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진 정 서
민주화운동관련자 명예회복 및 보상심의위원회 위원장님께
존경하는 위원장님 및 위원님들께
이제 2015년 새봄이 오고 있습니다.
올해로 저의 아들 이덕인이 사망한지 20년이 됩니다.
20년 전인 1995년 11월 이덕인은 차가운 아암도 앞바다에서 시체로 떠올랐습니다. 그렇지만 20년이 지난 오늘도 이 애미 애비는 아들을 떠나보내지 못하고 있습니다.
아들의 죽음이 하도 억울하고 원통하여서, 그리고 아들이 죽었다는 사실과 그 이유를 받아들일 수 없어서 수년 동안 거리에서 죽음의 진실을 밝혀달라고 싸워왔습니다.
그런데도 나는 아직도 아들을 편히 보낼 수가 없습니다. 아들이 비록 죽음은 불행했지만 단지 ‘장애인 노점상’으로만 남겨둘 수 없습니다. 우리 아들은 자신뿐만 아니라 전체 도시빈민의 생존권을 지켜내기 위해 따라서 민주화운동의 피와 땀으로 만들어놓은 헌법에서 정해놓은 기본권을 지켜내기 위해 희생한 민주화운동가로 돌아와야 합니다.
그런데 귀 위원회는 우리 아들의 죽음에 대하여 “실정법 위반된 행위인 노점상 행위를 단속한 지방자치단체의 고유사무에 대한 일반적 법 집행을 헌법에 보장된 국민의 기본권을 침해한 것으로 인정할 수 없고, 노점상 철거과정에서 일부 위법한 부분이 있다고 해도 관련자의 사망을 민주화운동과 관련이 있다고 보기 어려우므로 원 결정을 변경할 만한 사유가 없음”이라고 하였습니다(재심결정문).
다른 분의 죽음과 우리 아들의 죽음을 비교하는 게 옳지는 않겠지만, 우리 아들과 비슷한 처지에서 돌아가신 이재식 열사가 있습니다. 그 분은 거제도에서 노점상을 하다가 부당한 철거에 항의하여 분신하여 사망했습니다. 그런데 귀 위원회는 고 이재식의 활동과 죽음에 대하여 “관련인의 행위는 사회적 약자의 권리수호에 기여하고 헌법상 보장된 인간다운 생활을 할 국민의 기본권 침해에 대한 항거행위로 궁극적으로 민주헌정질서 확립 및 국민의 기본권 신장에 기여한 것으로 민주화 운동으로 인정”한다고 하였습니다.
나아가 ‘대통령소속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도 우리 아들의 활동과 투쟁이 “공권력의 생존권 침해행위에 대하여 사회구조적, 사회정책적 문제로 발생한 빈곤과 사회적 불평등의 문제를 해결해나가고 생존권을 보다 실질적인 권리로 인정받기 위한 활동이었다”고 하였습니다.
위원님 여러분의 소신이나 의견이 다 다를 수 있다는 것을 인정합니다. 어떤 의견들을 가지신 분들이 다수인가에 따라 위원회 결정이 달라질 수 있다는 것도 다 인정할 수 있습니다. 그렇지만 이것은 민주화운동의 정의에 대한 것입니다. 어디까지 민주화운동으로 볼 수 있느냐는 것입니다. 그것은 어느 정도 사회적 합의와 상식들에 비추어서 이루어져야 합니다. 도시빈민, 사회적 약자의 권리수호, 생존권이 헌법에 보장된 권리이냐 아니냐, 그 헌법에 보장된 권리를 위한 활동이 민주화운동이냐 아니냐, 이것은 일관되게 공평하게 적용되어야 된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귀 위원회는 그러하지 아니하였습니다. 그것으로 인해 두 사람의 죽음의 운명이 완전히 엇갈려버렸습니다. 그리고 이런 잘못된 결정들을 놔두고 위원회 활동을 종료할 수는 없습니다. 위원님들께서 이에 대해서 다시 한 번, 깊이깊이 검토하시어서, 이와 관련해서 일관된 결정, 올바른 결정을 내려주시기를 간곡히 진정합니다.
