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념관 건립

인천지역 열사 및 희생자

조지오글

2020년 11월 15일 운명
  • 1929년

    1월 17일, 미국 펜실베니아 주 핏케언에서 출생
  • 1954년

    튜크 신학교 졸업 후 목사 안수
  • 1954년

    선교사로 한국에 파송되어 활동 시작
  • 1954년~1957년

    대전, 공주에서 고등학교 영어교사 재직
  • 1959년

    5월, 도로시 린드만과 결혼
  • 1962년~1971년

    인천에서 기독교도시산업선교회(UIM) 설립, 노동자들의 권익 향상과 노동법 교육에 앞장섬
  • 1973년

    위스콘신 대학교에서 국제 산업 관계학 박사 학위 취득, 서울대학교에서 노동 관계론 강의
  • 1974년

    4월, 인혁당 재건위 사건으로 구속된 사형수들을 위해 기독교회관에서 열린 목요기도회 참석해 무죄 주장 및 기도
  • 1974년

    12월 14일, 인혁당 사건의 사형수들을 위해 공개적으로 기도, 구명 활동 중 정부에 의해 강제 추방
  • 1975년~1981년

    미국 애틀랜타 에머리대학교 캔들러 신학대학원에서 강의
  • 1981년~1991년

    미국 연합감리교회 사회경제 정의 부서에서 일함
  • 1998년

    김대중 대통령 취임식 초청 받아 한국 재방문
  • 2002년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인권상 수상
  • 2020년

    6월 국민훈장 모란장 수상
  • 2020년

    11월 15일 미국 콜로라도주 라파예트에서 향년 91세로 별세

한국 민주주의의 친구 조지 오글 목사, 한반도 평화통일의 지지자 조지 오글 목사

‘한국 민주주의의 친구 조지 오글 , 한반도 평화통일의 지지자 조지 오글’로 일컬어지는 조지 오글( George E. Ogle) 목사는 미국연합감리교 선교사로서 1954년부터 1957년까지 충남 지역 농촌에서 3년간 단기선교를 했고, 1961년부터 1974년까지는 수도권에서의 도시산업선교를 통해 한국민의 노동권을 신장시켰고 한국민의 인권을 옹호했다. 1974년 인혁당 사건 피해자들을 돕다가 박정희 독재정권에 의해 강제추방 된 후에는 미국에서 인혁당 사건의 실체를 알리고 한국의 민주주의 실현과 한반도 평화통일을 지원하는 다양한 활동을 펼쳤다. 한국정부는 조지 오글 목사에게 2020년 6월 대한민국 국민훈장을 수여하며 한국민의 감사를 전했다. 조지 오글 목사는 2020년 11월 15일 91세의 나이로 소천했다.

인천과 조지 오글 목사

인천에서 활동한 조지 오글 목사의 사회선교는 ‘약한 것을 강하게’로 요약된다. 1962년 조지 오글 목사는 노동자들의 도시 인천에서 사회선교를 시작했다. ‘인천도시산업선교회’를 설립하고 한국 목사들, 한국의 현장 노동자 출신 실무자들과 함께 도시산업선교를 시작한 것이다. 이후 10년간 조지 오글 목사는 인천에 머물며 인천도시산업선교회를 이끌었다.
당시 한국사회의 약자들은 노동자였다. 박정희 독재정부가 수출주도형 경제성장을 주도했고, 저임금에 기초한 수출확대를 독려했다. 값싼 노동력의 지속적 공급이 필요했고 정부는 농촌을 상대로 저곡가 정책을 시행했고,농업으로 생계가 어려워진 농민들은 등 떠밀리 듯 농촌을 떠났고 도시 변두리의 저임금 노동자로 전락했다. 저임금 노동자가 차고 넘치던 시대였다. 노동자들은 힘없는 ‘을’의 처지에 놓이게 되었다. 당시의 노동조건은 너무나 열악했고 주거 환경은 처참했다.
노동자들의 도시 인천에서 조지 오글 목사가 처음 한 일은 그런 열악한 처지에 있는 노동자들을 현장에서 만나는 것 이었다.
인천에는 공장이 많았다. 한국기계 이천전기 인천제철 한국 판유리 등 중공업 공장 뿐 아니라 동일방직 대성목재 등 노동현장이 즐비했다.

“우리는 매주 수요일에 공장을 방문하였다. 한 시간 동안의 질문들이 다음 시간에 논의의 주제가 되었다. 우리 목회자들 가운데 한 사람이 문제를 제기하고, 우리의 입장을 설명하는 약 10분간의 연설을 하였다. 그 다음에 누구든지 원하는 사람이 손을 들어 생각을 털어놓았다. 우리는 한국기계공장에서 그런 모임을 상당히 오래 동안 계속하였다. 때로는 공장바닥에서, 날씨가 좋을 때는 밖으로 이동하여 모임을 가졌다. 우리는 다른 공장들에서 비슷한 방문을 시작하였다”

조지 오글 목사와 노동자들과의 이런 만남은 만남 그 자체로 끝나지 않았다. 조지 오글 목사는 노동자들과의 만남을 통해 한국의 노동현실을 깊이 들여다 보았고,그 노동현실의 개선을 위해 움직였다. 한국인 목사들과 현장노동자 출신 실무자의 조력을 받아 노동자 소모임을 조직했고 노동자 교육을 실시했고 노동자 리더쉽 훈련을 통해 노조 지도자들을 배출했다. 민주노동운동 1세대의 출현을 준비한 것이다.
1972년 동일방직노동조합 여성 집행부 구성은 그 결과 중의 하나이다. 당시 여성은 한국 사회에 가장 약한 계층 중의 하나였다. 가부장적 사회 구조의 밑바닥에서 소외되고 차별받고 있었다. 노동현장에서의 여성 또한 그러했다. 동일방직에는 1,200명의 노동자들이 있었고 그 중 여성노동자가 1,000명이나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노조운영은 소수의 남성노동자들이 도맡았다. 남성 중심의 노조 집행부는 대다수 여성노동자들의 필요에 무지했고, 회사 경영진의 이해를 반영하면서 여성노동자들의 요구를 무시하고 있었다. 당시의 노조들이 어용노조로 이름뿐인 노조였던 것처럼 동일방직도 그러했다.
그런데 그런 노조에서 역사상 최초로 여성이 위원장으로 선출되고 여성집행부가 조직되면서 동일방직노조가 달라진 것이다 노동환경이 조금씩 개선되기 시작했다. 새로운 노조 집행부에 대한 지지가 높아졌고 그만큼 노동자들의 결속력도 커졌고 노조의 영향력도 강해졌다.
동일방직민주노조가 탄생한 것이다.동일방직민주노조와 조지 오글의 인천도시산업선교회는
이렇게 연결되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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