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호
1989.10.29 운명, 당시 25세, 화장
1964년
5월 전북 부안 출생1988년
1월 협신사 입사1989년
10월29일 노조 재건을 위해 동료들과 ‘등불회’를 결성하여 열심히 활동 중 의문의 피살을 당함2002년9월4일 대통령소속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 조사결과 발표
“이재호는 민주화운동을 하였다고 할 수 있으나 회사 측의 면식범 또는 공권력의 개입으로 사망하였는지에 대해서는 당시의 수사결과 특별한 단서가 확보되지 않아 미제사건으로 처리되었고, 우리 위원회의 조사과정에서도 사망경위에 대하여 더 이상 밝히지 못하였다.”열사의 삶과 죽음
89년 10월 29일 0시40분경 인천 주안4동에서 노조 관련 상담을 마치고 귀가하던 협신사(액자제조업체, 사장 이희천) 노조원 이재호 열사가 둔기에 턱을 맞고 숨진 채 발견되었다. 경찰은 단순 폭행치사 사건으로 종결하고자 하였으나, 이재호 열사가 그간 회사 측에 의해 파괴된 노조를 재건하기 위해 열성적으로 일해 오다 끊임없는 노조 탄압의 협박 속에 많은 의문점을 남긴 채 사망함으로써 동료 노동자들과 가족들은 슬픔과 애통함 속에서도 경찰에 정확한 사인규명을 요구하였다.
협신사 사장은 군 인사계 상사로 예편한 뒤 동생의 회사를 강탈하여 80여 명의 노동자들에게 근로기준법이 정한 최소한의 규정조차 지키지 않은 채 가혹한 노동을 강요하였다. 참다못한 노동자들이 89년 2월 27일 마침내 노조를 결성, 협상을 요구하였으나 온갖 폭력을 동원해 노조 탄압을 일삼고 협상에는 응하지 않았다.
사장의 상상을 초월한 폭력과 반인륜적 행위로 마침내 노조 간부들을 강제 사직, 부당해고 시킴으로써 노조를 실질적으로 파괴하기에 이르렀으나 이재호 열사를 비롯한 협신 노동자들은 이에 굴하지 않고 7월에 접어들면서 다시 노조 재건의 기치를 치켜들었고, 회사 측은 다시 탄압의 고삐를 조여오기 시작했다.
사망 당시 여러 가지 정황으로 볼 때 이재호 열사는 면식범이나 계획적인 피살(살해는 아니라도 혼내려는)이었을 가능성이 크며 2월 노조결성 이후 계속되어 온 무자비한 노조 탄압, 그리고 본격적인 노조 재건 움직임과 관련된 것임이 명백하다. 특히 공안정국 아래서 자행되어온 정부 기관의불법적 연행과 테러, 구속, 수배, 미행 등과 긴밀히 연관되는 것으로 인권유린이 공공연히 이루어지는 우리 사회가 무법천지라는 사실을 반증하는 사건이라 할 것이다.
협신사 노동자 이재호 피살사건
협신사는 인천 남동공단에 있는 회사로, 새로 조성돼 공장입주가 시작된 국가산업단지 남동공단은 입주 예정 사업장 노조 탄압이 심각했고 이미 입주한 공장의 노조결성을 차단하기 위한 공안당국과 자본의 공작이 벌어지고 있던 곳이다.본 웹사이트에 게시된 이메일 주소가 전자우편 수집 프로그램이나 그 밖의 기술적 장치를 이용하여 무단으로 수집되는 것을 거부하며, 이를 위반 시 「정보통신망 이용촉진 및 정보보호 등에 관한 법률」 제50조의2에 의거하여 1천만 원 이하의 벌금형 등 형사 처벌될 수 있습니다. [이메일 무단 수집 거부 정책] 무단 수집 금지: 홈페이지 관리자의 사전 동의 없이 자동 수집 프로그램 등으로 이메일 주소를 수집, 판매, 유통하는 행위를 금지합니다. 관련 법규: 정보통신망법 제50조의2 (전자우편주소의 무단 수집행위 등 금지). 위반 시 처벌: 위반 시 1천만 원 이하의 벌금형에 처해질 수 있습니다. 신고 방법: 무단 수집 피해 발생 시 불법스팸 대응센터(국번없이 1336 또는 www.spamcop.or.kr)를 통해 신고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정책을 통해 개인정보를 보호하고, 스팸 메일 등 불법적인 광고성 정보 전송을 방지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