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념관 건립

인천지역 열사 및 희생자

이진엽

1991.1.10 운명, 당시 53세, 천주교 백석 하늘의문 묘원에 안장
  • 1938년

    4월29일 출생
  • 제물포 고등학교 졸업
  • 고려대학교 법정대학 법학과 졸업
  • 공군대위 제대
  • 한국가톨릭청년회 회장
  • 대우자동차 전 노조위원장
  • 한국노총 인천상담소 소장
  • 1991년

    1월 10일 작업 중 과로로 운명

열사의 삶과 죽음

대우자동차의 전신인 신진자동차에서 1971년 김창수 등과 함께 노조결성(전국 금속노조 경기지부 신진자동차 부평공장 분회)을 성공시킨 주역이다. 회사측이 초대 분회장 김창수를 해고하고 어용집행부를 세우자 열사는 어용 지부장을 사퇴시키는 데 앞장 서 사무장을 역임하였다. 72년에 지부장에 당선됐으나 75년 금속노조 중앙위원회에서 제명돼 집행부에서 물러나게 된다.
지부장에 당선되기 직전인 71년 회사측이 또다시 어용집행부를 세우고 집단 감원을 기도할 때 열사는 어용 지부장인 이원우를 근처 여인숙에 감금시켜놓고 조합원 800여 명과 함께 2층 옥상에서 농성을 벌여 투쟁을 승리로 이끌기도 했다.
열사는 인천도시산업선교회, 크리스찬아카데미 등에서 실시하는 노동자 교육에 간부와 핵심조합원들을 적극적으로 참여시키는 등 70년대에 열성적으로 노동운동을 벌였다. 특히 외국인 투자기업체(지부장 당시 대우자동차는 GM코리아였다)에서의 민족자존심을 강조하여 여러 가지 일화를 남기고 있다.
미국 GM 본사 내규를 분석해 당시로서는 상상하기 힘든 주 44시간을 쟁취하고, 미국대사관을 찾아가 “세계 1등 국가라는 미국이 왜 후진국에 와서 노동자를 착취하느냐”고 책상을 치면서 항의하여 미국인 노무관이 직접 GM 부평공장에 와서 조사를 벌이게 만들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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