯하게 받은 소주잔
상에 한 번 내려놓는 법 없었다
내가 말부터 앞세울 때 벌써 행동하던 너
의리와 용기에서는 늘 나의 선배였다
고향의 그림바위같은 마음씨에서
아무리 퍼주어도 샘 솟는 인정 넉넉했다
비좁은 교실의 답답한 아이들에게
너 언제나 넓고 푸른 잔디밭이었다
그 투박한 손이며 팔 혹은 어깨 위
하다못해 덜 세련된 옷자락 하나에도
조랑조랑 아이들 떨어질 틈 없었다
히말라야를 꿈꾸며 끓어오르던 젊은 피
아이들 가르치면서도 식히지 않고
방학이며 공휴일 일요일 하루도
히말라야 등정의 야무진 꿈
배낭 속에 차곡차곡 꾸리지 않은 날 없었다
그 배낭메고 이상구 선생과 함께
꿈의 안나푸르나 상상봉에 올라
거만한 권력처럼 높은 봉우리에 올라
가슴 속 품고 간 참교육의 푸른 깃발
승전보처럼 휘날리고 오겠다더니
두 해 전 여름 교육 대학살의 악몽같은
천 길 눈사태 속의 끝 모를 비명이여
육백미터 앞의 불운함이여
네 손 때 묻은 교실에 복도에 운동장에
아직도 믿으려 하지 않는 아이들을
유품처럼 남기고 떠난 나날의 적막함이여
네가 끝내 오르지 못한 산
바로 이 땅 참교육의 우뚝한 봉우리
이제야 더욱 뚜렷이 보이는구나
숨 차고 무거운 발걸음 옮길 때마다
네가 하나하나 부르던 이름의 아이들까지
이제는 우리들의 몫이 되었구나

서구 선생님들과 설악산에서
에미 애비 없이 옳은 선생 하나 없이
구천을 떠도는 가엾은 어린 넋들
우우우우 너를 찾아 달려가는 듯
찬 바람 가랑잎 떨구며 지나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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