또한 우리 아들의 죽음은 그냥 불운하게 익사한 것이 아니라 국민의 안전과 행복을 지켜야 할 공권력이 부당하게 행사되어 망루로 올라가 싸우고 또 탈출을 시도하는 과정에서 빚어진 역사적 희생으로 옳고 정당하게 평가되어야 합니다. 우리 아들은 운을 잘못만나서, 자신의 착오나 실수로 불운하게 죽은 것이 아닙니다. 의문사위원회 조사결과나 그 결정을 꼼꼼히 보시면 왜, 어떻게 연수구청의 강제대집행이 잘못된 것인지, 아들이 참여한 망루 농성자들의 해산을 강요한 것이 어떠한 위법이 있고 인권침해였는지, 아들은 왜 망루를 탈출하기 위해 시도해야만 했는지 잘 제시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의문사위원회는 우리 아들 이덕인의 죽음은 “위법한 공권력에 기인한 것”이라고 판단을 내리고 있습니다. 그러나 귀 위원회는 노점상 철거과정에서 ‘일부’ 위법한 점이 있다고만 인정했을 뿐 아들의 사망사건의 전반적인 상황과 흐름을 전연 놓쳐버렸습니다. 아들의 죽음은 공권력의 노점상 철거가 왜, 어떻게 위법하게 이루어졌는지, 이에 맞서 아들은 어떻게 싸웠고 결국 죽음에 이르렀는지 그 맥락을 잘 살펴보고 판단해야만 합니다. 저희는 귀 위원회에서 다시 한번, 이러한 점들을 꼭 다시 검토하여주시기를 간절히 바라옵니다.
우리는 아들 죽음의 진실을 위해서, 정당한 평가를 위하여 덕인이가 죽은 뒤 20년의 시간을 바쳐왔습니다. 이러한 점들이 옳게 밝혀지지 않고 또 세상에 알려지지 않으니 아들의 죽음은 의문사였습니다. 그래서 여러 의문사유가족과 함께 진상규명을 위해 싸웠습니다. 그리고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가 설치되고 아들의 죽음의 진상은 명백하게 드러났습니다. 아들의 죽음은 민주화운동과 관련이 있다고 하였습니다. 아들의 죽음은 위법한 공권력의 개입과 관련되었다고 옳게 규정되었습니다.
그런데!
우리 아들의 죽음의 진실은 거기서 멈추고 말았습니다. 귀 위원회에서 이 모든 것을 뒤집고 십 수 년 노력을 물거품으로 만들어버린 것입니다. 아들의 죽음의 평가를 뒤로 되돌려 놓아버린 것입니다. 아들이 ‘불쌍하게 죽어간 장애인 노점상’일 뿐으로 되돌려놓아 버린 것입니다.
이제 아들이 죽은 지 만 20년이 되어가는 오늘, 저희는 이 잘못된 결정과 평가를 다시 검토하여 주시기를 간곡히, 간곡히 진정합니다. 저희가 기댈 곳은 위원장님, 위원님들 밖에 없습니다. 우리는 아직도 귀 위원회가 아들의 죽음과 같은 희생에 대하여 정당하게 평가하고 원혼을 달래고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 모두의 삶의 밑바탕이 되도록 만들어졌고 그렇게 해왔고 또 해나갈 것이라는 기대가 있습니다. 소망이 있습니다. 이러한 소망을 가슴에 품고 진정 눈물로 진정합니다.
그럼 위원장님, 위원님 여러분의 가내 평안하시고 늘 건강하시기를 기원하면서 마칩니다.
급박한 마음에 서툴게 마음 표현한 점은 양해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향후에 주위 여러분과 단체의 도움을 빌어 이에 대한 내용과 자료를 다시 정리하여 보내도록 하겠습니다.