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념관 건립

인천지역 열사 및 희생자

채희돈

1993.2.20 운명, 당시 30세, 화장
  • 1963년

    2월19일 충북 진천 출생
  • 1989년

    ~90년 인천 남일금속 노동조합 대의원으로 활동
  • 1991년

    ~92년 노조 교육부장으로 활동
  • 1992년

    12월~93년 2월20일 남일금속 회사 정상화를 위한 비상대책위원으로 활동
  • 1993년

    2월20일 새벽 6시경 과로가 겹쳐 뇌경색증으로 운명

열사의 삶과 죽음

채희돈 열사는 일찍이 헌신적인 노동조합 활동을 통하여 자신의 변혁은 물론 주변 동료들에게 노동자의 올바른 삶이 무엇인가를 실천적으로 보여준 진짜 노동자이다.
열사는 부도라는 절박한 상황을 맞이하여 회사 정상화와 고용안정 확보를 위해 기꺼이 비대위 위원으로 나서는 헌신성을 발휘했다. 비록 2개월이라는 짧은 기간이었지만, 열사는 그 누구보다도 정열적이고 왕성한 활동을 했다. 규칙적인 식사를 제대로 할 수 없는 상황에서 낮에는 비대위 활동은 물론 실의와 절망에 빠진 주위 동료들을 격려하고, 밤에는 주변 동료들의 걱정에도 불구하고 엄습해 오는 겨울 추위와 싸우며 현장 규찰 임무를 가장 적극적으로 수행했다.
집에는 일주일에 한 번 들어가기도 힘들었지만 오히려, 주위 동료들을 격려하는 모습은 진짜 노동자의 표상이었다. 2월 20일 힘겨운 주간 활동을 마치고 야간 비대위 회의 도중 머리의 통증을 호소하면서 의식을 잃은 채 쓰러졌다. 이것이 열사의 마지막 모습이 되어버렸다.
곧바로 병원으로 옮겨진 열사는 하루를 넘기지 못한 채 - 병원에 도착했을 때 이미 뇌의 기능이 30% 이상이 정지되고 있었으며 뇌의 기능 정지 속도가 빨라지고 있었음 - 한많은 노동자의 설움을 딛고 일어서고자 했던 찬란한 노동해방의 꿈을 살아있는 동료들의 과제로 남긴 채 끝내 자택에서 운명하였다.
사인은 고인이 일반인보다 선천적으로 약한 뇌를 가지고 있는 상태에서 과로와 피곤이 겹쳐 발생한 뇌경색증이었으며, 부인과 두 아들, 동료들의 오열 속에 시신은 화장되어 인천 앞바다에 뿌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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