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념관 건립

인천지역 열사 및 희생자

변형진

1986.5.1 운명
  • 1948년

    3월 16일 강화도 삼산면 출생
  • 1961년

    강화도 삼산국민학교 졸업
  • 1976년

    대성연탄 취직
  • 1981년

    택시기사로 취직
  • 1985년

    삼환택시 입사
  • 1986년

    2월 22일 부당해고 통고, 4.30일까지 출근투쟁
  • 1986년

    4월 30일 오후 2시 30분경 회사 앞에서 분신, 한강성심병원으로 이송
  • 1986년

    5월 1일 운명

동지의 삶과 죽음

열사가 일하던 삼환택시는 택시 43대로 115명이 일하며 하루 10~12시간씩 연장수당 한 푼 없이 일을 시키는 열악한 노동조건이었다.
당연히 회사가 부담해야 할 대물사고 처리비용도 모두 택시 노동자 부담으로 돌리며 또한 세차비까지 노동자들에게 부담 시킬 정도였다. 또한 걸핏하면 시말서요, 출근 때마다 군대식 조회를 하며 반말과 욕설을 마구 퍼부어대는 등 온갖 횡포를 일삼았다.
회사 측은 노동운동 탄압에도 혈안이 되어 4월 5일 기사들의 권익을 위해 적극적으로 활동해 온 위원장을 강제 해직시켰다.

열사는 이러한 열악한 노동조건과 회사 측의 횡포에 맞서 당당히 항의하였다. 그러던 중 동지는 전날 차를 몰고 좁다란 회사 골목을 나오고 있을 때 사장 자가용과 마주쳐 뒤로 비키지 않고 그대로 나간 것을 빌미로 삼아 사장이 자기를 모독했다며 말도 안되는 이유로 4월 22일 해고당하였다.
열사는 다음날부터 복직을 요구하며 출근 투쟁을 시작하였다. 그러나 사장과 관리자들은 오히려 경찰을 불러 철장속에 가두기까지 하였다.
열사는 비장한 각오로 4월 30일 "만약 복직을 안 시키면 분신하겠다"고 경고 했으나 사장은 오히려 "뒈질테면 뒈져!"라 고 빈정거릴 뿐이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열사는 온몸에 신나를 붓고 분노와 투쟁의 불길을 당겼다. 순식간에 '펑‘하는 폭음과 함께 열사는 뜨거운 불길에 휩싸이며 나뒹굴었다.

회사 측은 아무도 모르게 동지를 한강성심병원으로 옮기고 소식을 듣고 달려온 가족과 동지들에게 면회조차 시키지 않았다. 그뿐만 아니라 "떠들면 재미없을 테니 빨리 합의하고 화장시키자. 변형진이는 이미 죽었다"라고 회유와 협박을 했다. 그러나 동지는 아직 살아 숨쉬고 있었다.
동지는 분신 후 5월 1일 가족들에게 "미안하다. 하지만 이 길밖에 없다. 노동자들이 떳떳하게 잘 사는 세상이 와야 할 텐데"라는 말을 남기고, 39세의 일기로 2시 30분 경 운명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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