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신호수 1986.6.19 운명, 당시 23세, 광주 망월동 민족민주열사 묘역에 안장
1963년 8월 8일 전남 여수 출생
1980년 2월 성동중학교 졸업
1983년 8월 검정고시 합격
1985년 6월 방위 근무
1986년 6월11일 인천시 남구 소재 연안가스에서 근무 중 서울서부경찰서형사들에 연행 후 행방불명
1986년 6월19일 전남 여천군 대미산 동굴에서 변사체로 발견
동지의 삶과 죽음
신호수 동지는 평소 명랑, 쾌활하고 의지가 강하였다. 또 어려운 가사를 고려하여 스스로 학교를 자퇴하고, 고학으로 대학진학을 준비할 만큼 효심이 깊었다고 한다. 성실, 근면한 동지는 독재체제 하에 신음하는 사회 현실에 깊은 관심을 갖고 각국의 자주화와 민주화에 관련된 서적과 유인물을 많이 읽었으며, 가끔 친구들과 같이 집에 와서 토론하곤 했다. 인천 5?3민주화운동 직후 경찰이 여수 집으로 찾아와 동지의 신원과 행방을 확인했다고 하는데, 동지의 연행이 5?3민주화운동과 관련된 것이 아닌가 추정해 볼 수 있다.
동지는 86년 6월 11일 오후 1시30분경, 인천시 남구 소재 연안가스 충전소에서 가스통 밸브작업을 하고 있던 중 서울시경 대공수사과 형사라고 신분을 밝힌 3명의 남자에 의해 연행되었다. 이후 소식이 끊겼다가, 8일 만인 19일 10시경 강윤곤 등 3명의 방위병에 의해 고향집으로부터 불과 4km거리인 전남 여천군 대미산 중턱의 한 동굴에서 흰색 면양말에 팬티만 걸친 상태의 사체로 발견되었다.
당시 서부경찰서는 신호수 동지가 방위 근무할 때 장판 밑에 모아둔 북한의 삐라를 문제 삼아 대간첩작전의 가치가 있다고 판단하여, 이를 “장흥공작”이라고 명명하고, 신호수 동지를 연행한 것이 국회에 제출된 국정감사자료에서 밝혀졌다.
사건 당시 여수경찰서는 가족에게 통보도 하지 않은 채 형사 2명이 지켜보는 가운데 검시, 목을 매 자살한 것으로 사건을 추정하고 변사사건으로 처리해 버렸다. 경찰은 86년 6월 21일 발견 이틀 만에 전남 여천군 돌산읍 평사리 공동묘지에 가매장하고, 6월 27일에야 가족에게 통보했다.
2002년 9월 16일 대통령소속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 조사결과 발표민주화운동 관련성은 의문사한 자가 직접 민주화운동을 하였는지의 여부와 직접 민주화운동을 수행한 바는 없지만 민주화운동을 탄압하는 과정에서 위법한 공권력이 행사되어 결과적으로 민주화운동에 대한 반대적인 의미의 권위주의 통치가 이루어지는 과정에 기여한 것이라면 그 관련성에 대하여 판단해보아야 할 것이다.
(1) 이 사건 신호수의 경우 공작 대상이었으며 공작과정의 희생으로 사망에 이르렀다고 보여지는 바, 소위 장흥공작에 대하여 살펴보아야 한다.
신호수가 불온전단을 소지하고 이를 통하여 반국가적인 발언을 하였다는 등 거짓보고를 작성하고, 신호수에 대하여 불순분자와 연계 활동하는 것으로 파악되므로 공작가치 있다고 판단한 점 등으로 보면 불온전단으로 공작성과를 올리기 위하여 단순 첩보사실을 확대·왜곡하여 국가보안법위반죄를 적용하기 위한 의도로 장흥공작에 착수한 것으로 보인다.
(2) 1986년 인천 5.3사태는 개헌청원 서명운동으로 시작되어 1987년 정권교체로 이어지는 민주화투쟁 과정의 사건이다. 80년대 이후 최초로 소요죄가 적용된 인천 5.3사태는 현장에서 시위자 319명이 연행되어 129명이 구속되었고 이후 수배자 46명으로 되어 각 경찰서에 수배전담반이 편성되었으며, 자유민주주의 체제를 전면 부정하는 용공적 폭력소요사태로 규정되었다. 5.3사태 전후로 신호수는 인천 연안가스에서 근무하였고 이에 참가한 바는 없으나, 5.3사태의 배후 주동인물 중 1인이었던 수배자 김○성과 외국어대학교 학생회장 김○주를 체포하기 위하여 같은 공작조원 차○수가 체포조와 함께 인천에 가고 외국어대학교 등에서 탐문활동을 했다는 점으로 보면 1986년 6월 11일 신호수의 연행이 김○성과 김○주 등 5.3관련 수배자의 체포와 무관하다 할 수는 없을 것이다.
결론적으로 신호수는 1986년 민주화운동을 탄압하는 과정에서 인천 5.3사태 직후, 이전의 불온전단으로 공작대상자로 선정되어 간첩혐의로 서부 경찰서에 연행된 후 위법한 공권력에 의하여 사망하였다고 보여진다. 이 사건이야말로 80년대 인권침해의 대표적인 사례이며, 정권안보의 차원에서 국민을 대상으로 공작을 벌인 권위주의 정책의 표본인 것이다.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안병욱, 이석영 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